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868화 (868/1,007)

844회

2차 기술가속

=============================

“4차 산업혁명이라.”

금색 봉황이 걸려 있는 청와대 집무실에 홀로 남겨진 정병우 대통령은 어제 들었던 조언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단어를 곱씹었다.

대통령 당선자가 되고, 정권인수위원회를 구성하고 취임식까지 치르면서 정신없이 달려왔던 정병우였다. 이제 당선자 딱지가 떨어지고 진짜 국정이라는 걸 운영해야 한다는 막중한 부담감이 있었다.

다행히도 명확한 비전 덕에 부담감이 있을지언정, 불안감은 느끼지 않았다. 본인이 해야 할 일들이 명확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라!

결코 쉽게 이뤄질 일은 아니다.

“인공지능 진단 연구도 미국에서 먼저 시작된 이유가 있지.”

정병우는 유재원의 숨은 극성 팬이었다.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유재원이 메인에 서는 IDDC는 무조건 실시간으로 시청했고, ID 그룹이 발표하는 신제품도 무조건 써 봐야 직성이 풀렸다. 심지어 유재원이 언급된 기사들도 거의 다 보는 정도였다.

그렇기에 인공지능 골드가 전문가 영역의 학습을 시작할 때, 미국의 하버드 의대와 매사추세츠 종합병원과 협력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하버드 의대의 권위와 능력이 세계 최고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고, 신기술을 도입하는 것에도 적극적이었기에 선택했다고 세간엔 알려졌다. 그렇지만 유재원이 대한민국에서도 학습을 하려고 했던 걸 모르는 사람들은 얼마 없다.

그런데 그 시도가 이뤄지지 않고 미국에서만 인공지능 진단이 시행되고 있는 건, 의사협회의 극심한 반발 때문이었다.

인공지능이 진단 기능을 대신하게 되면, 당연히 의사들의 입지는 줄어들기 때문이다. 심지어 인공지능 진단의 도입을 대기업의 의료 분야 진출이라고 의료 민영화와 연관 지을 기미가 보이자 유재원은 1초의 미련도 없이 한국에서의 도입은 뒤로 미룬 것이었다.

비단 의료계뿐만이 아니라 신기술의 도입으로 본인들의 입지가 위태해지는 곳에서는 극심한 반발이 나온다.

ID 그룹의 인공지능 골드의 로드맵을 보면 사법부에 도입되는 인공지능 법조 삼륜도 있었다. 판사와 변호사, 검사도 인공지능으로 대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노 전 대통령 시절부터 도입된 인공지능의 보조 역시나 처음 도입되던 시기엔 반대의 의견이 상당했다고 한다.

인공지능이 본인이 가진 권리 행사에 제약을 건다고 말이다.

실제로 국가 행정에 인공지능 보조가 도입되고서 권력의 사유화가 상당히 예방되는 효과가 나왔다. 각종 인허가 사항이나, 지원금 대상 선정, 불법 행위 적발 등의 작업에서 관행적으로 일을 처리하던 게 하나하나 상세히 분석하면서 처리되기 시작했다.

관행적 처리에서 콩고물도 많이들 주워 먹었던 이들은 인공지능의 사사건건 트집에 경기가 날 지경이었다.

반대로 인공지능의 도입으로 업무의 효율성은 배가 되었고, 노무현 정부 시절 대한민국 행정력은 큰 폭으로 상승하게 되었다.

“극심한 반발이라.”

전문 영역에 대한 도입만 봐도 이렇게 큰 반발이 일어나는데, 단순한 노동력까지도 로봇이 대체하는 때가 된다면 그야말로 난리가 날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고 4차 산업혁명에 손을 놔 버리면 국가적 경쟁력에서 순식간에 밀려날 건 누가 봐도 뻔한 일이었다.

찬란한 미래를 장담하는 4차 산업혁명을 추진하면서, 동시에 혁명의 그림자에 밀려날 사람들을 위한 대책을 마련하는 게 본인이 할 일이라고 자각하는 정병우 대통령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있지.”

유재원의 조언은 그게 다가 아니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고 했습니다.

-하나하나 이루고 다음 단계를 가는 게 아니라, 스스로의 몸과 마음을 수양하고, 집안을 안정시키는 것은 모두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는 거죠.

수신제가는 사서삼경 중 대학에 나오는 문장이었다.

첨단의 IT 기술을 선도하는 기업의 회장과 사서삼경에 나오는 문구가 매칭이 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허튼소리는 절대 아니었다.

실제로 정병우가 검사를 때려치우고 김&정 법무법인에 들어왔을 때, 그의 처가 문제를 일으킨 경우가 몇 번 있었으니 말이다.

친구들 모임에 나간 줄 알았는데, 알고 봤더니 소송 상대인 대기업으로부터 식사를 대접받고 선물까지도 받아온 것이었다.

선물이라는 건 명품 가방이었고, 가방 안에 돈까지 잔뜩 들어 있었다. 깜짝 놀란 정병우가 바로 경찰에 신고했고, 그 일로 아내와 한동안 소원해지기도 했었다.

“민정수석과 나눌 이야기가 있습니다. 최대한 빨리 오시라고 전하세요.”

생각을 정리한 정병우는 인터폰을 눌러 민정수석을 호출했다.

“부르셨습니까.”

잠시 후, 정병우의 호출에 민정수석이 들어왔다.

채동욱 민정수석이었다.

정병우 청와대의 첫 민정수석은 사법연수원 14기로 정병우보다 5기수나 높은 선배였다. 선배 기수인 채동욱이 정병우 청와대에 들어가는 건 부담일 수 있었지만, 실질적으로 그런 기수 타령은 외부에서나 하는 것이었고, 정병우가 정권인수위 때부터 영입에 공을 들인 끝에 민정수석 자리를 수락한 것이었다.

“네, 꼭 당부드릴 것이 있어서 말입니다.”

당부라는 말로 운을 뗀 정병우는 어떻게 지금의 아내와 결혼했는지, 아내가 어떤 성격인지, 명품 가방 사건처럼 대접받기 좋아하고 선물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것까지 허심탄회하게 모두 말했다.

“제 책임이 막중하군요.”

채동욱 민정수석도 검사 시절부터 한가락 하는 인물이었다.

“잘 부탁합니다. 제 가족과 처가의 문제는 사소한 비위라도 절대 그냥 넘어가지 마시고, 원리 원칙대로 처리해 주세요.”

무려 본인의 이름이 박힌 정병우 정부 아니던가. 혼자만의 노력이 아닌 모두의 도움으로 이뤄낸 성과였다.

정병우 정부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아내나 처가로부터 싫은 소리를 듣더라도 강하게 나가는 게 최선이라는 결론이었다.

민정수석과 이야기를 끝낸 정병우는 쉴 틈도 없이 대통령비서실장을 불렀다.

4차 산업혁명을 위한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하기 위함이었다.

7월 4일.

백악관 로즈 가든에서는 성대한 행사가 열렸다.

1776년 7월 4일 미국 독립 선언이 채택된 것을 기념하는 독립기념일 행사였다. 이날은 미국 전체가 쉬는 연방 공휴일이었고, 이에 맞춰 여러 가지 행사도 진행된다. 전날 저녁에는 워싱턴 DC의 상징물인 워싱턴 기념탑에서 불꽃놀이가 크게 열리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은 보스턴 다이나믹스의 마크 박사를 비롯해 문화 예술 분야에서 우수한 결과물을 만들어낸 이들과 전장에서 커다란 전과를 세웠거나 동료를 구해낸 현역 군인에 대한 훈장 수여식도 있었다.

“로봇 공학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마크 레이버트 박사를 소개합니다.”

장내에 울린 사회자의 말에 무대 중앙 대기석에 앉아 있던 마크 박사가 벌떡 일어났다. 긴장감은 조금도 없이 자연스럽게 존 매케인 대통령 앞으로 다가섰고, 악수도 나누었다.

그러면서 뒤쪽에 마련된 대형 스크린에는 마크 박사의 일대기를 담은 영상이 재생되었다.

로봇을 좋아하던 어린아이가 진짜로 로봇을 만들어 보겠다고 창고를 뒤집어 놓은 일부터 시작해 MIT에 입학하고, 관련 전공을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한 것도 언급되었다. 이후 끔찍한 대학원 시절도 영상에서는 불과 몇 초로 짧게 다루어졌고, 드디어 보스턴 다이나믹스의 창업이 이뤄졌다.

수많은 시행착오의 모습들이 영상에 담겼다.

대통령 앞에 설 때까지만 해도 덤덤했던 마크 박사였지만, 시행착오가 가득한 영상을 보자 살짝 울컥하는 마음이 있었다.

아틀라스의 원형부터 리틀독, 워독, 와일드 캣 등의 개발 중인 로봇들이 등장했는데, 하나같이 허름한 모습이었으니 말이다.

치솟는 개발 비용에 포기할까 싶을 때도 있었는데, 그때 유재원이 나타났고 엄청난 가격으로 보스턴 다이나믹스를 인수했다. 그리고서 무지막지한 개발비와 인력이 투입되었고, 아틀라스도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그리고서 동일본 대지진에서의 활약상이 나타났고, 다시금 장내의 감탄을 자아냈다. 고농도 방사능과 고온이라는 극한의 환경에서도 척척 움직이는 아틀라스의 모습은 미래 그 자체였으니 말이다.

“이러한 공로로 마크 레이버트 박사에게 미국 시민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영예인 미국 대통령 자유 훈장을 수여합니다.”

존 매케인 대통령은 마크 박사의 목에 훈장을 걸어줬다. 오각형의 하얀 별을 금색의 원형 테두리가 감싸고 있는 메달이 파란색의 바탕에 흰색 테두리의 리본에 걸려 있는 훈장은 마크 박사에게 묵직하게 다가왔다.

이뿐만이 아니라 아틀라스는 물론 다양한 로봇들이 대량으로 보급된 미래에 대한 기대감도 커졌다. 유재원과 이미 수십 차례 이야기를 나눴던 4차 산업혁명의 시작이 이제 초읽기에 들어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마크 박사를 시작으로 훈장 수여식은 계속되었다.

“레드윙 작전 정찰 임무 수행 중 탈레반과의 교전으로 심각한 부상을 입고도 동료들의 구출을 위해 죽음을 무릅썼습니다. 이뿐만이 아니라 망가진 통신 복구를 위해 개활지로 이동했고 지원군을 요청하는 데 성공하여 전투를 승리로 이끈 마이클 머피 대위에게 미국 의회의 이름으로 존 매케인 대통령이 명예 훈장을 수여합니다.”

주인공은 늘 마지막에 등장하듯, 오늘 훈장 수여식의 주인공은 마이클 머피 대위였다.

이라크에서 철수를 완료한 미군이었지만, 아프가니스탄에는 남아 있었다. 아프가니스탄의 탈환을 노리는 탈레반 세력이 최근 들어 다시금 활발하게 활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랍의 봄이 만들어낸 여파였다.

튀니지에서 시작된 민주화 시위는 곧 중동 전체로 옮겨붙기 시작했다. 오죽하면 사우디아라비아에서도 시위가 터졌을 정도였고, 강력한 독재 국가인 시리아에서도 국민들이 들고 일어날 정도였다.

문제는 아랍의 봄이라 일컬어지는 민주화 시위의 결과물이 과연 시위에 참가했던 이들이 진정 바라던 것이었을까 하는 것이었다.

튀니지, 이집트, 리비아, 시리아 등등 독재지만 세속주의 정권이 자리하고 있는 나라들이 되짚어지면서 이슬람 근본주의가 득세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강력한 독재자가 이슬람 근본주의를 누르고 세속주의 체제를 유지시키고 있었는데, 이들이 무너지고 이슬람 근본주의가 자리를 잡았다.

미국은 전전긍긍이었다.

민주화 운동이라 뭐라 말은 못 하지만, 중동의 독재자와 미국은 대부분 각별한 사이였으니 말이다. 리비아의 카다피처럼 반미를 하는 독재자도 있긴 했지만, 극소수였고 대부분은 미국의 지지를 얻고서 독재를 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중동에서 민주화 운동이 전개되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이슬람 근본주의의 득세였고 이는 탈레반과 같은 극단주의 무장 단체에는 희소식이었다.

그에 따라 아프가니스탄에서도 산발적인 전투가 일어났고, 이를 막기 위한 미군의 투입도 많아졌다.

마이클 머피도 그런 전투에 휘말린 대원이었다.

천만다행히도 두절된 통신이 빠르게 복구되었고 무인기를 시작으로 빠르게 이뤄진 증원 덕에 구출된 동료들과 마이클 머피까지도 구해낼 수 있었다.

대신 마이클 머피 대위는 팔과 다리에 심각한 총상을 입었는데, 결국 절단을 해야 할 만큼 상태가 나빴다. 살아서 명예 훈장도 받게 되었고 소위에서 대위로 두 단계나 특진했지만, 오른팔, 오른 다리를 절단해야 할 만큼 심각한 부상이었다.

그런 마이클 대위가 자리에서 일어나 존 매케인 대통령 앞에 섰다.

누구의 부축도 없었고, 목발도 짚지 않았다. 두 다리로 스스로 걸어 존 매케인 대통령 앞에 당당히 섰다.

“머피 대위, 자네에게 명예 훈장을 수여할 수 있어 영광이네.”

존 매케인 대통령과 밝게 웃으며 악수까지 나누는 마이클 대위였다.

마이클 대위가 내민 손을 잡은 존 매케인 대통령은 인공적인 느낌을 다분히 느꼈지만, 굳이 내색할 필요도 없었다.

스마트 의수와 의족.

뇌파 인터페이스가 완성되자마자 스마트 의수와 의족이 만들어졌다.

사실 스마트 의수와 의족은 진작에 완성된 상태였다. 뇌파 인터페이스가 없더라도 그 자체로 기존의 의수와는 차원이 다른 완성도를 자랑했다. 그야말로 보스턴 다이나믹스의 최첨단 로봇 기술이 그대로 적용되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뇌파 인터페이스의 완성을 기다리면서 출시가 늦어진 것인데, 타이밍 좋게도 미국 독립기념일 훈장 수여식과 딱 맞물리면서 완성되었다.

마크 박사와 마찬가지로 대형 스크린에 마이클 머피 대위의 이력이 압축적으로 보여졌다. 레드윙 작전에서의 영웅적인 행보, 이후 심각한 부상으로 팔과 다리를 절단하고 스마트 의수를 이식 받는 장면까지도 그대로 담겨 있었다.

신체 건강한 군인인 줄 알았던 모두는 마이클 머피 대위의 이력에 깜짝 놀랐다. 동시에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스마트 의수는 일반인의 상식을 파괴했다.

“소원이 있나?”

이례적으로 소원을 말해 보라고 할 만큼 존 매케인 대통령의 기분은 최고였다. 그렇기에 현실적인 소원이라면 얼마든지 들어줄 작정이었다.

“예, 원래보다 강력해진 팔과 다리가 주어진 만큼, 저의 임무수행 능력은 완벽하게 복구되었습니다. 일선에 복귀해 동료들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사전에 약속되지 않은 질문이었지만, 마이클 머피 대위는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답했다. 그가 말하는 소원도 미국인들이 열광할 만큼 영웅적이었다.

덕분에 훈장 수여식 관련 소식을 TV나 인터넷 등으로 접한 사람들은 궁금증이 폭발했다.

스마트 의수와 의족의 성능이 얼마나 좋으면 일선 복귀를 당당히 요청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보스턴 다이나믹스로 문의가 쏟아졌다.

그렇지만 누구도 만족스러운 답을 얻진 못했다. 미리 정해진 방침에 따라 8월에 있는 IDDC에서 모든 게 밝혀질 거라는 말만 반복했으니 말이다.

원래 이맘때쯤 되면 IDDC에 대한 기대감이 샘솟는 기간이긴 했는데, 이번엔 뭔가 달랐다.

전문가부터 일반인들까지. 상상도 못 할 큰 것이 나올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밀려들었다. 이런 경우는 이제껏 단 한 번도 없었다.

=============================

[작품후기]

추천과 리플,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원고료 쿠폰, 후원 쿠폰도 완전 감사합니다~!

오늘 AMD의 신형 5000시리즈 CPU들이 나왔는데, 엄청나더군요.

성능의 AMD, 가성비의 인텔이란 말이 진짜였다니. 이런 날도 오네요.

이제 남은 건 라데온인데...

엔비디아도 확 엎어버리길 기원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