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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로 압도한다-811화 (811/1,007)
  • 787회

    리콜 스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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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전 대국들과 달리 계가까지 가는 제3국이었습니다.

    -예상과 달리 계가도 직접 하는 인공지능 골드로군요. 따낸 돌로 상대의 집을 메우는 것도 아주 자연스럽습니다.

    텔레비전 속에서 들려오는 캐스터와 해설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계가까지 들어갔지만, 승리는 인공지능 골드에게 돌아갔다는 건 다들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3국에서는 백을 잡은 인공지능 골드였다. 계가에서 한국식 바둑 룰에 따라 6집 반이란 덤을 백에게 주지만, 덤 계산을 하지 않아도 이미 만들어 놓은 집이 흑이었던 이세돌 9단의 집보다 컸다.

    -인공지능 골드의 승리가 선언됩니다.

    대국장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침울했다.

    승리를 확정받은 인공지능 골드가 로봇팔 몸통에 달린 모니터에 무슨 이모티콘을 띄울 수 없을 만큼 무거운 공기가 내려앉았다.

    우와아아!

    반면 커다란 함성이 터진 곳도 있었다.

    같은 호텔 최상층 프레지덴셜 룸에서 대국을 지켜보고 있던 유재원 그리고 ID 그룹 사람들이었다.

    3:0!

    도전은 성공했다.

    1억 달러에 달하는 우승 상금이 확정된 것이다. 1억 달러는 인공지능 골드의 바둑 모듈 개발에 관련된 모든 이들에게 1/n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일찌감치 확정지은 상태였다. 그 숫자는 대략 40명 정도 되는데, 1인당 250만 달러라는 적지 않은 액수가 나온다.

    그렇지만 모두가 환호하는 중에도 유재원만큼은 냉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덕분에 대국장의 분위기도 모르고 승리 포즈를 취하려는 인공지능 골드를 천만다행히도 정지 시킬 수 있었다.

    -제3국도 인공지능 골드가 가져가면서 전체 스코어는 3:0이 되었습니다. 인공지능 골드의 도전은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2번의 대국이 더 남아 있습니다!

    캐스터의 말 그대로다.

    -그렇죠! 누가 먼저 기권하지 않는 한은 제5국까지 대국은 계속 이어집니다. 이세돌 9단이 남은 대국에서는 세계 최강 바둑기사로서 선전하길 기원하겠습니다!

    실제 과거에서도 이소용 6단의 말 그대로, 이세돌 9단은 제4국에서 엄청난 파란을 일으켰다.

    인공지능의 예측 범위 밖을 찌르는 이른바 신의 한 수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승리의 즐거움은 여기까지만 즐기시고, 이제 제4국을 준비합시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완벽한 승리입니다. 진짜 파티는 완벽히 승리하고 즐겨 봅시다.”

    “물론입니다!”

    유재원의 말에 환호했던 이들도 흥분을 털어버리고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말 그대로 완벽한 승리가 필요했다. 더욱이 과거와 달리 인공지능 골드에 걸린 것들이 훨씬 많았다.

    이번 대국이 끝나면 곧장 시작될 전문 영역 관련 인공지능 비즈니스의 숫자만 해도 최소 3개는 넘었으니 말이다.

    다만 중심을 잡고 있는 유재원은 속으로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중계를 했던 캐스터와 해설에게서 순간적으로 공포심이 슬쩍 보이기도 했고, 인터넷을 보면 이제 사람이 바둑 두는 시절은 끝났다고 섣불리 단정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세돌 9단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만큼, 인공지능 골드의 바둑 실력은 탄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재원이 불안감을 느낀 원인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지금 이 순간이 이세돌 9단의 최고 전성기라는 점이었다.

    원래보다 훨씬 빠르게 이뤄진 인공지능의 바둑 도전이었다. 과거에는 2016년에 치러진 도전이었고, 당시 이세돌 9단의 기력은 최고라고 할 수 없었다.

    반면 현재 시점인 2009년 지금의 이세돌 9단은 모든 면에서 최고였다.

    단적으로 조금 전 끝난 제3국에서 인공지능 골드의 정석이 없다는 기풍을 어느 정도 이해하는 것은 물론이고, 날카로운 찌르기도 보여주었던 이세돌 9단이었다.

    한 번 질러 들어올 때마다 바둑 모듈을 구성하고 있는 CPU와 TPU의 가동률 그래프는 지붕킥을 찍을 만큼 엄청난 파괴력을 자랑했다.

    두 번째 불안감은 여기에 있었다.

    과거에 치러진 알파고의 하드웨어는 2016년 수준이었고, 현재는 2009년 수준이다.

    유재원이 기술 가속을 일으켜 7년 정도를 앞당기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 수준이 아주 완벽한 건 아니었다. TPU와 램, SSD는 14나노미터 공정이지만, 가장 중요한 CPU는 28나노미터의 네할렘이었으니 말이다.

    이세돌 9단이 보여준 신의 한 수도 인공지능이 예상치 못한 변칙 수였다. 그러면 그제야 해당 포석의 승률 예측과 대응법을 찾기 시작하면서 가동률이 치솟을 것이 분명했다. 그때 하드웨어 스펙이 부족해서 연산력이 받쳐주지 못하면 좋은 수를 찾기 힘들어진다.

    만에 하나 자충수라도 나오면 과거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4번째 대국이 재현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빨라진 시간만큼 하드웨어 성능을 좀 더 높였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 정도였다.

    그렇지만 최소한으로 동원된 하드웨어로 세계 최강의 바둑기사를 상대로 완벽히 승리한다는 것 역시 각별한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

    “그러면 복기를 해 볼까요?”

    유재원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대형 LED TV 앞으로 모였다.

    내일 무슨 결과가 나오든 후회하지 않을 만큼, 최선을 다해 준비하겠다는 게 유재원과 바둑 모듈 관계자들의 자세였다.

    다음 날. 오후 2시.

    세기의 대결을 펼치는 두 선수가 모두 대국장에 자리했다.

    엄밀히 말한다면 인공지능 골드의 바둑 모듈은 일요일부터 계속 대국장에 망부석처럼 자리하고 있었고 로봇팔만 정비를 위해 다른 방의 정비실로 옮겨졌다가 다시 나오는 것인데, 사람들의 눈에는 기계와 인간이 세기의 대결을 위해 동시에 콜로세움에 나오는 것처럼 보였다.

    이세돌 9단의 발걸음은 진중했다.

    어제 3국을 끝내고서 생각이 엄청나게 많았던 이세돌 9단이었다.

    대국이 끝나면 숙소인 원더랜드 리조트 호텔의 그랜드 스위트룸에 올랐지만, 이내 밖으로 나와 주변의 프라이빗 산책로를 몇 바퀴나 돌았다.

    호텔 주변으로는 취재진이 바글바글했지만, 스위트룸 등급 이상의 숙박자들에게 제공되는 프라이빗 산책로는 완전히 세상과 분리되어 고즈넉한 분위기를 제공했다.

    유재원은 이번 대국을 위해서 작년부터 원더랜드 리조트 호텔을 대회 기간 한정으로 통째로 전세를 냈다.

    일찌감치 전세를 예약했기에 기존 투숙객들의 불만은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전세를 내놓은 호텔을 이번 대국 관계자들에게 내주었고, 그중에서도 이세돌 9단을 위해서는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했다.

    프라이빗 산책로 역시 그러한 서비스 중 하나였다.

    덕분에 이세돌 9단도 패배가 누적되는 중이었지만 최고의 컨디션 유지와 함께 여러 가지의 상념들을 털어낼 수 있었다.

    그렇지만 부담감 하나만큼은 떨쳐낼 수 없었다.

    처음에는 가볍게만 보았던 인공지능과의 대국이었는데, 0:3이 된 지금에는 대국에 담긴 의미가 완전히 달라졌다.

    이세돌 9단도 마음은 전체 일정이 끝날 때까지는 세상과 단절하고 싶었지만, 호텔방에 텔레비전도 있었고 손에 들린 스마트폰도 있었다.

    텔레비전이나 스마트폰을 보고 있으면 본인이 마치 기계와의 전쟁이라는 최전선에 선 마지막 전사와 같은 존재처럼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인공지능 골드의 도전이란 이벤트는 바둑계 한정의 행사가 아니라 웬만한 전문직에도 여파를 미칠 승부로 그 의미가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ID 그룹은 이번 대회가 끝나는 대로, 진단의학과 신약개발, 사법행정 등의 전문 분야에 인공지능 도입을 예고했습니다.

    실제로 이세돌 9단이 보았던 뉴스에 관련 소식이 나왔다.

    이미 일상의 영역에서 인공지능은 사람들 사이에 깊숙이 스며든 상태였다. 그중에서 인공지능이 최초로 진입했던 전문 영역인 번역의 경우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시장의 규모가 축소 중이었다.

    외교 분야 동시 통역이나 비즈니스 통역과 같이 이권과 자금이 크게 걸려 있는 분야는 여전히 전문 통역사를 쓰지만, 다른 분야에서는 크게 축소 중이었다. 단적으로 출판이나 학술 관련 분야의 경우 1페이지 1만 원이라는 식으로 아르바이트생을 위한 일감들이 많이 나왔었지만, 차세대 번역기 출시 후 지금은 싹 사라졌다.

    오로지 인간의 전유물로만 여겼던 바둑을 인공지능이 점유한다면, 그 이후의 세상은 어떻게 될까.

    딱 한 판만이라도 이겨야 한다는 사람들의 기대감이 이세돌 9단의 어깨에 켜켜이 쌓였다. 그런 무거운 짐을 안고 있는 이세돌 9단이었지만, 대국장을 가로질러 본인의 자리에 앉기까지 그 걸음은 평소와 다름이 없었다.

    먼저 자리에 앉은 이세돌 9단은 로봇팔이 오는 걸 지켜보았다.

    기이잉.

    이세돌 9단은 바둑 모듈의 본체가 아이언맨의 레드와 골드 투 톤으로 칠해진 저 로봇팔이 아니라, 구석진 곳에 있는 대형 캐비닛 크기의 컴퓨터라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본체 모니터에 ‘^^’이모티콘을 띄우고 팔을 흔들며 다가오는 로봇팔이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매번 그랬다.

    더구나 본인을 궁지에 몰아넣은 상대였지만, 하는 짓이 귀여워서 미워할 수가 없었다.

    -제4국 시작합니다.

    그렇게 이세돌 9단이 자리에 앉고, 로봇팔도 정해진 자리에 위치를 잡자 제4국이 시작되었다.

    첫수는 흑을 잡은 이세돌 9단이었다.

    사투!

    제4국을 한 마디로 압축하자면 사투였다.

    초반의 포석이 끝나자마자 이세돌 9단은 극단적이라고 할 만큼 치열한 싸움을 걸었다. 어제까지 3번의 대국에서 이세돌 9단이 얻은 경험과 교훈은 인공지능 골드의 페이스에 말려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인공지능 골드의 페이스를 그대로 두거나, 말려가면 어느새 지고 있는 본인을 발견했다. 그렇기에 흑이라는 선수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바둑판 전체를 전쟁터로 만든다면, 본인의 특기라고 할 수 있는 변칙적인 수 싸움에 승산이 있다는 판단이었다.

    인공지능 골드의 대응도 이전 대국들과는 좀 달랐다.

    이전의 대국에서는 인공지능 골드는 팻감이 있어도 그다지 활용하지 않고 그저 세력 싸움으로 진행을 했었다.

    시작부터 천원을 잡았던 제1국에서도 인공지능 골드는 중앙에 거대한 영토를 만드는 것에 집중했을 뿐, 이세돌 9단이 이끌었던 네 귀퉁이 싸움에는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이세돌 9단이 인공지능 골드의 페이스에 말려 중앙으로 치고 들어왔을 정도로 말이다.

    거기에서 인공지능 골드가 둔 첫수였던 천원이 기가 막히게 작용했다.

    이세돌 9단의 실력이라면 중앙 세력 싸움은 상당히 치열하게 이뤄졌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천원을 먼저 점하고 있던 인공지능 골드의 돌이 있었기에 중앙에서의 싸움도 이세돌 9단의 이득은 전혀 없었다.

    더욱이 인공지능 골드는 팻감이 보였음에도 이를 물지 않았고, 그저 우직하게 집을 만들어 가면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다.

    그렇지만 제4국에서는 달랐다.

    이세돌 9단의 변칙에 맞서 인공지능 골드는 팻감을 적극 활용하면서 바둑판 전체를 전쟁터로 만들어 버렸다.

    보기에도 화려하고, 한 수 한 수 놓일 때마다 승패 예상 수치가 휙휙 달라졌다.

    보는 사람은 즐거울 테지만, 유재원에겐 그야말로 곤욕스러운 일이었다. 유재원은 이번 제4국이 위험하다는 걸 알고 있는 유일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더욱이 인공지능 골드가 이렇게 이세돌 9단의 변칙 싸움을 받아서 사방팔방에서 난전을 벌일 줄은 유재원도 몰랐다. 아무래도 이전의 3번의 대국에서 얻은 이세돌과의 경험까지도 기계학습 알고리즘에 의해 분석되어 적용되고 있는 모양이다.

    초읽기도 거의 쓰지 않고 빠르게 이어진 탓에 대국 시간은 이전보다 훨씬 단축되었다.

    제4국의 첫수가 놓인 지 1시간하고도 10분쯤 지났을 때, 승자와 패자가 가려졌다.

    “그렇지!”

    숨죽이고 있던 제주 원더랜드 리조트 호텔의 최상층 프레지덴셜 룸에서 환호가 터졌다.

    이제는 승리에 익숙해진 임직원들이었지만, 딱 한 사람만 달랐다. 가장 크게 환호하며 주먹까지 불끈 쥔 사람은 인공지능 골드의 아버지인 유재원이었다.

    유재원이 너무나도 좋아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제4국에서도 승자는 인공지능 골드라는 뜻이었다.

    혼자만의 비밀을 가진 유재원에게는 너무나도 각별한 의미가 있었던 제4국이었다. 인공지능 골드의 승리 선언이 나왔을 때 터진 유재원의 리액션은 이전 대국과 차원이 달랐다.

    그야말로 유재원의 인생 마스터플랜에서 가장 큰 고비를 최고의 결과로 넘은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지금 유재원이 느끼는 승리의 쾌감이란 그 어떤 스포츠 경기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짜릿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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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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