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1회
셔먼 액트(Sherman 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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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셔먼 액트(Sherman Act)
IDDC가 끝난 후, 유재원은 각오를 새롭게 다졌다. 다만, 각오를 다지는 것과는 별개로 IDDC에 모든 힘을 쏟아부은 유재원과 ID 그룹의 주요 개발자들은 당분간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대신 대한민국과 미국 그리고 전 세계에서는 2011 IDDC가 일으킨 후폭풍이 현재 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후폭풍은 시간이 지나도 잠잠해지지 않았고, 오히려 그 크기를 키웠다.
특히 휴식 중이던 유재원도 다시 컴퓨터 앞에 앉게 만든 뉴스가 점차 쏟아지기 시작했다. 시작은 9월 초의 대한민국이었다.
-대한민국 프로게이머 연합회, 뇌파 인터페이스 정식 프로게이머 장비로 채용!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기념비적인 결정이 대한민국 프로게이머 연합회로부터 나왔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협회가 아니라 연합회의 발표라는 점이었다. 연합회는 프로게이머 선수 협회와 e스포츠 구단주 협회가 연합하여 탄생한 조직이기 때문이었다.
과거였다면 이러한 형태의 연합회가 e스포츠의 중요한 결정을 함께 정하는 건 어림도 없을 이야기였다.
구단주들로 구성된 협회에서 구단주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게 일반적이니 말이다.
실제로 e스포츠를 제외한 다른 프로 스포츠에서 선수 협회가 협상권을 가지고 구단들과 동등하게 협상할 수 있는 종목 자체가 극히 드물었다. 그나마 선수 협회에 힘이 있는 건 프로야구 정도만 있을 뿐이다.
그런데 축구나 야구도 아니고 e스포츠가 구단주 협회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것은 너무나 특별한 일이었다.
당연하게도 이는 유재원의 개입 덕에 이뤄낸 성과였다.
프로게이머에 대한 정의가 제대로 내려지지도 않았고, 프로팀도 없던 시절부터 준비된 일이었다.
IMF 외환위기가 대한민국을 강타하고 있을 때, 유재원은 게임에 빠져 있는 주민이를 움직여 프로게이머 선수 협회부터 만들도록 했다.
이전까지는 인천방송이니 온게임넷이니 하는 방송국에서 게임 잘하는 이들을 수소문하거나 PC방 예선을 치러 걸러진 이들을 데리고 이벤트성 대회를 치르는 게 보통이었다.
유재원의 선수 협회에서 프로게이머 라이선스를 체계적으로 관리토록 힘을 썼다. 그러기 위해서는 라이선스를 관리할 수 있는 조직을 갖추고 있어야 했는데, 유재원은 물심양면으로 주민이를 도왔다.
덕분에 e스포츠 경기장이 있는 용산에 커다란 사무실도 마련할 수 있었고, 직원들도 고용해서 프로 라이선스를 관리하는 일도 본격적으로 착수할 수 있었다.
e스포츠 구단주 협회가 만들어진 건 e스포츠에 대기업들이 뛰어들면서 프로팀이 만들어진 다음이었다. 게다가 구단주 중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TG T1이 유재원을 신봉해 마지않는 이용권 회장이었다.
선수 협회와 구단주 협회가 서로를 인정하고 상생할 수 있는 조건은 이미 갖춰진 상태인 것이다.
연합의 형태를 비효율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위기에서 진정한 진가를 발휘했다.
바로 스타리그 승부 조작 사건이었다. 스타리그 우승자도 가담한 승부 조작이 터지면서 큰 혼란이 생길 뻔했지만, 선수 협회와 구단주 협회가 힘을 합쳐 위기에 대응했다.
라이선스 박탈은 물론 스타리그와 프로리그에서의 기록 말살, 스타크래프트나 레전드 리그 등등 프로리그가 있는 게임을 이용한 개인의 영리 활동 금지 등등. 그야말로 할 수 있는 조치는 다 취했고, 조작 방지를 위한 사전 예방 교육도 철저히 진행되었다.
조작범에게 내려진 처분 중에 스타크래프트 게임을 통한 영리 행위 금지는 약간 문제가 되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무리 없이 확정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스타크래프트부터 레전드 리그까지 모두 ID 엔터테인먼트가 보유한 게임이었다.
게임은 구매를 했더라도 구매한 사람에게 모든 저작권이 주어지는 게 아니라, 이용권을 내주는 형태였다. 온라인 게임의 아이템도 명백히 따지면 소유자에게 영구 임대가 된 것이지, 소유자의 것이 된 건 아니다.
그렇기에 핵과 같은 불법 해킹 프로그램 사용자의 영구 차단도 이뤄질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승부 조작범에게도 ID 그룹의 모든 게임에 대해 영구 차단을 내릴 수 있었다.
영구 차단을 회피할 방법은 없었다.
사람에 대한 차단이었기에 타인의 계정을 빌려 접속하더라도 영구 정지 차단 리스트에 올라간 사람이라고 특정이 되면 바로 차단이었다.
유튜브 라이브 스트리밍이니 판도라 TV, W플레이어 같은 라이브 방송 플랫폼으로 본인이 조작 게임을 했던 그 게임을 하면서 후원을 받는 철면피 같은 짓거리를 이번엔 할 수 없었다.
이처럼 위기에서 힘을 합쳐 완벽한 대응을 한 프로게이머 연합회의 존재감은 위기 전보다 훨씬 커졌다.
그 위상은 전 세계 e스포츠계에도 영향을 줄 정도였다.
실제로 프로게이머의 역량도 세계 최고였기에 스타크래프트든 레전드 리그든 한국의 프로리그는 세계 게이머들이 최고로 선망하는 대회였다.
그런 한국에서 뇌파 인터페이스를 키보드와 마우스 그리고 게임패드와 함께 정식으로 사용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로 인정했다.
기념비적인 일이었다.
다만 정식 채용이 되었다고 해도, 바로 프로리그나 스타리그에 뇌파 인터페이스를 착용하고 경기를 뛰는 선수가 나온 건 아니다.
대신 유튜브 같은 곳에서 이벤트 전이 열렸는데, 거기서 나름 효과를 보았다는 벤치마크 결과들이 나오고 있었다.
특히 나이가 들면서 피지컬에 저하가 오는 올드 게이머들로부터 효과가 좋다는 이야기가 보고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프로 클래스의 게임 센스는 여전했지만, 손이 따라가 주지 못해 게임에서 밀리는 게이머들에게 특히 효과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뇌파 인터페이스로 게임 속 유닛을 직접 조작하는 속도가 마우스와 키보드 단축키보다 빨랐다.
이론적으로 가능하지만, 손이 따라가 주지 못하니 실전에서는 무용지물인 전략들, 일명 입스타도 충분히 가능할 정도였다.
그렇지만 적응의 문제가 있었다.
키보드 단축키와 마우스를 사용하던 버릇도 그대로 남아 있어서 오로지 뇌파 인터페이스로만 게임을 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기에 키보드와 마우스도 사용하면서 뇌파 인터페이스를 보조 인터페이스로 사용하려는 움직임이 물밑에서 일고 있었다.
“그냥 완전히 뇌파 인터페이스로만 컨트롤하는 게 대박일 텐데.”
유재원은 모니터에 뜬 프로게이머 연합회 발표 그리고 그와 연관된 기사들을 보며 아쉽다는 듯 말했다.
인풋렉이라는 게 있다.
게임 중에 키보드를 눌러 스킬을 쓰면, 그것이 화면에 나타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다. 아무리 빨라도 20ms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20ms는 눈 깜짝할 사이라서 별거 아닌 것 같지만, 프로의 세계에선 죽고 사는 문제였다. 특히 레전드 리그 같은 AOS 게임에서는 그 차이가 더 크게 벌어진다. 스턴이나 침묵과 같은 군중 제어 스킬은 먼저 히트시키는 것이 게임 전체의 승패를 좌우할 만한 변수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20ms라는 건 컴퓨터에서 처리된 결과물이 모니터까지 표현되는 데 걸리는 시간이었다. 실제로는 게이머가 스킬을 써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마우스를 움직여 타깃을 정한 뒤 키보드의 스킬 버튼을 누른 데 걸리는 시간까지도 있었다.
이것이 요즘 프로게이머들을 일류와 이류로 나누는 피지컬이었다.
피지컬이 높으면 엄청나게 빠르게 스킬이 나가고, 아니면 하염없이 늦어지게 된다. 물론 스킬을 빠르게 쓴다고 다 적중하는 것도 아니었지만, 높은 스킬 적중률은 프로게이머의 기본기에 지나지 않았다.
뇌파 인터페이스는 생각을 바로 읽어 전달한다. 그 시간은 2~3ms에 지나지 않으니 피지컬의 저하로 손해를 보았던 올드 게이머에겐 큰 도움이 될 장치였다.
“그렇다고 무조건 올드 게이머에게만 이로운 건 아니지만.”
유재원은 고전파라는 닉네임을 쓰는 레전드 리그 게이머를 떠올렸다.
아직 프로 계약을 하진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고전파 같은 게이머가 뇌파 인터페이스를 제대로 활용한다면 엄청난 퍼포먼스가 나올 거라고 장담했다.
-미국과 유럽 프로게이머 협회, 뇌파 인터페이스 검토 중.
대한민국이 움직이자 미국과 유럽도 신중히 검토하기 시작했다.
매우 긍정적인 일이었다.
뇌파 인터페이스는 단순한 입력 장치의 진화가 아니었다. 스마트 의수, 의족과 같은 장치부터 고도의 보안 시스템까지. 다양한 확장 장치와 연계되면서 거대한 생태계를 꾸릴 수 있었다. 특히 특정한 암호를 외울 필요가 없이 그냥 착용만 하는 것으로 본인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이 뇌파였다.
이는 양자 컴퓨터로도 복제할 수 없는 완벽한 프라이빗 키였다.
유재원이 마음만 먹으면 뇌파 보안 프로그램도 당장 출시할 수 있었다. 다만 뇌파 인터페이스의 민감도는 유재원의 눈높이에서 기준 미달이었고 사람들의 적응과 뇌파 인터페이스 하드웨어 자체의 보급도 광범위하게 퍼져 있어야 했기에 출시는 미뤄 놓았다.
결정적으로 뇌파 인터페이스는 궁극의 플랫폼인 가상현실의 기본이나 다름이 없었다.
가상현실 콘텐츠의 최고는 역시 대규모 롤플레잉 게임이고, 여기서 남들과는 다른 게임 실력을 뽐내고 싶다면 뇌파 인터페이스에 통달해야 한다. 비단 가상현실 게임이 아니라 가상현실 라이프를 즐기기 위해서라도 익숙해져야 하는 게 뇌파 인터페이스였다.
지금의 게임도 충분히 재미를 주었지만, 그래도 궁극의 게임 플랫폼인 가상현실은 차원이 달랐다.
물론 가상현실을 완성하는 과업 역시나 유재원 본인이 할 일이었다.
제일 적극적이어야 할 게임사들은 돈이 되는 모바일 게임 제작에만 집중되고 있었으니까. 가상현실이 도래하면 모바일 게임을 만들던 노하우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질 텐데, 참 걱정이었다.
“그나저나, 잡스는 무슨 꿍꿍이인 거지?”
뇌파 인터페이스와 관련된 기사를 보다가 결국 가상현실까지 꺼내든 유재원의 초점은 애플의 CEO인 잡스에게로 옮겨졌다.
오랜만에 가족들과 휴가 중인 유재원이지만, 중요한 보고는 매일 한 번씩 받고 있었다.
그렇게 올라오는 보고서 중에서 특이해서 눈에 들어온 것이 애플의 CEO인 잡스의 최근 행보였다.
IDDC가 끝나고서 유재원은 잡스의 전화를 받았었다.
뇌파 인터페이스에 대한 호평과 함께 iOS용 앱의 출시를 직접 부탁받았다. 또한, 보스턴 다이나믹스의 로봇 기술이나 신약 관련한 이야기도 가볍게 나누었다. 잡스는 유재원을 띄워주면서 어떻게 단기간에 엄청난 기술적 진보를 이뤄낸 것인지 은근히 물어보기도 했다.
-해 보니까 되던데요?
유재원의 답이 거짓은 아니었다.
단지 전생에 죽기 직전까지 회귀만을 준비하면서 대박이 날 기술들을 끝까지 분석하고 분석해서 자기 것으로 만들어 놓으면 된다.
허탈해하는 잡스는 그러면 탈모 치료제는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다.
-운이 좋았죠.
이번에도 거짓은 아니었다.
노바티스의 프로녹티스에 얽혀 있는 이야기는 전생에도 거의 아는 사람이 없을 만큼 극비였다. 바이오 스타트업이 망하고 이리저리 팔려 다니던 중에 노바티스에 들어왔고, 운 좋게도 얻어걸린 신약이었으니 말이다.
이리저리 팔려 다니던 중에 라이선스가 꼬이면서 원천기술에 대한 시비가 붙을 수도 있었기에 노바티스에서는 최초 기술 개발자에 대해 극구 비밀로 함구하고 있었다.
유재원이 운이 좋다고 한 건 장재진 박사의 친척이 유재원의 스타트업에 있었기 때문이다. 함께 술을 마시다가 탈모 이야기가 나왔고, 자연스럽게 프로녹티스가 언급되었다. 당시에는 그쪽으로 큰 관심이 없어서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겼는데, 한참이 지난 후에 노바티스에서 프로녹티스가 나오자 사실이었구나 싶었다.
이후 자세한 이야기를 알아보았고, 덕분에 세상 사람들은 모르는 프로녹티스의 비밀을 파헤칠 수 있었다.
잡스의 입장에서는 유재원의 대답이 말할 마음이 없어서 대충 둘러대는 것처럼 들렸기에, 통화는 곧 종료되었다.
이후 들려오는 잡스의 행보는 의외였다.
매스컴 그리고 민주당 쪽 정치인들과 만나는 일이 많다는 정보팀의 보고였다. 정보팀이 잡스의 뒤를 캐고 다니는 건 아니었고, 잡스와 만나는 쪽에서 SNS나 본인의 홈페이지에 관련 내용을 올린 덕에 사무실에 앉아서도 충분히 최근의 동향을 파악할 수 있었다.
톡톡 이후 각종 SNS 서비스들이 쏟아져 나왔고 전 세계 사람들 모두가 열광적으로 반응하고 나서 CIA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는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대외적인 행보는 거의 하지 않던 잡스가 저렇게 열심히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다니. 유재원이 위화감을 느끼는 건 당연했다.
반면 중국과 같은 나라들의 IDDC에 대한 반응은 한결같았다. 로봇 기술에 국가적 예산을 투입해서 최대한 빨리 보스턴 다이나믹스를 따라잡겠다고 입을 모았다. 말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 진짜로 예산을 집행했다. 게다가 보스턴 다이나믹스 본사가 있는 매사추세츠에서 보고되는 산업 스파이 적발 건수도 눈에 띄게 올랐다.
잡스는 대체 무얼 하려는 걸까?
며칠 지나지 않아 유재원은 넥스트컴 뉴스 페이지에서 그 결과물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안드로이드는 전기 제국을 꿈꾸는가?
강렬한 제목과 민감한 내용으로 가득한 특집 기사가 올라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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