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4회
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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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Anonymous)이 몇 주 전 올렸던 진짜 그림자 정부를 알려주마는 지금도 잔잔한 후폭풍을 일으키는 중이었다.
초반에는 네티즌들이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다면, 화끈한 열기가 많이 사그라진 지금은 추적 기사 전문 기자들의 바이블이 되는 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네티즌들은 보통 진짜 같은 음모론으로 소비를 했다면, 기자들은 베일에 가려져 있던 록펠러 가문의 실체를 파악하는 소중한 증거로 활용했다. 덕분에 기자들 사이에서는 익명의 음모론을 믿는다고 혀를 차는 부류와 익명이 올린 글을 신봉하면서 파고들어 가기 시작하는 부류로 나뉘어졌다.
처음엔 전자가 많았다.
시간이 좀 지난 지금은 후자의 숫자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진지하게 깊숙이 파고들어 갈수록, 익명이 올린 내용이 단순 음모론이 아니라 사실로 드러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진짜로 록펠러 가문이 셔먼 반독점법으로 조각난 석유 메이저 업체인 엑손모빌을 지배하고 있다면 이는 법적으로 큰 문제였다. 게다가 FRB 지분을 비롯해 금융자본에서 독점적 지위에 있는 것도 문제였다.
셔먼 반독점법은 ID 그룹이 아닌 록펠러 가문에 다시 적용해야 한다는 말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큰 지지를 받기 시작했다.
반면 네티즌들은 그저 흥미롭고 즐거우면 충분했다.
그렇기에 네티즌들은 2편이 올라오길 손꼽아 기다렸다. 다만 2편으로 누가 지목될지 너무나 궁금해했다.
1편이 록펠러니까 2편은 JP모건이 나오거나 아니면 카네기가 나올지 모른다는 추리가 우세했다. 그렇기에 2편이 올라오자 인터넷 전체가 떠들썩해졌다.
-익명이 떴다!
-가짜 아니냐?
-IP와 맥어드레스 보니 진짜다.
-그런데 2편 제목이 이상한데? JP모건이 아니네?
다들 반색하면서 좌표가 찍힌 게시물로 빠르게 접근했다. 동시에 제2편의 소제목에서 물음표를 띄웠다. JFK라니? 1편에서 언급된 다른 재벌들이 나올 줄 알았던 사람들이 대다수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의문을 가지고 게시물을 클릭했던 네티즌들 모두가 입이 떡 벌어졌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인기는 2011년인 지금에도 최고치였다. 케네디 대통령이 보였던 압도적 추진력으로 소련과의 우주 경쟁에서 승리했고, FRB 개혁을 비롯한 각종 국민을 위한 개혁을 추진하다가 비운의 암살에 사망했기에 더 기억에 남았다.
2편은 그런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에 대한 배경부터 준비, 당일 진행된 타임라인과 사건 이후, 암살을 결의한 이들의 회합까지도 방대한 자료와 함께 정리된 게시물이었다.
심지어 암살 성공 이후 암살을 교사한 이들이 모여 나눈 광란의 파티는 깨끗한 음질로 녹음된 음원까지도 있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을 다룬 수많은 작품과 분석들, 그리고 음모론이 있었지만 이번과 같이 명확한 증거와 일관된 흐름을 보여주는 건 없었다.
덕분에 링크를 타고 들어온 네티즌들의 반응은 모두 같았다.
-W! T! F!
그와 함께 거대한 분노가 터졌다. 본인들의 재산과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 대통령이라도 몇 명이고 죽일 수 있다는 걸 증명한 록펠러에 대한 분노였다.
며칠 후.
-빌보드 차트 순위 산정 방식을 내년부터 변경한다고 합니다.
-가장 크게 달라지는 점은 유튜브 조회 수가 차트 선정 자료에 반영된다는 것입니다.
바깥 세상이 테러와 폭로 그리고 음모론이 섞인 태풍이 몰아치는 중에도, 유재원의 할 일은 계속 되고 있었다.
비록 워싱턴 DC의 안가였지만, 11월 말부터는 평소대로 업무를 보기 시작했고, 12월이 된 지금에는 여유롭게 진행 중이었다.
“좋군요. 잘하셨습니다. 올해도 유튜브의 성장세는 무시무시하더군요. 유튜브의 임직원 모두 연말 보너스를 기대해도 좋을 겁니다.”
유튜브의 빌보드 차트 반영.
단순히 유튜브가 새로운 매체로서 그 존재감을 인정을 받았다는 의미도 있지만, 여기엔 훨씬 큰 의미가 담겨 있다.
보수적인 빌보드 차트가 인정할 만큼, 인터넷은 이제 주류라는 이야기였다. 게다가 세계에서 가장 큰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인 유튜브도 이제는 전 지구적인 서비스가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커다란 업적이었기에 유재원은 유튜브의 자베드 사장에게 커다란 보너스도 약속했다.
“골드, 다음은?”
-한국에서 산업 재해 책임법이 통과되었습니다.
“원안 그대로?”
-네, 마스터. 원안 그대로 통과되었습니다.
말 많고 탈 많았던 산업 재해 책임법은 찬성 165에 반대 103 기권 32로 통과되었다는 보고였다. 반대가 의외로 많은 것은 연합 중인 민주당에서 반대하는 의원들이 많았던 탓이었다. 재해에 대한 무한 책임은 좋은데, 현실적 여건으로 당장 실행하는 건 무리라는 것이었다.
이는 재벌들의 논리를 그대로 가져온 것이었는데, 민주당에서는 30명 정도만 찬성했고 나머지 70명은 기권과 반대로 나뉘었다.
대한민국 민주당이 진보 성향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기에, 딱히 놀랄 일은 아니었다. 어쨌든 법이 원안대로 통과했다는 게 중요하다.
이제 한국서는 ‘돈 벌자고 하는 일’이라는 식의 면죄부가 더는 통용되지 않게 되었다. 돈 벌자고 하는 일이 대체 뭐라고 한국에서는 어지간한 일은 봐주는 게 일반적인 분위기였다. 심지어 공장이나 작업장을 만들 때 안전 관리에 쓸 돈은 없다면서 허술하게 지어 놓는 일이 일상다반사였고, 거기에서 진짜로 산업 재해가 발생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었다.
앞으로는 옛날이야기가 될 것이다.
물론 법안에 숨겨진 또 다른 의도인 4차 산업혁명으로의 전환도 이제 슬슬 시작될 것이다.
-다음은 P마켓 블랙프라이데이 결산 보고입니다.
“아! 골드. 그 전에 JFK에 대한 반응을 확인하고 싶은데?”
-네, 관련 통계를 띄워드리겠습니다.
습관적으로 다음 일거리로 넘어가려는 골드에게 유재원이 일부러 브레이크를 걸었다. 대신 세계를 뜨겁게 달구는 본인의 히트작에 대한 반응을 표시하도록 했다.
-누적 조회 수가 1천만을 넘었습니다.
-네티즌 리플은 100만 건을 돌파했습니다.
-유튜브에 관련된 동영상이 1만 개가 넘게 올라오고 있고 지금도 신규 등록 중입니다.
-록펠러 가문에서는 아무런 반응도 없습니다.
인공지능 골드는 친절하게 익명으로 올린 JFK 암살 전모 글이 올린 각종 후폭풍에 대해 요약해 주었다.
단기에 이렇게나 조회 수가 급상승한 글은 2CH.com에서도 최초였다. 오죽하면 해당 글 하나만을 위해 전담 캐시 서버를 여러 대 돌려야 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클릭이 쏟아졌다. 게다가 게시물 자체가 대량의 고화질 이미지에 음원 파일도 포함하고 있어서 용량이 상당했다.
“여론의 반응은?”
-게시글을 믿고 은행지분 전수 조사에 동의하는 비율이 과반을 넘었습니다. 수치로는 50.4%입니다.
과반을 넘었다.
매우 중요한 이정표였다.
대중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으면 못 할 게 없는 게 민주주의였다. 물론 법률이 이를 따라 줘야 하는데, 강력한 지지가 있다면 없는 법도 만들어낼 수 있었다.
1편에서는 발끈했던 록펠러 쪽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것도 의미심장했다. 1편 때와 마찬가지로 공식 발표를 통해 부인을 하게 되면, 그 부인한 것까지도 법정에서 증거로 쓰일 수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일 거다.
후폭풍이 일어나는 걸 실시간으로 지켜보는 유재원은 여러 가지 생각들이 들었다.
“미리 열어 봤다면 거짓말로 치부했을 텐데 말이지.”
총격 테러 당했던 날, 프레더릭이 준 주머니를 처음 열었던 때의 느낌은 지금도 생생했다.
JFK에 대한 암살 전모가 담긴 마이크로필름과 마이크로카세트테이프라니.
유재원이 가진 록펠러 공략 무기와는 차원이 다른 핵폭탄이다.
원래 유재원이 하려던 방식은 구글이 록펠러를 찍어낼 때 썼던 방식을 그대로 따르려고 했다.
웬 구글이냐 싶겠지만, 기술적 특이점을 이뤄낸 구글의 두 번째 대주주가 바로 록펠러 가문이었기 때문이다.
양자 컴퓨터에 올라간 강인공지능인 골든실버를 개발하는 데 천문학적인 돈이 들었고, 구글의 오너들은 이를 거대 은행으로부터 대출로 조달했다.
이후의 이야기는 은행이 건실한 기업을 삼키는 평범한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10년 주기로 일어나는 금융위기의 순간 대량의 대출금 회수가 들어왔고, 천문학적 R&D 비용으로 대출금을 갚기는커녕 돈을 더 조달해야 할 처지였던 구글의 오너들은 결국 본인들의 지분을 일부 내놓아야 했다.
그런데 이렇게 은행권에 분산해 내놓은 지분은 고스란히 록펠러의 회사로 넘어갔고, 그 비율이 2번째 대주주만큼이나 되었다.
이후 강인공지능 골든실버가 구동되면서 기술적 특이점이 발생했고, 막강한 권능을 보이면서 순식간에 전 세계를 휩쓸었다.
여기서 록펠러가 실수했다.
2대 주주 지위에 만족했으면 좋았을 텐데, 골든실버 자체를 삼키기 위해 일을 벌였던 것이다. 이에 대해 구글은 골든실버의 능력으로 록펠러 가문의 취약점을 공략했다.
록펠러 가문의 내부망에 침입하기도 했고, 수많은 차명과 가명으로 분리해 놓았던 금융자산들도 모두 포착해냈다.
골든실버의 막강한 해킹 능력과 분석 능력으로 록펠러 가문의 실체가 다 드러났고, 각종 범죄 사실도 새롭게 밝혀졌다.
록펠러와 골든실버의 힘겨루기는 단 일주일도 지속되지 못했고, 록펠러의 백기 항복으로 끝이 났다.
유재원은 그런 골든실버가 보여준 록펠러 공략법을 완벽히 숙지하고 있었고, 그걸 다시 재현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프레더릭이 준 핵폭탄에 의해 그렇게 복잡하게 갈 필요가 사라졌다.
더구나 JFK 암살 전모는 기술적 특이점을 달성한 골든실버도 찾아내지 못했던 비밀이었다. 그렇기에 유재원의 마스터플랜에는 JFK의 J도 없었다. 가장 강력한 인공지능도 파헤칠 수 없는 비밀이 있다니.
“지금 생각해 보니 당연한 거였네.”
이제야 이해가 되는 게, 남아 있는 자료들은 전부 아날로그였다.
마이크로필름과 마이크로카세트테이프. 그리고 마이크로필름에 남아 있는 은행의 VIP용 금고에 가 보니 종이로 된 원본 문서들이 그대로 쏟아져 나왔다.
아무리 강력한 인공지능이라도 디지털화가 되지 않으면 해킹할 수 없다는 불변의 진리는 지금이나 미래나 똑같이 적용된 것이었다.
다만 유재원은 JFK 암살 사건 전모에 대한 폭로로 시원함만 느끼는 건 아니었다. 착잡함도 분명 유재원의 가슴 한편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프레더릭 때문이었다.
프레더릭은 어떻게 스모킹 건 수준의 증거들을 보유하고 있었을까?
답은 간단했다.
프레더릭도 JFK 암살의 공범이었기 때문이다.
시크릿 서비스 대원들을 매수하는 일에 돈을 보탰다. 또한 각종 실무를 직접 수행하기도 했고, 진상이 밝혀지는 걸 막기도 했다.
특히 린든 존슨 부통령이 암살 사건 전모를 파악하기 위해 당시 대법관이었던 워런을 위원장으로 하는 워런 위원회가 생겼다. 여기에 프레더릭이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행적이 마이크로필름의 문서와 마이크로카세트 속 음원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마이크로카세트에 녹음된 음성의 마지막 부분에는 유재원을 위해 남긴 말이 있었다.
-이 음성을 듣고 있다면, 아마 내가 우려했던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겠지?
-나는 겉으론 짐짓 거인처럼 말하고 행동했지만, 사실은 이렇게나 쪼다 같은 늙은이였던 것이야. 죽기 직전까지도 내 인생 최대의 과오를 자네에게 직접 말하지도 못하고 필름과 테이프로 넘긴 것만 봐도 알겠지. 물려받은 유산을 내 능력이라 착각했고, 비대해진 자아를 인정받기 위해 온갖 사고를 치고 다녔지.
-자네에게 넘긴 필름과 테이프도 내가 만든 게 아니라 알프레드가 목숨을 걸고 만들었던 것일세.
-이걸 어떻게 사용할지는 온전히 자네 선택에 맡기지. 자네는 내가 인정하는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이니 최고의 선택을 할 거라 믿네.
유재원이 티파니, 혜성이와 함께 프레더릭이 있는 병원으로 오기 직전에 녹음한 것 같았다.
프레더릭은 선택의 몫은 유재원에게 맡겼다. 그리고 유재원은 그림자 정부 제2편 JFK를 만들어서 온 세상에 뿌려 버렸다.
은행 금고 깊숙한 곳에서 썩어가던 추악한 진실이 드러나자 세상이 뒤집어지고 있었다.
보통의 음모론의 경우에는 제대로 된 증거가 첨부되는 건 극히 일부였고, 증거가 없어 이어지지 않는 부분은 빈약한 상상력으로 메꾸는 게 보통이었다.
그렇지만 이번엔 달랐다.
처음부터 끝까지 오로지 팩트로만 가득했다.
-월가 점령 시위대의 구호가 ‘록펠러를 점령하자’로 바뀌었습니다.
-CNN 여론 조사에서 JFK 암살 사건 재조사 찬성 비율이 80% 이상입니다.
-록펠러 국정 조사에 대한 국민적 항의가 의회에 쏟아지고 있습니다.
-2CH.com에 대한 해킹 시도 횟수가 평소의 100배 이상 폭증했습니다.
인공지능 골드의 실시간 보고가 쭉 올라왔다.
이번 폭로에서 가장 중요한 건 미국 의회가 시민들의 압력에 의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월가 점령 시위대는 새로운 시민 운동의 장을 열었다.
의원들에 대한 직접적인 항의였고 이를 거대한 인피니티 디스플레이에 실시간으로 표시했다. 이는 곧 네티즌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었고, 선순환이 되었다.
-중요! 존 매케인 대통령이 록펠러 사건들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지시했습니다.
의회가 움직이기 시작했으니, 대통령도 바로 액션을 보였다.
존 매케인은 바로 내년에 재선 선거가 있었다.
정치인으로서 록펠러의 그림자가 북미에 얼마나 깊게 자리하고 있는지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유재원을 향한 암살 시도나 금융자본 독점, JFK 암살 등등. 모든 사안에 대한 명분은 본인에게 있다는 걸 확실히 인지했다.
이번에 확실히 하면 내년 재선은 물론이고, 미국 역사에 길이 남을 대통령이 될 것이 자명한데, 소극적으로 나올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띵!
-회장님, 중요한 작업 중인데 방해해 죄송합니다.
“네, 무슨 일이죠?”
인공지능 골드의 실시간 보고를 한창 받고 있는 중에 김대석으로부터 긴급한 연락이 왔다.
-클라크 록펠러로부터의 전화입니다. 회장님께 간곡히 말씀을 드릴 일이 있다고 합니다.
“거절할게요.”
유재원은 페르난도 의원 때와 달리 단 1초도 고민하지 않고 딱 잘라 거절했다.
-아, 네. 알겠습니다.
가타부타 이유를 붙이지도 않았고, 김대석 비서실장도 그걸 묻지도 않았다.
그 작자가 무슨 말 할지도 뻔했다. 게다가 이미 전면전인 상황에서 통화를 한다고 달라질 게 뭐 있겠는가.
지금은 끝장을 보기 위해 총력을 다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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