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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로 압도한다-904화 (904/1,007)
  • 880회

    흥망성쇠(Rise and F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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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이언스의 검증 위원들이 긴급히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건 유재원의 논문 때문이었다. 다이아몬드 반도체라니.

    작년 유재원이 한국에 들어오면서 다이아몬드 반도체를 언급했다. 그러니 유재원의 차기 논문이 다이아몬드 반도체 관련일 거라고 학계 사람들은 확신했다.

    실제로 사이언스가 받은 논문의 제목에 떡하니 다이아몬드가 박혀 있었다.

    그런데 논문은 단순한 다이아몬드 반도체 제작에 관한 방향성 정도나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었다.

    구체적인 제작 방식이 담겨 있었다. 심지어 다이아몬드 반도체의 미세공정은 2나노미터였다. 실리콘 반도체가 3나노 이하의 공정은 어렵다고 했는데, 그 말을 깨 버린 것이었다. 게다가 논문에 예제로 든 다이아몬드 반도체는 단순히 트랜지스터 몇 개를 이어 놓은 것이 아니라 작년에 출시되었던 M11이라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였다.

    모바일용 프로세서라고 해도 집적된 트랜지스터 숫자만 5억 개가 넘는 대형 비메모리 반도체였다.

    게다가 메모리 반도체처럼 간단한 구조도 아니었고 CPU와 메모리 컨트롤러, GPU, 무선통신 모뎀까지 통합된 SOC 칩이었다.

    이 정도 수준이라면 당장 다이아몬드 반도체 기술은 양산 체제에 돌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반도체 산업에 종사하는 모든 기업과 사람들에게 적용될 게임의 룰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다이아몬드 공정으로 만든 M11 칩의 실물이다. 미래 시대처럼 이메일로 물질까지 주고받는 시대는 아니었다. 이메일로 들어온 건 전자 문서뿐이었다.

    실물은 보안 때문에 반출이 어렵고, 대전에 오면 얼마든지 만져 볼 수 있도록 하겠다는 말이 첨부되어 있었다.

    사이언스지의 IT 기술 관련 검증 위원들이 흥분해서 한국행 비행기 티켓을 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지만 여기에는 또 한 가지 비밀이 있다.

    바로 대한민국판 희대의 사기였던 황우석의 줄기세포 논문에 호되게 당했던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사이언스는 네이처지의 권위를 따라잡겠다고 용을 쓰던 시절이었다. 때마침 줄기세포 논문이 들어왔고, 획기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만능의 줄기세포를 얼마든지 양산해낼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처럼 보였다. 더구나 생명공학 관련 논문은 네이처지에 먼저 보내지는 게 그간의 관습이었는데, 사이언스에 먼저 문제의 논문이 투고된 것이었다.

    네이처보다 빠르게 실어야 한다는 생각에 검증 과정이 신속히 진행되었다. 결과적으로 사이언스지에 황우석의 논문이 실렸고, 이후의 결과는 모두가 보는 것과 같았다.

    문제의 논문은 가짜였다.

    논문에 실린 줄기세포는 만들어진 게 아닌 처녀 생식으로 발견된 것이었고, 이걸 포토샵으로 가공해 사람 손으로 줄기세포를 3개나 만든 것처럼 해 놓은 것이었다.

    가짜 논문으로 인해 사이언스의 권위는 크나큰 타격을 입었다.

    이후 투고된 논문의 검증에 엄청나게 깐깐해졌고, 속도에 목숨을 걸지도 않았다.

    이번에도 한국행 비행기에 오른 사이언스지의 검증 위원의 머릿속 한편에는 줄기세포 사태의 재발은 막겠다는 크나큰 책임감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검증 위원들의 책임감은 유재원을 만나면서 완벽하게 지워졌다.

    “이것이 2나노미터 미세공정으로 만들어진 세계 최초의 다이아몬드 반도체입니다. XD-1이라고 명명했습니다.”

    유재원은 검증 위원들에게 실물을 꽁꽁 숨겨 놓지도 않았다.

    300mm짜리 대형 웨이퍼를 그들의 손에 떡하니 안겨 줬으니 말이다.

    사실 검증 위원들이 걱정한 것은 실물은 꼭꼭 숨겨 두고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면서 접대에만 집중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상상의 나래를 펼친 게 아니라, 실제로 여러 번 겪었던 일이었다.

    검증 위원들이 출장을 나오면 학술적인 토론이나 검증 작업을 열심히 도운 게 아니라, 접대부터 먼저 하는 이들이 있었다.

    유재원이란 이름값은 믿지만, 유재원도 ID 그룹이라는 기업을 경영하는 경영자인 만큼 회사의 가치와 주가를 올리기 위해서라면 무슨 방법을 쓸지도 모른다는 가정은 충분히 가능했다.

    그렇지만 유재원은 역시 유재원이었다.

    대전에 도착하자마자 실물을 바로 보겠다는 검증 위원들을 달래며 숙소로 안내했을 때만 해도 일말의 불안감은 있었다.

    그런 불안감은 다음 날 완벽히 사라졌다.

    대전 공장에서 온갖 보안 절차를 지나 거대한 실험실에 들어왔을 때부터 검증 위원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특이한 웨이퍼가 카트리지 안에 차곡차곡 쌓여 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유재원은 카트리지에 담겨 있던 웨이퍼를 집어 검증 위원들에게 하나씩 전해줬다.

    물론 웨이퍼는 손으로 들어도 오염되지 않도록 이동용 케이스 안에 담겨 있었다.

    “오오! 이것이 다이아몬드 반도체의 웨이퍼로군요.”

    검증 위원들은 손에서 전해지는 묵직함에 당황하면서도 웨이퍼 표면에 흐르는 찬란한 광채에 감탄했다.

    작업이 끝난 웨이퍼를 보면 무지갯빛 광택이 흐르는데, 다이아몬드 소재로 만들어진 반도체는 광택의 질이 훨씬 강하고 진했다.

    그도 그럴 것이 기존 반도체는 실리콘과 구리가 주요 재료였다면, 지금 공개된 다이아몬드 반도체는 말 그대로 진짜 다이아몬드였다. 그것도 단분자 다이아몬드를 균일하게 배치해서 만들어진 덕에 다이아몬드 특유의 광채가 그대로 살아 있었다.

    “여기 현미경으로 보시면 훨씬 아름다울 겁니다. 전자 현미경으로는 훨씬 자세히 볼 수 있지만, 흑백이라서 감흥이 좀 덜하지요.”

    유재원의 말에 일부 검증 위원들이 본인 손에 들린 웨이퍼를 현미경 위에 올렸다.

    일반적인 광학식 현미경의 최대 배율은 1천 배였다. 대물렌즈에 따라서 1,600배나 2,000배도 가능한 것이 있지만 그 이상은 흐릿해져서 연구용이나 산업용으론 부적합했다. 반면 대전 공장 실험실에 있는 광학식 현미경은 2,500배에서도 선명한 화질을 자랑했다.

    가시광선의 분해능은 자연법칙이라서 유재원이라도 이를 뛰어넘긴 불가능하지만, 흐릿한 화질을 깨끗하게 보정할 수 있는 기술이 있었다.

    초당 1천 프레임 이상을 찍어낸 다음 선명한 화질로 합성해낸다. 그러면 깐깐한 사람은 광학식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지만, 현미경에서 얻어지는 화면은 광학식의 특징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총천연색이었고 배율의 조절도 자유로운 광학식 현미경이었다.

    “예술이군.”

    “완벽한 기술은 예술과 구분할 수 없다더니.”

    덕분에 이과 특유의 감성만 가득한 검증 위원이지만 화면을 보고도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광학식 현미경으로 보이는 건 수정으로 지어진 거대한 도시의 항공 사진 같았으니 말이다.

    더욱이 저건 수정이 아니라 최고의 보석이라는 다이아몬드였다.

    재물대에 올려진 웨이퍼를 향해 쏘아지는 강한 빛은 빛이 닿으면서 찬란히 부서지는데 그 모습은 빛이 만들어낸 예술이었다.

    “그런데 궁금한 게 있습니다.”

    “예, 말씀하세요.”

    다들 감탄에 빠져서 난리였는데, 그렇지 않은 분도 있었다.

    조심스럽게 웨이퍼를 살펴보고 있던 도널드 케네디 검증 위원장이었다.

    케네디라는 성에서 알 수 있듯, 미국의 명망 높은 케네디 가문 사람이었다. 다만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직계는 아니었고, 먼 친척 정도 되는 사이였다. 그래도 케네디 가문 사람이라는 건 확실했고, 최근 JFK 암살 사건 전모에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유재원을 바라보는 도널드 케네디의 눈빛은 복잡했다.

    매우 머리가 좋은 사람이었기에 JFK 암살 사건의 전모가 밝혀진 것은 유재원의 힘이 큰 역할을 했을 거라고 짐작은 하고 있었다. 불과 작년 가을만 해도 록펠러의 이름은 북미에서는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었다.

    어지간한 일이 아니면 뉴스에도 잘 오르지도 않는 이름이었다. 그러다가 유재원의 청문회로 일이 커지더니, 지금은 전 세계를 뒤흔드는 중이었다.

    유재원의 처가인 프레더릭 가문이 JFK 암살 사건의 공범이라는 건 알지만, 그래도 프레더릭이 빼돌린 증거들이 스모킹 건이 되어 사건의 전모가 밝혀진 거 아니겠는가.

    그래서 문제인 거다.

    도널드 케네디는 유재원에 대한 호감이 절로 생기려는 걸 억지로 참았다. 호감 때문에 논문 검증을 엉터리로 했다간 모두에게 큰 문제가 될 일이었으니 말이다.

    “흠흠.”

    헛기침을 하면서 속마음을 숨긴 도널드 케네디는 다시 말을 이었다.

    “웨이퍼는 보통 원형이 아닌가요? 이건 정사각형이로군요.”

    “예. 기존 반도체 생산 공정에서 웨이퍼가 원형인 이유는 웨이퍼를 만들 때나 반도체 칩 제조 공정에서 원형인 형태가 주는 이득이 크기 때문입니다.”

    웨이퍼는 원형인데 반도체 칩은 네모난 사각형이다. 그렇기에 구조적으로 미완의 형태로 찍혀 나오는 칩이 상당했다. 온전한 형태가 나오지 못한 칩은 다 버려야 하는 것이다. 반면 정사각형 형태의 웨이퍼라면 웨이퍼의 면적 전체를 활용할 수 있다.

    대신 생산 공정의 난이도가 높아지는데, 어차피 다이아몬드 반도체 생산을 위해서 공정 전체를 갈아엎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렇군요. 다음으로 단분자 다이아몬드의 수율…….”

    도널드 케네디 검증 위원장의 질문을 시작으로 다른 검증 위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유재원은 온종일 질문에 대한 답변을 했고, 유재원의 답변으로 모자란다면 함께 연구에 참가한 다른 연구원들이 대신했다.

    물론 질의응답을 잘하는 것과 논문의 적격성은 다른 이야기였다.

    유재원도 이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러면 실물을 보여드리죠.”

    웨이퍼 말고 실제 패키징이 끝난 칩과 칩이 장착된 기기의 벤치마크를 통해 다이아몬드 반도체의 월등한 성능을 증명하는 작업이 이어졌다.

    “이것이 패키징된 XD-M11 칩입니다.”

    X는 프로토타입이란 의미고 D는 다이아몬드의 D였다. M11이란 모바일 프로세서의 11세대 아키텍처였다. 딱 봐도 누가 지었는지 알 수 있는 참 단순한 네이밍이었다.

    “실험실에서는 그런 딱딱한 이름 대신 슬라이드 글라스나 슬라이드라고 부르죠.”

    덕분에 실험실에서는 XD-M11이란 모델명보다는 슬라이드라고 불렀다.

    “아, 슬라이드 글라스! 이름 그대로 특이한 패키징이군요.”

    컴퓨터공학에 정통한 다른 검증 위원이 XD-M11 칩을 받아 들고는 감탄했다.

    보통 패키징 작업까지 완료한 칩은 검은색 세라믹 상단부와 하부에 동그란 납 알갱이들이 촘촘히 박혀 있는 모습이었다. 예전에는 지네 다리처럼 기다란 다리들이 늘어서 있었지만, 보드와 칩이 연결되는 숫자가 많아지면서 금으로 코팅된 핀이 촘촘히 늘어서 있는 형태가 되었다.

    반면 유재원이 선보인 건 가로 20mm, 세로 30mm의 유리판처럼 보였다. 마치 현미경에 물체를 올려 관찰할 때 쓰는 슬라이드 글라스와 같은 모습이다.

    하지만 실제 유리는 아니고 매우 단단한 에폭시 수지로 만들어진 패키징이었다. 실제 다이아몬드 반도체는 중심부에 가로 10mm, 세로 15mm의 반짝반짝 빛이 나는 부분이 있었다.

    “칩의 두께는 불과 5나노미터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그 위로 30나노미터 두께로 다시 다이아몬드 코팅을 했습니다.”

    다이아몬드 반도체의 특징 중 하나가 매우 얇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이었다.

    기존의 실리콘 기반 구리 배선 반도체의 경우 미세공정 수준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전류가 튀면서 누설되는 양이 많아졌다. 그래서 배선을 수직으로 높게 쌓아 올리고, 트랜지스터의 구성도 수직으로 쌓는 형태로 디자인되었다.

    반면 유재원이 만들어낸 다이아몬드 반도체는 전기적 특성이 매우 좋았다.

    평면이라 해도 좋을 만큼 낮게 만들어도 누설 전류가 문제가 될 정도로 발생하지 않는다. 물론 아예 발생하지 않는다면 더 좋았을 테지만, 그건 초전도 도핑된 다이아몬드를 써야 가능한 일이었다.

    또한, 열을 전달하는 능력도 매우 출중해서 쿨링 효율도 매우 좋았고, 무엇보다 저전력으로 구동이 가능했다.

    “칩에 접점이 보이지 않는데, 보드와는 어떤 식으로 연결되는 겁니까?”

    “접점 역시 붕소 도핑 다이아몬드로 만들어진 나노 튜브를 사용했습니다. 맨눈으로 보면 투명해서 안 보이지만, 이렇게 현미경에 올리고 라이트를 켜면……. 자, 보이시죠?”

    현미경 위에 올리고 강한 빛을 넣자 맨눈으로 보이지 않았던 접점들이 반짝거렸다.

    “양산되는 제품도 같은 패키징 방식이 적용되는 겁니까?”

    누군가의 물음에 유재원은 고개를 저었다.

    “아마 양산품은 비용 문제로 일반 반도체 패키징과 비슷할 겁니다만, 뭐든 해 볼 수 있는 프로토타입으론 뭐든 다 해 볼 수 있죠.”

    아쉽다고 해도 시간이 해결해 줄 일이었다.

    2030년대 중반쯤부터는 일반인들도 이러한 고급스러운 형태의 칩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었다.

    “자, 그럼 성능을 보시죠.”

    논문을 완성하는 데 바탕이 된 칩의 실물과 생산 공정을 모두 확인한 검증 위원들은 드디어 마지막 단계에 왔다.

    손바닥만 한 테스트용 보드에 유재원은 XD-M11을 결속했다. 현미경에 슬라이드 글라스를 고정하는 것처럼 단단한 합금으로 된 소켓에 XD-M11을 밀어 넣고 걸쇠를 올리는 매우 간단한 방식이었다.

    찰칵하는 경쾌한 소리가 났다. 정상 장착되었다는 소리였다.

    테스트 보드는 이미 모니터와 키보드 등의 인터페이스와 전력 공급 장치에 연결이 된 상태였다.

    유재원은 망설임 없이 전원을 눌렀다. 그러자 모니터에 모바일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의 부팅 애니메이션이 나왔다. 하지만 화면에 보인 건 1초도 되지 않았고 곧바로 익숙한 스마트폰의 바탕 화면이 나왔다.

    “빠르죠?”

    부팅 하나만 보더라도 차원이 다른 성능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끝낼 유재원이 아니었다. PC부터 모바일 기기까지, 모든 종류의 디바이스의 성능 측정에 쓰이는 벤치마크 프로그램인 시네벤치 3D를 실행했다.

    앱의 실행 속도도 남달랐다.

    시네벤치 3D라는 아이콘을 탭하자마자 바로 화면에 벤치마크 프로그램이 떴으니 말이다.

    “헉!”

    거기에서 다시금 탄성이 나왔다.

    벤치마크 앱이 실행되면 제일 먼저 기기의 스펙을 확인하는데, 거기서 표시된 모바일 프로세서의 속도가 상식을 파괴했기 때문이다.

    “12? 12기가헤르츠 맞소? 오류가 아니란 말이오?”

    거기에 찍혀 있는 모바일 프로세서의 작동 속도는 12Ghz였다.인텔이 내놓은 최신 CPU인 아이비브릿지의 최고 작동속도가 3.9Ghz였으니, 12란 숫자에서 다들 입이 떡 벌어질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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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후기]

    추천과 리플,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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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의 마지막 한 주가 시작되었네요.

    파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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