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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로 압도한다-872화 (872/1,007)
  • 848회

    2차 기술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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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마!

    실리콘 밸리 컨벤션 센터의 메인 스테이지에 모인 관객들 중에 설마 하는 얼굴이 아닌 사람이 없었다.

    역시나 설마가 사람 잡았다.

    조종석에 앉은 아틀라스 로봇은 ID 그룹의 전용기 737-NG의 상태를 점검하면서 이륙 준비 절차에 들어갔다.

    순식간에 계기판의 각종 상태를 확인했고, 비행기 내비게이션에 비행 계획도 입력되었다. 관제탑과의 교신도 사람이 하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빠르게 이륙 준비를 마친 로봇 파일럿은 드디어 마지막 단계에 진입했다.

    -수동 스로틀 확인.

    -수평 모드 헤딩 셀렉트 확인.

    -수직 모드 TO/GA 피치 확인.

    -엔진 스로틀 92% 인게이지.

    엔진 스로틀을 올리자 활주로에 주기되어 있던 737-NG의 거대한 동체가 점점 속도를 붙이기 시작했다.

    여객기가 이륙하는 장면은 역동적인 카메라에 담겼다. 이미 하늘에 떠 있던 드론이 비슷한 속도로 날면서 그 화면을 그대로 담을 수 있었다. 바로 ID 하이테크 드론 사업부의 베스트셀러 마더쉽이 그 주인공이다.

    쌍발 제트엔진을 2기나 달고 있는 대형 드론으로 오사마 빈 라덴 생포 작전인 토르의 해머 작전을 성공적으로 서포트했던 기체였다. 이후 마더쉽은 꾸준하게 미군에 납품되었고, 그 숫자는 벌써 100기를 넘어섰다.

    마더쉽은 기본적으로 소형 쿼드콥터 드론이 딸려 있었고, 이를 정찰이나 통신 지원에 사용할 수 있었다. 아니면 작전의 성격에 따라 헬파이어 미사일을 8기나 장착해서 항공 지원을 해 줄 수도 있는 만능 기체였다.

    마더쉽의 지원 덕에 아틀라스가 조종 중인 737-NG가 활주로를 박차고 하늘을 나는 장면은 넋을 빼놓을 만큼 감동적인 화면으로 만들어졌다.

    그렇게 여객기가 하늘을 박차고 오르자 공항의 주변 모습도 화면에 크게 들어왔다. 일반 공항과는 크게 다른 모습.

    737-NG가 비행을 준비 중이었던 곳은 네바다주의 넬리슨 공군 기지였기 때문이다. 전 세계 최초로 로봇 파일럿이 비행기를 모는 만큼, 민간 여객기들이 뜨고 내리는 일반 공항에서 날아오르는 건 불가능했다.

    유재원이 마음만 먹으면 집 안에 대형 여객기가 뜨고 내리는 활주로를 만드는 건 일도 아니었고, 실제로 비행기를 좋아하는 할리우드의 유명 배우는 본인의 저택과 활주로를 연결해 놓기도 했다.

    그렇지만 유재원이나 티파니나 저택을 꾸미거나 확장하는 것엔 큰 관심이 없었다. 그렇기에 로봇 파일럿이 안정적으로 테스트 비행을 할 수 있는 곳을 찾아야 했다. 그런 상황에서 미국 공군은 넬리슨 공군 기지를 선뜻 제공해 주었다.

    마더쉽 때부터 시작한 미국 공군과의 ID 그룹의 인연은 지금까지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는 사이 정상 고도에 접어든 737-NG는 사막 상공에서 우아한 비행을 이어 갔다. 로봇 파일럿이라는 비상식적인 콕핏의 모습만 빼면 그 어떤 것도 어색하지 않았다.

    -여기서 잠깐. 아틀라스가 737-NG 기종을 모는 법은 언제 배웠을까요?

    -아니면, 다른 비밀이 있지는 않을까요?

    모두가 넋을 놓고 있을 때, 그 모습을 흐뭇하게 보던 마크 박사는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원격 조종이겠지. 뇌파 인터페이스, 증강 현실 안경으로.”

    이에 마크 박사보다 한발 앞서 답하는 사람이 있었다.

    애플의 최고경영자인 잡스였다.

    어제 충격적이었던 잡스는 오늘 그렇게나 좋아하는 회사에 출근하지도 못했다.

    어제 컨벤션 센터에 문이 닫힐 때까지 남아서 뇌파 인터페이스와 증강 현실 안경을 사용해 보았던 잡스였다.

    머리에 헤어밴드 같은 걸 하고, 안경까지 두 겹으로 쓰니 매우 거추장스러웠지만, 거추장스러움 이상의 놀라운 경험이었다. 그 여파는 아직도 잡스의 마음에 강렬히 남아 있는 것이었다.

    처음엔 이렇게나 간단한 실리콘 밴드로 그게 되나 싶었다.

    게다가 일단 착용은 하고 캘리브레이션을 해야 한다고 이것저것 시키는데,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럼 그렇지 하며 안도를 했다. 뇌파 인터페이스 같은 기술이 이렇게나 빨리 완성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잡스였다.

    아이티에서 수십만 명을 데리고 빅데이터를 만들면서 기계학습을 했다는 소식도 접했지만, 잡스는 그것 역시나 말이 학습이지 실제로는 대지진 피해를 입은 아이티에 그럴듯한 일자리 정책을 실시한 것으로만 여겼다.

    잡스의 의도대로 쉽게 움직이지 않는 뇌파 인터페이스였지만, 그래도 꾸준히 캘리브레이션을 돌렸다. 경쟁사의 신제품을 분석하는 건 본인의 책무와도 같았으니 말이다. 게다가 자신이 알고 있는 유재원이라면 이 정도의 어설픈 제품을 당당히 공개할 사람이 절대 아니었다.

    그런 잡스의 생각이 바뀐 건 10분 정도 지났을 때였다.

    의도와 다르게 움직이던 조준선이 제대로 움직여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리고 10분이 더 지나자 감탄이 나왔다.

    조준선만 움직이는 게 아니라, 머릿속에 떠올리는 알파벳 문자도 바로 입력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원래 키보드 워리어라는 프로그램은 키보드에 익숙해지기 위해 만들어진 학습 프로그램이었고, 좀비를 때려잡는 것도 각종 마법 주문을 타이핑하는 방식이었다. 게임 자체도 재미있어서 정신없이 빠져들다 보면 키보드 마스터가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잡스도 나름 즐겼던 게임이었다. 그렇기에 조준선을 움직이는 것보다는 키보드를 입력하는 게 더 익숙한 잡스였다. 조준선을 조종하면서도 타이핑을 하던 기억들이 절로 떠올랐는데, 10분쯤 지나자 알파벳까지도 직접 입력이 되는 게 아닌가.

    까다로운 얼음 속성 좀비가 등장하자 절로 불(FIRE)가 떠올랐는데, 그 생각이 그대로 뇌파 인터페이스를 타고 스마트폰에 전달되었고, 얼음 좀비는 케첩처럼 녹아 버렸다.

    오작동 가득한 첫인상에 그럼 그렇지 했던 잡스는 깜짝 놀랐다.

    더구나 뇌파 인터페이스는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더욱 놀라웠다. 단순히 조준선을 조종하거나, 알파벳을 빠르게 입력하는 것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팔과 다리의 움직임도 그대로 전할 수 있었다.

    캘리브레이션 앱에는 귀여운 안드로이드 로봇을 띄우는 것도 있었는데, 처음엔 그냥 멀뚱히 서 있었다. 그런데 사용자가 움직임을 취하자 그 모습을 그대로 따라 했다.

    그러면서 음악이 흘러나왔고 양손과 다리를 움직여 하늘에서 떨어지는 노트를 쳐 내는 식의 간단한 리듬 게임으로 이어졌다.

    그저 대단하다고밖에 할 수 없었다.

    더구나 뇌파 인터페이스 하나로 끝나는 게 아니라, 증강 현실 안경까지도 있었다.

    마찬가지로 스마트폰과 연결해서 다양한 정보가 담긴 그래픽을 현실과 겹치게 하여 보다 강화된 현실을 제공하는 안경이었다.

    증강 현실은 애플에서도 개발 중인 기술이었다.

    그렇지만 그래픽과 현실의 모습을 제대로 붙어 있게 만들고, 유용한 정보를 빠르게 찾아내서 띄워 주는 기술이나, 카메라로 수집된 영상을 분석해 정보만 추출하는 기술의 완성도가 잡스의 눈에 찰 정도는 아니었다.

    반면 ID 그룹의 증강 현실 안경, 정식 명칭은 AR 글라스의 그래픽과 현실의 매칭은 확실히 차원이 달랐다.

    살짝 미묘하게 어색한 지점이 있었지만, 그래픽의 해상도나 입체감, 현실과의 매칭은 아주 우수했다. 게다가 캘리브레이션 앱과 연동이 되어 컨트롤할 수 있는 영역이 확장되었는데, 이게 또 다른 재미가 있었다.

    증강 현실 안경을 통해 확장된 공간에서도 뇌파 인터페이스를 통한 컨트롤이 적용되었다.

    이렇게 두 가지의 기술이 결합해 시너지 효과를 내었는데, 여기에 보스턴 다이나믹스의 로봇이라고 불가능할까?

    역시나 잡스의 추리는 정확했다.

    -아틀라스 로봇의 파일럿을 소개합니다.

    마크 박사의 말과 함께 뇌파 인터페이스와 증강 현실 안경을 쓴 사람이 화면에 나타났다. ID 그룹의 전용기 737-NG의 전담 파일럿인 피트 미첼 기장이었다.

    피트 미첼 기장은 본인의 사무실 책상에 앉아서 간단한 비행기 시뮬레이터용 조이스틱을 잡고 있었다. 컴퓨터 화면에는 증강 현실 안경에 전송되는 화면이 그대로 미러링되어 떠 있었는데, 아틀라스 로봇의 시야를 공유 중이었다.

    겉으로 보기엔 아틀라스 로봇이 737 여객기를 조종한다는 장면이지만, 이를 현실에서 만들어내기 위해 ID 그룹의 역량이 총동원되어 다양한 기술들이 결합된 최상의 결과물이었다.

    아틀라스 로봇과 피트 미첼 기장은 무선 통신 기술로 연결된 상태였는데, 지금은 비표준 상태지만 나중에는 5G 이동통신으로 명명될 차세대 무선 통신 기술이 시범적으로 사용되었다. 아직 완벽하게 완성된 건 아니지만, 7ms 이하의 지연 시간과 광대역을 달성하는 건 충분했다.

    그런 5G 중계는 바로 마더쉽 무인기에 장착되어 있었다. 또한 넬리슨 공군 기지의 지상 중계기는 광케이블과 직통으로 연결되어서 샌프란시스코의 피트 기장 사무실과 바로 데이터를 주고받았다.

    물론 이 상황이 라이브는 아니었다.

    마크 박사가 올라온 2일 차 메인 스테이지는 밤 8시에 시작했고, 메인 스크린에 나온 비행 모습은 대낮에 촬영된 모습이었으니 말이다. 다만 영상에는 어떠한 조작도 없이 실제 구현된 기능이 그대로 쓰였다.

    피트 기장이 뇌파 인터페이스와 증강 현실 기술로 아틀라스에 빙의(?)해서 737-NG를 원격으로 조종했고, 비행에 성공했다.

    미국 공군이 넬리슨 공군 기지를 ID 그룹에 제공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여객기의 무선 조종이 가능하다면, 전투기라고 해서 못할 이유가 없었다. 미국 공군 측에서는 만약 737의 원격 비행이 성공한다면, 전투기에도 적용하는 시험을 해 보자는 제안을 먼저 해 올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전투기 파일럿을 양성하는 데 걸리는 시간과 비용은 상당했다. 전투 중에 전투기의 손실보다 파일럿의 손실이 더 큰 피해라는 건 두말하면 입이 아플 정도다. 이를 아틀라스 로봇으로 대체할 수 있다면, 공중전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선점할 수 있었다.

    물론 궁극적으로는 아틀라스에 아예 자체적인 인공지능 파일럿이 결합되어 원격 조종까지도 필요 없게 만드는 게 최상이었다.

    그렇지만 무인 파일럿에 인공지능은 수많은 윤리적 문제를 만들어낸다. 그것도 단순한 수준이 아닌 극단적이라 할 만큼 격한 논쟁을 불러일으킬 일이었다.

    인공지능의 핵심 구동 원리는 몰라도 터미네이터와 스카이넷, 로봇 3원칙과 같은 SF 요소의 인지도는 대단했다.

    유재원도 그걸 알고 있었기에 원격 조종이 아닌 아틀라스 스스로 움직이며 비행기를 띄울 수 있었음에도, 지금과 같은 방식을 선택한 것이었다.

    무엇보다 이러한 사안은 어차피 시간이 해결해 줄 일이었다.

    기술적인 면만 봐도 그렇다.

    하나하나 따로 놓고 보아도 대단한 기술들이지만 합쳐 놓으면 대단한 시너지 효과가 나타난다. 마치 RPG 게임에서 조합이 맞는 아이템끼리 결합하면 새로운 세트 아이템 효과가 발휘하는 것처럼 말이다.

    -비단 파일럿뿐일까요?

    아틀라스의 737 여객기 조종이 의미하는 바는 엄청난 것이었다.

    건장한 성인 남성의 크기였고, 두 팔과 두 다리를 자유롭게 사용하는 아틀라스 로봇이다. 그렇기에 사람이 조종하는 모든 기기를 조작할 수 있다.

    다루기 어려운 기기들이라도 멀리 떨어진 전문가가 아틀라스를 통해 조작을 해 줄 수 있게 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점이란 상상 그 이상이었다.

    -의료 분야는 어떨까요?

    -대도시에서의 의료 서비스 접근성은 매우 우수합니다. 하지만 인구 밀도가 낮은 주들은 병원까지 가는 데 최소 2, 3시간 자동차를 타고 달려야 할 일이 많지요. 그런 의료 서비스 취약 지역에 아틀라스를 통한 원격 의료 서비스가 지원되는 모습을 상상하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아예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도 있겠지.”

    잡스는 모니터 속 마크 박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ID 그룹이 진단의학 분야에 인공지능을 투입시키기 위해 엄청난 돈을 투자하고 있다는 걸 잊지 않고 있었다.

    파일럿과 의사뿐이겠는가. 웬만한 전문직들은 모두 아틀라스로 대신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이보다 단순한 블루칼라 직업인 배관공이나 자동차 정비는 더 볼 것도 없다.

    사람이 전문 지식을 배우는 데엔 엄청난 시간이 든다. 전문직이라면 10년이 넘는 것도 비일비재하다.

    “한정된 소수에만 집중되어 있던 고급 지식들이 이제 다운로드 버튼 하나로 치환되는 시대가 되겠군.”

    잡스의 말은 고급 지식이 사람의 머릿속으로 바로 다운로드된다는 게 아니라, 아틀라스에게 다운로드된다는 이야기였다.

    전자의 경우에도 불가능한 건 아니었지만, 결과만 보면 차이는 없다. 오히려 아틀라스가 받게 만드는 게 훨씬 안전할 수 있다. 전문적인 지식을 배워서 해야 하는 일 중 상당수는 위험한 일이 많았으니 말이다. 게다가 뇌에 직접 데이터를 다운로드 받는 건 21세기 중반에도 완성되지 않은 위험한 기술이었다.

    -관건은 아틀라스를 비롯한 로봇들의 가격이겠지요.

    -가격을 낮추는 방법은 단순합니다. 대량 생산. 앞으로 우리 보스턴 다이나믹스는 대량 생산 체제를 구축해 다양한 로봇들을 만들어낼 것입니다. 또한, 스마트 로봇을 통해 만들어낼 수 있는 다양한 생산성의 혁명을 각종 실증 모델을 통해 직접 증명하겠습니다.

    -누구나 가장 빠르고 쉽게 전문적인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시대. 보스턴 다이나믹스가 만들어낼 미래입니다.

    잡스는 눈을 감고 마크 박사의 비전이 실현된 순간을 상상했다.

    처음 느껴지는 감정은 공포였다.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할 로봇, 거기에 로봇을 구동하는 완벽한 인공지능. 그리고 기술과 기술을 이어주는 통신 인프라, 심지어 빅데이터까지.

    ID 그룹은 미래 산업의 모든 인프라를 쥐고 있었다. 그런 ID 그룹이 만들어낼 미래에 애플이 설 자리는 단 한 뼘의 땅도 주어지지 않는다.

    지금 특단의 대책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마음이 급해진 잡스가 미쳐 생각하지 못한 점이 있었다. IDDC는 이제 겨우 2일차라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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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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