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7회
초격차 차세대 슈퍼컴퓨터, 퀀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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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격차 차세대 슈퍼컴퓨터, 퀀텀
-안녕하세요, 여러분! 똘똘한 투자 방법을 보여드리는 똘똘이, 오늘도 인사드립니다!
=똘하!
=똘똘이 하이라는 뜻!
아침 9시.
주식 전문 유튜버지만, 이제는 온갖 투자 상품을 다 다루는 똘똘이의 방송이 켜지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방송을 켜자 똘똘이의 구독자들이 순식간에 접속하며 비어 있던 채팅창에 인사말들이 가득 올라왔다.
유튜브 닉네임 똘똘이가 처음 방송을 시작할 때만 해도 주식 전문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었고, 그에 걸맞은 날카로운 분석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지금은 투자라는 건 방송용 메인 콘텐츠가 되었고, 투자 수익보다는 큰 웃음과 재미에 더 포인트가 맞춰져 있었다.
딱 보는 것만으로도 실소는 물론이고 파안대소가 터지는 엽기적인 주식 매매법은 똘똘이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덕분에 현재 시점에서 똘똘이의 유튜브 라이브 스트리밍에는 진짜 투자금을 들고서 주식 투자에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 접속하는 사람보다는 그저 재미를 느끼기 위한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그렇다고 해서 큰돈 들고 있는 투자자들이 똘똘이의 방송에서 완전히 씨가 마른 건 아니었다.
메인 콘텐츠가 투자를 빙자한 유머로 변하면서 주식 개미들의 숫자가 크게 줄었지만, 30% 정도 되는 이들은 남아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똘똘이 매매법은 이제는 웃음의 아이콘이 되었지만, 가끔은 날카로운 경보기 역할을 해 주었기 때문이다.
코스피 지수가 3,000포인트를 돌파할 때, 대부분의 투자 방송은 이제 장밋빛 세상이 올 거라고 했지만, 똘똘이는 과감하게 팔라고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반도체 치킨레이스가 펼쳐졌고, 코스피 지수는 폭락했다.
그야말로 작두 타는 무당처럼 제대로 적중해 버렸다.
그날 방송은 바로 박제가 되어 인터넷에 떠돌아다녔고, 유튜브 화제의 동영상에 오르기도 하면서 똘똘이의 유명세를 한 차원 더 끌어올렸다.
유튜브 채널 똘똘이의 구독자 숫자가 대폭 늘어났다. 특히 슈퍼챗이라는 다이렉트 후원으로 들어오는 수익이 크게 늘어났다.
사실 방송이 끝나고 나면 실전 투자도 하는 똘똘이었는데, 슈퍼챗으로 들어오는 수익금이 실전 투자금을 가뿐하게 뛰어넘을 정도였다.
그렇기에 똘똘이는 지금 완벽한 유튜버로 거듭났고, 방송에 집중을 하자 라이브 스트리밍과 주기적으로 업데이트되는 유튜브 방송의 퀄리티가 대폭 상승하면서 상승 효과를 내고 있었다.
-자, 간밤의 모진 폭풍에도 살아남은 우리 똘마니들, 이렇게 또 보니 반갑습니다.
-한국의 주식 시장은 여전히 재미가 없네요. 원래 대선 때쯤에는 주가가 슬슬 오르는 게 기본인데, 한중 무역 전쟁이란 최악의 악재 때문에 뭐 제대로 되는 게 없네요. 이번에 대선이 끝나고 새로운 대통령님이 선출되어서 상황이 달라지길 기대하는 게 최선입니다.
-뭐, 굳이 주식을 하겠다면 낙폭 과다 중인 종목의 저가 매수를 시도할 수 있죠. 그런데 요즘 누가 주식 합니까? 암호화폐! 비트코인 아니면 에테리움이 대세 아닙니까?
똘똘이 역시 재미를 뽑아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러면서 비트코인과 에테리움의 심볼을 떡하니 들어 보였다. 솜을 빵빵하게 채워 넣어 귀엽게 만든 쿠션이었다.
-저도 주말동안 이렇게 비트맥스에 가입도 했고 지갑도 만들었습니다!
=비트맥스? 한국 사람이면 한국 거래소를 써야지!
-아, 암호화폐 국산 거래소도 있죠. 그런데 말이죠. 국내 거래소는 수수료가 너무 비싸요! 환전 수수료보다 더 비싼 거래 수수료, 이거 문제 아닙니까? 심지어 코인 자체에도 김치 프리미엄이 있어서 비추입니다!
-이거저거 따져 보니 그냥 비맥으로 직행하는 게 낫다! 그게 저 똘똘이의 결론입니다.
=그래서 얼마 환전했는데?
-저는 이미 피 같은 내 돈 100만 원도 비맥에 입금했습니다. 비트맥스는 달러 돈만 받아서 환전을 했는데, 현재 환율이 1,091원이다 보니 100만 원이 916달러가 됐네요.
똘똘이는 바로 ID 웹브라우저를 띄워서 본인의 비트맥스 계좌를 인증했다.
=이열~! 환율 좋네. IMF 때였으면 500달러도 감지덕지였다.
=환율 괜찮게 받았네. 그런데 내가 거래했을 때보다 더 괜찮게 나왔는데.
=환전할 때 우대 환율 적용 받았나 본데?
=우대 환율이 뭔데?
=은행 VIP면 좀 더 많이 쳐줌.
=똘똘이가 은행 VIP라고? 리얼리?
그에 따라 채팅창에도 바로 피드백이 올라왔다.
비트맥스는 미국에 있는 거래소였고, 기준 화폐 역시 미국 달러화였다. 그러니 한국 사람이 비트맥스에서 거래를 하고 싶으면 환전이 필수였다.
이미 작년 가을부터 한국에도 암호화폐 이야기가 알음알음 퍼지고 있었고, 2011년 연초에는 뉴스도 타면서 크게 뜨기 시작했다.
똘똘이의 말처럼 한국의 자체적인 암호화폐 거래소도 만들어졌고, 원화로 비트코인을 비롯해 에테리움과 같은 알트코인도 거래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똘똘이의 말처럼 거래 수수료도 비쌌고, 코인의 시세도 비트맥스보다 2,30%는 더 비싼 기이한 현상이 지속되었다.
이를 김치 프리미엄이라고 불렀다.
사실 따지고 보면 김치 프리미엄이 생기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거래소가 생겼다고 바로 암호화폐 매물이 대량 등록되는 일은 없었으니 말이다. 비트코인이 발표되었을 때부터 채굴한 사람이 한국에도 있었고, 비트맥스에서 시세가 폭등할 때도 팔지 않고 남아서 한국 거래소가 오픈했을 때, 매물을 등록했다면 이야기는 달라졌겠지만, 그런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반대로 사고자 하는 사람들은 수도 없이 많았다.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가격이란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되고, 그에 따라 한국의 거래소에서는 해외의 거래소보다 높은 호가들이 형성되었다. 이를 김치 프리미엄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긍정적인 면도 없지는 않았다.
김치 프리미엄을 노리는 보따리상들이 해외 거래소에서 코인을 사 와서 한국 거래소에 풀기 시작했으니까. 하지만 그 수량은 수요를 모두 충족시키진 못했고, 보따리상도 김치 프리미엄이 완전히 사라지는 건 원하지 않았기에 전 세계 거래소에서 제일 비싼 호가를 형성하고 있는 게 현실이었다.
덕분에 똘똘이처럼 비트맥스 계정을 파서 직접 투자를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불과 몇 달 만에 세계 최대의 암호화폐 거래소가 된 비트맥스도 최근에는 안정적인 거래를 위해서 여러 가지 조치를 취하고 있었기에, 해외 사람들이 직접 계좌를 개설하는 게 까다로워지고 있었다.
1계정당 최대로 보유할 수 있는 비트코인의 수량을 100개로 한정한 게 제일 큰 조치였고, 큰 금액을 한 번에 인출할 때에는 여권과 같이 얼굴이 나오는 신분증을 등록해야 하기도 했다.
-자, 그러면 비트맥스 비트코인 시세를 확인해 볼까요?
-1코인에 9,520달러! 이야, 어마어마하네요. 작년 여름만 해도 1비트코인이 20달러도 안 됐던 거 아세요? 그때 사 놨으면 몇 배야? 490배! 어휴, 그때 1억 원어치만 샀으면 지금 490억 원이라는 건데. 아마 이렇게 대박 나신 분은 없을 거예요.
=그럼그럼, 그런 사람 있으면 장을 지진다.
=100달러만 넘었어도 다 팔았겠지.
=넥스트컴에서 코인 인증하는 사람 중에 제일 대박 난 사람이 2천 달러 초반에 잡았다더라. 그것도 겨우 1비트코인어치 산 거임.
똘똘이의 말에 채팅창 안에 있던 구독자들 대부분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러나 딱 한 사람 동의하지 않는 이가 있었다.
“여기 있는데.”
유재원이었다.
한국 아침 9시가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오후 5시였다. 퇴근을 준비하면서 저녁을 슬슬 준비할 시간이었다.
평소의 유재원이라면 서재에서 나와 혜성이와 놀아주고 있을 시간이었지만, 지금은 비트코인의 시세가 시세인지라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유재원의 큼지막한 OLED 모니터의 오른쪽에는 똘똘이의 유튜브 라이브 스트리밍이 띄워져 있었고, 왼쪽에는 비트맥스의 비트코인 실시간 차트가 띄워진 상태였다.
데드라인으로 잡았던 1비트코인당 1만 달러가 코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현재 시점도 작년에 예상했던 그대로 3월 초였다.
오늘이 3월 7일.
시세로 보자면 빠르면 오늘 중에도 달성이 가능했고 늦어도 2, 3일 정도 후에 1만 달러를 돌파할 것 같았다.
유재원이 이렇게 보는 이유는 매도량의 급감 때문이었다. 비트코인을 재산 축재의 수단으로 쓰는 중국인들이 많았고, 이들 덕분에 전 세계 거래소에서 비트코인 거래량은 점차 줄어들고 있었다.
여기에 알트코인의 폭발도 있었다. 알트코인의 거래 수단으로 비트코인이 사용되면서 달러-비트코인의 거래량은 급감 중이었다.
덕분에 아주 작은 매수세로도 시세가 끌어올려지고 있었다.
-자, 그럼 매수하겠습니다. 일단 오늘은 반만 사 볼게요.
모니터의 오른쪽 구석에 띄워 놓았던 똘똘이 방송 역시나 비트코인을 구매하는 방법에 대해 열과 성을 다해 방송 중이었다.
심지어 똘똘이 본인도 비트코인의 매수 주문을 넣었다.
-매수 성공! 450달러치 비트코인을 샀습니다.
-어디 잔고를 볼까요? 와, 여기 있네요! 0.047368 비트코인. 딱 반년 전만 해도 450달러면 비트코인 22개를 사는 돈이었는데, 지금은 0.047개밖에 못 사네요.
-어? 오른다! 올라!
-여러분, 제가 사니까 비트코인 시세가 오르는 거 보셨습니까?
-9,550! 9,555! 억! 1,200비트를 한꺼번에 대량 매수! 9,600 돌파!
이런 우연이 있나!
공교롭게도 유튜버 똘똘이가 450달러로 0.047개가량의 비트코인을 매수하는 시점에서 다시금 시세 폭등이 벌어졌다.
1,200만 달러짜리 매도벽이 단숨에 무너지면서 9,600달러를 돌파한 비트코인 시세는 불기둥을 만들어내며 9,700달러까지 상승했다.
그에 따라 비트코인을 매수했던 똘똘이도 불과 몇 분 만에 20달러가 넘는 시세 차익이 생겨났다.
-이런 기세면 오늘 1만 달러 찍는 거 아닙니까?
-제가 누누이 이야기하는 거 있죠? 역사적인 지점에 도달했을 때, 변동성이 폭발한다고. 오늘 뭔가 심상치 않습니다. 일단 1만 달러 선에 절반만 매도 걸어 놓겠습니다.
단순히 말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 유튜버 똘똘이는 바로 비트맥스의 매도 버튼을 눌러서 0.047369비트코인 중 반을 1만 달러에 매도하는 주문을 넣었다.
“오? 이분, 가끔 날카롭다니까.”
차트에 집중되었던 유재원은 감탄과 함께 다시금 똘똘이 방송으로 시선이 옮겨졌다.
1만 달러에 도달하면 붉은 버튼이 눌러진다는 걸 알고 하는 말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비트맥스의 비트코인 시세가 1만 달러를 찍게 되면 암호화폐의 역사는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자자! 매도 주문이 걸어졌으니 1만 달러까지 가 봅시다!
-1만 달러 달성 기원을 위해 오늘은 이분을 모셔 왔습니다.
날카로운 눈으로 모니터를 보던 유재원은 이어진 말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각종 기발한 매매 기법을 선보였던 유튜버 똘똘이가 오늘 들고 나온 건 바로 그럴듯한 양복 한 벌이었다.
=웬 정장?
=유 회장 핏인데?
=똘똘이 몸에 맞을라나 몰라.
애플의 잡스라고 하면 프레젠테이션이 유명했고, 프레젠테이션 때마다 신는 뉴발란스 신발과 청바지 그리고 검은색 스웨터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유재원도 그런 고정된 이미지가 있으니, 정장이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사업을 시작하게 된 유재원은 얕잡아 보이지 않기 위해 정장을 입었다. 그때 이후로 유재원의 스타일은 오늘까지도 일관되게 유지되고 있었다. 다만 유재원이 즐겨 입는 정장의 스타일은 서양의 기본형인 클래식핏이 아닌 슬림핏이었다.
덕분에 슬림핏의 유행은 훨씬 빠르게 다가왔다. 문제는 한 덩치 하는 유튜버 똘똘이에게 슬림핏이 맞을까 싶은 것인데,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자, 그럼 지금부터 비트코인이 1만 달러를 돌파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프레젠테이션을 시작하겠습니다.
정장을 몸에 맞추는 것인데, 똘똘이는 정장에 몸을 욱여넣었다. 터질 듯 부푼 상체 때문에 재킷의 단추가 다 잠기지도 못했다. 바지 역시 마찬가지. 그런 차림으로 안드로이드 패드를 옆에 차고 이지적인 표정까지 지었다.
덕분에 최대한 호의적인 시선으로 이 모습을 봐준다면, 유재원을 좀 따라 하고 있구나 하고 느낄 수 있었다.
더욱 놀랄 일은 비트코인에 대한 유튜버 똘똘이의 프레젠테이션은 제법 정확했고, 차트를 그리며 앞으로의 시세를 예측했던 결과물 역시 일리가 충분히 있었다.
무엇보다 프레젠테이션의 자세와 말투는 유재원의 스타일과 꼭 닮았다는 점이었다. 역시, 대기업 유튜버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렇기 열심히 썰을 풀기 시작한 지, 대략 40분 정도 지났을까.
-똘똘이 님의 매도 주문이 체결되었습니다.
한창 유재원 코스프레를 하며 열을 올리고 있던 똘똘이는 순간 돌이 되었다.
매도 주문 체결?
그것은 1비트코인의 시세가 1만 달러를 돌파했다는 의미였다.
같은 시간.
위잉위잉!
유재원의 서재에도 알람 소리가 크게 울렸다. 아예 모니터에는 붉은색과 노란색의 사선이 섞인 경고 이미지가 큼지막하게 떴다.
“오늘이 장날이었군.”
2011년 3월 7일, 저녁 5시 55분.
비트맥스에서 1비트코인의 시세가 1만 달러를 넘은 순간이었다. 그와 함께 비트맥스의 시세 차트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 중이었던 유재원의 매크로 프로그램의 트리거가 작동되면서 화면에 극적인 변화가 생겼다.
인증번호를 요구하는 메시지 박스의 등장이었다.
유재원은 바로 16자리의 복잡한 암호를 입력했다. 그러자 붉은색과 노란색의 사선이 겹쳐지면서 만들어졌던 경고 이미지가 해제되고 새로운 그래픽이 등장했다.
너무도 탐스러운 붉은 버튼이었다.
2000년대 초반 러시아의 수라 시설을 방문했을 때 보았던 그 붉은색 버튼을 그대로 컴퓨터 그래픽으로 옮겨놓은 듯한 모양이었다.
유재원은 비트코인 차트와 붉은 버튼을 번갈아 보고는 바로 마우스 커서를 움직였다. 그리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붉은 버튼을 꾹 눌렀다.
버튼이 눌리자마자, 유재원의 서재 컴퓨터와 연결된 ID 클라우드 서버에 명령어가 전송되었고, ID 클라우드 서버에서는 명령을 다시금 시스템과 연결된 수십만 개의 PC에 재전송했다. 명령어를 수신한 PC는 미리 저장된 작업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비트코인 매도였다.
비트맥스를 비롯한 세계 암호화폐 거래소 중 상위 30개 거래소에 지금껏 듣도 보도 못한 매도물량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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