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807화 (807/1,007)

783회

리콜 스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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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터 씨는 진정한 의미의 아메리칸 마초였다.

뉴로 자동차의 속력을 줄여 렉서스와 같은 선에 놓았다. 피시테일 현상으로 사정없이 흔들거리는 렉서스 옆으로 끼어드는 것 자체가 유재원으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대범한 행동이었다.

유재원과 혜성이는 자율주행 테스트용 카메라를 통해 운전자 시점에서 봤고, 몇 초 뒤 실시간 추적 중인 텔레비전 중계로 3인칭 시점에서 볼 수 있었다.

두 가지 뷰 모두 입이 떡 벌어지게 만드는 충격적 장면이었다.

심지어 리스터 씨는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갔다. 흔들리는 렉서스를 향해 미식축구의 라인맨이 몸통 박치기를 하는 것처럼 냅다 박았다. 그것도 전면이 아닌 옆면으로 렉서스의 옆면을 받으면서 충격을 최소화했다.

“저게 되네.”

“대네!”

유재원과 혜성이는 부자 아니랄까 봐 동시에 입이 딱 벌어졌다.

피시테일 현상을 잡는 확실한 방법은 속도를 줄이고 운전대로 적절히 차체를 제어해야 했다. 지금은 둘 다 불가능했으니 아예 외부에서 밀어붙이는 것이 최선이라는 판단을 내린 모양이다.

-홀리몰리! 제가 뭘 보는 거죠?

-스턴트 묘기를 고속도로 위에서 보게 될 줄이야!

판단과 실행 모두 적절했다.

뒤늦게 이어진 케이블 방송의 호들갑이 시끄럽게 터졌다.

지역 케이블답게 생방송 하면서 아나운서와 캐스터까지 붙였고, 심지어 둘은 추격전이라는 종목이 진짜 있는 것처럼 실감나게 중계했다.

-그런데 속도가 너무 빠른데요?

-어어! 위험합니다!

문제는 속도였다. 피시테일 현상은 잡았지만, 급발진은 계속되었고 속도는 줄지 않았다. 더욱이 고속도로 위에는 차들이 많았다. 조금 전까지는 리스터 씨가 선도하면서 사이렌을 켠 덕에 달릴 수 있는 공간이 나왔지만, 이젠 기대할 수 없다.

대신 리스터 씨는 렉서스를 고속도로 바깥쪽 가드레일로 밀어냈다.

가드레일과 렉서스가 쓸리면서 하얀 연기 같은 게 일어났다. 마찰열이 엄청나게 치솟은 모양이다. 급기야 노란 불꽃이 터졌다.

이러다 불이 나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다. 게다가 리스터 씨의 2세대 뉴로라고 해서 괜찮은 게 아니었다. 1차선을 달리던 차들 중에 피하지 못한 차들과 연달아 접촉 사고가 일어났다.

그야말로 생각지도 못한 급전개에 유재원은 할 말을 잃었다.

그저 리스터 씨나 렉서스에 타고 있는 일가족들이 무사하길 바랄 뿐이었다.

“어?!”

그때, 유재원의 눈에 렉서스의 속도가 크게 줄어드는 게 보였다.

리스터 씨의 2세대 뉴로와 충돌했고, 곧이어 가드레일과 충돌하면서 기계 계통에 문제가 생겨 엔진 출력이 떨어지고 있는 게 확실했다. 하긴, 급발진이라는 게 엔진이 설계된 것 이상으로 퍼포먼스를 뿜어내는데 무리가 가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안타까운 건 연쇄 충돌이었다.

속도가 줄긴 했어도 여전히 시속 100km 이상이었다. 지금까지 누적된 접촉 사고 숫자만 10번이 넘었다.

2세대 뉴로에 멋들어졌던 외관은 완전히 넝마처럼 변했고, 라이트닝 볼트의 멋들어진 LV로고도 떨어져 나갔다. 그렇지만 운전 성능은 괴물처럼 유지되고 있었다. 렉서스가 튕겨져 나가지 않도록 꽉 붙들고 있었고, 리스터 씨가 다친 기색도 없었다.

그렇게 급박한 순간이 2분쯤 더 이어졌다.

마침내 미친 속도로 쏘아졌던 렉서스는 완전 멈춰 섰다.

-기적입니다! 미친 황소처럼 달리던 렉서스를 뉴로가 멈춰 세웠습니다!

케이블 방송의 아나운서 말 그대로 리스터 씨는 미친 렉서스를 멈춰 세우는 것에 성공했다. 그야말로 회심의 몸통 박치기였다.

-어어! 하얀 연기가 점점 커지는데요?

문제는 다음이다.

가드레일과 계속 접촉했던 렉서스 자동차의 측면에서 하얀 연기가 점점 크게 올라오기 시작했다. 불이 났다는 징조였다.

여기서도 아메리칸 마초 리스터 씨의 활약이 빛났다.

렉서스보다 조금 더 앞쪽으로 가서 뉴로 자동차를 멈춰 세운 리스터 씨는 바로 소화기를 들고 달려왔다. 그리곤 뒷좌석의 문을 강하게 잡아 뜯다시피 해서 아이들 먼저 구해낸 다음에 운전석 문을 열었다.

-빨리빨리!

다급한 리스터 씨의 목소리가 모니터로 전해졌다.

“빨리빨리!”

혜성이도 고사리 같은 주먹을 쥐고 빨리빨리를 외쳤다. 평소의 입 짧은 소리도 아닌 정확한 발음으로 말이다.

평균보다 훨씬 빠른 언어 발달 속도였으니, 펄쩍 뛰며 좋아할 일이었다. 하지만 유재원은 모니터에 집중하느라 혜성이의 발음이 귀에 들어오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렉서스의 조수석 쪽에서 불꽃이 피어올랐기 때문이다.

리스터 씨는 들고 온 소화기를 바로 뿌리면서 불을 잡았고, 동시에 조수석에 있던 사람까지도 잡아끌었다.

“됐어!”

렉서스에 타고 있던 일가족 4명이 모두 구해진 걸 확인한 순간 유재원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리스터 프란시스라는 생각지도 못했던 귀인이 나타나 급발진 렉서스의 일가족 4명을 다 구해낼 줄은 상상도 못 했던 일이었다.

현실의 히어로가 있다면 리스터 씨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더욱이 렉서스의 급발진 사고는 처음엔 샌디에이고에서만 방송이 되었다가, 지금은 북미 전역에 생방송으로 전해진 상태였다.

급발진 사고는 그나마 최선의 결과로 마무리되었지만, 파문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이건 내가 할 일이지.”

마스터플랜에서는 제3자의 입장에서 도요타 리콜 사태에 대한 대응책을 만들었다면, 리스터 씨로 인해서 이제는 유재원도 사건 당사자가 되었다.

원래 세워놓은 계획보다 훨씬 더 강력한 개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다음 날.

-충격! 샌디에이고 도요타 렉서스 급발진 사태!

-도요타, 급발진 확진은 너무 이른 판단. 정밀 조사 필요.

-라이트닝 볼트, ‘도요타 급발진 사고’에 휘말린 모든 이들에게 적절한 보상 약속.

-리스터 프란시스, 우리들이 기다린 영웅!

도요타 렉서스 급발진 사고는 언론에 대서특필되었다.

어제저녁 모든 공중파 뉴스의 첫 꼭지를 담당했고, 인터넷에서도 도배가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고속도로를 잘 달리던 도요타 렉서스 자동차가 갑자기 급발진이 걸리면서 질주하는 것부터 지방 케이블 방송국의 헬기에 잡혔으니, 그야말로 보도하기에 최적의 사고였다.

자극적인 데다가 결과까지 좋았다.

더욱이 리스터 프란시스라는 영웅이 탄생했다.

전직 아메리칸 트럭커이자 라이트닝 볼트의 자율주행 프로젝트의 테스트 드라이버라는 리스터 씨의 직업도 뉴스거리였다.

인기의 지표라고도 할 수 있는 리스터 씨의 팬클럽이 넥스트컴에 만들어졌고, 순식간에 수만에 달하는 회원들이 팬클럽에 가입했다.

그러면서 언론은 과연 이 사고가 급발진인지, 아니면 조작 미숙에 의한 사고인지 따져보기 시작했다.

도요타에서는 당연히 운전 미숙이라고 주장했고, 라이트닝 볼트에서는 급발진이라고 주장했다. 네티즌의 의견은 당연히 후자였다.

FHD로 너무나 선명하게 방송된 추격전에서 렉서스 자동차 뒷면에 켜진 브레이크등이 확실히 보였던 탓이다. 게다가 렉서스 자동차의 운전대를 잡고 있던 사람은 캘리포니아주의 고속도로 순찰대 대원이었다.

고속도로 순찰대 대원이 되기 위해선 상당한 수준의 운전 스킬이 필요했다. 게다가 혼자 타고 있던 것도 아니고 일가족을 태운 상태로 그렇게 급가속을 한다는 건 상식적으로 말도 되지 않는다.

렉서스 자동차의 운전자 역시 경찰 조사에서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도 속도가 떨어지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게다가 브레이크를 밟아도 속도가 줄기는커녕 빨라지기만 했다고 확실히 말했다.

이를 뒷받침하는 건 911과의 긴급 통화였다.

911과의 통화는 모두 녹음이 되었고, 렉서스 자동차 운전자와의 대화 역시 마찬가지였다. 샌디에이고 경찰은 즉각 911로부터 녹음 파일을 전달받았고, 그 사실을 확인하였다.

그렇지만 도요타의 태도는 당당했다.

그러면서 도요타는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의 사고 차량에 대한 조사가 끝날 때까지는 급발진이란 단어를 쓰지 말아 달라는 공문을 방송국과 매스컴에 보냈다.

과학적인 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급발진이라고 확신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도요타의 논리에 일부 언론 매체에서는 급발진이라는 단어를 지웠다. 회귀 전과 같은 흐름이었다. 사고의 원인을 바닥 장판과 가속 페달에서 찾았고, 도요타는 대규모 리콜을 진행해 장판과 페달의 전면 교체를 해 줬다.

대략 그 수량이 1천만 대 이상이었기에 도요타 측에서는 통 큰 배포라며 언론 플레이까지 했다.

더욱이 지금의 도요타가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건 사고 차량이 반쯤은 타 버렸기 때문이다. 리스터 씨가 소화기를 적절하게 사용한 덕에 반쯤 건질 수는 있었지만, 불은 제법 크게 붙었다.

도요타 측에서는 불로 인해 사고의 원인 파악이 어려워졌다는 걸 알고서 전보다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다만 전과 다른 건 유재원이 시작부터 개입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충격적인 일가족 사망 사고라는 것 때문에 사고가 크게 알려졌지만, 지금도 이번 사고는 전 세계적으로 화제였다.

리스터 씨의 영웅적인 행보는 미국인들의 마음을 송두리째 잡았다. 덤으로 리스터 씨가 맡고 있던 라이트닝 볼트의 자율주행 프로젝트도 다시금 부각되었다.

결정적으로 리스터 씨의 대리인으로서 ID 그룹과 유재원이 적극 행보에 나선 지금, 렉서스 급발진 사고 이슈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과거보다 크면 컸지 절대 작아지진 않았다.

“안녕하세요? 유재원입니다. 오늘은 라이트닝 볼트의 책임자로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유재원은 오랜만에 매스컴 앞에 섰다.

거의 폐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2세대 뉴로를 뒤에 두고 말이다. 어제 리스터 씨가 운전하고 있던 바로 2세대 뉴로였다.

기자회견이 끝나면 미국 도로교통안전국에 넘겨서 사고 조사에 쓰이게 될 예정이었지만, 넘겨지기 전 라이트닝 볼트에서 데이터 백업을 할 수 있도록 시간을 내주었다. 물론 미국 도로교통안전국 사람들이 옆에서 두 눈 크게 뜨고 지켜보고 있었고, 도요타에서 나온 조사원들 역시 참관 중이었다.

“우리의 영웅 리스터 씨가 도요타 렉서스 차량의 급발진 사고를 돕는 과정에서 피치 못하게 여러 차례의 접촉 사고를 일으켰고, 일부 차량은 크나큰 대미지를 입었다는 걸 보고 받았습니다. 이 자리에서 저의 이름을 걸고 피해자 여러분께 확실한 보상을 해 드리겠습니다.”

정상적인 보험 처리를 하려면 오래 걸린다.

특히 리스터 씨가 운전했던 2세대 뉴로 전기자동차는 자율주행 전기자동차용 특수 보험을 들어 놓았다. 웬만한 사고에 대해 보험을 처리해 주지만, 지금과 같은 경우는 너무나 특수해서 보험 처리를 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릴 게 자명했다.

그렇기에 유재원은 먼저 피해자들에게 자비로 처리를 한 다음, 보험 처리나 도요타에게 구상권을 청구하기로 했다.

참고로 유재원이 물어주기로 한 보상액은 참사를 막는 과정에서 발생된 크게 찌그러지는 접촉 사고만 14건이었고, 중파된 차량도 2대나 나왔다. 가드레일도 많이 부서졌다.

이에 대해 유재원은 가벼운 접촉 사고의 경우 자동차 가격의 반절 그리고 소정의 정신적 피해 보상금을 주고, 중파된 차량의 경우 자동차 가격 일체와 훨씬 큰 정신적 피해 보상금을 주겠다고 했다.

-이번 사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피해 보상에 대한 구체적인 발표를 마치자마자 기자들이 질문을 던졌다.

“음, 도요타 자동차의 말대로 미국 도로교통안전국의 결과를 봐야겠지요.”

유재원의 대답에 기자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평소의 유재원이라면 가려운 곳을 제대로 긁어줬을 텐데, 이렇게 밍숭맹숭한 대답이라니. 하지만 유재원의 말은 아직 다 끝난 게 아니었다.

“다만, 일반적인 사고 상황은 절대 아니라는 것에 확신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하드웨어적 결함으로 인한 급발진의 가능성을 매우 크게 점치고 있습니다.”

유재원은 대놓고 도요타와 급발진을 언급했다.

기자단 사이에서도 역시 유재원이라는 소리가 나왔다.

도요타에서는 연일 초강경한 태세로 급발진과 도요타를 한 번에 묶어 보도할 경우 쓴맛을 보게 될 거라고 엄포를 놓고 있었지만, 유재원에게는 전혀 의미 없는 경고에 불과했다.

매스컴들 역시 지금 가장 뜨거운 급발진 사고를 유재원의 말을 인용하는 식으로 도요타와 연결지으면서 이슈 몰이에 열을 올렸다.

사고에 휩쓸린 피해자들을 위한 보상책 발표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

유재원은 기기변경을 마친 신상 스마트폰 S9을 들고 특정한 단축번호를 눌렀다.

-예, 회장님!

“해 주셔야 할 일이 있습니다.”

-예, 무엇이든 명령만 내려주십시오.

“이번 사고를 조사할 도로교통안전국 조사관들의 주변을 잘 살펴주세요. 혹시 도요타 임원들, 아니면 도요타에 고용된 로비스트들과 만난다면 더욱 밀착해서 살펴주시고요.”

바로 ID 그룹 정보팀장 레빈과의 통화였다.

그도 그럴 것이 과거 미국 도로교통안전국의 조사는 제대로 헛다리를 짚었다. 바닥 장판과 가속 페달 이상이라는 도요타의 자체 조사 결과를 그대로 수용한 검사 보고서가 나왔다. 이 때문에 미국 정부와 미국 자동차 3사는 한 가정의 불행한 사태를 이용해 도요타 죽이기에 나섰다는 오명까지 뒤집어써야 했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조사관들이 도요타에 매수되어 도요타에게 면죄부를 내준 것이었다.

유재원은 이번에도 도요타의 행태가 바뀌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기에 정보팀에 과감한 지시를 할 수 있었다.

커다란 미끼는 던져졌고, 이제는 미국 도로교통안전국의 보고서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

물론 유재원에게 있어 기다린다는 말은 휴식을 의미하지 않았다. 도로교통안전국에서 보고서가 나오기까지는 최소 몇 달이 걸릴 테니 말이다.

보고서가 나오기까지 기다리는 동안 유재원에겐 해치워야 할 큰 과제 하나가 남아 있다.

인공지능 골드의 바둑 정복이었다.

작년 시범경기에서 형식적으로는 승리, 실질적으로는 패배를 했던 게 어제 같은데, 벌써 정식 도전이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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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추천과 리플,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원고료 쿠폰, 후원 쿠폰도 완전 감사합니다~!

클리셰를 피해보려고 여러 모로 궁리를 해봤지만, 제일 무난한 게 결국 이거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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