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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남 위원장, 개성 스마트 종합병원 조인식에 직접 서명!
김정남의 깜짝 등장은 대한민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즉각적인 속보가 되었다.
대한민국은 정규 방송이 중단되었고, 주변국에는 붉은색 배경의 굵직한 자막 속보가 보내졌을 정도였다. 미국과 유럽에서도 뉴스 케이블 방송에서는 속보가 떴다.
유재원의 부모님도 덕진리 집의 거실에서 케이블 채널로 조인식 방송을 보다가 김정남이 등장하자 깜짝 놀랐다.
“어쩐지 출발하기 전에 놀라지 말라더니.”
놀람이 좀 진정된 어머니 김말숙의 감탄이었다.
재원이가 아침일찍 출발하기 전 놀라지 말라고 해서 뭔가 대단한 신기술이라로 발표하는가 싶었다. 원래 자기 아들은 깜짝 발표를 좋아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게 김정남의 등장일 줄이야.
아버지인 유봉만 역시 깜짝 놀랐다. 다만 김정남 때문에 아들이 불편하지는 않을지, 혹시나 나중에 안 좋은 일을 당하진 않을지 걱정이 들었다.
“괜찮은가 모르겠네.”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는 남북 관계였지만, 언제 또 돌변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법 아니겠는가.
“재원는 진작에 알고 있었다니까요.”
“그래? 그럼 됐고.”
정확하진 않아도 미리 언질을 주었다는 건, 사전에 계획된 일이라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면 그나마 안심이 되었다.
실제로 대한민국 정부나 미국은 이미 김정남이 이번 행사에 깜짝 등장할 것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미국과 같은 경우는 20시간 전에, 한국은 하루 전에 북한의 수뇌부가 부산하게 움직이고, 개성 공단 행사장의 경호 등급이 급속히 상향되는 걸 보고 거물이 내려올 것임을 짐작하고 있었다.
대신 깜짝 놀란 건 조인식 직전에 이뤄진 김정남의 모두연설이었다.
유재원에 대한 호감이 듬뿍 담겨 있는 연설문이었다.
북한에서 민족의 영웅이라는 타이틀은 아무에게나 붙여 주는 게 아니었고, 단순한 미사여구는 더더욱 아니었다.
그것도 김정남이 대뜸 유재원에게 불러 주었으니, 앞으로 북한의 언론들은 유재원의 이름을 기사에 담을 때마다 민족의 영웅이라는 말을 꼭 붙일 것이다.
한국이나 미국의 대북 정보 조직은 이것이 의문이었다.
유재원과 김정남의 접점은 과거 김정일이 방한했을 때뿐이었다. 이후로 만난 적이 없는데 이렇게 친근한 모습이라니.
요즘은 과거처럼 숫자가 많지 않긴 해도, 어쩌다 만나 같이 게임을 하며 친분을 쌓았다는 건 미국의 정보 당국도 몰랐기에 나오는 혼란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ID 엔터테인먼트의 게임들은 모두 배틀넷이라는 온라인 매칭 플랫폼을 통해 멀티플레이가 통합되어 있었다. 배틀넷의 장점은 무료 온라인 멀티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무료 멀티는 웬만한 게임사들이 모두 제공하는 만큼, 더는 장점이 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배틀넷의 인기도는 최상이었는데, 이는 완벽하다고 할 만큼 강력한 안티 치트 엔진을 탑재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온라인 게임의 인기를 흩트리는 요인은 게임사의 운영 실패도 있지만, 남발되는 핵도 큰 지분을 차지했다. 게이머의 피지컬이 승패를 좌우하는 게임일수록 핵에 대한 욕구가 컸다.
온라인 게임의 보안 시스템과 이를 뚫으려는 핵의 싸움은 늘 일어났다. 그리고 ID 엔터테인먼트의 온라인 게임들은 훌륭하게 게임 핵의 공격을 막아냈다.
스타크래프트,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서 레전드 리그까지. 세상에서 제일 인기 있는 게임들을 가진 만큼 온갖 해커들의 공격이 집중되었지만, 막아냈다.
핵을 막아낸다는 말은 그 어떤 외부의 공격에도 게임 서버와 게이머들의 개인 컴퓨터 사이에 주고받는 패킷이 안전하다는 이야기였다.
이는 곧, 유재원과 김정남이 게임 속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걸 한국은 물론 미국까지도 파악하지 못했다는 이야기였다.
이러한 이유로, 각국의 정보 조직은 김정남이 유재원에게 바라는 게 있고, 같은 한민족이라는 구실로 큰 호감을 사려 한다는 식으로 결론을 냈다.
-기왕 이렇게 개성 공단에 오셨는데, 개성시로 함께 가서 스마트 종합병원의 입지를 눈으로 확인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위원장님께서 권하시는데, 마다할 이유가 있나요?
화면속 김정남과 유재원이 조인식을 마무리하고 서류를 주고 받더니, 또 예정에 없던 일을 만들었다.
“응? 개성으로 같이 갈 모양인데?”
“괜찮을 거예요.”
거실에서 개성시 상황을 텔레비전 중계로 보고 있던 유재원의 부모님은 개성으로 가서 부지를 살펴보자는 김정남의 깜짝 제안에 한 번 놀랐다. 그리고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수락하는 아들의 배포에 또 한 번 놀랐다.
갑자기 개성으로 가면 위험한 거 아닌가 싶었지만, 취재진에 경호원들까지 대동하고 움직이는 것이라 안심이 좀 되었다. 게다가 중간에 불미스러운 일이라도 생기면 북한이 더 큰일 아니겠는가.
여기에 티파니도 한 마디 거들었다.
두만강 하류 유전의 일로 북한에 여러 번 다녀왔던 티파니였기에, 북한에 대해 일반적인 한국 사람들보다 많은 걸 알고 있었다.
북한 특유의 허세와 자존심 덕에 손님 대접은 확실했다. 특히 티파니처럼 국가적으로 중요한 손님이라면 미국보다 편하게 지내도록 극진히 모실 정도로 말이다.
“보세요. 도로도 깨끗하잖아요. 재원씨가 올라 온다고 새로 깔았나봐요.”
과연 티파니의 장담 그대로 유재원의 개성 스케줄은 완벽했다.
개성으로 가는 모습까지도 방송국 카메라들이 따라 가면서 생방송을 이어나갔다. 인상적인 화면들이 마구 쏟아졌다.
개성시에 가까워오자 도로에 꽃다발을 들고 한복을 입은 사람들이 늘어서서 열성적인 환영식도 보였다. 북한에 국빈이나 방문했을 때 보여주는 퍼포먼스였다. 그렇지만 티파니에게 먼저 보인 건 그런 환영식보다는 새카맣게 포장된 개성고속도로였다.
막 아스팔트 포장을 마치고 개통한 것처럼, 새카만 아스팔트에서는 윤이나 보일 정도였다. 과거 북한이라면 절대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원유는 수출금지 품목이었으니 아스팔트로 도로를 까는 건 불가능했으니까.
지금은 펑펑 솟아나는 원유가 있다. 정제시설이 없어서 원유를 한국으로 수출했고, 정제된 휘발유와 경유, 각종 석유 화합물을 수입했다.
덕분에 개성고속도로는 새카만 아스팔트를 말끔하게 포장할 수 있었다.
동시에 개성시 방문도 김정남의 즉흥적인 제안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이미 다 짜여 있던 각본이었다는 걸 말해주었다.
개성에서 모든 일을 마무리한 유재원은 저녁에 화려한 만찬까지 대접을 받은 다음, 밤 9시경 도라산 국경 검문소를 넘어 한국으로 돌아왔다.
덕진리 집에는 10시 30분을 넘어서야 도착했다.
한국에서의 제일 중요했던 개성 공단과 개성시 방문은 완벽하게 끝났고, 종합병원 개원 작업도 순조롭게 시작되었다.
이후 유재원 부부와 혜성이는 덕진리에서 3일을 더 보내고, 서울로 올라왔다. 아무래도 유재원이나 티파니에게는 덕진리의 아늑한 시골 분위기도 좋지만, 살기 편한 곳은 도시였기 때문이다.
ID 글로벌헤드쿼터 빌딩의 최상층에 자리한 펜트하우스는 샌프란시스코 저택만큼이나 미래적으로 꾸며져 있었기에 지내는 동안 불편한 점은 단 하나도 느낄 수 없을 정도였다.
그렇다고 해서 유재원의 일상 패턴이 완전히 풀어지진 않았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운동을 하고서, 도란도란 모여 아침밥을 먹은 다음, 서재로 출근을 했다.
“응?”
11월이 되어 ID 그룹의 중요 행사 중 하나인 블랙프라이데이 준비로 열심이었을 때.
-회장님!, 비서실 홍범수 대리입니다! 방금 회장님 앞으로 중요한 편지가 왔습니다.
유재원은 샌프란시스코의 비서실로부터 긴급한 연락 한 통을 받았다.
김대석의 경우 유재원과 함께 움직이면서 유재원의 정식 소통 창구 역할을 하고 있지만, 샌프란시스코에는 비서실 직원이 남아 있었다.
홍범수 대리라고 하면, 매우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로, 유재원 때문에 인생의 진로가 크게 바뀐 인물이기도 했다. 원래대로라면 2010년쯤 카카오 메신저라는 걸 내서 한국의 메신저 시장에 돌풍을 일으킬 사람이었는데, ID톡이 90년대 중반부터 전 세계적인 메신저로 자리를 잡았고, 한국에서도 압도하면서 메신저 시장에 파고들 기미가 없었다.
더욱이 홍범수는 덕진대학교의 만학도가 되었고, 우수한 성적을 발휘해 ID 그룹의 인턴 프로그램에 합격하면서 비서실에 안착하게 되었다.
이후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면서 유재원과 김대석의 신임을 얻었고, 덕분에 차기 비서실장 후보에 오른 상태였다.
하여튼 홍범수의 연락은 유재원에겐 뜻밖의 일이었다.
“편지요? 요즘 시대에 편지를 보내는 사람도 다 있네요?”
편지라니.
요즘은 이메일도 잘 안 쓰는 시대였다. 이메일보다는 ID톡이고, 신세대들은 ID톡도 구식이라면서 톡톡 DM이나 인스타그램, 혹은 페이스북 메신저를 썼다.
-미국 상원의 상업과학통신위원회에서 보낸 편지입니다.
역시나 발신인의 이름을 보니 고리타분한 느낌이 풀풀 났다.
그런데 발신인이 상원이라고?
“느낌이 좋지 않은데요? 얼른 개봉해서 보여 주세요.”
-예, 회장님.
홍범수 대리는 유재원의 말에 편지 칼을 가지고 봉투의 끝을 조심스럽게 잘라내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유재원은 문뜩 실리콘 밸리에서 ID 그룹과의 경쟁을 포기해 버린 패배자들이 모여 반ID 그룹 여론을 이끌고 있다는 보고서가 떠올랐다.
거기에는 애플의 잡스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는 정보도 있었다. 유재원도 사람인지라 여러모로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그뿐이다.
본인이 저들의 처지이고, 7, 8년쯤 앞선 기술을 대대적으로 선보이는 어떤 기업이 갑자기 나타났다고 하면 유재원도 욕이 절로 나왔을 테니 말이다.
-편지는 모두 2장입니다.
-스마트폰으로 찍어서 전송하겠습니다.
띵!
홍범수 대리로부터 메시지와 함께 2개의 고해상도 이미지 파일이 전송되었다.
유재원은 바로 이미지 파일을 받아서 열어 전문을 빠르게 읽었다.
“응? 출석 통지서네요.”
편지에 담긴 내용은 미국 상원의 상업과학통신위원회에서 날아온 출석 통지서였다.
-헉! 저도 확인했습니다. 바로 알아보겠습니다.
홍범수 대리는 편지를 찍어 유재원에게 보내는 게 제일 급한 일이었다. 뒤늦게 편지의 내용을 확인하고 크게 놀랐다.
회장님을 국회에 소환이라니! 반면 유재원은 침착했다.
한국이 아닌 미국 국회였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 국회에서 청문회나 국정 감사는 여야의 합의로 이뤄지는 비정기적인 이벤트였다. 한국 국회에서 ID 그룹의 독점을 문제로 유재원을 소환했다고 한다면, 엄청나게 큰 사건이 터졌다고 봐야 한다.
반면 미국 국회의 경우 청문회나 국정 감사는 상시적으로 이뤄지는 일이었다.
상원과 하원에서 각각의 분과를 두고 어떤 이슈가 생겨나면 바로 분과 소속의 의원들이 모여서 질의를 한다.
이번의 경우 실리콘 밸리에서 반ID 그룹의 목소리가 커졌고, 보스턴 다이나믹스에서 발표한 로봇 파견 서비스에 대한 논란이 상당해진 상태였다.
로봇 파견만 해도 관련된 문제들이 상당했다.
무엇보다 파견된 로봇이 실수를 저질러 큰 재산 피해를 냈다든가, 인명 피해를 냈을 때의 책임 소재에 관한 논의도 필요했다.
뭔가를 만드는 작업이라면 즉각적으로 합격인지 불량인지 판별할 수 있다. 반면 병에 대한 진단이라든가, 사법 행정에서의 능력 발현은 잘못에 대한 검증이 어렵고 그 여파도 상당히 컸다. 오진으로 생명에 위협을 받을 수 있고, 사법 행정에서의 잘못된 일 처리는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 수 있다.
출석 통지서에는 이러한 이슈에 대해 유재원에게 직접 물어볼 사안들이 있다고 되어 있었다.
다만 이 정도의 용무라면 유재원 대신 보스턴 다이나믹스의 마크 사장이 대신 출석해도 무방한 일이었다.
“아무래도 출석을 해야겠네요.”
그렇지만 유재원은 출석을 선택했다.
출석 요청서에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문의만 있었다면, 원래의 계획대로 한국에 계속 있어도 문제없었다.
-셔먼 액트의 행사를 요구하는 쪽의 의견은 이미 청취했음.
상원에서 여는 단순한 청문회였다면 그냥 있어도 괜찮았을 것이다. 하지만 셔먼 액트, 그러니까 반독점법 소송을 주장하는 쪽의 의견을 이미 들었다는 건 완전히 다른 이야기였다.
보스턴 다이나믹스는 아직 로봇의 대량 생산을 시작도 못 했다. 지금은 열심히 생산 라인을 만드는 중이었다. 또한, 각 로봇마다 공통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공유 부품을 연구했고, 구동부와 동력 전달 구조, 센서 등등. 로봇의 성능을 좌우할 핵심 부품의 업그레이드 작업에 매진 중이었다.
그나마 순조롭게 이뤄지는 건 스마트 의수와 의족이었다.
주문하는 사람의 체형에 맞춰 제작해야 하는 만큼, 만족스러운 생산량은 나오지 못했다. 그래도 한 달에 수백 명의 사람이 새로운 손과 다리를 얻어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보스턴 다이나믹스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시작도 못했는데, 반독점법 논의가 시작되는 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홍 대리는 상원의 상황과 워싱턴DC의 분위기를 체크해 주세요. 급하게 하지 않아도 되요. 출석일까지는 약간 여유가 있으니까, 꼼꼼하게 해주세요.”
-아, 네. 현미경을 들여다 보는 것처럼 준비하겠습니다!
미국으로 돌아가는 것부터 부차적인 일은 김대석에게 시키면 될 일이었다.
유재원이 지시한 것처럼 출석 요청서에 적시된 출석일은 이틀 남짓한 시간이 있었다.
공격측에서 나름 최대한 급박하게 시점을 잡았고 일부러 우편으로 통보를 해서 더더욱 촉박하게 만든 모양이다. 허나 유재원에겐 이틀은 반격을 시작하는 데 충부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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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