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871화 (871/1,007)
  • 847회

    2차 기술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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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잡스의 자택은 실리콘 밸리의 노른자 땅인 팔로알토에 있었고, 팔로알토에서 실리콘 밸리 컨벤션 센터까지는 자동차로 10분도 안 걸리는 거리였다.

    유재원과는 달리 직접 차를 모는 걸 즐기는 잡스였다. 이번에도 차고에서 자동차를 꺼냈고 직접 운전대를 잡고 차를 몰았다. 대신 도로에 차들이 많아서 목적지인 컨벤션 센터에는 대략 15분 정도 걸려 도착했다.

    자동차를 주차하고 현장 티켓을 사야 하는 게 다음 순서였는데, 오늘 실리콘 밸리에서 제일 높은 인구 밀도를 자랑하는 게 컨벤션 센터였다.

    주차도 문제였다.

    엄청나게 넓은 주차장이었는데도, 빈자리가 쉽게 보이지 않았다. 마치 실리콘 밸리의 모든 자동차가 모인 것 같았다.

    이런 상황에서 세대 차이가 보이는 장면도 있었다.

    주차장 입구에서 하차하고 그냥 가 버리는 사람들도 보였던 것이다. 바로 라이트닝 볼트 전기자동차를 타고 왔던 사람들이었다. 라이트닝 볼트의 2세대 전기자동차가 출시되면서 자동 주차와 소환 기능도 추가되었다.

    이 기능은 기존 1세대 전기자동차를 구매한 사람들에게도 업그레이드 옵션으로 제공되었다. 라이다라는 700달러짜리 부품을 업그레이드하면 1세대 전기자동차들도 자동 주차는 물론 소환까지도 사용할 수 있었다.

    ID 그룹 측에서도 자동 주차와 소환 기능이 있는 자동차들을 위한 전용 주차 구역을 설정해 놓았다. 그렇기에 주차장 입구에 있는 대형 모니터에서 빈칸만 확인한 후 자동 주차 기능을 켜 놓고 내리면 끝이었다.

    잡스는 본인의 트레이드 마크와 같은 번호판 없는 벤츠를 타고 왔기에 자동 주차는 언감생심이었다. 그렇지만 잡스가 주차를 완료하기까지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하진 않았다. 들어오는 차도 많았지만, 빠져나가는 사람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메인 스테이지에서 유재원의 발표가 시작할 때부터 신제품의 판매는 이미 개시된 상태였고, 신제품을 구매하는 데 성공한 사람들은 두 손에 커다란 보따리를 들고 빠져나가고 있었다.

    들어오려는 차, 빠져나가는 차가 얽히면서 혼란스러웠지만, 그래도 주차장 관리를 위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고, 샌프란시스코 사람들도 이제는 이력이 붙어서 어느 정도 균형이 잡힌 흐름이 있었다.

    주차를 마치고 컨벤션 센터 입구에 다다른 잡스는 현장에서 티켓을 사서 입장을 마쳤다.

    “세상에.”

    컨벤션 센터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거대한 나이아가라 폭포.

    순간 컨벤션 센터의 입구가 공간을 뛰어넘는 포탈이 되어 나이아가라 폭포와 연결되어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사실적이었다. 넋을 놓고 몇 초간 보고 있으니 OLED로 구현된 인피니티 디스플레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역시나 유튜브에서 봤던 화질과 맨눈으로 보는 화질의 차이는 확연했다. 유튜브 라이브 스트리밍의 화질이 FHD였고 비트레이트도 10Mbps로 빵빵하긴 했지만, 잡스의 모니터는 결국 LCD였으니 말이다.

    “진짜였군.”

    잡스는 금성이란 이름과 불가능이란 단어를 중얼거리며 몇 분이나 더 구경했다.

    그 특이한 장면 때문에 IDDC에 온 다른 관람객들도 잡스를 알아보았다. 후덕한 얼굴에 청바지와 검은 니트 상의는 아이콘이었다. 그렇다고 막 몰려들진 않았다. 잡스를 구경하는 것보다 더 신기한 것들이 많은 장소였고, 신상 제품을 구매하는 게 더 먼저였기 때문이다.

    더욱이 IDDC는 안드로이드 진영 최대의 행사인 만큼 애플의 수장인 잡스에게 호감을 보이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유재원이나 잡스나 서로에게 유감은 없었고, 오히려 비즈니스 차원에선 협력을 하기도 하는 상태다. 그런데 안드로이드폰과 아이폰 사용자들은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구경하던 잡스는 어렵게 발걸음을 떼어 컨벤션 센터 안으로 가는 통로를 걸었다.

    통로 역시나 인피니티 디스플레이로 원통형으로 꾸며놓았고, 별빛이 흐르는 것과 같은 CG를 계속 비춰주고 있었다. 마치 미래의 우주 배경 영화에서 워프를 할 때 별빛이 길게 늘어지는 것과 같았다.

    “이 통로를 지나면 미래가 있다는 거지?”

    IT 업계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잡스도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OLED의 특성 중 하나가 완벽한 블랙의 표현인 덕에 검은 우주에서 반짝이는 별들을 묘사하는 데 탁월했다.

    그렇게 안으로 들어가자 진짜 미래가 보였다.

    아틀라스 로봇 2대가 짝이 되어 매대 하나를 담당하고 있었는데, 그게 12개나 되었다. 그러니까 이곳에 아틀라스 로봇이 24대나 자리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 매대 앞에는 긴 줄이 늘어져 있었는데, 사람들은 아주 빠르게 물건을 수령해 갔다.

    “흠, 매대마다 결제 방법이 다른 거군.”

    잡스의 말처럼 혼잡을 막기 위해 지불 방식에 따른 매대 분할은 IDDC의 전통과도 같았다.

    현금으로 사는 곳이 제일 느렸고, 미리 결제한 다음 QR코드를 보여주는 곳이 제일 빨랐다. IDDC 앱을 받아서 현장에서 바로 수령하고 싶은 제품을 골라 결제하면 QR코드가 나오는데, 이를 아틀라스에게 제시하면 10초 내에 포장된 물건을 받아 볼 수 있었다.

    구매자들이 손에 쥐는 물건들은 대동소이했다. 안드로이드 스마트폰과 패드 그리고 스마트 와치와 헤어밴드 같은 물건이었다. 부피가 큰 것은 모니터와 TV였는데, 현장에서 바로 수령해 가는 사람들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으아! 둘 다 사고 싶은데 돈이 모자라!”

    “할부라는 마법이 있지. 부탁한다, 미래의 나!”

    매대 앞에서는 다양한 군상들을 볼 수 있었다. 잡스도 울트라 와이드 OLED 모니터 같은 건 흥미가 있었다. 게다가 아틀라스 로봇들이 윙윙거리는 모터 소리를 내며 물건을 파는 모습도 넋을 놓고 구경할 만한 모습이었다.

    동시에 경영자인 잡스는 전 세계 애플 스토어에 로봇들을 가져다 놓으면 얼마나 많은 인건비를 절약할 수 있을지 절로 계산이 되었다. 다만 애플 스토어는 단순한 자사 제품의 판매만 하는 게 아니라 엔지니어가 상주하며 고객이 겪는 다양한 문제를 해결해 주는 공간이기도 했다.

    아틀라스 로봇이 판매대에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면 문제없을 것 같기도 하지만, 로봇이라는 것에서 오는 거부감도 있었다.

    “이럴 때가 아니지.”

    그렇지만 잡스는 아틀라스 로봇을 구경하러 여기까지 냅다 달려온 게 아니었다는 걸 상기하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집에서 쉬고 있던 잡스를 이곳까지 달려오게 만든 그것은 바로 뇌파 인터페이스 그리고 증강 현실 안경이었다.

    이를 직접 체험하고자 왔고, 체험관은 판매대와 반대편에 있었다.

    같은 시각.

    “예? 잡스 씨가요?”

    발표를 잘 마치고 무대에서 내려온 유재원은 김대석 비서실장으로부터 잡스가 컨벤션 센터에 찾아왔다는 말을 바로 전해들었다.

    “예, 뇌파 인터페이스와 증강 현실 글라스를 체험하고 있습니다.”

    극심하게 혼잡스러운 IDDC라는 행사를 진행 중인 ID 그룹이었지만, 단 하나의 빈틈도 없었다. 컨벤션 센터는 물론 주차장과 같은 주변 지역까지 스마트 CCTV가 설치되어 있었다.

    영상을 실시간으로 보면서 해석까지 하는 인공지능 골드는 특이한 상황이 발생하면 바로 현장의 요원들에게 메시지를 보내주었다.

    잡스의 예고 없는 등장은 확실한 특이 사항이었다.

    덕분에 잡스가 주차장에 차를 대고 컨벤션 센터 티켓 부스에서 입장권을 살 때, 김대석 비서실장은 인공지능 골드의 메시지를 받은 것이었다.

    “그래요?”

    유재원은 김대석에게 대답을 하면서 동시에 재킷 안쪽 주머니에 손을 넣어 본인의 스마트폰을 꺼냈다.

    방금 발표된 따끈따끈한 신상 Z1이었다. 스마트폰은 신상이지만, 설정과 데이터는 이전 모델에서 완벽히 옮겨진 상태였다. 당연히 연락처 리스트도 옮겨진 상태였다.

    등록된 연락처로부터 날아온 문자 메시지와 전화가 벌써 300개 넘게 쌓여 있었다. 오늘의 발표가 워낙 충격적이라서 그런지 쌓여 있는 숫자가 역대급이었다. 그렇게 많은 숫자를 자랑했지만, 잡스로부터 온 문자나 연락은 없었다.

    “내게 따로 연락이 온 건 없네요.”

    하긴, 중요 체크가 된 사람으로부터의 연락은 스마트폰의 인공지능 개인 비서 골드가 받아 놓고서 김대석이 알려주기 전에 보고를 해 줬을 것이다. 당연하게도 유재원의 연락처에 등록된 잡스의 이름 옆에는 별 표시가 되어 있었다.

    “그냥 즉흥적으로 찾아오신 거 같은데, 편히 구경하고 가시게 해 드리세요.”

    “알겠습니다.”

    유재원은 잡스에게 가서 어떻게 오셨나고 물어도 보고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눌까 싶었지만, 결국 그냥 두기로 했다.

    IDDC는 오늘로 끝이 아니라 앞으로 6일의 일정이 더 남아 있었다. 게다가 오늘의 주인공은 뇌파 인터페이스와 증강 현실 글라스였다.

    IDDC에서 본인이 잡스와 만나는 장면이 연출된다면 대단한 뉴스거리가 되겠지만, 정작 회심의 아이템인 뇌파 인터페이스와 증강 현실 글라스가 뒤로 밀리게 될 거 아니겠는가. 게다가 잡스 성격에 본인을 만나보고 싶다면 먼저 연락을 할 게 분명하니, 그때 가서 결정해도 늦지 않는다.

    생각을 정리한 유재원은 내일의 이벤트 준비를 위해 컨벤션 센터를 빠져나갔다. 그리고 유재원의 생각 그대로, 뇌파 인터페이스와 증강 현실 안경에 푹 빠진 잡스는 컨벤션 센터의 마감 시간 직전까지 시연했다.

    그것으로도 부족했는지 떠나는 발걸음에는 너무나도 아쉬움이 가득했다.

    더구나 두 제품은 그날부터 판매되는 신상 제품이었지만, 일찌감치 마감되어 버린 탓에 구할 수도 없었다.

    일부 나라에서는 규제 때문에 출시하지 못했고, 완전 새로운 신제품이라서 수요 예측을 보수적으로 했다.

    뇌파 인터페이스를 의료기기로 치는 나라들도 많았고, 증강 현실 글라스의 경우에는 이미지 해석용으로 부착된 카메라 모듈을 문제 삼는 나라들도 많았다. 그나마 대한민국과 미국에서는 각각의 제약을 두는 수준으로 허가가 나와서 다행이었다.

    컨벤션 센터 행사장에는 넉넉하다고 할 만한 물량을 가져다 놓았는데, 그것도 순식간에 동나 버렸다.

    다음 날.

    둘째 날은 보스턴 다이나믹스 차례였다.

    어제는 가판대 아르바이트를 뛰었던 아틀라스가 오늘은 주인공으로 거듭났다. 매대를 담당했던 아틀라스는 물론이고,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에 투입된 재난 투입용 버전까지도 등장했다. 실제 원자로에 들어갔던 모델은 방사능 때문에 완전 폐기된 상태고, 발전소 밖에서 대기 중이던 백업이었지만 행사장을 찾은 이들에게서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이 밖에도 보스턴 다이나믹스가 만들고 있던 여러 로봇들이 깜짝 등장했다. 거기에는 진돌이 이후로 끊겼던 4족 보행 로봇이 있었다.

    특히 빅독이라는 그레이트 피레니즈를 닮은 대형 4족 보행 로봇은 아틀라스만큼 많은 관심을 받았다. 놀라운 운동 신경은 물론이고, 다양한 운동 능력을 선보였다. 어른 한 사람이 탈 만한 커다란 수레를 달고 빠르게 달리는 것도 가능했고, 몸을 세워 앞발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도 있었다.

    빅독은 각종 보안 시설이나 위험한 환경에서의 경비 업무는 물론이고 산악 지형에서의 6~80kg을 옮기는 짐꾼이나 1차 산업에서 보조 업무를 담당할 수 있다.

    그렇지만 오늘 보스턴 다이나믹스 데이에서 가장 큰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건 스마트 의수, 의족이었다.

    혁명!

    선천적인 요인, 혹은 후천적인 사고로 인해 영구적으로 생긴 신체 장애로 고생하던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혁명적인 제품이었다.

    기존 의수는 대부분 기능적인 요소가 극히 적었다. 뭔가 어색한 점을 가려주는 정도에 그쳤다. 그렇지만 보스턴 다이나믹스의 스마트 의수와 의족은 신체의 기능을 완벽히 대신했다.

    -뇌파 인터페이스와의 결합은 스마트 의수를 완벽하게 만들어줬습니다.

    스마트 의수 이전에도 손가락이 움직이는 의수가 있긴 했다. 팔이나 어깨에 남은 부분에서 근육의 움직임을 읽어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근육의 움직임을 읽는 건 매우 부정확한 일이었다.

    반면 뇌파 인터페이스와 직결로 연동된 스마트 의수는 사용자의 의도를 정확하게 반영했다. 물건을 쥐고자 할 때, 도구를 들어 사용할 때, 키보드를 타이핑하거나 리모컨을 누를 때, 생각만으로 일반인처럼 자연스럽게 할 수 있었다.

    몸이 건강한 사람에겐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그 당연한 일들이 너무나 어려웠던 사람들에게는 혁명이었다.

    -뇌파 인터페이스와 로보티그 기술의 결합이 만들어내는 시너지 효과는 비단 스마트 의료기기만 국한되어 있지 않습니다.

    -수많은 미래 중 하나를 지금 여러분께 보여드리게 되어 영광입니다.

    마크 박사는 열광하는 관객들에게 새로운 보따리 하나를 풀었다.

    OLED 패널로 이뤄진 거대한 인피니티 디스플레이 화면에 새로운 영상이 나타났다.

    거대한 쌍발 제트엔진을 장착한 여객기. 그것은 미국의 대표적 항공기 회사인 보잉의 737이었다. 동체와 수직꼬리날개에 그려진 연두색의 안드로이드 로고 하나만으로 ID 그룹의 전용기라는 걸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예술적인 동체의 모습을 비추던 카메라는 점차 한곳으로 포커스를 맞췄다. 여객기 조종석이었다. 투명한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조종석에는 사람 대신 보스턴 다이나믹스의 아틀라스 로봇이 앉아 있었다.

    마치 파일럿처럼 말이다.

    객석의 관객들은 다들 설마했다. 그 순간 조종석에 앉은 아틀라스 로봇은 0.1초의 망설임도 없이 보잉 737의 엔진 점화 버튼을 꾹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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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후기]

    추천과 리플,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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