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901화 (901/1,007)

877회

흥망성쇠(Rise and F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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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망성쇠

12월 21일.

평일에도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인천 국제공항의 복잡도가 오늘은 차원을 달리했다. 입국장 앞에 모인 기자들의 숫자는 대형 팝가수 입국 때와 비교해도 모자라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대한민국이 낳은 최고의 슈퍼스타인 유재원의 입국 소식 때문이었다.

유재원은 엄연히 경제인이었지만, 대한민국에서는 연예인 저리 가라 할 정도의 존재감을 자랑했다.

워낙 앞에 나서는 걸 좋아했던 유재원이었고, 사인 요청도 마다하지 않았다. 오죽하면 유재원의 사인 리셀 가격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 워낙 많이 해 줬기 때문에 희소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자그마한 교육용 소프트웨어를 파는 것으로 시작했던 유재원의 사업이 ID 그룹으로 성장할 때까지 모든 모습을 대한민국 사람들은 함께 지켜보았다. 그리고 성장하면서 맺은 과실도 함께 나누고 있었다.

그런 유재원이 미국에서 총기 테러 위협을 당했고, 그 이후 수많은 비밀들이 연이어 터지면서 전 세계 이슈의 중심에 섰다.

오죽하면 한국에서는 록펠러 가문이 ID 그룹을 집어삼키려고 했다가 잘 안 돼서 암살을 시도했다는 식의 루머가 광범위하게 퍼지기도 했다.

그만큼 유재원과 ID 그룹에 대해 민감하다는 의미였다. 실제로 총기 테러 소식이 터지고 나서 열린 주식시장은 온통 파란불이었다. 마치 911테러 때와 비슷한 모습이었다. 그중에서도 ID 일렉트로닉스의 하한가는 모두에게 쇼크였다.

물론 다음 날 멀쩡하다는 소식이 들려오면서 다시 상한가를 찍었다. 하한가를 찍고 있는 걸 바로 매수했다면, 다음 날에는 30%의 수익률이 터졌을 거라는 이야기였다.

이렇게 멀리서도 한국을 뒤흔들고 있는 유재원이 입국한다고 했으니 입국장이 취재진은 물론, 그냥 응원하러 나온 시민들까지 몰리면서 터져 나가는 건 당연했다.

잠시 후.

활주로에 내려서는 거대한 비행기가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다른 비행기보다 2배는 더 커 보이는 점보 여객기의 동체에는 연두색의 안드로이드 마스코트가, 수직 꼬리 날개에는 ID 그룹 로고가 선명히 도장되어 있는 비행기였다.

-온다!

-저게 전용기란 말이야?

-우와, 대박! 스케일이 차원이 다르군.

유재원의 전용기인 A380이었다.

취재진과 시민들 사이에 감탄이 절로 터졌다. A380이 취역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고, 한국에는 아직 인도되지 않은 상태였다.

테스트 비행과 프로모션으로 인천 국제공항을 몇 번 오르내린 일은 있어도 정식으로 비행을 해서 주기까지 하는 건 처음이었다.

크기도 크기지만, 이 어마어마한 비행기를 개인이 사서 전용기로 굴릴 수 있다는 것 자체로 다들 놀랄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누군가는 저런 전용기 안에서 으리으리한 서비스를 받으면 어떤 기분일까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도 했다.

정작 그 주인공인 유재원은 이들이 상상하는 으리으리한 서비스와는 거리가 먼 상황에 있었지만 말이다.

“회장님, 도착했습니다. 회장님?”

평소라면 김대석의 말에 바로 반응했을 유재원인데, 지금은 좀 달랐다. 커다란 헤드폰을 머리에 쓰고서 i웍스의 화면에 완전 집중한 상태였다.

그도 그럴 것이 워싱턴 DC에서 인천 국제공항까지는 무려 16시간이나 되는 비행 시간을 자랑했다. 유재원은 아무리 피곤해도 6시간을 자는 것으로 체력과 정신력의 회복이 충분했다.

남은 10시간은 깨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남들은 따분하다느니 시시하다느니 하며 시간을 낭비하는 일들에 몰입도 잘하는데, 유재원은 본인의 인생을 단 1초도 허투루 쓰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에 유재원은 이번 비행에서 잠을 자고, 식사를 하는 시간 빼고는 i웍스 노트북에 몰입했다.

유재원 본인이 제일 잘하는 프로그래밍 작업이었다.

내년도 출시 예정인 PC용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와 모바일 운영체제의 개발 현황도 살폈고, 게임용 라이브러리인 글라이드 X도 둘러보았다.

세계 최고의 프로그래머들만 모아놓은 알파팀이 전담하는 만큼, 코드의 완성도는 상당했다. 게다가 유재원이 만든 Z+라는 언어 자체가 최적화에 탁월한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대신 프로그래머는 최적화를 고민할 시간에 획기적인 기능에 대해 연구를 해야 했다.

그 점은 알파팀도 살짝 모자랐다.

2012년에 걸맞은 신기능에 대해서 이런저런 피드백을 하다 보니 시간은 순식간에 흘렀다. 또한, 원래 한국서 하기로 했던 다이아몬드 반도체 개발에 대한 진척도를 확인하는 것도 일이었다.

아쉽게도 유재원이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완전 맨바닥에서 시작하는 것인 만큼, 기반을 다지는 것부터가 일이었다. 그나마 한국은 반도체 산업의 기반이 어느 정도 갖춰진 나라였다. 덕분에 대학교나 연구소 등에서 다이아몬드 반도체 관련 연구를 하던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그런 연구진 중에서 제대로 연구 실적을 쌓은 이들을 모집해서 팀을 꾸리고, 설비를 갖추는 것까지는 준비되었다.

그렇지만 단분자 다이아몬드를 만드는 것부터 난관에 부딪쳤다. 기존의 실리콘 반도체는 리소그래피라는 공정을 통해서 반도체의 회로도를 만드는데, 유재원이 계획하고 있는 다이아몬드 반도체는 직접 찍어내야 했기 때문이다.

다이아몬드 결정의 크기가 작으면 작을수록 미세한 회로도를 만들 수 있다. 제일 좋은 건 역시 단분자였다. 단분자의 크기는 0.3나노미터이기에 1나노미터 이하의 미세공정 반도체를 만들어낼 수 있다.

지금은 관련 연구를 하는 전문가들도 고개를 내젓고 있지만, 유재원의 머릿속에는 다양한 나노 다이아몬드 합성법이 있다.

그중에서도 유재원이 사용하려는 것은 F-다이아메인 합성법인데, 이를 통해서 0.5나노미터의 다이아몬드를 만들어낼 수 있다.

불소를 사용한다는 게 좀 위험한 공정이지만, 반도체 산업에서 불소는 광범위하게 사용하고 있는 물질이었다.

ID 일렉트로닉스의 반도체 공정에서도 고순도 불소를 사용한다. 심지어 유재원은 중소기업과의 협연을 오래전부터 진행했기에 N9 순도의 불소는 이미 국산화가 끝났다.

준비 상황을 보니 만족스럽진 않아도, 실험실 수준에서의 제조는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았다.

실험실에서 만들고, 논문을 낸 다음, 바로 대형 생산 라인에 적용해 양산한다면, 대략 2년 내에는 소비자들의 손에 다이아몬드 반도체가 탑재된 기기를 들려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회장님.”

한참 다이아몬드 반도체 관련 상념에 빠져 있던 유재원은 본인을 부르는 김대석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인천 국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헤드폰을 벗어 보니 도착했다는 말도 들렸다. 유재원은 그제야 고개를 들어 창밖을 보았다. 그러자 어느새 착륙해 있는 A380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밖에는 어마어마한 인파가 몰려 있습니다. 출국하려다가 모인 사람들, 회장님을 응원하기 위해 나온 팬클럽 분들, 취재진이 뒤섞인 상태입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김대석의 보고를 듣던 유재원은 하나의 단어가 유독 크게 들어왔다.

“팬클럽이요? 오늘 어디 출국하는 아이돌 그룹이 있나요?”

아이돌이나 연예인들이 해외에 자주 나가고, 그게 사진으로 찍혀서 포털 사이트나 SNS에 뜨는 일이 많아졌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공항 패션이라는 카테고리가 새롭게 생길 정도였다.

더욱이 ID 그룹 산하의 드림엔터테인먼트 소속 그룹이라면 유재원에게 활동내역이 보고되는 데, 오늘 해외로 나가는 그룹은 없었다.

“그게 아니라 회장님의 팬클럽입니다.”

인터넷에 빠삭한 유재원이지만 본인 팬클럽이 있다는 소리는 처음 들어보는 것이었다.

“제 팬클럽이라고요?”

“그게, 총격 사건이 터지면서 갑자기 생겨난 팬클럽인데, 순식간에 가입자가 10만을 넘어섰습니다.”

역시나.

그 일 때문에 갑자기 생겨났으니 유재원의 레이더에 포착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런데 10만 명이라니. 갑자기 생겨난 것치고는 너무 적극적인 숫자가 아닌가. 아무래도 다들 생각하고 있었지만, 선뜻 총대를 메진 못했는데, 총기 테러로 인해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 모양이었다.

“공항 측에서는 별도의 이동 통로를 마련해 놓았다고 합니다.”

“음, 이번엔 기자 회견을 하기로 하죠. 다들 궁금한게 많을 테니까요.”

김대석의 제안에 솔깃한 유재원이지만, 이번만큼은 사람들 앞에 서기로 했다.

워싱턴 DC의 안가에서 지내는 동안 걱정해 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잘 알고 있었다. 한 번쯤은 기자 회견을 해서 우려를 불식시켜 주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워싱턴 DC에서 출발할 때부터 생각했던 바였기에 티파니나 가족들에게 공항에 미리 나와 있지 말라고 연락을 해 놓은 상태였다.

“예, 그러면 준비하겠습니다. 회장님도 마음의 준비를 하시길.”

김대석의 당부에 유재원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출구로 걸음을 옮겼다. 거기에는 기장과 승무원이 배웅을 위해 나와 있었다.

“그 어떤 비행보다 완벽했습니다. 덕분에 저도 일에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다들 고맙습니다.”

그들에게 전해진 유재원의 칭찬은 모두를 환하게 만들었다.

A380의 첫 비행이었다. 그럼에도 트러블은 단 하나도 없었다. 얼마나 열심히 준비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유재원의 칭찬에 긴장하고 있던 기장과 승무원의 얼굴에서 긴장이 풀리는 게 보였다. 더구나 유재원의 칭찬은 그저 말로만 끝이 아니라, 합당한 보상도 뒤따른다.

옆에 있는 김대석이 기록을 하고 인사 고과에 바로 적용했다. 김대석이 부재중이라면 스마트폰의 인공지능 골드가 대신 기록해 주니 잊어버리는 일은 절대 없다. 기장과 승무원도 이를 알고 있었다. 게다가 지금은 12월 말이지 않은가. 연말 보너스를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곧이어 비행기와 연결된 구름다리를 타고 공항 내로 진입한 유재원 일행은 빠르게 입구 절차를 통과했다. 그리고 엄청난 인파를 마주했다.

플래시 세례를 받으며 1분간 포토존에 있는 것처럼 자세를 취해 준 유재원은 바로 기자 회견장으로 이동했다.

기자 회견은 평탄하게 흘렀다.

질문을 받겠다고 다들 손을 들었고 고심해서 찍으면 무난한 질문이 나왔다. 규모는 역대급인데, 내용이 아쉬웠다. 그렇지만 유재원은 1차원적인 질문에도 최선을 다해 답을 주었다.

-유 회장님의 무사 귀환을 축하합니다. 지금 건강 상태는 어떠신지요?

“보시다시피 아주 건강합니다. 총격 테러라고는 해도 저에게 총알이 직접 닿은 건 아니었으니까요. 설사 총알이 제 차량까지 날아왔다고 해도 무사했을 겁니다. 경호원 탑승 차량과 같은 수준의 방탄 설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래도 총알이 닿지 않았다고 해도 본인에게 충격적인 테러가 이뤄졌다면 정신적으로도 충격이 크지 않겠습니까? 정신적인 충격은 없었습니까?

“물론 아니라고는 할 수 없겠죠. 하지만 기술 진보를 향한 저의 의지는 총알 하나로 꺾을 수는 없습니다. 더구나 불의와는 절대 타협하는 일은 상상할 수도 없지요. 앞으로도 없을 거고요.”

미국에서도 많이 말했던 답변인지라 이제는 눈을 감고도 줄줄 나올 정도였다.

-지금 미국에서는 한창 특검이 진행 중인데, 한국에 오신 건 정치적인 이유가 있는 겁니까?

오호라.

이제야 좀 쓸 만한 질문이 나온다.

아니라고는 할 수 없다. 특검까지 올렸지만, 특검이 또 엉터리로 수사를 진행한다거나 록펠러가 정치인들의 약점을 쥐고 흔들어서 정치적인 타협을 할 수도 있다. 대위기에 몰린 록펠러지만 그들이 북미를 한 손에 쥐고 흔든 건 반세기가 넘었다.

한 판 뒤집기를 시도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그러면 미국에 더 머물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니겠느냐는 의문이 들겠지만, 유재원도 다 수가 있다.

“한국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를 미리 말씀드리자면 신소재 반도체인 다이아몬드 반도체 개발입니다.”

다이아몬드 반도체 개발이 유재원의 입으로 처음 공표되었다.

덕분에 취재진 사이에 웅성거림이 커졌다. 기존의 반도체보다 월등히 좋은 느낌인데, 대체 얼마나 뛰어난 것인지는 모르기 때문이었다.

“다이아몬드 반도체는 1나노미터 이하의 미세공정 반도체에도 적용할 수 있으며, 열에 강하고 내구성도 뛰어납니다. 그렇기에 아주 낮은 전력으로도 구동이 되고, 저발열에 고성능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음, 제가 예상한 대로 물건이 완성된다면 현존 가장 강력한 CPU보다 10배는 더 뛰어난 CPU를 조만간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유재원은 그런 취재진의 눈높이에 맞춰 이해하기 쉽도록 10배라는 단어를 썼다.

역시나 10배라는 숫자가 나오자마자 취재진들의 타이핑 속도가 빨라졌다. 보나마나 긴급 속보로 유재원의 말을 띄우고 있을 것이다.

물론 반도체 전문가들이라면 유재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기는커녕 말도 안 된다는 소리가 먼저 나올 것이다.

애초에 다이아몬드 반도체라는 건 제대로 연구하는 사람이 얼마 없을 만큼 소수의 분야였다.

그걸 가지고 현존 최고의 CPU보다 10배는 더 나은 성능을 보장하다니. 사기꾼이라는 소리가 절로 나올 텐데, 발표를 하는 사람이 유재원이기에 전문가들의 반응도 신중하기 그지없었다.

다이아몬드 반도체를 시작으로 각종 신기술을 쏟아낼 작정이다.

그러면서 유재원은 자연스럽게 록펠러의 완벽한 퇴출에 대해 지속적인 압력을 넣는 모양새를 만들 수 있었다. 만에 하나 타협론자의 목소리가 나온다면 기술 제공에 차별을 두는 건 물론, 미국으로의 복귀도 기약을 하지 않을 작정이다.

설마 세계적 이목이 쏠린 사건이고, 증거도 완벽하고, 시민들의 의지도 확고한 지금 이 시점에 좀 봐주자는 의견이 나올까 싶지만, 이미 비슷한 의견은 매스컴을 타고 있는 중이었다. 이성을 찾자느니, 신중히 처리해야 한다느니 하는 말을 하는 이들이다.

이들에게 유재원의 행동은 엄청난 압력이 될 거라고 확신했다.

잠시 후.

인천 국제공항에서의 기자 회견을 잘 마친 유재원은 바로 준비된 자동차에 올라타 집으로 향했다.

덕진리로 가는 게 아니라 도곡동의 ID 글로벌헤드쿼터 빌딩 최상층 펜트하우스였다.

덕진리 집은 보안 수준이 약하다고 판명이 되었기에, 유재원에게 사고가 터진 날 바로 모든 가족이 펜트하우스로 자리를 옮겼다.

“재원아!”

띵 하는 소리와 함께 펜트하우스에 도착해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마자 티파니가 제일 먼저 유재원에게 뛰어와 안겼다.

“응?”

티파니를 와락 안은 유재원은 평소와는 좀 다른 느낌이었다.

달달한 향기는 그대로였다. 다만 감촉이 달랐다. 예전이라면 포근한 가슴이 먼저 닿았는데, 지금은 배 쪽에서 먼저 접촉이 일어났다.

뭐지 하는 순간, 그 의미가 해석된 유재원은 입이 떡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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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추천과 리플,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원고료 쿠폰, 후원 쿠폰도 완전 감사합니다!!

A380의 첫 비행은 무사히 완료!

그나저나 미사일테러라니.

거기까지 생각은 못했네요.

좀 더 과감하게 상상력을 펼쳐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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