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907화 (907/1,007)

883회

흥망성쇠(Rise and F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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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원은 바로 텔레비전을 켰다. 채널은 프랑스 공중파 TF1에 맞췄다.

“응?”

하지만 채널은 평온한 분위기에서 정규 방송이 진행 중이었다.골드의 보고가 틀렸나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유재원은 골드의 능력을 의심하기 전에 인터넷을 켜고 프랑스의 SNS를 찾았다.

“아. 나온다.”

그러자 TV와는 달리 SNS에서는 바로 답이 나왔다. 빠른 속도로 리톡톡 숫자가 늘어나고 있는 게시글이었고 인공지능 골드가 다급히 긴급 메시지를 띄운 원인이기도 했다.

불타는 자동차였다.

이름 그대로 지하도에서 활활 타오르는 검은색 호송용 자동차다. 장갑차처럼 단단한 자동차일 텐데, 노란 불꽃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장면을 수십 명의 사람들이 고급 카메라를 들고 찍고 있는 사진도 있었다.

그로부터 5분은 더 지나고서야 일상적인 오전 타임 정규 방송을 진행하던 TF1에도 변화가 생겼다. SNS가 워낙 빠르다 보니까 공중파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긴급 속보.

-클라크 록펠러 미국 송환을 위해 이동 중 사고 발생.

-자세한 경위 파악 중.

정규 방송은 그대로인데, 하단에 자막 속보가 떴다.

자세한 경위는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클라크 록펠러를 호송 중이다가 사고가 났다는 건 알겠는데, 사고의 원인이나 사고 수습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혹시 사고를 핑계로 탈출을 시도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잠시 후.

30분 정도 시간이 지나자 공중파에서도 사건의 전모가 밝혀졌다.

파파라치였다.

사고의 원인이 말이다. 클라크 록펠러의 신병이 호송차에 실리고, 미국이 준비한 군용기가 있는 공항까지 가는 길에 파파라치들이 달려들었다는 것이다. 자동차는 물론 오토바이를 탄 파파라치들이 대포 같은 카메라를 들고서 사진 한 장이라도 남기기 위해 포위를 하면서 따라붙었다.

사고는 지하도를 지날 때 일어났다.

도로 가운데 콘크리트로 천장까지 닿는 중앙 분리대 겸 기둥이 있는 구식 지하도였다. 도로의 폭도 좁아서 큰 차들은 벽에 닿지 않도록 조심히 다녀야 할 정도로 위험한 구간이었다. 파파라치들이 그 좁아지는 지하도를 지날 때에도 비켜서지 않다가 결국 사고가 나 버린 것이다.

TF1에서는 당시의 상황에 대한 영상을 확보했는지, 바로 영상으로 송출했다.

호송차 옆을 나란히 달리던 파파라치 차량이 지하도 구간에서는 무리하게 속도를 내어 호송차 앞으로 끼어들었다. 그 순간 사고가 났다. 구식 피아트였던 파파라치 차량이 충분한 가속도를 내지 못하는 바람에 호송차의 앞쪽과 충돌한 것이다.

평지의 도로였다면 접촉 사고로 끝날 일이었는데, 하필이면 지하도였다.

지하도 벽면과 충돌한 호송차의 좌충우돌이 이어지더니 벽과 충돌하며 완전 정지했다. 그렇게 몇 초 지났을까. 차량에서 기름이 샜던 모양인지 불길이 확 올라왔다.

운전석과 조수석에 있던 프랑스 법무부 직원들은 빠르게 탈출했는데, 호송 칸이 문제였다. 단단히 봉인된 호송 칸을 여는 속도보다 불이 퍼지는 속도가 더 빨랐다.

-클라크 록펠러 씨는 탈출하지 못하고 사망한 것으로 추정.

TF1의 아나운서의 말처럼 클라크 록펠러는 차량 화재로 죽었다고 추정 중이었다.

여기서 추정이라는 건, 검게 탄 시신은 발견했는데, 그걸 클라크 록펠러로 확정하지는 않았다는 이야기다.

완전 연소는 되지 못했지만, 멀쩡한 부분은 거의 찾을 수가 없는 상태라고 한다. 얼굴이나 신체적 특징으로는 확정을 못 하고, DNA 비교를 해 봐야 신원을 특정할 수 있을 정도로 심하게 훼손되었다.

그렇지만 TF1이나 빠른 속도로 쏟아지는 속보에서는 클라크 록펠러의 사망을 확정한 상태였다. 사고가 난 호송차에는 클라크 록펠러 단 한 명만 호송 중이었으니 말이다.

“이야, 역시 록펠러다운 꼼수가 있군.”

유재원이 말하는 꼼수란 일명 금선탈각이었다.

금선탈각은 삼십육계라는 병법에 등재된 책략 중 하나였다.

금선은 매미를 의미하고, 탈각이라는 건 껍질을 벗는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매미가 껍질을 벗고 날아가는 것처럼, 껍질을 진짜라 속이고서 위기로부터 벗어나는 병법이다.

유재원은 돌아가는 정황을 보고 클라크 록펠러가 본인의 죽음을 위장하고 탈출했다고 확신했다.

일단 호들갑 떠는 저 불탄 시신은 무연고 시신일 게 분명했다. DNA의 감정 결과도 클라크 록펠러의 선택에 따라서 불일치나 일치로 얼마든지 세팅할 수 있었을 것이다.

불일치라면 탈옥범이라는 크나큰 리스크를 감수하고 본인의 이름을 잃지 않겠다는 뜻일 테고, 일치로 나온다면 죽음으로 클라크 록펠러라는 이름을 버리는 걸 감수하고서라도 자유의 몸이 되겠다는 의지다.

유재원은 DNA가 일치로 나오는 게 더 위험하다고 느꼈다.

조금 전 CIA의 맥마흔 국장이 직접 국제 무기 암시장에서 헬파이어 미사일이 거액에 팔렸다고 했다.

어중간한 첩보도 아니고 CIA의 국장이 직접 전한 첩보였다. 그러니 이름을 버린 클라크 록펠러가 막무가내로 본인을 향해 미사일 공격을 감행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띵!

-유 회장님, 프랑스발 속보 보셨습니까?

때마침, 맥마흔 국장으로부터 ID톡이 왔다.

“네, 지금 보고 있습니다.”

-자세한 정보는 최대한 수집 중입니다. 확정이 되면 바로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동안은 이동을 최대한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역시 국장님도 가짜라고 의심하고 있는 거죠?”

-그렇습니다.

맥마흔 국장의 짧은 대답에 유재원의 확신도 더욱 힘을 얻었다.

“알겠습니다. 소식이 업데이트되는 대로 알려주세요.”

유재원은 맥마흔 국장과 ID톡이 끝났지만, 스마트폰은 그대로 쥔 상태로 깊은 생각에 빠졌다.

죽음으로 위장하고 감옥에서 탈출한다는 건 그야말로 클리셰 중의 클리셰였다. 그렇기에 유재원의 머릿속에 즉각적으로 떠올리는 대응책도 엄청나게 많았다.

“죽음으로 위장한 것만큼 위험한 것도 없는데 말이지.”

탈출 방법으로는 좋지만, 이후 일어날 후폭풍을 생각하면 그다지 좋은 건 아니었다.

일단 록펠러라는 성이 가져다주는 이점은 다 포기해야 하니 말이다. 어지간하게 숨겨 놓은 재산으로 호화로운 생활이야 이어갈 수 있겠지만, 록펠러 가문의 재산에 권리는 행사하지 못한다.

상속법에 따라서 클라크 록펠러의 자식과 아내에게 분배될 테니까.

무엇보다 각종 공작이 훨씬 수월해진다.

죽음으로 위장했다?

그러면 진짜 죽음을 선사해 주면 되는 거 아니겠는가.

이미 죽은 사람이니 다시 한 번 죽음을 선사하는 것에 망설일 이유가 하나도 없다.

며칠 후.

유재원의 펜트하우스가 커다란 공사를 하는 것처럼 소란스러웠다.

지상으로부터 수백 미터는 위에 자리하고 있기에 일상의 소음과는 거리가 먼 곳이었는데, 어제부터 큰일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원인은 대공포대 설치 작업이었다.

존 맥마흔 국장이 말했던 그대로 파이브 아이즈 정보공동체에 대한민국도 당당히 껴 있었다. 그렇기에 유재원을 향한 테러 정보도 대한민국 국정원과 국방부에 전달되었고, 정병우 대통령은 즉각적인 대처를 승인했다.

그것이 대공포대 설치였다.

사실 서울에 자리한 고층 빌딩에 숨겨진 비밀 하나가 옥상마다 설치되는 대공포대였다. 과거 북한과 대결국면이었던 때 생겨난 정책이었다. 북한의 저공 비행 침투는 단순히 상상이 아니라 현실 가능한 일이었고, 이를 막기 위해 고층 빌딩마다 대공포를 놓은 것이었다.

그러다가 90년대 초부터 북한과의 해빙 무드가 이어졌고, 지금의 상황까지 오면서 대공포가 배치되는 일이 줄어들었다.

ID 글로벌헤드쿼터 빌딩도 이러한 기조로 대공포 배치가 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첩보를 접하고는 바로 배치 작업이 시작된 것이다.

설치된 대공포는 C-RAM인데 해상용 팰렁스(Phalanx)의 육지형 버전이었다. 20밀리 탄환을 분당 3천 발씩 쏟아부을 수 있는 화력이었다. 고성능 레이더와 연동되어 있어서 명중률도 아주 높았다.

만에 하나 헬파이어 미사일이 유재원의 펜트하우스를 향하더라도 얼마든지 막아낼 수 있는 방호력이 갖춰진 것이다.

다만 무인으로 운용되는 건 아니었기에 앞으로 C-RAM을 운용할 1개 소대 병력이 늘 옥상에 상주하게 되었다.

옥상이 평소보다 좀 시끄럽긴 해도 충분히 감수할 만한 일이었다. 게다가 유재원은 본인 때문에 옥상 근무를 해야 할 사람들에게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이들의 식사나 숙소 등의 편의에 최대한 신경을 써 주기로 했다.

-긴급 속보.

대공포대에 가 있던 시선을 텔레비전에 뜬 긴급 속보라는 글자가 다시 사로잡았다.

-클라크 록펠러 사망 확인. 호송차 사고 사망자와 DNA 일치.

-프랑스 정부, 깊은 유감.

-이번 사건을 계기로 파파라치에 대한 규제법 만들기로.

역시나 호송차랑 화재 사건은 유재원과 맥마흔 국장이 예상했던 그대로 흘러갔다.

DNA 검사 결과는 일치.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호송 차량에서 타 죽은 사람이 클라크 록펠러라는 공식 인증이다.

그렇지만 유재원이 보고 받은 건 전혀 달랐다.

-치아와 골격이 일치하지 않습니다.

-DNA 검사에서 의심스러운 정황을 여러 건 발견했습니다.

존 맥마흔 CIA 국장은 유재원과의 약속을 성실히 지켰다.

업데이트되는 정보가 있으면 알려 달라는 유재원의 말에 ID톡 프라이빗 메시지로 응답해 준 것이었다.

케빈 존슨 ID 그룹 유럽 지역 부회장이 별도로 운영하고 있는 정보팀에서도 의심스러운 정황들을 여럿 보고했다.

그러면 죽음으로 위장하고 도망친 클라크 록펠러는 어디에 있는가?

아쉽게도 CIA의 첩보망이나 인공지능 골드가 전체를 살피고 있는 온라인에서도 아직은 흔적을 찾지 못했다.

조바심 따위는 들지 않는다.

지금 상황은 누가 보더라도 유재원의 우위였다.

그도 그럴 것이 빠르게 진행되었던 특검의 수사는 3건 모두 법원으로 올라간 지가 오래다. 일부 사건은 곧 1심 판결이 예정되어 있다.

JFK 암살 사건이었다.

주범도 사망했고, 공범들 중 일부도 죽었다. 그래도 남아 있는 공범들이 있었고 이들은 모두 법의 심판대에 섰다.

북미의 여론은 단죄 하나에 모였고, 증거도 충분했다.

그렇기에 법정에서 내려질 형량은 사형이 확실했다. 사형이 내려진다고 해도 워싱턴 DC는 사형 제도가 폐지된 주였기에 감형 없는 무기 징역으로 대체될 확률이 높다. 그래서 일부 여론은 텍사스주로 옮겨서 재판을 치러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텍사스주는 미국에서 사형 제도를 가장 적극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주였으니 말이다. 하여튼 클라크 록펠러는 공식적으로 사망이 확정되었으니, 이제 록펠러 가문의 권리와 재산은 그의 부인인 엘리자베스와 외동딸인 앨리스 록펠러에게 돌아간다.

정상적이라면 말이다.

-록펠러 가문에 쏟아지는 친자 확인 소송.

-클라크 록펠러의 자식이라 주장하는 사람들, 벌써 3명.

10년 전, 911 테러에 휘말려 세상을 뜬 티파니의 외삼촌 제이콥의 경우 아무런 핏줄도 남겨놓지 않아서 프레더릭을 곤란하게 했었다.

클라크 록펠러는 이와는 완전히 반대였다.

며칠 전 지하도 사고가 뉴스에 나던 그날, 클라크 록펠러의 사생아를 데리고 있다는 사람이 나타났다. 어제는 미국에서도 2명이 등장하면서 총 3명의 친자 확인 소송이 생긴 것이다.

록펠러 가문의 재산이 셔면 반독점법이나 범죄 수익 환수법에 걸려서 죄다 조각나 사라진다고 해도, 남는 재산은 분명 어지간한 부자보다 많을 것이다.

그걸 노리는 사람들이 벌써 이만큼이나 나온 것이다.

유재원에겐 사생아들이 진짜이건, 아니건 상관없는 일이지만, 흥미진진한 전개였다. 클라크 록펠러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막장 드라마 아닌가.

그러다가 유재원의 머릿속에 번뜩이는 아이디어 하나.

“아예, 드라마로 만들어 봐?”

타임플렉스를 보유하고 있는 유재원이었다. 게다가 ID 미디어 그룹과 타임워너 넥스트컴도 있다.

시나리오가 잘 나온다면 월드 와이드로 개봉하는 영화를 만들어도 되고, 12부작 드라마를 만드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했다.

무슨 영화냐 싶겠지만, 록펠러 가문의 탄생부터 클라크 록펠러 대에 와서 몰락하는 것을 압축해 보여준다면 대부와 같은 영화로도 얼마든지 가능할 법했다.

제목은 담담하게 록펠러로 해도 좋을 것 같고, 악의 연대기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좋아. 이건 진행한다.”

대박을 확신한 유재원은 바로 타임플렉스에 지시 사항을 보냈다.

“그나저나, 클라크 이 녀석은 어디로 숨은 거야?”

문제는 죽음으로 위장하고 탈출한 클라크 록펠러의 신변이 아직도 오리무중이었다는 점이다. ID 그룹의 정보팀과 인공지능 골드, 심지어 CIA가 총력으로 수색 중인데도 제대로 된 단서 하나 나오지 않았다.

이대로 완전히 사라지는 거 아니냐는 걱정이 들 정도였다. 유재원의 우려가 깊어질 때, 정보는 아주 의외의 곳에서 날아왔다.

-친구, 내가 조금 전 재미있는 소문을 들었다네. 죽었는데 3일만에 살아난 사람을 봤다는 거야.

러시아 푸틴 총리의 ID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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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추천과 리플,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원고료 쿠폰, 후원 쿠폰도 완전 감사합니다~~!

드디어, 2021년이군요.

독자님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올해는 부디 우리의 모든 일상이 정상으로 돌아가는 해가 될겁니다!!

저도 새해 연휴 잘 보내고, 월요일에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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