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877화 (877/1,007)

853회

셔먼 액트(Sherman Act)

=============================

Z코인을 가지고 기본 소득 비슷한 정책을 시행하겠다는 마음이 즉흥적으로 생겨난 건 아니었다. 마스터플랜에 기록되었을 만큼 오래 생각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시점은 지금보다는 뒤의 일이었다.

시행 시기가 크게 앞당겨진 건, 최근의 여론 동향이 ID 그룹에 묘하게 압박적으로 변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휴가 중에는 전기 제국 운운하던 칼럼이 나오더니, 휴가가 끝나갈 때쯤에는 ID 그룹이 만드는 빛과 어둠이란 제목의 기사가 올라왔다.

IT 혁명부터 최근의 로봇공학과 뇌파 인터페이스까지.

ID 그룹이 주도하는 기술 혁신의 공로는 인정한다는 것으로 시작된 기사였다. 스마트 의수로 새로운 삶을 살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나, 팔이 불편해 전자 기기를 마음껏 쓰지 못한 사람에게도 신세계가 열렸다.

스마트 의수와 의족도 예약을 받고 있는데, 순식간에 가득 찼다.

스마트 의수는 하나에 1만 달러, 스마트 의족은 1만5천 달러로 상당한 가격을 자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의 신체 조건은 저마다 다르기에 규격화된 양산용 부품의 숫자가 많지 않다. 반대로 장착할 사람의 피부색이나 팔, 다리 길이, 무게중심에 맞게 개인화 설계를 해야 했다.

이를 위해 동원된 기술이 바로 3D 프린터였다.

3D 프린터는 보스턴 다이나믹스나 ID 그룹이 아닌 실리콘 밸리의 스타트업을 인수하면서 보유하게 되었는데, 의외로 기술 수준이 아주 좋았다. 보기와 달리 내구성도 있었고, 형태도 자유롭게 만들 수 있었다.

대신 부품 하나를 만들어내는 데 걸리는 시간이 제법 길었다. 시간이 곧 돈인 보스턴 다이나믹스에서는 이 문제를 3D 프린터를 대량으로 도입하는 것으로 해결했다. 이뿐만이 아니라 마크 박사가 IDDC에서 밝힌 그대로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전용 공장 건설도 이미 시작되었다.

공장은 보스턴 다이나믹스의 본사 근처에 짓기로 했는데, 기존의 공장과는 형태가 많이 달랐다.

설계부터 스마트 팩토리로 계획된 공장이었기 때문이다.

아틀라스를 비롯한 다양한 로봇부터 스마트 의수와 의족까지. 보스턴 다이나믹스는 로봇을 대규모로 생산하는 기업이었다.

로봇이 이렇게 쓰일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데 스마트 팩토리만한 게 없다. 생산 라인 자체가 최대한 자동화가 되었고, 불가피하게 사람이 투입되어야 할 구간은 아틀라스 로봇이 대신하는 완벽한 스마트 팩토리였다.

월 10만 대 이상의 로봇들을 생산하는 대규모 공장이지만, 투입되는 사람은 10명 이하가 될 것이다.

이러한 대목이 빛과 어둠이라는 기사에서 어둠 파트에 자리하고 있었다.

같은 규모로 지어진 평범한 공장이라면 최소 1천 명 이상의 고용 효과가 나올 텐데, 달랑 10명이라니. 4차 산업혁명이 대대적 일어났을 때 나타날 일자리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적 공장이라는 것이다.

마지막 대목에서는 ID 그룹과 경쟁사들의 기술 격차가 상상 그 이상이라는 내용이었다.

천문학적인 자본과 시간을 들여 R&D에 집중 해도 추격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포기해 버리는 기업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마치 거대한 나무가 자라나면 그 그림자 때문에 다른 나무는 자라지도 못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더욱이 ID 그룹이 가격 정책을 수익성에 맞추게 되면, 압도적인 점유율과 영향력, 대안의 부재 때문에 소비자들의 가격 저항력은 극히 낮을 거라고 예견하기도 했다.

그래서 빛과 어둠이라는 제목이었다.

“잘 쓰긴 했네.”

한국에서 양산되는 받아쓰기 기사나 사이버렉카형 기사보다는 훨씬 수준이 높았다.

허접한 뉴스가 범람하는 게 보기 싫어서 넥스트컴 뉴스 페이지 약관을 손보면서까지 질 낮은 기사들이 양산되는 걸 막고자 했던 유재원이지만, ID 그룹만으로는 매스컴의 행태를 바꾸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한국에서는 아직도 인터넷 매체는 물론이고 일간지 신문에서까지 질 낮은 기사들이 쏟아졌다. 그에 비하면 이번 기사의 퀄리티는 아주 좋았다. 얼마 전 나왔던 전기 제국 운운하던 기사보다 괜찮게 보일 정도로 말이다.

그렇기에 유재원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이런 식의 흐름이라면 반드시 셔먼 액트도 언급되겠지.”

엄청난 노력을 들여 충분히 고개가 끄덕여질 만한 기사들로 ID 그룹의 행보에 딴죽을 걸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처럼 일사불란한 움직임을 보고 있자니, 유재원은 자연스럽게 셔먼 액트가 떠올랐다. 몇 달 후에 ID 그룹에 셔먼 액트를 적용해야 한다는 식의 기사가 나올 것 같았다.

셔먼 액트는 다른 말로는 반독점법이었다.

미국의 반독점법은 매우 강력했다. 석유 업계를 꽉 쥐고 있던 스탠더드 오일도 반독점법에 걸려 여러 개의 회사로 쪼개졌다. 마찬가지로 북미의 통신 서비스를 독점하고 있던 AT&T도 여러 개의 통신사로 분할되었다.

독점이 낳는 폐해가 심하다고 인정된다면, 미국은 가차 없이 기업을 쪼개 버렸다.

“하지만 독점이 무조건 폐해만 있는 건 아니라고.”

경쟁을 하는 척하면서 뒤로는 모두가 한뜻으로 움직이는 과점의 형태 역시 바람직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유가 아니겠는가.

오펙이라는 기구를 만들어 원유의 공급과 가격을 결정했고, 그로 인해 석유 파동이 일어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물론 석유 파동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를 살펴보자면 중동 국가들도 할 말은 있다.

그렇지만 결과적으로는 과점으로 인한 폐단의 확실한 예였다.

ID 그룹만 해도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의 가격 상승을 억제하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기기의 스펙을 기준으로 한다면 1천 달러는 진작에 넘고도 남았다. 그렇지만 899달러라는 기준은 꾸준히 유지시키고 있었고, 애플 역시 안드로이드 스마트폰과 경쟁하기 위해서 공격적인 가격 정책을 펼치는 중이었다.

실제로 과거에도 독점의 형태가 소비자들에게 이익이라면 셔먼 액트의 발동을 예외로 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대표적인 기업이 아마존이었다.

드런 아마존도 유재원의 눈으로 보기엔 그다지 바람직한 기업은 아니었다. 소비자에게 파격적인 가격 혜택을 준다는 명분으로 노동자의 처우나 입점 업체에 가해지는 압력은 상상 초월이었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아마존의 CEO는 여러 가지 문제가 많은 인물이었다.

단적으로 물류 창고 노동자를 위해 에어컨을 설치하는 비용보다 앰뷸런스를 부르는 비용이 더 싸다고 에어컨을 설치하지 않은 사례는 너무나도 유명했다.

비판만 모아서 IDW 파일로 만들면 1메가바이트짜리 문서가 쉽게 만들어질 만큼, 흑역사도 많았다. 이러한 비판들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이다. 유재원의 사적인 평가가 아니라 제프 CEO 사후의 종합 평가에서 나온 문장이었다.

현재는 과거 아마존보다 몇 배의 존재감을 발휘하는 P마켓 때문에 아마존의 존재감도 달라졌다. 전 세계 전자 상거래에서 압도적 점유율을 자랑하고 있었기에 아마존은 기도 못 펴는 중이었다.

노동 여건도 P마켓이 기준이 되면서 관련 업계의 질적인 상승이 이뤄지고 있었다.

이러한 데이터들은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정치권에서 누군가 총대를 메고 반독점법을 운운하게 되면 바로 데이터로 후려쳐 줄 준비는 마친 상태다. 지금 백악관에 있는 사람이 존 매케인이었고, 유재원과의 관계도 돈독했다. 게다가 워싱턴 정치판에서 유재원의 영향력도 거대했다.

무슨 생각인지 열심히 외부 활동 중인 잡스보다 몇 차원은 더 높다고 확언할 수 있을 정도다. 버니 샌더스처럼 오른쪽으로 급진적인 성향의 인물이 아니면 먼저 나설 사람은 없다.

다만 유재원은 반 ID 그룹의 움직임이 구체화되었고, 비트코인 덕에 Z코인을 떡상시킬 수 있었던 만큼 지금이 대비책을 시행하는 데 최적기라는 판단이다.

대비책의 이름은 라이프 리워드 시스템.

단어를 그대로 직역하자면 일상에서 뭔가를 이뤄내면 그에 대한 보상을 주는 시스템이라는 뜻이다.

모두에게 무조건 퍼주겠다는 건 아니다.

라이프 리워드 시스템을 가입 조건은 ID 그룹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이용한다는 것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룹 차원의 프로모션처럼 보인다.

보상을 미끼로 ID 그룹의 서비스를 써 보시라는 광고로 이해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본질은 많이 다르다.

뭔가 미션을 수행해서 보상을 주는 프로모션이라고 한다면 당첨자의 숫자도 적고, 주어지는 보상도 그다지 파격적이진 않으니 말이다.

반면 유재원은 4차 산업혁명 이후의 급격한 변화에서 사람들 모두에게 최소한의 안전망을 만들어주겠다는 것이었고, 그게 바로 라이프 리워드 시스템이다.

적용 대상도 광범위했고, 이들에게 주어지는 보상의 수준도 소득 대체 효과를 발휘할 만큼 상당했다.

사실 이 정도 규모의 사회적 안전망 구축 사업이라면 기업이 할 일이 아니라, 국가가 나서서 해야 할 과제였다.

그도 그럴 것이 기업의 입장에서는 정해진 가격에 맞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소임은 다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기업이 거꾸로 돈을 내주는 건 세금이나 임금을 지급하는 상황 말고는 없는 게 보통이다.

문제는 이러한 경제 시스템은 인공지능과 안드로이드 로봇이 인간의 노동력을 완전히 대체하기 전에만 유효하다는 것이었다.

모든 일자리를 인공지능과 안드로이드 로봇이 대체한다면, 사람들은 어디서 돈을 벌어야 할까?

기업이 제공하는 일자리는 없으니 공무원이 된다든가, 스스로 창업을 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공무원 분야에도 인공지능은 적용이 되니 정원은 더욱 줄어들 것이고, 창업 역시 인공지능과 안드로이드 로봇으로 무장한 기업들과 경쟁을 해야 한다.

그나마 조금의 가능성이라도 있는 게 1차 산업인 농업이나 수산업이 있고, 프로그래밍이나 음악, 소설, 미술 등등의 각종 창작 활동이 있다. 그렇지만 해당 분야 역시 4차 산업혁명의 영향에서 완전 면역인 것도 아니다. 기술적 특이점을 넘어서는 인공지능이 나타난다면 문화 예술분야도 얼마든지 정복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4차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부터 미리 대비해야 한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인공지능과 안드로이드 로봇에 세금을 부과하고, 거기에서 얻는 세금을 국가가 국민들에게 재분배하는 것이었다.

이른바 기본 소득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사람들이 세금을 끔찍이 싫어하는 것처럼 기업도 세금을 끔찍하게 싫어한다.

유재원이야 스스로에게 약속한 조건이 세금의 성실 납부였기에 일반 기업들과는 많이 다른 행태를 보이는 중이다. 하지만 ID 그룹을 제외한 모든 기업은 적극적인 절세는 물론이고, 할 수만 있다면 불법적인 것도 가리지 않았다.

애플만 해도 앱스토어의 전자 결제는 모조리 아일랜드로 이어지고 있는데, 아일랜드가 대표적인 조세 회피 지역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세금을 공정하게 걷는 것부터가 문제다. 게다가 거둬들인 세금이 제대로 분배되는 것도 일이었다.

국가의 투명성이 보장되어 있지 않은 나라라면 힘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을 가져가고 나머지는 부스러기만 먹게 되니 말이다.

설사 국가의 신용도가 어느 정도 보장된다고 해도, 세금의 분배가 공평하진 않았다. 가장 좋은 건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만큼의 지원을 해 주는 것인데, 이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니 그냥 공평하게 1/n로 해서 주는 게 기본 소득이었다.

이렇게 일률적으로 지급되는 기본 소득의 효과는 생각처럼 효과적이지 않았다. 의도는 좋았지만, 보편적으로 지급하다 보니 효과도 미미했던 것이다.

“심지어 이런 기본소득이라도 줄 수 있는 나라는 지구상에서 극히 일부 나라에 불과했어.”

반면 유재원이 설계한 라이프 리워드 시스템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정확하게 선발해서 필요한 지원을 적절하게 해 주는 것이 특징이었다.

무조건 똑같은 보상이 아니라, 고도의 선별을 통해 도움이 제일 필요한 사람들을 고르고 그들에게 필요한 지원을 해 준다. 지원이란 금전이 될 수도 있고, 현물이나 이용권, 교육 등이 될 수 있지만, 지금은 시범적으로 시행하는 것이니 Z코인이 중심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리워드는 무조건적으로 아무에게나 주느 것이 아니라, 본인이 처한 상황을 바꾸려는 의지가 있는 이들에게 우선권이 주어지도록 설정했다.

몇 시간 후.

-Z+ 컴파일러로부터 컴파일 완련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0 경고, 0 에러, 컴파일완료입니다.

불과 하루도 안 되는 시간에 라이프 리워드 시스템이 뚝딱 만들어졌다.

백지에서 시작했다면 몇 달은 걸렸을 일이었다. 반면 지금의 유재원에겐 클라우드 시스템과 인공지능 골드, 이메일 닷컴과 같은 통합 ID도 있다. 여기에 작년 블랙프라이데이에 시작해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스마트 찬스도 있었다.

이처럼 어떤 정책도 바로 수행할 수 있는 기반이 다져진 상태였기에 백 엔드 작업은 비교적 간단했고, 대부분의 코딩은 일반 사용자를 위한 스마트폰 앱과 인터넷 사이트 제작에 쓰였다. 둘 다 기능은 동일한데, 편의성은 앱이 월등하다.

일단 로그인부터 스마트폰이 더 간편했고, 인터넷 사이트는 몇 단계를 더 거쳐야 했으니 말이다.

유재원은 서버에서 지원하는 모니터링 유틸리티로 앱과 인터넷 사이트가 잘 구동되는지 확인했다.

모든 것이 정상이었다.

“일단 시범적으로 한국과 미국서 10만 명씩 선정해 볼까?”

라이프 리워드 시스템은 겉으로는 ID 그룹의 새로운 프로모션의 형태였기에, 한국이나 미국에서 당장 시행한다고 해서 어떤 허가나 심의를 받아야 할 필요가 없었다. 게다가 시범 서비스에 드는 재원 역시 유재원의 개인 재산이었으니 누구의 허락도 필요하지 않았다.

다만 라이프 리워드의 인지도는 0점이라는 게 문제였는데, 이 역시 인공지능 골드와 애드센스의 콜라보로 충분히 해소할 수 있다고 여겨졌다.

“시작!”

잠깐 여러 가지 변수들을 따져 본 유재원은 서비스 시작 버튼을 꾹 눌렀다.

=============================

[작품후기]

추천과 리플,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원고료 쿠폰, 후원 쿠폰도 완전 감사합니다~!

주인공은 사람 맞습니다.

최근 인간미를 드러낼만한 에피소드가 없었고, 계속 일만 하니까 기계처럼 느껴지게 만들었나 봐요.

전적으로 제 능력이 부족한 탓입니다.

문제는 주인공이 일을 안 하면 스토리 진도가 안 나가다 보니, 언제부턴가 혼자서 일만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번에 언급해주시지 않았다면, 저 혼자만 신나서 자판을 치고 있었을 거예요.

제가 더욱 노력해서 재원이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드릴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겠습니다[email protected]!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