887회
흥망성쇠(Rise and F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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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IDDC를 준비할 때, 가장 중요하게 다뤄진 게 퓨처 액세스 정책이었다.
유재원의 머리에서 나온 아이디어였던 퓨처 액세스는 실무진에게 넘겨지면서 정교한 디테일이 추가 되었다.
거기엔 나라별 할당부터 리뷰어 선정과 같은 사소한 사안까지도 꼼꼼하게 담겨 있었다. 하나하나 많은 논의가 있은 후에 결정이 되었는데, 가장 정성을 기울인 건 가격 정책이었다.
물건은 한정되어 있는데, 원하는 사람들은 많으니 결국 가격으로 차별화를 두는 건 자본주의 시스템의 기본이었다.
ID 그룹의 임원들도 큰 반대는 없었다. 다만 3배 높은 가격을 발표했을 때, 객석이 싸늘하게 식는다든가, 최악에는 야유가 나올 수도 있다는 소수의 의견이 있었다.
ID 테크놀로지의 앨런 사장은 이를 우려하며 신기술만 유재원이 발표하고, 가격은 본인이 발표하겠다고 나섰다.
충성심의 발로였다. 하지만 그 이유뿐만은 아니었다. 유재원의 이미지가 곧 ID 그룹의 이미지인 만큼, 유재원의 혁신가 이미지의 훼손을 막겠다는 것이었다.
물론 유재원은 지금 보는 것처럼 그걸 다 거절하고 본인이 직접 가격도 발표했다.
다이아몬드 반도체가 탑재된 퓨처 액세스 제품으로 안드로이드 Z2 스마트폰은 2,499달러, 2012년형 스마트 패드는 2,999달러, 뉴에그 PC는 6천 달러다.
반면 기존 실리콘 반도체가 쓰인 Z2, 패드는 각각 799달러, 899달러의 가격으로 결정되었다. 실리콘 버전 M12도 벤치마크에서 7.02점이 나올 만큼 강력한 성능을 자랑했지만 다이아몬드 버전에 밀려 지금은 찬밥 신세다.
이렇게 신중히 결정된 가격 정책을 유재원은 직접 발표했다. 메인 스테이지의 객석이 좀 싸늘해진 느낌이지만 야유는 없었다.
대신 처음보다는 작아지긴 했지만 박수가 이곳저곳에서 터져 나왔고, 곧이어 옆으로 전파가 되면서 메인 스테이지 전체를 울렸다.
실제로 많은 이들은 가격 상승률 이상으로 성능도 상승하니 비싸다고 느끼는 대신, 가성비가 있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객석의 맨 뒤쪽에 앉아 있던 일부 관객들이 빠르게 메인 스테이지에서 빠져나갔다. 실리콘 밸리 컨벤션 센터에서 열리는 IDDC의 전통 중 하나가 현장 판매였다. 그것도 단순히 맛보기 정도가 아니라 본격적으로 작정하고 현장 판매를 했다.
현장 판매가 시작되는 시점은 기조연설을 하는 이가 가격을 발표하는 때가 기준이었다. 아예 처음부터 메인 스테이지는 들어가지 않고 매대 앞에 줄을 서고 있는 사람도 있었지만, 기조연설을 먼저 보고 성능이나 디자인이 마음에 들면 구매를 결정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뒷줄에 있다 빠져나가는 것이었다.
덕분에 큰돈 들고 오는 사람들도 많아서 예전엔 소매치기의 명당이기도 했다. 컨벤션 센터 내에서는 사방이 인공지능 CCTV가 깔려 있어서 바로 잡히지만, 밖에서는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해가 지날수록 지역 자체의 보안도 올라가고, 샌프란시스코시 당국에서도 경찰들을 보내준 덕에 불미스러운 일은 크게 줄었다.
“이 자리에서 분명히 약속을 합니다. 양산이 완료된 다이아몬드 반도체의 가격은 지금의 실리콘 반도체 수준으로 책정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때면 AMD의 신형 CPU의 다이아몬드 버전도 출시될 겁니다. 역시 가격도 예전과 크게 달라지 않을 거라고 약속드립니다.”
유재원의 추가적인 약속에 메인 스테이지의 열기는 다시 뜨거워졌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공지가 더 있습니다. 퓨처 액세스 제품들은 이곳 현장 판매분이 소진되면 오직 ID 그룹 홈페이지에서 인터넷 구매로만 구입할 수 있습니다. 또한, 판매 방식도 단순 선착순이 아닌 스마트 찬스만으로 제공됩니다. 혼란을 최소화하고, 다양한 환경에 있는 사용자로부터 다채로운 피드백을 수집하기 위함입니다.”
오늘 현장 판매가 끝나면 오직 인터넷 판매만 된다는 소리에 메인 스테이지를 빠져나가는 사람들의 숫자가 확 늘어났다.
동시에 인터넷으로 유재원의 발표를 보던 많은 이들이 절망에 빠졌다.
“거짓말! 거짓말일 거야!”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격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은 인텔의 CEO 브라이언 크르자니크였다.
반ID 그룹을 이끄는 그룹 중에는 페이스북과 애플이 제일 유명했지만, 리더 그룹 중에는 인텔도 있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ID 그룹과 인텔의 관계는 좋았다.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의 최적화도 인텔이 기본이었고, AMD는 반박자 늦게 이뤄지는 게 보통이었다.
여기에 ID 그룹이 자랑하는 클라우드 시스템에서 제일 큰 지분을 차지하는 하드웨어는 인텔의 제온 제품군이었다. 그것도 가장 최상급 모델만을 매년 1천만 개 이상 구매를 했다. 밀월 관계라고 해도 좋을 사이는 AMD가 4코어 이상의 제품을 시장에 내놓으면서 바뀌었다.
게임은 인텔이었지만, 전문가용 퍼포먼스는 AMD가 앞서기 시작했다. 게다가 Z+라는 프로그래밍 언어가 나오면서 최적화의 트렌드도 확 달라졌다.
다중 코어를 동시에 사용하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건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작업이었는데, 인공지능 컴파일러가 이를 대신해 주면서 AMD의 약진이 시작된 것이었다. 그와 함께 PC 시장보다 훨씬 빠르게 성장하는 모바일 시장은 인텔에겐 위협이었다.
개인용이든 기업용이든 PC 시장을 다 합친 것보다 모바일 시장이 훨씬 거대했다. 그리고 앞으로의 성장 잠재력도 무시무시한 곳이었다.
그렇기에 브라이언 크르자니크는 과감하게 뛰어들었다.
모바일용 AP인 아톰도 출시했고, 인텔 자체적인 무선 통신용 모뎀 칩도 만들었고, 고성능 와이파이 칩도 만들었다. 심지어 드론이나 자율주행 프로세서까지도 저변을 확대했다.
ID 테크놀로지와 사업 영역이 크게 일치하면서 협력 관계가 아니라 경쟁 관계가 되었다. 이에 대해 우려하는 인텔의 임직원들이 상당했다. 오죽하면 월스트리트에서도 인텔이 위험한 도박을 한다는 리포트가 나올 정도였다.
그럼에도 올해 초까지는 괜찮아 보였다.
ID 그룹은 여전히 인텔의 최고급 CPU인 제온을 쓸어 담고 있었으니 말이다. AMD가 불도저로 망해 버린 지금 세상에서 제일 빠른 CPU는 인텔에서만 나왔다. 다만 망해 버린 AMD를 ID 일렉트로닉스가 인수했다는 건 경계해야 할 일이었다.
브라이언 크르자니크도 이 점은 인지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인텔에 들어오는 ID 그룹의 주문량이 줄어드는 때가 찾아온다면 AMD가 새 제품을 내놓았을 때라고 보았다.
크르자니크 CEO가 예상한 그 시점은 지금보다 3년은 더 뒤였다.
불도저라는 게 폭삭 망해 버린 지금, 완전히 새로운 CPU를 바닥부터 완성하려면 인텔이라도 그만한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데 현실은 늘 상상을 초월했다.
크르자니크 CEO는 단 한 번도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가 x86 아키텍처의 성능을 뛰어넘을 거라고 상상도 못 했다.
시네벤치라는 연산력 벤치마크 툴은 그도 잘 알고 있는 프로그램이었고, 인텔의 CPU 점수도 다 꿰고 있었다.
현재 인텔의 최신상 모델은 얼마 전 출시한 i7 4960X였다. 아이비브릿지 2세대 모델로 6코어 12스레드를 자랑했고, 터보 클럭시 4Ghz의 속도를 자랑했다.
PC용으론 최상급인데, 사실은 제온이라는 서버 제품군 CPU용 웨이퍼에서 코어가 조금 죽어 제온 딱지를 붙일 수 없게 된 불량을 개인 PC용으로 살려낸 것이다. 코어가 좀 죽어 있는 대신 작동 속도를 끌어올렸는데, 제법 강력한 성능이 나왔다.
4960X의 시네벤치 점수는 10.6점으로 역대 최강이었다.
그런데 모바일 프로세서로 56점이라니. 게다가 실리콘 버전 M12는 7점을 넘었다.
4월에 다이아몬드 반도체 논문을 보았고, 그때 뜬 자료 영상도 슬쩍 보았던 크르자니크였다. 게다가 인텔도 비슷한 연구를 하고 있었다. 다이아몬드 반도체로의 활용 말이다. 하지만 인텔은 개념만 잡아가는 단계였다.
실무진에서도 단기간 양산은 어려울 거라는 의견이 절대다수였다. AMD의 신제품이 나오는 건 3년을 예상했으니, 다이아몬드 반도체는 아무리 빨라도 5년은 걸릴 거라는 예측이었다.
주식 시장에서도 논문이 공개된 당시엔 크게 폭락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크게 회복했다. 유재원의 논문은 대단히 충격적이었지만, 시간이 좀 지나고 보니 양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릴 거라는 데 의견이 모아진 것이다.
오늘 IDDC는 브라이언 크르자니크의 단단한 상식선이 붕괴되는 시간이었다.
유재원이 본인 입으로 양산에 문제가 있다고 말할 때만 해도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자신의 생각이 맞아 들어간다는 느낌에 기분이 너무나 좋았던 크르자니크였다.
퓨처 액세스라는 정책이 발표되기 전까지 그랬다.
설명을 들을 때에도 필드 테스트용 제품을 비싸게 팔아먹겠다는 것으로 들렸다. 그런데 준비된 물량이 크르자니크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다.
-퓨처 액세스로 준비된 물량은 500만 대입니다.
일반 반도체 회사라면 이 정도 물량은 양산 성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게 리스크 생산으로만 나온 물량이라니.
본격적으로 양산이 시작되면 대체 얼마나 많은 물량이 터져 나올지 모르겠다.
그 시점에서 크르자니크의 멘탈도 바사삭 부서졌다.
물량도 물량인데, 더 무서운 건 성능이다. 다이아몬드 공정으로 찍어 나온 모바일용 프로세서가 56점을 찍는 걸 실시간으로 보여주었으니 말이다.
인텔의 단일 칩 CPU로는 달성 불가능한 점수였다. 게다가 유재원은 PC에도 모바일 프로세서를 장착한 과감함을 선보였다.
다이아몬드 반도체 3신기가 탑재된 뉴에그 PC였다.
뉴에그 PC의 자세한 리뷰가 올라와 봐야 확실할 테지만, 지금 딱 보기에도 그 어떤 시스템으로도 이를 능가하는 건 불가능이었다. 프로그램 호환성이 문제라고? 애초에 PC 운영체제는 안드로이드 독점이었고, 가상 머신이라는 도깨비방망이도 있다. 네이티브 구동이 아니라서 성능에 손해가 좀 나오겠지만 56점을 찍는 깡성능이라면 그 정도 성능 손실은 감당하고도 남는다.
띵!
발등에 불이 떨어진 브라이언 크르자니크에게 알람이 왔다. 회사의 내부 전산망에서 운영되는 메신저에서 나는 알람 소리였다.
-브라이언 CEO, 나쁜 소식입니다.
그와 함께 인공지능 개인 비서의 추가적인 설명도 이어졌다.
나쁜 소식이라니.
메신저를 클릭해서 자세한 내용을 보기도 전이었지만, 거기에 무슨 말이 담겨 있을지 바로 짐작이 가는 크르자니크였다.
보기가 싫어져서 마우스를 움직이는 손이 매우 느렸다. 그래도 CEO라는 본분은 잊지 않고 클릭을 해서 메시지를 개봉했다.
-ID 테크놀로지가 제온 CPU의 8월 이후 인도분 전량을 취소했습니다. 예약 취소에 대한 위약금은 바로 지급하겠다고 합니다.
크르자니크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지금 시간은 저녁 7시를 넘기고 있었다. 어지간한 기업의 업무 시간은 끝났을 시간이었다. 게다가 IDDC가 한창 진행 중이었고, 다이아몬드 반도체 제품군의 발표가 끝난 타이밍이었다. 그 시점에 맞춰 예약 취소를 보냈다는 건, 이미 작정하고 보낸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화가 확 올랐지만, 그보다 더 암담한 건 앞으로의 미래였다.
취소된 물량의 처분부터 다이아몬드 반도체에 대한 대응까지.
그저 앞날이 캄캄하기만 했다.
크르자니크 CEO의 절망과 상관없이 IDDC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2일 차 IDDC에서는 양산형 아틀라스 로봇을 선보였고, 그날부터 직접 예약한 고객들에 대해 배송도 시작되었다. 3일 차에는 ID 일렉트로닉스와 아틀라스 로봇의 콜라보도 선을 보였다.
가전제품에 탑재된 IoT 모듈이 아틀라스 로봇과 직접 소통하면서 완벽한 자동화 서비스를 선보였다.
대표적인 기능이 세탁이었다.
집안일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세탁은 매일매일 새로운 빨랫감이 나오기에 쉴 틈 없는 일이었다.
여기에 아틀라스가 추가되면서 삶의 패턴은 완전히 달라졌다.
세탁 바구니에 빨래를 담아두면 아틀라스 로봇이 알아서 세탁기를 돌리고, 세탁이 완료된 세탁기는 IoT 모듈로 아틀라스에게 신호를 보내서 세탁물을 꺼내도록 했다. 건조기가 있다면 세탁이 끝난 옷들을 건조기에 넣어서 돌리고, 건조가 끝나면 아틀라스에 신호가 가서 꺼내게 된다.
아틀라스 로봇은 건조기에서 나온 옷을 잘 개어 옷장에까지 넣어 준다.
세탁도 빨랫감을 대충 세탁기에 쓸어 넣고 돌리는 게 아니라, 옷의 재질에 따라 분류를 하고 해당 재질에 맞게 세탁기를 돌렸다.
이러한 통합 IoT 제품은 냉장고와 TV, 식기세척기, 청소기에도 적용이 되어서 가사 노동 시간을 극단적으로 줄여주는 효과를 냈다.
이렇게 아틀라스 로봇과 통합되는 IoT 모듈을 추가했다고 값이 비싸지는 것도 아니다. 살짝 고급형 라인업이긴 해도 가격은 불과 5, 10만 원 차이였으니 말이다.
4일 차에는 게임데이로 프로젝트 2077을 비롯한 신작 게임들이 대거 선을 보였다. 거기엔 마인크래프트도 있었고, 디아블로 3도 등장했다.
5일 차에서는 개발자들의 날이었고, 하드웨어부터 소프트웨어까지 ID 그룹의 신기술을 전문적인 수준에서 심도 있게 다루었다.
물론 제일 히트한 아이템은 다이아몬드 반도체였다.
2012 IDDC에서 발표된 모든 신제품들은 다이아몬드 반도체의 압도적인 성능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사용자들의 입장에서도 만족이었다.
3배나 비싼 값을 줘야 했고, 돈이 있어도 못 사는 물건이 퓨처 액세스로 풀리는 3가지 제품들이었다.
운 좋게 제품을 얻은 사람들은 100% 성능에 만족했다. 아주 자연스럽게 선망도 생겨났고, 리셀러 시장에서는 어마어마한 프리미엄이 붙어 버렸다.
이러한 성과는 곧 ID 그룹의 주가 상승으로 이어졌다.
2012 IDDC가 끝나고서 한 달이 지났을 때, ID 일렉트로닉스의 주가는 1주당 50만 원대를 넘어 버렸다. 주식 발행량이 20억 주였으니 시가 총액 1천조 원을 찍은 것이었다. 다이아몬드 반도체 기술을 독점하는 기업이라는 단 하나의 재료만으로 이뤄낸 성과였다.
이제는 ID 그룹에 압도적으로 흥성한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반대로 추락에 추락을 거듭하는 가문이 있었다.
록펠러였다.
너무나도 공교롭게도 2012 IDDC가 끝나고서 록펠러 가문에 대한 3가지 재판의 선고가 속속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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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추천과 리플,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원고료 쿠폰과 후원 쿠폰도 완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