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0회
리콜 스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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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트로이트의 라이트닝 볼트 전용 테스트 트랙을 달리는 전기 자동차의 외관은 조금 기괴했다. 바탕색은 하얀색이었지만, 검은색 점들이 불규칙하게 박혀 있는 위장 무늬가 래핑되어 있었고, 헤드라이트나 뒤쪽 레어램프에는 울퉁불퉁한 파츠도 장착되어 있었다. 원래의 모양을 유추할 수 없도록 하는 위장이었다.
출시를 앞둔 자동차의 최종 디자인이 유출되지 않도록 조치가 씌워진 상태에서 유재원이 타고 있는 것이다.
IDDC 2009에서 발표될 라이트닝 볼트의 신형 모델을 최종 점검하기 위해 나온 유재원을 위해서 실물을 꺼내왔다. 게다가 장소도 라이트닝 볼트가 자체 테스트를 위해 만든 전용 트랙이다. 그럼에도 혹시나 숨어 있는 스파이들이 있을지 모르기에 위장까지 철저히 했다.
자동차 회사들 중에 개발 중인 신차의 디자인이 유출되는 사고를 겪지 않은 곳이 없다고 할 만큼, 스파이가 만연한 산업이었다.
기업의 전용 테스트 트랙이라고 해서 안심할 수가 없다.
스마트폰의 카메라는 웬만한 콤팩트 카메라보다 성능이 더 좋아졌다. 그만큼 전문가용 DSLR 카메라의 성능이 좋아져서, 100X짜리 줌으로도 그럴듯한 사진을 얻을 수 있다. 이러한 DSLR과 드론의 결합이라면 사유지를 침입하지 않고도 스파이샷을 찍을 수 있으니, 전과는 차원이 다른 보안성이 요구되었다.
그나마 라이트닝 볼트는 지금 보는 것과 같은 철저한 보안을 자랑한 덕에, 아직 신형 모델의 디자인이나 스펙이 유출되는 불상사는 없었다.
비록 멋들어진 외관이 꽁꽁 싸매졌지만, 성능 자체는 최종 완성된 상태였기에 테스트 트랙을 달리는 2세대 슈퍼카 슈퍼소닉은 겉에 무엇이 발라져 있든 상관없이 상상을 초월하는 퍼포먼스를 뿜어냈다.
“슈퍼카라면 이래야지! 역시 LVSSLV야!”
공기를 가르며 쏘아지는 유재원의 슈퍼소닉 조수석에 앉은 영식이가 감탄을 터트렸다.
방금 테스트한 것은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의 가속에 걸리는 시간을 재는 제로백 테스트였다.
여기서 슈퍼소닉은 1.8초라는 엄청난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마치 항공모함에서 전투기를 발진시키는 캐터필러를 체험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론적으로는 1.5초까지도 낼 수 있지만, 레이싱용 민무늬 타이어를 장착했을 때 나오는 숫자였다. 물론 1.8초라는 숫자는 고급 휘발유를 쓰는 전통의 슈퍼카라도 달성할 수 없는, 오직 슈퍼소닉만을 위한 숫자였다.
참고로 영식이가 부른 영문자 6개는 지금 유재원과 함께 타고 있는 슈퍼소닉의 개발명이었다.
앞의 LV는 라이트닝 볼트를 의미하고, 가운데 SS는 슈퍼소닉이었고, 맨 마지막에 붙은 LV는 루이비통 에디션이라는 의미였다.
라이트닝 볼트와 루이비통은 같은 LV라는 약자를 썼다.
이러한 커플링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먼저 돌았었는데, 라이트닝 볼트에서 이를 적극 수용해 콜라보를 성사시켰다. 즉, 슈퍼소닉의 인테리어를 루이비통의 장인이 만든 소가죽으로 도배를 한 한정판 모델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루이비통 소가죽 옵션 가격만 웬만한 중형 승용차 가격에 육박했지만, 슈퍼카의 세계에서는 문제도 아니다.
“어휴, 그러냐?”
반면 운전석에 앉아 있던 유재원의 말은 시큰둥하게 나왔다. 그렇지만 두 손으로 안전벨트를 꽉 잡고 있는 모습이었으니, 속도에는 질려 버린 상태였다.
출발과 함께 엄청난 추진력에 의해 온몸이 시트에 파묻히는 느낌이었다. 전용기가 활주로를 박차고 오르던 순간에도 비슷한 느낌이었지만, 슈퍼소닉은 10배는 더 강렬한 느낌이었다.
“그러냐가 뭐냐! 이건 정말 끝내주는 거라고!”
영식이는 답답한 듯 목소리를 높였다.
참고로 유재원의 친구들 중에는 라이트닝 볼트의 슈퍼카 애호가들이 많았다. 제일 열성적인 녀석은 길버트였다.
그런 길버트에 비견될 만큼 영식이도 슈퍼카 마니아였다. 그냥 라이트닝 볼트의 슈퍼카만 좋아한 게 아니라, 람보르기니와 페라리 같은 전통의 슈퍼카는 물론이고 파가니 존다나 부가티 베이론과 같은 하이퍼카도 좋아했다.
그냥 좋아만 하는 게 아니라, 최소 한 대씩 구매해서 본인의 차고에 넣어 놓고 애지중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니 슈퍼카 덕질의 깊이만 따지면 길버트보다는 영식이가 훨씬 폭도 넓고 깊이도 깊었다.
레밍턴 부회장도 나름 자동차에 깊은 애정이 있었다. 다만 레밍턴은 아메리칸 머슬카 애호가였으니 디테일에서 조금 차이가 있었다. 어쨌든 ID 그룹의 최고서열 임원들의 취미는 자동차라는 재미있는 공통점이 있었다.
미국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유재원이 빌려준 집에 살았던 영식이었다. 그러다 ID 테크놀로지의 슈프림 네트워크 총괄 매니저라는 직책까지 오른 다음부터는 커다란 저택을 얻었다. 구입할 때부터 차고가 5개나 있는 집이었는데, 확장 공사를 해서 지금은 8대나 들어갈 수 있게 바꾼 상태다.
물론, 이렇게나 슈퍼카 구매에 돈을 많이 쓰더라도 영식이의 계좌 잔고는 빠르게 늘어나고 있었다.
영식이의 연봉은 ID 그룹 전체를 통틀어도 최상위권에 해당한 덕이다.
ID 그룹의 핵심 역량 중에서도 핵심인 클라우드 시스템을 총괄하는 자리를 10년이 넘게 유지하고 있었고, 유재원을 단 한 번도 실망하게 해 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덕진리에서 국민학교 때부터 같이 다니며 의리를 쌓았던 영식이었으니 이 정도 보상은 당연했다.
더욱이 유재원은 전생의 경험 덕에 사람 귀한 줄 알았다. 그야말로 뼛속까지 믿을 수 있으면서 능력까지도 출중한 인재는 어디에서 쉽게 구할 수도 없으니, 유재원도 확실히 보상을 해 주었다.
이렇게 유재원과 영식이가 투닥거리는 순간에도 슈퍼소닉은 테스트 트랙을 멋들어지게 달렸다.
1km에 이르는 직선 주로, 직선 주로의 끝에 붙은 헤어핀, 그리고 계속 이어지는 커브 구간 등등. 복합적인 주행 상황을 테스트하기 위해 만들어진 총 5.6km 길이의 테스트 트랙을 슈퍼소닉은 알아서 최적의 경로로 달리고 있다.
운전석에 앉아 있던 유재원은 출발할 때부터 4점식 레이싱레벨 안전벨트를 양손으로 잡고 있었고, 운전대에는 손도 대지 않고 있었다.
라이트닝 볼트의 2세대 전기자동차들의 오토파일럿 기능은 여전히 운전대를 잡고 있어야 활성화가 되지만, 예외도 있었다.
안정성이 확보된 것을 공인할 수 있는 몇몇 지역에서는 운전대를 잡지 않아도 오토파일럿 기능이 활성화된다.
바로 레이싱 트랙이었다.
특히 이곳 라이트닝 볼트의 테스트 트랙에서는 단순한 오토파일럿이 아닌, F1 레이서 수준 오토파일럿이 켜지면서 지금과 같은 스피드를 즐길 수 있었다.
“바로 이거지!”
커브가 연속된 구간을 최단의 속도로 돌파하는 슈퍼소닉에 영식이가 다시금 감탄했다.
최적의 가이드라인을 따르지 못하면 연석을 넘어가게 되면서 차가 덜컥거리고 속도도 떨어뜨리게 되지만, 슈퍼소닉은 매끄럽게 통과하면서 속도를 잃지 않았다.
“재원아! 이 정도 오토파일럿이면 그냥 켜놔도 되는 거 아니야?”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영식이는 아쉬움까지 토로했다.
직접 슈퍼카를 몰아 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었지만, 이렇게 자동으로 움직이는 자동차에 타서 속도만 즐기는 것도 색다른 감각이었던 것이다.
“아냐. 아직 미완성인 부분은 많아.”
반면 유재원은 고개를 저었다.
“이렇게 잘 달리는데?”
“변수가 고정된 레이싱 트랙이니까 그래. 대신 드라이빙 인공지능의 성능 향상을 위한 빅데이터 확보 차원에서 대규모 필드 테스트를 며칠 내로 시작할 거야.”
백신 탐색 알고리즘과 마찬가지로, 완벽한 레벨5 자율주행을 위한 기술도 이미 가지고 있는 유재원이다.
다만 기술적인 제약과 규제 그리고 자동차의 역사와 함께 사람들에게 쌓인 상식의 벽을 넘어야 하는 과제가 있기에 전면 도입이 어려운 상태였다.
기술적인 제약이란 자동차에 탑재할 수 있는 자율주행 시스템의 성능적 한계였다. 돈을 퍼부으면 지금도 해결 가능한 일이지만, 손해를 감수하면서 기기를 파는 건 엑스박스 하나로 충분했다.
반도체 산업이 발달되어 가성비가 맞춰질 때까지는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 사람들의 인식 변화 역시 시간이 필요했다.
대신 규제의 완화는 얼마든지 시도해 볼 수 있었다.
그 증거가 바로 얼마 전 미국 교통부에서 나온 자율주행 자동차의 대규모 필드 테스트 허가였다. 미국의 정권이 민주당에서 공화당으로 교체된 탓에 미국 행정부에서 친 ID 그룹 관료들이 대거 쓸려나갔다.
그렇기에 큰 기대는 없었는데,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대박이 터졌다.
“대규모 필드 테스트라고?”
영식이가 눈을 반짝였다.
“응. 1,000대 규모의 자율주행 자동차들이 미국 전역을 누비면서 다양한 데이터를 수집할 거야.”
그간 자율주행 연구는 이 분야에서 매우 전향적 태도를 보여주고 있는 캘리포니아주를 중심으로만 이뤄졌었다. 이번에는 그 제약이 훨씬 풀리면서 미국 영역 전체에서 오토파일럿 테스트를 할 수 있게 됐다.
대신 오토파일럿 테스트 중에 사고가 나면 그 책임은 온전히 라이트닝 볼트에서 감당한다는 약속을 해야 했다.
물론 라이트닝 볼트의 자본력은 이제 그 조건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정도가 되었기에 연방정부의 조건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즉, 며칠 후부터 자율주행 자동차 1천 대가 미국 전역을 누비게 될 거라는 이야기다.
“우와! 끝내주는데!”
“게다가 처음부터 무인으로 운영되진 않을 거야.”
완전 무인으로의 운영은 데이터가 충분히 쌓인 다음에 할 예정이고, 테스트의 시작 단계에서는 무사고 경력이 쌓인 전문 드라이버들을 대거 고용해서 보조석에 앉혀 놓을 작정이었다.
마치 자동차 연수 중에 운전 강사가 하는 것처럼 인공지능이 미처 감지하지 못한 돌발 상황 발생 시 임의로 브레이크를 밟아줄 수 있도록 말이다.
자동차가 뒤섞여 달리는 도로에서 발생할 수 있는 돌발 변수는 미완의 오토파일럿이 완벽 대처하는 게 어렵다. 그러니 완성이 될 때까지는 사람이 보조를 해 줘야 한다. 또한, 사고가 발생했을 때 이에 대처하는 것도 사람이 하는 게 제일 좋다.
“오토파일럿이 사고를 낸다고?”
유재원의 신봉자인 영식이는 믿지 못하겠다는 듯 물었다.
“라이트닝 볼트의 오토파일럿은 안전 운전을 위해 설계되었지만, 도로 위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지. 만에 하나 라이트닝 볼트가 망하길 바라는 사람이 억지로 밀고 들어올 수도 있고, 사고를 꾸밀 수도 있잖아. 덤으로 고용도 창출하고 말이야.”
유재원의 답에 영식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이유 때문이라면 십분 이해할 수 있었다.
본인이 담당하고 있는 ID 테크놀로지 클라우드 시스템에 쏟아지는 해킹 시도는 매일 수십만 건에 이르렀다.
간단한 무작위 공격부터 은밀한 시스템 침입은 물론이고, 데이터센터의 직원을 매수해서 정보를 빼돌리려는 시도가 시시때때로 있었을 정도다.
심지어 매수 시도 중에는 영식이에게 거절하지 못할 제안을 하겠다며 접근하던 멍청이도 여러 명 있을 정도였다.
헤드 헌팅을 탈을 쓰고 접근하는 건 그나마 양반이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보던 미인계로 접근한 적도 있었다. 우연찮게 출퇴근 길에 자주 만나더니 그쪽에서 선뜻 먼저 인사를 하고는 적극적으로 대시를 했던 것이다.
며칠간 썸을 탈 때는 참 즐거웠었다.
그런데 정보팀에서 알아야 할 게 있다면서 정보팀장이 직접 들고 온 파일에는, 한창 달달한 썸을 타고 있던 상대가 중국 군복을 입은 모습이 담겨 있었다. 한국 교포 2세로 알고 있던 영식이에겐 충격적인 일이었다.
더욱 놀라운 건 정보팀 팀장이 찾아와 파일을 보여준 다음부터 그 여자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당연하게도 영식이가 알고 있던 썸 타던 상대의 정보도 죄다 가짜였다. 인생 처음의 썸이었기에, 그냥 잊을 수가 없어서 썸녀가 알려준 주소로 찾아가 봤는데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정보팀이 다시금 역량을 발휘해 그 주소의 명의를 조사해 보았는데, 롱아일랜드의 페이커컴패니의 소유였다.
만약 미인계에 넘어갔다면 정말 끔찍했을 것 같다. 중국에도 바로 항의를 했었는데, 역시나 오리발만 돌아왔다.
“그나저나, 결혼 계획 같은 건 있는 거냐?”
“어? 결혼?”
잠깐 섬뜩했던 때를 기억하던 영식이는 훅 들어온 유재원의 말에 깜짝 놀랐다. 더구나 조금 전 생각하던 바로 그 일과 관련된 내용으로 말이다.
“살다 보면 그런 일도 있을 수 있는 거지. 그거 때문에 청춘 사업을 접는 게 말이 되나.”
우물쭈물하는 영식이를 보며 유재원이 계속 말을 이었다.
영식이에게 중국이 미인계를 썼다가 정보팀의 감시망에 발각된 사건은 유재원에게도 보고가 되었던 일이었다. 신종플루 백신을 만든다고 정신없던 올해 늦봄 때 일어난 일이었기에 제대로 신경을 써 주지 못하고 있다가, 이제야 짬을 낸 것이다.
여기에 최근 있었던 영식이 어머님과의 통화에서도 언제 장가를 갈지 모르겠다는 걱정을 전해 들은 것도 큰 이유였다.
“내가 소개팅이라도 주선해 줄까?”
미인계에 빠진 이유는 결국 영식이가 솔로이기 때문이 아닌가.
영식이 어머님의 말대로 제대로 된 반려가 있었다면 당하지 않을 저급한 술수였다. 물론 결혼하고서도 방탕한 생활에 빠져 사는 사람도 있지만, 유재원이 아는 영식이는 그런 성향이 아니었다.
“진짜?”
영식이는 반색하며 되물었다.
영식이가 소심해서 그렇지, 객관적으로 보면 1등 신랑감이었다. ID 테크놀로지가 아니라 ID 그룹 전체를 봐도 서열 최상위권에 해당하는 임원이었으니까.
유재원 본인도 사적인 인맥의 폭은 매우 협소하긴 했지만, 영식이에게 좋은 짝을 찾아줄 정도는 됐다. 정 안 되면 티파니에게 부탁하면 그만 아니겠는가.
영식이와 제일 중요한 이야기도 마친 유재원은 슈퍼소닉의 테스트 트랙 레이스를 종료했다.
시간은 흘러 8월이 되었고, 만반의 준비를 마친 IDDC 2009가 화려하게 개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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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추천과 리플,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원고료 쿠폰, 후원 쿠폰도 완전 감사합니다~!
주말이네요!
게다가 8월의 시작이기도 하고요!
장마가 끝나자마자 무더위라니.. 건강 조심하시고, 월요일에 다시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