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1회
흥망성쇠(Rise and F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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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케네디 검증 위원장 역시 포커페이스가 깨지고 경악이란 감정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현존 최고 CPU는 인텔의 아이비브릿지였다. i7 3770K이란 모델명으로 일반 작동 속도는 3.5Ghz였고 터보클럭이 3.9Gh다.
터보클럭이란 CPU의 코어 숫자가 많아지면서 생겨난 작동 방식이다. 코어가 전부 고클럭으로 작동되면 발열과 소비 전력을 감당하지 못하게 되니, 하나 혹은 소수의 코어만 고클럭으로 작동할 수 있게 했다.
여기에는 꼼수가 있으니, 생산 공정의 완성도가 들쭉날쭉이라서 칩 하나에 내장된 물리코어의 성능이 고르지 못했다. 어떤 코어는 고클럭이 수월히 달성되는가 하면, 어떤 코어는 전압을 올려도 클럭이 오르지 않았다.
더구나 유재원만이 알 수 있는 인텔의 방만함은 하나 더 있다.
유재원이 촉발한 기술 가속으로 인텔의 반도체 생산 라인은 진작에 14나노미터 미세공정으로 돌입했다. 원래의 아이비브릿지라면 22나노공정으로 나올 제품이었는데, 이보다 더 미세해진 14나노미터로 완성되었다.
미세공정의 수준이 전보다 훨씬 높아졌는데도 터보클럭이 3.9Ghz밖에 나오지 않는 건 문제가 컸다. 유재원의 아이비브릿지에 대한 평가는 발매 일정이 6개월 정도 빨라진 거 빼고는 전보다 나아진 게 하나도 없는 제품이었다.
나아진 공정으로도 예전 그대로의 클럭이기에 두 제품의 차이는 더욱 크게 느껴졌다. 모두가 경악하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보고 계신 게 맞습니다.”
반면 유재원은 딱히 감흥이 없는 표정이다.
유재원도 다이아몬드 반도체가 제대로 작동되는 첫 샘플을 얻었을 때만 해도 굉장한 리액션이 나왔었다. 그런데 기쁨이란 감정도 시간이 지나면 옅어지기 마련이다. 게다가 유재원의 눈높이로 보면 모자란 게 많은 상태였다.
“자자, 여러분 벤치마크는 아직 시작도 안 했습니다. 유 회장님, 어서 돌려보시죠.”
12라는 숫자에 다들 입이 떡 벌어졌지만, 그래도 비교적 빠르게 충격에서 벗어난 검증 위원도 있었다.
“그러면, 일로이 위원님께 스타트 버튼을 누를 기회를 양보하겠습니다.”
일로이 알리샤 위원에게 선뜻 자리를 비켜주는 유재원이다.
현직은 사이언스지에서 전자공학 분야 편집자였고, 그전까지는 반도체 소재 연구에 평생을 바쳤던 일로이 알리샤다. 그녀에게 다이아몬드 반도체는 그저 연구 단계의 기술이었다. 그렇기에 사이언스지에 유재원의 논문이 투고되자마자 가장 적극적으로 한국행을 밀어붙였던 인물이기도 했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터치스크린의 스타트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모니터가 검게 변했고, 속이 빈 자그마한 사각형 8개가 나타났다. 네모난 사각형 하나가 의미하는 건 쓰레드, M11 아키텍처의 8쓰레드 AP였기에 사각형도 8개였다. 그와 동시에 사각형에 이미지가 나타났다.
검은색 장막에 네모난 구멍이 나면서 그 뒤에 가려져 있던 멋진 컴퓨터 그래픽 이미지의 일부가 드러난 것 같았다. 8개의 쓰레드는 빠르게 움직이면서 검은 장막에 구멍을 냈다. 마치 기관총이 빠르게 움직이며 표적을 넘기는 것처럼 순식간에 전체적인 이미지를 드러냈다.
“세상에.”
일로이 위원에게서 진한 감탄사가 다시 터졌다.
그녀에게도 시네벤치라는 벤치마크 툴은 아주 익숙한 앱이었다. 최신의 디바이스를 최대한 빠르게 구해 오버클럭을 해 보는 건 그녀의 비밀 취미였다. PC뿐만이 아니라 안드로이드폰과 아이폰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니 시네벤치의 인터페이스나 벤치마크의 화면 역시 그녀에겐 익숙했다.
“20.55점?”
8개의 쓰레드는 순식간에 멋들어진 CG의 한 컷을 완성했고, 20.55점이라는 점수가 큼지막이 표시되었다.
도널드 케네디가 그 점수를 읽으면서 의문을 표시했다. 그에겐 좀 낯선 프로그램일 테니, 저 점수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체감을 못 하는 것이다.
“세상에.”
반면 시네벤치 앱이 포인트를 구하는 공식까지도 알고 있는 일로이 위원은 또 감탄이 나왔다.
“아이비브릿지 최상급 모델이 7점을 못 넘깁니다.”
그러면서 일로이 위원이 직접 설명을 보탰다.
매우 구체적인 수치였다. 그렇지만 아이비브릿지 최상급 모델의 정확한 벤치마크 점수는 6.95점이다.
“3.9Ghz에 7점이라면 12Ghz에 20.55점은 높아진 클럭만큼 상승한 점수로군요.”
도널드 검증 위원장의 말이다.
그렇지만 이는 매우 일차원적인 사고였다.
“그렇게 간단하게만 볼 건 아닙니다. 아키텍처의 차이도 있습니다. XD-M11은 모바일 AP인 M11을 바탕에 두고 있으니 아이비브릿지와 바로 비교하는 건 무리지요.”
유재원이 나서지 않아도 일로이 위원이 정확하게 정정해 주었다.
“그럼 M11 칩은 몇 점인가요?”
“직접 보시지요.”
유재원은 실험실에 굴러다니는 스마트폰을 들어 시네벤치 앱을 실행했다. 그러자 이번에도 8개의 쓰레드가 나타나면서 열심히 렌더링 작업을 수행했다. 하지만 조금 전 선보였던 20.55점짜리 XD-M11에 비하면 확연히 느려진 속도였다.
2.7점.
3분을 넘게 기다려서 받은 점수였다.
너무나 큰 차이가 나는 점수지만, 모바일 AP 중에서는 적수가 없는 최상급 위치였다. ARM의 계열 중에서 최상급인 애플사의 A시리즈의 경우에는 2.2점이었고, 일반 ARM 호환 AP는 1.8점 대였으니 말이다.
“XD-M11과 M11의 차이는 딱 하나 다이아몬드 반도체 공정이지요. 공정의 교체만으로 7.61배의 성능 향상을 이뤄낸 겁니다. 설계에서부터 다이아몬드 반도체에 맞게 최적화를 하지도 않았는데 말이지요. 성능 향상의 여지는 아직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유재원의 설명에 검증 위원들은 그저 감탄뿐이었다.
사실 검증 위원들은 다이아몬드 반도체가 탑재된 테스트용 시스템이 작동되는 것을 봤을 때부터 검증은 끝났구나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다아아몬드 반도체 공정으로 작동이 되는 트랜지스터만 봐도 논문은 통과시켜 주려고 했다.
다이아몬드로 트랜지스터 하나만 구현해도 완전히 새로운 방식의 반도체를 만들 수 있는 길이 보이는 것이니 말이다. 그런데 트랜지스터 하나 정도가 아니라, 작년에 나온 M11을 그대로 다이아몬드 반도체로 이식을 했을 줄이야.
게다가 단순히 이식에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엄청난 성능의 향상까지 있었다.
모바일용 AP가 PC와 서버에 탑재되는 CPU보다도 3배는 강력한 성능이라니. 대량 생산만 되면 비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판도가 확 달라질 게 분명했다.
이후 검증 위원들은 XD-M11의 테스트용 시스템을 직접 사용해 본다거나, 프로토타입 칩을 양산하기 위해 수많은 실험을 했던 자료들을 보면서 논문의 적합성을 따졌다.
다만 사진을 찍는다거나, 파일을 복사하는 건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다. 중간 단계의 웨이퍼가 경쟁사에 유출되는 것만으로도 기술 유출의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검증 위원들이 이곳 실험 생산 라인에 들어올 때도 철저한 보안 검색을 통과해야 했다.
처음 다이아몬드 반도체를 봤다는 흥분이 시간이 지나면서 안정화되자 검증 위원들도 꼼꼼한 눈으로 데이터와 논문을 살폈다.
그렇지만 그 꼼꼼함도 평소의 투고 논문들을 검증할 때보다는 김이 빠진 상태였다. 이미 실제 작동하는 칩을 보았는데, 데이터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며칠 후.
-사이언스지, 표지 논문으로 유재원의 ‘다이아몬드를 이용한 차세대 반도체 제작 기술 연구와 실증’ 게재.
-유재원, 실리콘 반도체의 한계를 다이아몬드로 돌파!
-ID 일렉트로닉스, 다이아몬드 반도체 개발 성공 공시.
사언스지의 최신호가 나왔다.
유재원이 XD-M11 칩을 손에 들고 웃어 보이는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그와 함께 ID 일렉트로닉스는 한국증권거래소의 공시 시스템에 다이아몬드 반도체 개발 성공을 정식으로 공시했다.
단순한 개념 기술을 완성했다는 것이 아니라, 상업 생산을 시작해도 될 만큼 완성도가 있는 기술이라는 소리에 ID 일렉트로닉스의 주가가 폭발했다.
상장 초기에는 18만 원 대를 형성했고, 한창 뜨거웠을 때에는 20만 원 후반대를 찍었던 ID 일렉트로닉스의 주가였다.
최근 ID 일렉트로닉스는 DDR4 램으로의 전환이 기대되면서 슬금슬금 주가가 오르고 있었다. 그래서 24만 원대를 기록 중이었는데, 공시가 나는 순간 27만 6천 원으로 펄쩍 뛰었다. 상한가를 찍어 버린 것이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시가총액을 자랑하는 기업이었는데, 단숨에 상한가를 찍었다. 아마 상한가가 15%가 아닌 30%로 확대되었다고 해도 상한가를 찍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매수하겠다는 사람은 넘쳐나는데 주식을 팔겠다는 사람은 싹 사라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HTS의 호가창에 찍힌 상한가 매수 잔량만 해도 1억 주를 넘겼다.
돈으로 치면 27조 원이 넘는 돈이 ID 일렉트로닉스의 주식을 사겠다고 몰려든 것이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대한민국 주식 시장에 상장되어 있는 ID 일렉트로닉스의 협력 업체 주식들도 순차적으로 상한가를 찍기 시작했다. 고순도 불소를 공급하는 업체를 시작으로 다이아몬드 반도체 제작에 필수인 탄소 공급 업체 등등.
이러한 협력 업체 숫자만 해도 20개가 넘었다.
이러한 엄청난 상한가에 오늘 한국의 주식 시장은 그야말로 불바다였다. 반도체가 시장을 선도하면서 매매 프로그램들까지 대량 매수를 시작했고, 그에 따라 전혀 상관없는 주식들까지 동반 상승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코스피 지수는 하루에 120포인트가 오르면서 두 번째 3천선 돌파를 다시 눈앞에 두었다.
예전에도 3천 포인트 선을 넘긴 적은 있었다. 하지만 주가 지수 3천 포인트 시대를 제대로 즐기기도 전에, 중국과의 무역 분쟁이 터지면서 2천선 초반으로 수직 하락했다.
그때의 폭락세는 IMF 외환위기 시절을 상기시킬 만큼 엄청났다.
오죽하면 언론에서는 제2의 외환위기가 올 거라는 식의 공포감을 조성하는 기사들이 엄청나게 쏟아졌다.
정병우 대통령의 지지율도 60%에서 40%대로 떨어질 정도였고, 2011년도 대한민국의 경제 성장률도 2.9%에서 2.2%로 큰 폭으로 폭락했다. 중국과의 무역이 한국에서 얼마나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지 국민 누구나 체감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렇지만 2011년 말부터는 주가가 슬금슬금 오르기 시작했다.
중국 대신 동남아시아를 상대로 돌파구가 만들어지면서 수출세도 회복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의 경기가 나아지면서 각종 경제 지표들이 일제히 반등했다.
중동을 한창 혼란에 빠뜨렸던 아랍의 봄도 약간은 소강상태가 되면서 유가가 안정되었다. 한국의 경우 시베리아-태평양 송유관을 통해서 그보다 더 저렴한 가격으로 원유를 공급받으면서 에너지 비용도 훨씬 절약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다이아몬드 반도체가 터지니 주가가 폭등할 수밖에. 대박이 터진 대한민국과 달리 대만과 미국의 반도체 업체에는 치명타였다.
특히 인텔은 다른 반도체 회사들보다 더 큰 타격을 받았다.
다이아몬드 반도체에 대한 궁금증이 폭발했고, ID 일렉트로닉스에 자료 요청도 쏟아졌다. 그에 따라 ID 그룹에서는 하나의 영상을 공개했다.
현존 최고 CPU인 인텔의 아이비브릿지 최상급 모델 i7 3770K와 XD-M11의 동일 환경 테스트였다.
사이언스지의 검증 위원들에게 보여준 시네벤치는 물론이고, 마야와 3D MAX와 같은 전문가용 3D 그래픽 제작 도구부터 각종 빅데이터 처리를 위한 프로그램과 인공지능 학습 프로그램의 구동 상황을 비교했다.
물론 일반 사용자들이 바라는 게임 벤치마크도 빠지지 않았다.
배틀필드 3와 콜 오브 듀티 3, 엘더스크롤 5,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둠 3 등등. 인기 게임들을 감각적인 영상으로 빠르게 편집하면서 프레임을 비교했다.
적게는 2배에서 많게는 4배가 넘는 프레임의 차이가 발생했다. 그래픽보다 CPU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게임일수록 성능의 차이가 컸다.
종합적으로는 딱 2.8배의 우위였다.
아무래도 GPU는 실리콘 반도체 방식이었기에 전문가용 프로그램처럼 큰 차이가 나진 않았던 것이다.
그렇지만 대다수 게이머들에게는 이것도 대단했다. 그도 그럴 것이 최상급 시스템과 중급 시스템은 가격적으로는 2배 차이가 날 정도지만, 성능적으로는 50%의 차이도 나지 않았다. 겨우 10~20 더 얻겠다고 수백 달러를 더 써야 하는 게 기존의 게이밍 PC 시장이었다.
그런데 CPU만 교체한 것으로 2.8배의 우위였으니 차원이 다른 결과였다.
심지어 일반 CPU 아키텍처가 아니라 모바일용 M11로 이뤄낸 결과였다.
여기까지 생각한 게이머들은 ID 일렉트로닉스가 AMD와 ATI를 인수했다는 것도 떠올렸다. 또한 ID 일렉트로닉스의 가장 큰 사업은 메모리 반도체였다는 것도 상기했다.
자연스럽게 다이아몬드 반도체 공정이 적용된 신형 CPU와 GPU에 차세대 RAM까지 적용된 시스템이라면 얼마나 압도적인 성능을 낼 수 있을지 궁금해했고, 출시일에 대한 문의도 끝없이 이어졌다.
이러한 소비자들의 성화에 유재원은 본인의 톡톡에 한 줄을 올렸다.
-완벽한 다이아몬드 반도체 기반 차세대 컴퓨터는 올 8월 그 행사에서 공개될 겁니다.
유재원의 톡톡 한 줄에 게이머들은 열광했지만, 다이아몬드 반도체를 상대해야 할 기업들에 투자한 사람들은 사색이 되었다.
월 스트리트도 논문과 공시가 동시에 뜨자 바로 반응했다.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쏟아내는 시장분석 리포트를 통해 실리콘 반도체 생태계가 다이아몬드 반도체 체제로 변환할 때 가장 큰 타격을 받을 업체로 인텔을 지목했다.
인텔의 사업 영역은 ID 일렉트로닉스와 완전히 겹쳐 있었으니 말이다. 자연스럽게 인텔 주식을 들고 있던 이들은 모두 팔자를 외치기 시작했다.
그 결과 4월 2일 미국 주식 시장이 마감되었을 때, 인텔은 –48%라는 낙폭을 기록했다.
인텔 역사상 가장 큰 낙폭이 생긴 날이었다.
그렇지만 차세대 반도체가 만들어낼 변화는 이제 시작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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