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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로 압도한다-829화 (829/1,007)
  • 805회

    용쟁호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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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안(天眼) 계획인가?”

    깊게 생각하지도 않았던 유재원은 정답을 정확하게 맞혔다.

    회귀 전 중국이 이쯤에서 슈퍼컴퓨터로 할 만한 일은 생각보다는 한정적이었다. 텐허 프로젝트라는 계획서 안에는 백신과 신약 연구 그리고 지질 데이터 분석을 위해 세계 최고의 슈퍼컴퓨터가 필요하다고 쓰여 있었지만, 부처님 손바닥 위의 손오공처럼 바로 간파 당했다.

    그도 그럴 것이 중국 공산당의 성향을 보자면 너무도 소중한 슈퍼컴퓨터라는 자원을 자국민의 복지를 위해서 쓸 일은 전혀 없었으니 말이다.

    중국 공산당은 누구보다 자국 국민들을 두려워한다.

    상하이와 베이징, 광둥과 같은 중요 도시만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내륙 지역의 성장률은 10년 전이나 20년 전이나 크게 달라진 게 없다는 게 지금의 중국이었다.

    이로 인해 내륙 지역에서 농업에 종사하던 수많은 이들이 해안가 도시로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밀려 들어왔다. 이들은 도시의 최하층민이 되어 헐값에 본인들의 노동력을 팔아야 했다.

    이른바 농민공들이라 불리는 부류였다.

    농민공들이 쏟아내는 엄청나게 저렴한 노동력은 도시를 움직이게 만드는 힘이기도 했다. 하지만 중국 공산당 입장에서 농민공은 최대한 빨리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이들의 불만이 쌓이고 쌓이다 못해 폭발하게 되면 중국 공산당은 끝장이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농민공의 숫자는 2000년대부터 시작했고, 2010년이 된 지금도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훨씬 거대해졌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도시와 농촌의 소득 격차가 줄어들기는커녕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의 상위 1%의 소득계층의 수입은 한국이나 일본의 부자들을 능가할 정도지만, 하위 10%의 소득 수준은 20년 전과 나아진 게 없었다.

    여기에 신장웨이우얼 자치구와 티베트 자치구에서는 분리독립의 기운마저 느껴졌다.

    더욱이 과거의 중국과 다른 건 여전히 중국의 발목을 잡고 있는 청나라 채권 상환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청나라 채권을 무시해 버릴 요구였다. 하지만 911이 터졌고, 거기에 중국이 깊숙이 관여했다는 증거가 나오면서 청나라 채권 상환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의 미국은 정말 무서웠으니 말이다.

    불가피한 선택이었지만, 청나라 채권 상환은 마음 급한 중국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미국은 인심을 쓰면서 상환 일자를 탄력적으로 조절해 주기도 하고, 중국의 상황이 좀 무리다 싶으면 금액도 조절해 주었다.

    아주 자애로워 보이는 미국이지만, 사실은 단돈 1달러까지도 확실히 받아내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금액이나 일자를 조절해 주긴 하지만, 할인은 절대 없었으니 말이다.

    겉으로 보면 개혁개방 이후 무섭게 발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중국이지만, 내부적으로는 빠르게 썩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공산당이 선택할 수 있는 건, 결국 감시였다.

    천안 계획이라는 건 전 국민 얼굴 인식 시스템이었다. 한국도 주민등록증을 만들 때 증명사진을 첨부하고 있으니 그게 그거 아닌가 싶지만, 중국의 천안 계획은 주민등록증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실시간 모니터링’이라는 키워드가 천안 계획에는 있었으니 말이다.

    한국보다 더 많은 CCTV가 깔려 있는 나라가 중국이었다.

    전 세계에서 CCTV를 가장 저렴하게 만들어낼 수 있는 나라가 중국이었고, 중국은 CCTV를 열성적으로 도로는 물론이고 건물 안에도 설치했다. 그걸로 끝이 아니라 대량으로 설치된 CCTV를 통합적으로 관제할 수 있는 시설을 두었고, 이를 공안에서 관리하도록 했다.

    여기에 얼굴 인식 시스템이 결합하면 엄청난 시너지 효과가 일어난다.

    길가에 걸어 다니는 평범한 사람의 신상 정보를 즉각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거꾸로 찾고자 하는 신상을 통합 관제 시스템에 입력한다면, CCTV가 그 사람을 포착하자마자 바로 시스템에 뜨도록 할 수도 있다.

    반체제 인사를 관리하는 데 이보다 편리할 수가 없는 것이다.

    “으흠, 그러면 아이티에서 선보인 얼굴 식별 시스템을 보고 떠올린 발상이겠군.”

    대중국 전문가인 유재원은 중국이 천안 계획을 원래보다 일찍 시작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도 확실하게 예측했다.

    원리는 똑같은 기술인데 누가 어떤 의도로 사용하느냐에 따라 이렇게나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대지진에 직격당한 아이티는 순식간에 혼란에 빠졌지만, 유재원의 적절한 조치로 인해서 빠르게 혼란을 되찾았다.

    반면 중국 공산당이 천안 계획으로 사용하려는 방식은 철저한 억압과 통제를 위한 것이었다.

    잠깐 생각이 깊어졌다.

    중국의 제안을 받을지 말지 따져 보는 것이었다.

    상식적으로는 생각 깊게할 것도 없이 거부하는 게 맞다. 하지만 여러 가지 가능성을 따져 보았던 유재원은 받는 것으로 기울어졌다.

    가장 큰 이유는 ID 그룹이 거절한다고 해도, 중국이 슈퍼컴퓨터를 만들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클러스터형 슈퍼컴퓨터를 만드는 데에 엄청난 고난도 기술이 필요한 건 아니기 때문이다. 클러스터와 클러스터 사이를 연결하는 네트워크 기술과 병렬 처리를 효율적으로 설계하느냐에 따라 전체 퍼포먼스가 크게 달라지겠지만 중국이라면 무시하고 밀고 나갈 수 있다.

    타 업체에게 일감을 주느니 차라리 AMD의 악성 재고를 처리하는 게 훨씬 나았다. 게다가 천안 계획에 쓰일 슈퍼컴퓨터를 세팅해 주면서 여러 가지 장난을 쳐 놓을 수도 있었다.

    북한에 선물로 보냈던 컴퓨터에 루트킷을 담아 놓은 것처럼 대놓고 백도어를 만들겠다는 건 아니었다.

    북한과 달리 중국의 IT 분석 능력은 상당한 수준이었고, 그런 식의 백도어를 만들어 놓는다면 바로 찾아낼 게 분명했다.

    대신 슈퍼컴퓨터를 구성하는 부품의 조합을 조금 손봐 주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보안 취약점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대표적으로 CPU와 하드디스크가 있다.

    AMD의 CPU가 인텔보다는 성능이 낮아도 보안성은 좋다.

    인텔은 CPU의 L1, L2 캐시의 적중률 향상을 위해 사용한 기법에서 심각한 보안 취약점이 발생했다. 성능 향상을 위해 보안은 포기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무슨 취약점인고 하니, L1이나 L2 캐시에 저장된 데이터에 간접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이다. 반면 AMD는 정석 그대로였기에 간접적인 접근도 상당히 제약적이었다. 그러니 클러스터 구성에는 AMD를 쓰더라도 클러스터와 클러스터를 이어주는 노드 시스템에 인텔의 네할렘을 채용한다면, 인텔 CPU가 태생적으로 가지는 취약점을 중국의 슈퍼컴퓨터에 심어 놓을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현재 이러한 버그의 존재는 유재원만 알고 있었기에, 그야말로 언제라도 꺼내 쓸 수 있는 비장의 무기를 갖춘 것이나 다름이 없다.

    하드디스크 역시 위와 같은 원리였다

    다만 언제나 접근할 수 있는 취약점이 아니라, 언제고 터질 수 있는 시한폭탄이라는 게 조금 달랐다.

    바로 시게이트 제품 이야기다.

    시게이트는 하드디스크 업체 중 최대의 시장 점유율을 가진 1등 업체였다.

    현재 PC와 서버용 하드디스크를 고르게 생산 중이었는데, 현재 대세인 제품은 4TB 용량의 제품이었다.

    그런데 여기엔 치명적인 문제가 있으니, 바로 벽돌 타이머였다.

    잘 돌아가던 하드디스크가 어느 순간 급사해 버린다. 물리적으로 죽어 버린다. 소프트웨어적인 조치로는 살릴 수가 없다. 무조건 살려내야 하는 데이터가 있었다면, 하드디스크 복구 업체로 가서 완전 분해로 데이터만 살려내는 방법뿐이다.

    문제는 고장률이었는데, 15%가 넘는다.

    100개 중에 최소 15개는 확실히 터진다는 이야기였다.

    이는 엄청난 수치였다. 3% 정도의 불량률을 보이는 웨스턴디지털제 하드디스크도 복불복이라며 말이 많이 나오는데, 15%면 데이터가 안전하게 저장될 거라는 신뢰성 자체가 허물어지는 것이었다.

    신뢰의 시게이트 하드디스크가 이렇게나 폭락하게 된 이유는 2011년에 터지는 태국 홍수 때문이었다.

    시게이트의 하드디스크 제조 공장은 태국에 있는데, 2011년 어마어마한 홍수가 터지면서 이 공장이 물에 잠겼다. 홍수 이후 제조되는 시게이트의 하드디스크는 모두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현재 시점에서 시게이트의 하드디스크는 최고였다.

    그러니 중국이 의뢰한 텐허 슈퍼컴퓨터의 스토리지 장치로 시게이트를 적시하는 건 절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대신 시게이트 하드디스크의 연식을 선택하는 건 전적으로 유재원이 얼마든지 관여할 수 있다. 300만 개의 CPU가 클러스터로 모이는 슈퍼컴퓨터가 하루아침에 뚝딱 만들어지진 못한다. 완성에는 최소 1년이 넘게 걸리는 만큼, 2011년 생산 제품으로 텐허 슈퍼컴퓨터의 스토리지 장치를 구성한다면 치매 걸린 슈퍼컴퓨터를 만들어낼 수 있다.

    “얼굴 식별 프로그램은 알아서 짜라고 해야지.”

    다만 하드웨어는 만들어 준다고 해도, 중국의 정책에 힘을 실어 줄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소프트웨어 세팅에 유재원이 협조하지 않는다더라도 중국 IT 기업들의 능력이라면 중국 공산당이 원하는 수준의 통제 시스템은 충분히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시스템은 분명 ID 그룹의 시스템보다는 품질이 떨어질 것이고, 여기저기 구멍도 엄청나게 많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다.

    훗날 결정적인 순간 그 허점을 파고든다면 엄청난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여러 가지 가능성을 따져 본 유재원은 ID 테크놀로지의 엘런 사장에게 중국의 견적 요청서에 긍정적인 답신을 하라는 지시를 보냈다.

    그러면서 유재원이 조금 전 구상했던 시스템의 스펙도 첨부해서 말이다.

    유재원의 지시를 받은 엘런 사장은 즉각 움직였다. 초대형 슈퍼컴퓨터 제작은 많은 걸 남길 수 있는 장사였다. 게다가 여러 국가의 정부와 기업을 상대로 여러 번 수행한 비즈니스였기에, 견적을 짜는 건 일도 아니었다.

    견적을 받은 중국에서도 바로 승인이 났다.

    -중국, ID 그룹에 슈퍼컴퓨터 텐허 발주.

    -생명공학과 지질 분석 등, 다양한 연구 활동에 활용할 것.

    관련 뉴스도 실시간으로 떴다.

    중국에서 P마켓 차이나 이후로 오랜만에 대형 비즈니스가 이뤄진 덕에 대대적으로 보도 되었다.

    며칠 후.

    -ID 일렉트로닉스 인수 후, 비상하는 AMD.

    -슈퍼컴퓨터와 서버 시장에서 활로 찾은 AMD.

    -AMD, 악성 재고 제로! 주가도 폭등!

    중국의 텐허 슈퍼컴퓨터 계약 소식은 곧장 주가의 폭등으로 이어졌다.

    기존 ID 그룹의 기업 인수 정책과는 조금 달리 브랜드는 물론이고 독립적인 조직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한 AMD였고, 나스닥 상장 상태도 여전히 유지되는 중이었다.

    그렇기에 중국의 슈퍼컴퓨터 수주 소식은 AMD에게 있어 또 한 번의 주가 상승 모멘텀을 만들어 주었다.

    “회장님의 수완에 깜짝 놀랐습니다.”

    “에이, 이건 제가 만든 게 아니라 중국 쪽에서 먼저 접근해 준 거죠.”

    “콧대 높은 중국이 먼저 접근할 만큼 높은 명성을 쌓은 건 모두 회장님의 공 아니겠습니까. 노벨상까지 받으셨잖아요.”

    또한, 리사 수 박사를 순간적으로 수다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AMD의 새로운 수장으로 ID 일렉트로닉스에서 M시리즈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를 책임지고 있던 리사 수 박사가 임명되는 건 유재원에겐 아주 당연한 일이었다.

    AMD의 기존 임원진들 사이에 낙하산으로 떨어지는 여성 엔지니어 사장에 대한 거부감은 깔끔하게 무시했다.

    리사 수 박사는 부담감을 느끼면서도 기꺼이 유재원의 제안을 수락했다.

    그녀가 반도체 전공을 시작할 때부터 가지고 있던 꿈이 바로 CPU를 직접 만들어 보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M시리즈 AP도 CPU였지만, 리사 수 박사의 성에 차는 성능은 아니었다.

    모바일이라는 한계로 저전력 설계를 해야 했고, CPU 다이의 면적도 작았으니 말이다. AMD의 수장이 된 지금 꿈꾸던 그 칩을 제대로 만들어 볼 수 있게 되었다. 덕분에 리사 수 박사의 거처도 대한민국 대전에서 미국의 실리콘밸리로 바로 바뀌었다.

    “악성 재고도 털어냈으니, 이제는 불도저와의 악연을 완전히 끝내는 것만 남았습니다. 불도저는 완전히 지워 버리고, 0에서부터 새로 시작해 주세요.”

    유재원의 말에 리사 수 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엄밀히 따지면 불도저의 유산은 엑스박스 3용 커스텀 CPU인 재규어 X8에 남아 있긴 했다. 하지만 재규어 X8을 소매시장이나 기업시장에서 볼 일은 없다. 오로지 엑스박스 3에만 탑재될 예정이었으니 말이다.

    더욱이 재규어 X8에 대한 설계는 이미 끝났고, B스텝 샘플 생산에 돌입해 있었다. 샘플 생산은 대대적인 양산을 시작하기 전 혹시라도 남아 있는 문제점을 파악하고 수정하는 작업이었는데, 그것도 끝난 상태였다.

    리사 수 박사는 불도저에 손을 댈 필요 없이, 완전히 새로운 판에서 유재원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할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 리사 수 박사의 프로젝트가 결실을 맺었을 때, 어떤 녀석이 튀어나올지 너무나도 궁금해졌다.

    다 죽어가던 AMD를 완전 부활시킨 젠 아키텍처가 나올지, 아니면 그 이상의 새로운 무언가가 나올지 유재원도 예측할 수가 없었다.

    어떠한 결과물이든 의미하는 바는 명확할 것이다.

    그날이 오면 AMD가 무너져 제 세상 만난 것처럼 온갖 일을 벌이고 있는 인텔은 크나큰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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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후기]

    추천과 리플,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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