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900화 (900/1,007)
  • 876회

    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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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재원 회장, 전용기 편으로 한국행.

    -추가 증언 필요하다면 언제든 귀국해 출석할 것.

    대형 OLED 텔레비전 속에서는 삼엄한 경비를 받으며 전용기에 오르는 유재원의 모습이 나왔다. 워싱턴 DC의 덜레스 국제공항에 어마어마한 취재진이 모였고, 유재원에게 말 한마디라도 붙여 보려고 아우성쳤지만, 성공한 사람은 0이었다.

    애초에 일반인은 접근할 수조차 없는 VIP용 출입국 라인을 통해 이동 중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화면으로 잡은 것도 용하다고 할 수 있었다.

    “대체 우리는 뭘 위해 움직인 거였지?”

    텔레비전에 시선을 고정 중이던 이의 푸념이 절로 나왔다.

    푸념의 주인공은 애플의 CEO인 잡스였다. 최근에는 반ID 그룹 진영의 아이콘이 되어 셔먼 반독점법의 ID 그룹 적용을 위해 워싱턴 DC에서도 활동하던 차였다.

    ID 그룹 청문회가 열려서 유재원이 국회에 출석할 때만 해도 성공한 줄 알았다. 그런데 자신의 노력은 사실 더 거대한 싸움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는 걸 며칠 전 깨달았다. 이후에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워싱턴 DC에서의 활동만 해도 그랬다.

    의원들을 만나는 건 쉬웠지만, 본인의 뜻에 선뜻 동의해 주는 의원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청문회까지 끌고 가는 것만 해도 몇 번이나 중간에 때려치우고 싶었다. 하지만 ID 그룹의 압도적인 점유율을 뚫지 못하면 죽을 거라는 위기감이 잡스를 움직이게 했다.

    결국 페르난도 상원의원이 잡스의 의견에 동의했고, 덕분에 청문회가 만들어졌다. 그런데 그 페르난도 의원이란 작자가 록펠러의 하수인이었다는 사실이 충격이었다.

    ID 그룹과 록펠러 가문의 충돌을 보고 있자니, 본인이 알지 못했던 또 다른 세계가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처음 터진 게 그림자 정부론이던가?”

    음모론 따위에는 전혀 눈길도 주지 않았던 잡스였다.

    그런데 지금 미국의 상황이 돌아가는 걸 보면, 음모론이 넘쳐날 수밖에 없다는 걸 실감하는 중이었다.

    금융자본 독점과 존 F 케네디 암살 사건. 심지어 유재원을 향한 암살 시도까지.

    몇 주 전에 유재원이 워싱턴 DC에서 총격 테러를 당했다는 뉴스가 속보로 떴을 때, 잡스는 솔직히 자작극인 줄 알았다.

    궁지에 몰린 상태에서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그 정도는 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 뒤에 존 F 케네디 암살 사건의 전모를 완벽하게 밝히는 인터넷 폭로가 터지면서 상황은 완전 달라졌다.

    페르난도 상원의원도 구속되었고, 엑손모빌의 우즈 회장도 구속되었다. 이제는 록펠러의 가주인 클라크 록펠러를 향한 특검법이 시행되었다.

    이쯤 되면 잡스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본인이 알지 못하는 영역에서 엄청난 싸움이 있었고, 자신이나 반ID 그룹은 체스판의 말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도 퀸이나 룩도 아니고 하찮은 폰에 지나지 않았다는 게 잡스의 냉정한 평가였다. 정치인들과 내키지도 않은 만남을 이어가며 로비를 한 결과는 겨우 청문회를 여는 것이었는데, 유재원은 단숨에 특검법을 3개나 쏟아내게 했다.

    “아무래도 익명(Anonymous)은 유재원인 거 같군.”

    증거가 있는 건 아니다.

    잡스도 판이 이상하게 돈다고 느낀 다음부터 2CH.com의 네임드인 익명이란 자에 대해 조사를 하고 있었지만, 꼬리가 잡히질 않았다.

    그러니 닉네임 익명이 유재원이라고 찍은 건 그저 감이었다. 무엇보다 강한 확신을 주는 건 익명의 폭로로 가장 많은 이득을 챙긴 건 유재원이란 사실이었다.

    그렇지만 이제 와서 심증만으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결정적으로 잡스마저도 일단 록펠러가 먼저 박살이 나 버렸으면 좋겠다는 쪽이었다. 자신을 장기판의 말로 사용했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불쾌했다. 게다가 록펠러가 가진 금융자본 독점은 애플에도 크나큰 위험요소였다.

    애플은 스마트폰 시장을 안드로이드와 양분 중이긴 했지만, 그 비율이 30%에 지나지 않았다. 게다가 30%의 지분도 서서히 작아지는 중이었다.

    막대한 개발비가 필요했는데, 이를 충당하기 위해 금융권의 힘을 빌렸다. 단순 대출뿐만이 아니라 회사채를 발행했는데, 최대한 위험을 분산하기 위해서 여러 은행에 분산했다. 그런데 창구만 다를 뿐 그게 대부분 록펠러의 손에 넘어가 있는 것이었다.

    주식 또한 마찬가지였다.

    주주 명부를 확인해 보니 위험한 상황이었다. 익명이 폭로한 록펠러 가문 소유 금융회사들이 보유한 지분이 최소 10%는 넘었다.

    공식적인 최대 주주는 뱅가드와 블랙락이 각각 5.5%로 1등이었는데, 단숨에 이를 능가하는 최대 주주가 나타난 것이었다.

    익명의 폭로가 없었다면, 절대 드러나지 않았을 일이었다.

    이사회 결의로 본인의 회사인 애플에서 쫓겨나 본 경험이 있는 잡스에게는 뒷골이 서늘해지는 일이었다.

    더욱이 록펠러가 저지른 악행들을 보면, 빨리 사라지는 게 본인이나 사회에도 이로운 일이었다.

    한편으로 록펠러라는 거대한 세력을 단번에 도려내는 게 가능한지는 잡스도 확신이 서진 않았다. 다만 이전과는 확실히 다를 거라는 느낌은 들었다. 일단 특별법의 형태가 모두 특검법이었다는 게 중요했다.

    청문회 따위는 백날 해 봐야 법적인 효력은 그다지 없었다.

    하지만 특검법은 달랐다. 소환에 응하지 않으면 구속 영장이 즉각 발부된다. 과거 클린턴 성추문 특검만 봐도 특임검사는 대통령까지도 직접 조사했을 정도다. 게다가 클린턴이 거짓말을 했다는 게 밝혀지면서 탄핵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마지막 한 발자국이 모자라서 탄핵이 결행되진 않았지만, 클린턴 특검은 성공적이었다. 이번에는 상대가 록펠러지만, 증거가 확실한 만큼 뭔가 기대해 볼만도 했다.

    특히 ID 그룹이 이번 사건의 핵심에 있다는 건 의외로 안심이었다.

    ID 그룹과 직접 맞상대를 해야 했던 잡스였기에, 얼마나 끈질기고 강력한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잡스도 이번 사건만큼은 ID 그룹을 응원했다. 그러면서도 그 싸움이 조금은 길어지길 바랐다. 유재원이 록펠러와의 싸움에 올인하는 기간만큼 애플이 ID 그룹을 따라잡을 시간을 조금이라도 버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여러 가지 상념에 빠졌던 잡스는 텔레비전을 껐다. 그리곤 다시 서류에 집중했다.

    비슷한 시각.

    유재원은 전용기에 올라 출발을 기다리고 있었다.

    청문회 때문에 미국에 들어온 지 2달하고도 며칠이 더 지난, 오늘 12월 20일에 지긋지긋한 미국을 떠나게 되었다.

    특이한 점은 유재원이 탑승한 전용기의 모습이었다.

    미국에 올 때 사용한 전용기는 보잉의 737-NG 기종이었는데,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다.

    일단 유재원이 탑승한 기체는 737보다 2배는 컸다.

    정체는 에어버스 A380.

    에어버스에서 개발한 장거리용 4발 광동체 대형 여객기가 그 주인공이었다. 등장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큰 여객기라는 타이틀을 얻었고, 최고 속도는 시속 1,078km/h라는 고속을 자랑한다.

    임대 형태로 운영했던 737과는 달리 A380은 유재원이 직접 구매했다. 그것도 현금 일시불로 말이다.

    구입 가격은 대략 6천억 원 정도인데, 커스텀 주문을 통해 일반 여객기와는 차원이 달라졌다. 안전을 위한 프레임 보강이 이뤄졌고, 유재원 한 사람만을 위한 최첨단 오피스도 박아 넣었다.

    말 그대로 2층의 반이 최첨단 오피스 공간이었다.

    여기에는 편히 잘 수 있는 침실은 기본이고 아늑한 서재와 20인이 한 번에 들어갈 수 있는 대형 회의실 등등이 구비되어 있었다. 위성 통신을 비롯한 다양한 통신 시스템도 기본이다.

    덕분에 하늘에서도 ID 그룹 경영을 쉬지 않고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커스텀 옵션은 이뿐만이 아니다. 1층 모든 좌석을 비즈니스 클래스 수준으로 도입했다. 그래도 비행기가 커서 200석이 넘는 자리가 나왔다. 또한 1층 인원들이 이용할 수 있는 다양한 편의 시설도 들여놓았다.

    화물칸에 담을 수 있는 용량도 대폭 증가한 덕에, 긴급한 상황에서 바다 건너에 대량으로 물자를 보급할 때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 필요한 경우에는 1층의 의자를 다 뜯어내고 화물칸으로 사용해도 된다.

    물론 장점만 있는 건 아니다.

    지금은 세계의 항공사들이 너도나도 A380을 선택하고 있지만, 광동체 대형 여객기가 그렇게 필요한 노선은 많지 않았다. 게다가 착륙할 수 있는 공항도 한정되어 있었다. 활주로의 길이가 2,750m는 확보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10년을 버티지 못하고 단종이 되는데, 그걸 알면서도 유재원은 A380을 과감히 샀다.

    A380을 전용기로 굴리겠다는 작은 로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단종이 되었다고 해서 AS 보장이 끝나는 것도 아니었고, 에어버스와 워런티 특약을 넣어서 AS 보장 기간을 30년 넘게 잡아 놓았다.

    무엇보다 유재원은 A380을 100% 활용할 자신이 있었기에, 과감히 결정했다. 그리고 지금 그 결정이 옳았다는 걸 한껏 만끽하는 유재원이었다.

    완전히 새로운 전용기의 전용 좌석에 앉아 본 유재원은 엉덩이와 등에서 전해지는 안락함에 만족감이 샘솟았다.

    새로운 가전제품을 개봉할 때 풍기는 냄새도 좋았다.

    그렇게 새로운 자리에 앉은 유재원이지만 행동 패턴은 그대로였다. 책상을 펼치고서 i웍스 노트북을 열고 인터넷을 하는 것이었다.

    -미국 증시 급락.

    -대형 은행주, 투자은행 주가 하락의 급락세 주도.

    -벤저민 토들 특별검사, SEC 압수 수색.

    인터넷 뉴스는 특검 소식으로 가득했다.

    이건 특검법 3개가 동시에 미국 의회를 통과했을 때부터 일어난 현상이었다. 3개의 특검팀은 서로 경쟁을 하듯 기사를 쏟아냈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의 역사 중에 이렇게나 거대한 사건을 맡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런데 하나도 아니고 셋이었으니, 서로 경쟁을 하듯 록펠러의 범죄 사실들을 파기 시작했다. 하나라면 록펠러 쪽에서도 힘을 쓸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셋이 동시에 일을 시작하자 록펠러는 그저 방어하는 것만 해도 힘에 부쳤다.

    더구나 수사팀에 주어진 증거도 하나하나가 치명적인 것들이었고, 여기에 강력한 분석 도구도 있었다.

    슈퍼컴퓨터를 능가하는 클라우드 시스템과 인공지능이었다.

    대형 은행, 대형 투자은행의 지분 관계를 일시에 분석하는 건 사람 힘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인공지능 골드의 분석 능력은 지분 구조 자체를 3D 그래픽으로도 나타낼 수 있었다.

    또한, 은행의 이사회에서 중요한 안건이 통과될 때, 누군가의 이익과 부합한다면 그 인물을 띄우는 알고리즘도 있었다.

    그러자 지분의 관계가 명확해졌고, 이사회가 어느 쪽에 편중되어 있는지 일목요연하게 확인이 되었다.

    FRB의 지분 역시 마찬가지였다.

    미국의 대형 은행들이 FRB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이들 은행에 대한 편법 지분 보유를 통해 30%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게 사실로 밝혀지는 중이었다. 엑손모빌의 지분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즈 회장은 연신 부인 중이지만, 록펠러 가문이 엑손모빌의 지배 지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속속 밝혀졌다.

    그렇기에 오늘 SEC(미국증권거래위원회)를 특검에서 쳐들어간 것이다. 위법한 주식 거래를 감시하고 위법이 발견되면 조치를 해야 할 SEC에서 아무런 액션도 하지 못한 이유를 찾기 위해서다.

    미국 증시의 급락 역시나 이와 비슷한 이유였다.

    록펠러에 셔먼 반독점법이 또 시행되면 그들이 가진 금융회사 지분을 모두 팔아야 한다. 블록 딜 방식이라면 그나마 시장에 영향이 좀 줄겠지만, 블록 딜이 가능한 대형 매수자가 없다면 주식 거래소에 그냥 던져지는 것이다.

    더구나 금융회사들이 경영을 엉터리로 했다는 것도 계속 드러나면서, 주식의 보유가 곧 리스크를 안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지금 그나마 가격이 높을 때 팔아야겠다면서 물량을 쏟아냈고, 이는 주가 지수 전체의 하락을 이끌었다.

    다른 특검팀 역시 활발히 활동 중이었다.

    -익명(Anonymous)의 제보자, JFK 특검팀에 원본 증거 전달.

    -특수 첩보 작전 방불케 하는 증거 물품 전달 과정.

    -소실되었던 증거 다수 발견.

    -‘그림자 정부’ 클럽에서 워런 위원회에 압력을 가한 증거 확인.

    익명의 제보자가 2CH.com에 올린 게시물을 만들 수 있었던 원본 증거를 특검팀에 전달하면서 신속하게 진행 중이었다.

    전달 방식은 간단했다.

    CCTV나 블랙박스가 없는 특정한 장소에 미리 원본 증거를 숨겨둔 다음 특검팀에 전화해서 위치를 알려준 것이다.

    물증을 확보한 덕에 JFK 특검팀의 활약도 연일 면에 오르고 있었다. 그렇지만 유재원은 JFK 사건의 모든 증거를 제보하진 않았다. 만약 JFK 특검이 부실 수사로 미적거리는 기미가 보이면 다시 터트릴 수 있도록 복사해 놓은 자료를 준비했고, 아예 제출하지 않은 증거도 조금 남겨 놓았다.

    가장 미진한 건 클라크 록펠러 전담팀이었다.

    프랑스에 있는 클라르 록펠러에게 소환장을 보냈지만, 아무런 응답도 받지 못했다. 그렇다고 특검팀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인터폴 수배를 위한 준비 과정을 착착 밟고 있는 중이었다. 게다가 프랑스는 미국과 범죄인 인도 조약이 있으니 해외에 있다고 해서 수사가 막히는 건 아니었다.

    3개의 특검이 동시에 진행 중이기에 뉴스만 틀면 해당 보도가 나왔다. 넥스트컴의 뉴스 페이지의 경우 특검 삼총사 페이지를 3개 섹션으로 만들어 제공 중인데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중이었다.

    뉴스 그 자체가 대작 드라마보다 흥미진진했으니 사람들은 너도나도 특별 페이지에 접속했다.

    “이게 전부는 아니지.”

    보통은 여기까지 왔다면 한숨을 돌릴 텐데, 유재원은 아니었다.

    상업과학통신위원회에서 청문 의원들에게 약속했던 게 바로 기술의 폭주였다. 청문회가 끝나자마자 ATI에 80억 달러의 오퍼를 넣으며 기술 폭주를 시작하려고 했는데, 록펠러 사건이 터지면서 2달이 넘게 미뤄졌다.

    이제는 기술 폭주를 선보일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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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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