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4회
셔먼 액트(Sherman 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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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고는 14,300원입니다.
“에휴. 이걸로 2주나 버텨야 한다니.”
대학교 2학년인 전도훈은 잔고 조회 결과를 알려주는 인공지능 골드의 목소리에 한숨부터 나왔다.
아르바이트 월급날은 정확하게 10일이나 더 남았는데 잔고는 바닥이었기 때문이다. 하루에 1,430원으로 살아야 한다는 건데, 그건 너무나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그나마 기대볼 만한 건 아르바이트 하는 편의점에서 나오는 폐기품이었다.
김밥이나 간편 도시락 등.
유통기한이 무척이나 짧은 식품들은 그날 다 처리하지 못하면 폐기되는데, 폐기품을 처리하는 방식은 편의점 사장의 마음이었다. 그냥 음식물 쓰레기로 처리하는 곳도 있고, 아르바이트생에게 먹으라고 주는 곳도 있었다.
유통기한이라는 게 맛이 일정하게 유지되는 기간을 의미하기 때문에, 유통기한이 몇 시간 지났다고 해서 바로 상하는 건 아니었으니 말이다.
전도훈이 아르바이트하는 편의점이 그랬다.
다만 매일같이 폐기품이 나오는 건 아니었다.
예전에는 편의점 사장님이 어림 대중으로 하루에 팔려 나갈 물량을 예상해서 주문을 넣었고, 그것이 빈번히 틀리면서 폐기품이 제법 나오기도 했다. 그런데 폐기품은 곧 편의점의 손실이었기에 폐기품이 많이 나온다고 좋아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
예측의 정확성이 문제였는데, 최근에는 수준이 확 달라졌다. POS 기기는 물론이고 유료로 구매할 수 있는 매장 관리 프로그램에서 상권 분석과 매출 분석 등을 통해 정확한 물량을 예측해 보여주었다. 그걸 그대로 주문하니 폐기품이 나오는 게 확 줄었다.
작년만 해도 하루에 10개가 나오는 일도 있었는데, 지금은 1, 2개나 나오면 다행이었다. 예측의 정확성이 확 올라간 것이다.
편의점 사장님에겐 좋은 일이지만 전도훈에겐 아쉬운 일이었다.
띵!
-아빠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스마트폰의 알람 소리에 전도훈은 흠칫했다. 특히 발신자로 표시된 아빠라는 단어가 들리자마자 표정이 더욱 나빠졌다.
“읽어줘.”
-‘우리 자랑스러운 아들 덕분에 할아버지 수술 경과는 매우 좋단다. 그런데 통원 치료비가 문제구나. 여유가 되면 좀 도와줄 수 있겠느냐? 배추가 잘 팔리면 이자까지 쳐서 갚아주마.’
“에휴.”
전도훈의 입에서 한숨이 또 한 번 나왔다.
처음부터 통장의 잔고가 텅 빈 건 아니었다. 원래는 500만 원은 더 들어 있던 전도훈의 계좌였다. 생활비는 물론이고 내년 1학기 등록금도 낼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집에서 할아버지가 사고를 쳤다는 연락에 그 여윳돈을 다 보내드려야 했다.
집안 내력을 다 풀자면 긴 스토리가 나오지만, 대충 짐작할 수 있을 만큼 그렇고 그런 진부한 스토리였다.
원래는 좀 살던 집안이었는데, 할아버지가 도박과 주색에 빠져서 다 탕진했다는 이야기다. 뭐, 독립 유공자로 선정되신 분들 중 한 분이 그렇게 망나니짓으로 일제를 속이고, 실제로는 독립군 군자금을 댔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하지만 전도훈의 할아버지는 진짜 집안 재산을 말아 드셨을 뿐이다.
그렇게 방탕했던 시절의 가락은 나이가 80이 넘은 지금까지도 남아서 술을 그렇게도 좋아했다는 것이다.
몇 달 전에도 밤늦게까지 술을 먹고 돌아오시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면서 허리를 심하게 다쳤다.
그나마 할아버지가 미처 탕진하지 못한 손바닥만한 밭에서 각종 채소 농사를 지으며 근근이 살아가는 전도훈네 집에는 수술비가 큰 부담이었다.
결국 수술비를 구하기 위해서 전도훈에게까지 부탁이 왔고, 집안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 그는 500만 원을 집에 송금했다.
“골드, 내 은행 잔고 스크린 샷 찍어서 아빠에게 보내드려.”
-네, 은행 잔고 스크린 샷을 아빠에게 전송합니다.
띵!
아빠에게 스크린 샷을 보낸 지 1분쯤 지났을까.
다시 알람 소리가 울렸다.
-3만 원이 입금되었습니다. 입금자는 ‘미안하다’입니다.
입금자로 미안하다고 한 사람은 안 봐도 뻔했다. 깡통 계좌 상태를 보고 마음에 걸리진 아버지가 돈을 보내준 것이다.
그렇지만 뭉클하다거나 감동적이기는커녕 짜증만 났다.
분명 아버지도 어려울 텐데 그 돈을 다 털어서 보내주셨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그 액수가 3만 원이라니.
집구석이 얼마나 엉망인지 딱 보여주는 액수였다. 그와 함께 그 많던 집안 재산을 다 말아먹고, 지금도 사고만 치는 할아버지가 얄미웠다.
나이가 80을 넘겼으면 골골거릴 때도 되었다고 생각하는데, 건강은 타고난 것인지 하루에 소주 1병씩은 마시고 다녀도 거뜬했다. 그래서 이번과 같은 사고를 치는 거 아니겠는가.
“에휴.”
한 번 더 한숨을 쉰 전도훈은 가방을 들고 손바닥만 한 고시원을 나섰다. 오후에 있는 강의 하나를 듣고 나서 편의점 저녁 타임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얼마 후.
강의 시작 5분 전에 강의실에 도착한 전도훈은 뒷줄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강의실에는 먼저 자리를 잡고 있던 동기들이 있었지만, 전도훈을 보고 인사를 해 주는 애들은 없었다.
아웃사이더.
그것이 전도훈의 타이틀이었기 때문이다.
학년 초만 해도 전도훈에게 이것저것 말을 붙여주는 붙임성 있는 이들도 좀 있었다. PC방을 가자는 권유부터, 같이 밥을 먹자는 거나 클럽에 가자는 것까지. 고마운 제안이었다. 하지만 아르바이트를 하기에도 빠듯했던 전도훈은 어느 것 하나 수락하기가 힘들었다.
생활비도 부족한 판에 PC방이나 클럽을 갈 돈이 없었던 탓이다.
그렇게 거절만 하다 보니 이제는 말을 붙여주는 동기도 없었다.
당연하게도 연애는 꿈도 꾸지도 못했다.
1학년 때는 썸이라는 걸 타 보긴 했지만, 경제적 여유라고는 단 1도 없는 전도훈에게 연애는 사치였다.
심지어 말을 붙여주던 친구 녀석이 입대로 인해 휴학을 하게 되면서, 전도훈은 자발적인 아웃사이더가 되었다.
장학금이라도 받으면 그나마 아르바이트 부담이 좀 줄 텐데, 공부할 시간은 부족하니 점수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대학교를 다니고, 졸업을 한다고 해도 미래가 나아질 거라는 보장도 없었다. 오히려 할아버지의 치료나 고향집의 어려움 때문에 학자금 대출까지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
이런저런 생각 때문에 강의를 들으면서도 교수님의 말은 하나도 머릿속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늦은 밤.
고단한 몸을 이끌고 고시원으로 돌아온 전도훈은 대충 씻고 침대에 누웠다.
아르바이트할 때는 그렇게 생각이 나던 침대였는데, 잠은 쉽게 오지 않았다. 몸은 피곤한데도 머릿속은 복잡했으니 당연했다.
보통 이렇게 복잡해진 머릿속 상념들은 결국 이리 살아 봐야 희망은 보이지 않으니, 잠에 들고 나서 깨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으로 끝이 나는 게 보통이었다.
이번에도 머릿속 감정들이 부정적으로 흘러가고 있었던 그때.
띵!
-중요한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아씨, 또 뭐야.”
이젠 띵 하는 알람 소리에 절로 짜증이 나는 전도훈이었다.
그에게 연락이 올 곳은 고향집 아니면 아르바이트를 하는 편의점이었다. 편의점은 마감 잘 치고 들어왔으니 연락이 올 곳은 고향집일 텐데, 고향집에서 좋은 소식으로 연락이 올 리는 없지 않은가.
전도훈은 신경질적으로 본인의 낡은 스마트폰인 안드로이드 S6을 들어 올렸다.
싸게 나온 중고로 구매했고 최대한 깔끔하게 사용 중이었지만, 출시 후 5년이나 지난 물건이니 세월의 고단함이 그대로 묻어나는 스마트폰이었다.
옛날 스펙이라 최신 게임 구동은 어림도 없는 이야기지만, 그나마 모바일 운영체제의 업그레이드는 최신 버전까지도 설치되는 마지노선에 놓인 모델이었다. 덕분에 인공지능 개인 비서 골드의 능력은 최신 버전 그대로였고, 차세대 번역기나 이미지 해석기도 사용할 수 있었다.
문제는 기기의 스펙 차이가 엄청난 탓에 반응 속도가 많이 느리다는 것이지만, 그것도 감지덕지였다.
낡디낡은 본인의 스마트폰을 보니 할아버지 수술비로 보낸 돈이 아쉬워졌다.
그간 열심히 돈을 모았던 건 내년 학기 등록금 때문이기도 했지만, 최신 스마트폰인 Z1을 꼭 손에 넣고 말겠다는 계획도 있었다.
지금은 모두 물거품이 되어 버린 계획이었다.
“응?”
아쉬움을 애써 털고 눈을 뜬 전도훈은 스마트폰을 보았다.
-축하합니다. 전도훈 님은 ID 그룹의 동반 성장 프로모션, 라이프 리워드 시스템의 클로즈 베타 테스터에 당첨되셨습니다.
“뭐야?”
전도훈은 벌떡 일어났다.
지긋지긋한 고향집의 연락이 아니었던 것이다. 어쩐지 인공지능 골드가 메시지를 자동으로 읽어주지 않더라니.
그런데 라이프 리워드 시스템은 대체 뭐지?
전도훈은 첨부된 링크를 탭하려다가 멈칫했다.
요즘 성행하고 있는 피싱 링크가 아닌지 순간 불안해진 것이었다.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첨부된 메시지를 꼼꼼히 읽기 시작했다.
잠시 후.
“진짜다.”
넥스트컴에서 검색을 해 보니 바로 ID 그룹 사이트에 있는 특별 홈페이지로 연결되었다.
그곳에는 라이프 리워드 시스템에 대한 설명과 함께 클로즈 베타 테스터 추첨이 진행 중이라는 사실도 적시되어 있었다.
선정 대상은 ID 그룹의 제품과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을 쓰는 전도훈도 해당이 되었다. 비록 S6이라는 구형이긴 해도 엄연히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이었다. 게다가 전도훈은 ID 그룹이 서비스하는 인터넷 사이트도 여럿 가입하고 있었고, 블리자드 게임도 즐겨 하는 사람이었다.
다만 선정이 된 대상에게 어떤 식으로 지원이 될지, 선정된 사람이 수행해야 하는 일에 대해서는 개별로 통보된다고 되어 있었다.
링크에 첨부된 URL을 보니 점 하나를 이상하게 바꿔 놓는 식의 피싱 사이트는 아니었다.
-정상적인 링크입니다.
보안 검사도 정상으로 나왔다.
여러 가지 크로스 체크로 속임수가 아님을 확인한 전도훈은 떨리는 마음으로 링크를 탭했다. 그러자 익숙한 사용자 등록 화면이 나타났다.
이메일 닷컴의 통합 아이디를 통해 간단하게 등록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몇 가지 첨부된 계약서에 전자서명을 해야 한다는 안내가 떴다.
보통은 그냥 무심히 체크하고 넘어가는 대목이었고, 전도훈도 대충 스크롤한 후에 체크하고 넘어가려고 했다. 그러자 꼼꼼히 읽어보고 체크하라는 문구가 큼지막하게 떴다. 그러면서 약관의 일부 대목이 형광색으로 강조되기도 했다.
“어디 보자.”
전도훈은 도대체 무슨 프로모션이기에 이리 깐깐하게 구나 싶었지만, 일단 시키는 대로 했다. ID 그룹이라면 소비자 등치는 짓은 하지 않겠지만, 귀찮은 일에 휘말리는 것도 싫었으니 말이다.
“별거 아니네.”
약관을 꼼꼼히 읽은 전도훈의 반응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저 라이프 리워드를 받은 상품에 대해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그것이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지 체크하기 위해 개인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또한 N페이 계정이 필요하니 계정이 없으면 먼저 만들어야 한다는 내용도 있었다.
얼마든지 동의할 수 있는 일이었고, N페이 계정은 이미 있었다.
몇 년 전 N페이에서 포인트를 뿌리는 이벤트를 할 때 가입했었는데, 그때 쏠쏠하게 포인트를 받아서 유료 아이템을 구매했던 일이 있었다. 이후에는 N페이를 충전할 돈도 없어서 쓸 일이 없었지만, 계정은 남아 있었다.
-감사합니다. 전도훈 님은 라이프 리워드 시스템에 성공적으로 가입하셨습니다.
-첫 번째 보상을 발송했습니다. N페이를 통해 1분 이내에 수령하실 수 있습니다. 피드백의 수준에 따라 지속적으로 리워드를 받을 수 있으니, 영리하게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절차를 마치자 성공적으로 등록되었다는 메시지가 떴다.
“1분 이내에 수령할 수 있다고? N페이라고 했으니, 포인트를 좀 주는 건가?”
전도훈의 건조한 마음속에 기대감이라는 게 조금 싹텄다.
띵!
-라이프 리워드 시스템으로부터 전도훈 님의 N페이로 기프트를 발송했습니다.
“왔다.”
때마침 알람이 왔다.
1분 내라고 했는데, 불과 5초도 안 되는 사이에 번개처럼 꽂혔다.
전도훈은 스마트폰에서 N페이 앱을 실행했다. 느려진 S6이라 그런지 앱이 뜨기까지 더욱 오래 걸렸다.
그 몇 초간의 시간이 전도훈에게는 분 단위로 길게만 느껴졌다. 그렇게 몇 초간 로딩 애니메이션이 돌던 N페이 앱이 떴다.
“음? 0포인트인데?”
화면에서 제일 먼저 보이는 보유 N포인트 잔고는 원래 그대로 0을 유지하고 있었다. 도대체 보상이라는 게 뭘까? 전도훈은 읽지 않은 알림 1개가 있다는 의미로 종 모양에 1이라는 숫자가 꼬리표처럼 달린 아이콘을 클릭했다.
-62Z
-안드로이드 Z1 256GB 수령용 QR코드.
그러자 보이는 건 무슨 암호 같은 문구였다.
62Z라니. 수령용 QR코드는 뭐고?
다시금 이것저것 찾아보기 시작한 전도훈은 메시지의 의미를 해석하고서는 입이 떡 벌어졌다.
일단 62Z라는 건 그 유명한 Z코인 62개라는 뜻이었다.
현재 Z코인 1개의 시세는 2만6천 원. 62개는 한국 돈으로 161만 2천 원이라는 거금이었다. 게다가 안드로이드 Z1 수령용 QR코드라는 건 교환 티켓과 같은 것이었다. ID 플래그십 스토어에 가서 QR코드를 제시하면 최신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인 Z1 256GB를 그냥 내준다는 이야기였다.
헉 소리가 절로 나왔다.
지금 상황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전도훈이었다.
확실히 비정상적이긴 했다. 그렇지만 전도훈 혼자에게만 주어진 행운은 아니었다. 한국과 미국에서 각각 10만 명씩 선정된 대상에게 적게는 50Z에서 많게는 200Z까지 Z코인이 주어졌고, ID 그룹의 다양한 상품들이 QR코드 형태의 기프트콘으로 전해졌다.
그와 함께 사용자의 동의를 얻은 만큼, 이들이 가진 스마트폰을 통해 다양한 종류의 피드백들이 ID 클라우드 센터에 모였다.
2011년 9월 18일.
역사에 남을 라이프 리워드 시스템이 본격적으로 가동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선보였다.
다양한 종류의 후폭풍이 일어나는 것도 즉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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