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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로 압도한다-899화 (899/1,007)
  • 875회

    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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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은 시간.

    프랑스 파리에 자리한 호화로운 저택, 그곳에서도 가장 중심부에 있는 화려한 집무실의 책상에 앉아 초조하게 전화기를 들고 있던 30대의 남자가 있었다.

    귀공자와 같은 외모였지만, 손톱을 질겅질겅 씹고 있는 지금의 모습은 전혀 어울리진 않았다. 이런 본인의 모습을 인지조차 못할 정도였으니, 얼마나 긴장한 상태였음을 알 수 있었다.

    “씨X!”

    결국 쾅 소리가 날 정도로 거칠게 전화기를 내던졌다.

    20세기 때 많이 사용하던 아날로그 전화기는 그 자체로 골동품 취급을 받아도 될 정도였는데, 남자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산산조각 났다.

    남자의 정체는 클라크 록펠러.

    대외적인 명함에는 록펠러 재단의 이사장이라 박혀 있지만, 실제로는 록펠러 가문의 4대 가주였다.

    가주가 된 지 12년이나 되었고, 초기 불안했던 지위도 이제는 반석에 오른 듯 단단해졌다. 금융 독점에서 오는 무한한 자금과 선대로부터 정재계에 쌓아 놓은 인맥으로 어떤 일을 해도 성공이었다.

    그렇기에 클라크는 하루하루가 지루할 틈 없이 파티 같은 나날을 즐길 수 있었다. 실제로 클라크의 이름으로 여는 파티는 할리우드의 저명한 배우들도 참석하고 싶어 하는 자리였고, 정치인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클라크의 인생 사전에 좌절이란 단어는 절대 기록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절대라는 건 클라크에겐 통용되지 않는 단어였다. 유재원이 등장하면서 록펠러 가문의 막강한 영향력 밖에서도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는 게 증명이 되었으니 말이다.

    심지어 눈 깜짝할 사이에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더니, 이제는 록펠러의 사업 모델을 위태롭게 만들었다.

    라이프 리워드.

    록펠러 가문에 속한 금융 전문 가신들은 라이프 리워드가 갖고 있는 강력한 위협을 바로 포착했다.

    록펠러 가문의 힘은 은행 빚에서부터 시작된다. 일단 은행에 저당을 잡히는 순간, 록펠러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거대 기업이든, 이제 막 사업을 시작하는 스타트업 기업이든, 소시민이든 예외는 없다.

    예외가 ID 그룹이었다. 오로지 개인의 역량 하나만으로 그렇게 거대한 기업이 순식간에 등장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그런 ID 그룹에서 보스턴 다이나믹스의 로봇 보급과 함께 시작한 라이프 리워드는 느리지만 확실하게 록펠러 가문을 죽이는 독이었다.

    현대의 은행은 다양한 먹거리를 개발했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 중이었지만, 본질은 대출을 통한 이자 놀이였다.

    대출 사업은 민간뿐만이 아니라 기업과 정부를 향해서도 이뤄지니 겨우 라이프 리워드 하나로 위기를 과장하는 거 아니냐는 소수파도 있었지만, 클라크는 위기론자의 손을 들어주었다.

    라이프 리워드와 짝을 맞춰 이뤄지는 로봇의 보급도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사안이라고 본 것이었다.

    클라크의 예상은 딱 맞아떨어졌다.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에서 보여준 아틀라스 로봇의 능력은 상상 이상이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로봇이 실제 보급되기까지는 오래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록펠러 가문은 다양한 시도를 해 보았고, 청문회 역시 그러한 작업 중 일환이었다. 하지만 무엇 하나 제대로 풀리는 게 없었다. 너무나 초조해진 록펠러 가문은 결국 최악의 선택을 했고, 이 지경에 온 것이다.

    “금고 깊숙한 곳에 숨겨 놓은 것들이 어떻게 풀릴 수가 있지?”

    FRB 지분과 여기에 얽혀 있는 비밀을 지키는 건 역대 가주에게 주어진 책무였다. 클라크 역시나 비밀 보호에 만전을 기했다. 그런데 FRB 관련 비밀은 물론이고, 분산 처리 해 놓은 록펠러 가문의 금융자산들이 모조리 폭로되었다.

    그것도 모자라 이제는 존 F 케네디 암살 사건의 전모가 드러났다. 거기에는 살인을 교사하는 할아버지의 목소리도 선명하게 담겨 있었다. 게다가 함께 공개된 증거 문서에는 준비 과정부터 범행 이후, 수사 방해를 했던 것까지 모두 담겼다.

    시시각각 전해지는 여론은 급속도로 악화되고 있었다.

    존 F 케네디의 암살은 곧 유재원의 테러와 연계되어 퍼지기 시작했다. 자기네 이익에 방해가 되면 대통령도 죽이는 곳이니, 유재원을 죽이는 것도 거리낌이 없었을 거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 사건에 록펠러가 개입했다는 증거는 아직 하나도 밝혀진 게 없는데도, 사람들의 인식은 이미 록펠러가 범인이었다.

    물론, 사람들의 인식이 결과적으로만 보면 틀린 것도 아니었다. 살인 명령을 내린 건 사실이었으니 말이다. 다만 그 방법이 워싱턴 DC 한복판에서 총질을 하라고 한 건 아니었다. 엑손모빌과 ID그룹 & 셰브롱의 기업 간 충돌에서 급발진해 벌어진 사고로 꾸미려고 했는데, 일이 이렇게 꼬여 버린 것이었다.

    “젠장!”

    오죽하면 클라크 록펠러는 아버지인 데이비드 록펠러에게 모든 걸 뒤집어씌울 생각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산소 호흡기에 의지해서 오늘내일 하고 있는 데이비드 록펠러였으니, 록펠러 집안의 모든 죄를 뒤집어씌운다고 해도 문제될 건 없다. 하지만 유재원에 대한 테러 지시는 빼도 박도 못하게 자신이 했던 일이었다.

    물론 지시를 내리는 과정에서 어떠한 증거도 남기진 않았다.

    그런데 50년 전의 일이었던 JFK 암살 사건의 전모가 저렇게 다 드러나 버렸는데, 자신이라고 그러지 말란 법이 있을까?

    클라크 록펠러는 자신 주변에 있는 그 무엇도 믿을 수가 없는 상태였다. 유재원에게 테러를 지시했던 것이 증거로 남아 밝혀진다면?

    록펠러 가문이 보유한 그 어떤 힘으로도 처벌을 피할 수가 없다. 게다가 상대가 만만하냐면 그것도 아니다.

    ID 그룹도 문제지만, 셰브롱도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이었다.

    “술 가져와!”

    결국 클라크 록펠러는 맨정신으로는 있을 수가 없어서 술을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곧이어 문이 열리고 차가운 인상의 중년인이 카트에 술을 가지고 들어왔고, 조용히 내려놓고는 사라졌다.

    가문을 이끌어야 할 클라크가 이렇게 인사불성이지만, 록펠러의 사람들은 그저 맞고만은 있지 않았다. 멘탈이 붕괴된 클라크를 대신해 실무를 책임지고 있던 록펠러 가문의 이사들, 그리고 각자 요직에 있던 친인척들이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나름 최선을 다했다.

    매스컴을 움직여 록펠러로 집중되는 여론을 분산시키는 게 첫 번째였다.

    대중이 관심이 있어 할 스타들의 은밀한 비디오들을 유출시켰고, 정치인들의 비리 사건이 터졌다. 또한, 대량의 음모론들이 쏟아지면서 어떻게 해서든 록펠러로 집중되는 시선을 분산시키고자 애썼다.

    그와 함께 그동안 끈끈한 선을 유지하고 있던 현역 의원들과 접촉도 시도했다.

    그야말로 위기 대응 프로토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체계화되어 있는 움직임이었다. 그러나 시대가 달라졌다.

    여론을 주도하는 매체가 TV와 라디오, 신문 따위였다면 기가 막힌 물타기가 이뤄졌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시대에서 여론을 주도하는 건 인터넷이었고, SNS였다. 누구나 손에 들 수 있는 스마트폰은 구시대 매스컴으로부터의 완벽한 자유를 선사했다.

    오히려 이러한 움직임들은 익명의 폭로가 진짜였다는 걸 확인시켜 주는 것에 불과했다.

    따르릉. 따르릉.

    전화벨은 시끄럽게 울렸다. 스마트폰 시대에서는 듣기 힘든 아날로그 전화기의 벨 소리였다.

    “안 받으세요?”

    “제일 중요한 손님이 오셨는데, 다른 곳에 신경을 쓸 여유는 없지요. 이 소리도 거슬리니 아예 선을 뽑아 놓겠습니다.”

    전화를 안 받느냐고 물은 건 유재원이었고, 상대는 전화선을 아예 뽑아놓겠다고 답하면서 진짜로 뽑아 버렸다.

    유재원 앞에서 본인의 말을 즉각적으로 실행한 사람은 민주당 하원 원내 대표 낸시 펠로시였다.

    미국의 정당은 중앙당이 없었기에, 당 대표도 없었다. 대신 당 대표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직위가 원내 대표였다. 당내의 각종 이견을 조율하고, 상대편인 공화당과 의회 운영에 대해 합의를 하는 등의 역할을 수행했다.

    상원과 하원이 있는 미국 국회였기에 원내 대표도 상원, 하원 구분이 되어 있는데, 낸시 펠로시는 하원 대표였다.

    낸시 펠로시는 여성 국회의원으로 캘리포니아 제5선거구를 통해 하원에 입성했다. 초선이었던 때가 1987년이었으니, 24년의 경력을 자랑하는 인물이었다. 물론 앞으로도 쭉 그 자리를 지키고 있으면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인물이었다.

    “중요한 전화면 어쩌시려고 그래요?”

    “유 회장님의 면담보다 중요한 건 없지요.”

    “하지만 전 제가 할 말은 다 했는걸요.”

    유재원은 아직도 워싱턴 DC에 있었고, 이렇게 의원들을 만나면서 본인의 의견을 적극 전하고 있었다.

    낸시 펠로시는 3번째로 만나는 워싱턴 DC의 정치인이었다. 제일 먼저 만난 사람은 존 매케인 대통령이었고, 2번째로 만난 사람은 에릭 칸토르 공화당 하원 대표였다.

    이들을 따로 만나서 다른 말들을 한 게 아니라 똑같은 말을 전했다.

    그 어떤 로비에도 흔들림 없이 확실하게 수사하고, 법적인 조치를 취해 달라는 말이었다.

    알려주마 시리즈 제2편 JFK를 공개한 것으로 끝이 나면 안 된다.

    미국은 물론이고 전 지구적으로 들끓는 여론의 힘을 바탕으로 록펠러 가문을 향해 실제적인 철퇴가 내려져야 한다.

    하나는 JFK 수사 재개였다.

    미국은 사형에 해당하는 죄에 대해서는 공소 시효가 없다.

    존 F 케네디의 살인을 교사한 록펠러 주니어 2세는 죽었지만, 이와 연관된 사람들은 아직 생존자가 많았다. 또한, 클라크 록펠러 역시나 여러 건의 살인 교사 혐의가 있었다. 유재원은 실패했지만, 성공한 것들도 많았다.

    JFK 암살 사건의 재조사 그리고 록펠러 가문의 사람들이 벌인 각종 범죄에 대한 조사를 하고, 법의 철퇴를 때려 감옥에서 죽을 때까지 나오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유재원의 머릿속 기억의 궁전에는 클라크 록펠러의 짓으로 드러난 중범죄들이 여러 건 저장되어 있는데, 대다수는 미래에 벌어질 사건들이었다. 하지만 10건 이상의 범죄들은 2000년대부터 지금까지 이미 일어난 상태였다.

    증거 확보를 위해서 정보팀을 움직이고 있는데, 고구마 줄기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두 번째 요구는 록펠러 가문의 반독점 조사였다.

    엑손모빌의 지배 지분을 다시 확보한 것도 문제였고, 각종 불법적인 행태로 은행을 지배해 독점체제를 구축한 것도 큰 문제였다.

    하나하나 평소라면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지만, 지금은 그 무엇도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존 매케인 대통령은 본인의 재선이 걸려 있는 일이었기에, 눈에 불을 켜고 있는 중이었다. 민주당 역시 정권 재창출이 걸린 일이었다. 재선에서 승리하는 건 어렵지만 차차기는 노려볼 수 있었다.

    게다가 차차기를 위해서라면 월가 점령 시위 사건과 함께 폭발적인 인지도를 향상시키고 있는 버락 오바마를 뒤에서 지원해 줄 필요가 있었다.

    여기에 유재원이 힘껏 서포트를 하자 워싱턴 DC의 거대 세력들 사이에 모종의 합의가 빠르게 이뤄졌다.

    물론 워싱턴 DC에는 록펠러 가문과 손길이 닿았던 정치인들이 많았다. 그러나 그들도 지금은 감히 록펠러의 손을 들어줄 엄두를 내지 못했다.

    오히려 록펠러와 손잡고 있던 이들이 빠르게 손절하면서 강경한 말을 쏟아냈다. 침몰하는 배에서 쥐들이 먼저 탈출하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며칠 후.

    -의회, 록펠러 특별 법안 3건 처리!

    미국 국회의사당 앞에 마련된 대형 스크린에 속보가 떴다.

    그러자 국회의사당 주변에 모인 수십만의 시위대 모두가 함성을 질렀다. 월가 점령 시위대였다. 월가를 점령하자고 모였던 이들은 록펠러 가문에 대한 폭로가 쏟아진 다음에 폭력 시위로 변질되었다.

    이후 잠깐 주춤해지는가 싶더니, 집결 장소를 미국 국회의사당으로 바꾸었다. 초대형 인피니티 디스플레이도 그곳으로 옮겨졌고, 록펠러 가문의 모든 범죄를 조사하는 법안을 만들라며 하루하루 의원들을 압박했다.

    의회와 같이 국가의 중요 시설 근처에서는 대단위 집회를 못 하게 했지만, 이번엔 조금 달랐다. 법원으로부터 국회 앞 100m까지 집회를 허용한다는 판결문을 받아낸 것이었다. 딱 한 번 폭주가 있었지만, 그간 평화시위를 고집했던 것이 헛된 일이 절대 아니었다.

    여론 조사에서도 록펠러에 대한 조사와 처분이 압도적이었다.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 암살 사건 재조사 특검법.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서의 공적 자금 사용처와 은행 지분 전수 조사 특별법.

    -클라크 록펠러 특검법.

    그 결실이 3개의 특별법안으로 현실화가 되었다.

    “응? 클라크 특검법이라고?”

    여전히 워싱턴 DC의 안가에 머물며 관련 뉴스를 보고 있던 유재원은 3번째 속보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는 유재원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유재원은 록펠러 가문을 직접 수사한다고 해도 클라크 록펠러까지 올라가려면 일단 한두 단계는 거쳐야 할 거라고 생각했다. 몸통을 찾아내는 방법이 원래 깃털부터 더듬어 올라가는 식이었으니 말이다.

    보통은 깃털만 좀 잡고 끝나는 수사도 많았다. 지금은 상황이 상황인 만큼 조금 난관은 있겠지만 끝까지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단번에 퀀텀 점프를 한 것처럼 클라크 록펠러가 단번에 수사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자세히 알아봤더니 유재원을 노렸던 암살범들의 입에서 클라크 록펠러라는 이름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유재원도 깜짝 놀랄 일이었다.

    더구나 클라크 록펠러의 행태도 비상식적이었다. 최소한 참고인 조사나 서면 조사를 받았다면 법안의 수위가 좀 달라졌을 것이다. 그런데 클라크 록펠러는 그 어떤 협조도 하지 않았다.

    이러한 행태에 미국 시민들은 물론 의원들까지도 분노했다.

    그렇기에 원래대로라면 테오도르 루즈벨트 다리 총격 테러 사건 특별조사법으로 끝날 사건이 클라크 록펠러 특검법이 되었다.

    록펠러 가문이 삼중으로 포위된 건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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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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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말이네요!

    건강 조심하시면서 잘 보내시고, 월요일 자정에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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