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8회
리콜 스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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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콜 스캔들
펜데믹이란 혼란 속에서도 시간은 흘렀다. 세계는 무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기 시작하는 7월 중순이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평년보다는 덜 뜨거운 여름을 나고 있는 멕시코에서는 신종플루 상황이 눈에 띄게 호전되고 있었다.
-대규모 2상 임상 실험 시행 후, 치명률 급감.
-멕시코 질병센터, QIV-A1은 기적의 백신!
-신종플루 백신, 확실한 효과! 부작용도 거의 없어!
물론 반전의 주인공은 ID 하이테크 바이오 팀에서 만든 백신 QIV-A1 덕이었다.
활성화되지 않은, 그래서 감염 능력이 제거된 4개의 바이러스 스트래인스가 들어가 있다고 하여 QIV라는 접두사가 부여되었고, 뒤에 붙은 A1이라는 건 인공지능이 찾아낸 첫 번째 백신이라는 의미였다.
그렇지만 딱딱한 정식 명칭보다는 신종플루 백신이라는 말이 더 광범위하게 쓰였다. 현재 시점에서 신종플루를 치료하는 것은 물론 예방까지 해 주는 백신은 QIV-A1이 유일했으니, 신종플루 백신이라고 불러도 문제는 아니다.
멕시코는 국가 붕괴를 막기 위해서 상식을 초월하는 규모의 2상 임상 실험을 결행했다. 감염자들이 원한다면 신종플루 백신을 접종시켜 주는 것이었다.
선진국에서는 우려의 시선이 많았다.
그들 상식으로는 백신이라는 게 이렇게 도깨비방망이 두드리는 식으로 순식간에 만들어지는 게 아니었던 탓이다. 빠르게 나온 만큼 반드시 부작용이 터질 거라고 보았던 전문가들이 많았다.
반면 멕시코는 QIV-A1이 없었다면 나라가 붕괴되었을 거다.
신종플루 감염자들이 매일 수천, 수만 단위로 쏟아져 나올 때에는 병원에 입원할 자리가 없었을 정도다. 멕시코의 상류층은 본인들만의 섬에 자체 격리를 하거나, 아니면 신종플루 유행이 없는 나라로 급히 떠났다. 국가에 남은 하층민들은 제대로 치료를 받을 기회도 얻지 못하고 길거리에서 죽는 일이 흔했다.
나중에는 국가 차원에서 셧다운을 해서 거리에는 총을 든 군인들만 있었고, 집 밖으로 나오지도 못했다.
국가가 멈췄으니, 국가 경제에도 치명적이었다. 특히 멕시코는 관광업의 비중이 큰 나라였는데, 신종플루가 제일 심한 나라에 관광하려고 오는 사람이 없었다. 물론 극소수 있다고 해도 판데믹 상황에서는 특수 목적 수송기 말고는 비행기 편도 다 끊겨 버렸다.
스마트폰 덕에 신종플루로 인한 국가의 취약점과 전염병의 현황이 낱낱이 드러나는 장점이 있었지만, 신종플루로 인한 공포도 빠르게 전달되었다.
공권력이 살아 있는 일부 도시를 제외하고는 마트 약탈을 비롯한 폭동이 광범위하게 일어났다.
멕시코 질병센터의 대규모 2상 임상 실험의 실시와 ID 하이테크 바이오 팀의 백신의 대량 보급이 아니었다면, 멕시코의 상황은 분명 이전과 다른 엔딩으로 나아가고 있었을 것이다.
다행히도 QIV-A1 신종플루 백신은 대규모 접종에도 부작용이 없었다.
오히려 바이오 팀의 예상보다 효과가 좋았다.
꼭 2차 접종을 하지 않더라도, 한 번만 맞아서 완쾌된 케이스가 수도 없이 나왔다. 백신 본연의 기능인 예방을 위해서는 10ml의 소량만 주사해도 중화 항체 생성이 관찰되었다. 게다가 생성된 중화 항체는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었다.
앞으로도 계속 관찰해 봐야겠지만, 이 정도 수준이라면 1년은 충분히 예방 효과가 나올 것이라 기대할 수 있었다.
반면 보고된 부작용은 소수의 발열과 인후통 정도에 불과했다. 백신의 효과에 비하면 너무나도 사소한 부작용이었다.
-QIV-A1 신종플루 백신, 미국도 긴급 사용 승인.
-프랑스, 독일, 영국 등 유럽에서도 임상 실험 개시.
멕시코에서 검증 백신 효과가 너무나 좋았기에, 미심쩍은 눈으로 신종플루 백신을 바라보던 선진국에서도 접종을 시작했다.
의외인 점은 미국이었다.
미국 FDA라면 상당히 강력한 권한을 가진 독자 기구였다.
FDA는 까다롭기로 유명한 검증 절차를 가지고 있었고, 다른 나라에서 충분히 검증된 자료라도 FDA는 쉽게 인용해 주지 않았다. 때로는 깐깐한 검증을 자국 산업 보호에 쓰기도 했다. 외국 업체가 만든 신약이 미국 시장을 휩쓸기 전에 자국의 업체들이 대응할 시간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번 신종플루 백신도 FDA가 앞장서는 비관세 장벽이 나타날 줄 알았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은 타미플루와 리렌자 로타디스크라는 검증이 끝난 치료제를 보유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실제로는 미국의 질병통제센터는 정말 빠르게도 QIV-A1에 긴급 사용 승인을 내주었다.
또한, 정식 임상 실험도 빠르게 통과할 수 있는 패스트 트랙도 만들어 주었다. 멕시코의 임상 실험 결과가 너무나 좋긴 했지만, 그간 미국이 보여줬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양상이었다.
미국의 거대 제약회사에서는 볼 맨 소리가 나왔다. 오죽하면 백악관의 새로운 주인 존 매케인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말이 돌기도 했다.
이처럼 미국도 파격적인 대우가 나왔음에도 거대 제약회사들이 아무런 반응을 할 수 없을 만큼 QIV-A1의 효과는 확실했다.
-신종플루는 이제 거의 종식되었다고 해도 될 것 같습니다.
“다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제 좀 쉬시면서 재정비도 좀 하세요.”
유재원의 말에 모니터 화면 속 여러 사람이 화색을 띠었다.
ID톡의 단체 화상 미팅 기능을 통해 ID 하이테크 바이오 팀 레이몬드 박사와 대한민국에 자리한 셀트리온 관계자들이 동시에 접속한 상태였다.
QIV-A1 신종플루 백신의 대량 생산과 전 세계 공급을 위해서 4월부터 지금까지 거의 100일이 넘는 시간 동안 쉬지 않고 달려온 사람들이었다.
백신이 공급되면서 신종플루의 기세도 완벽하게 꺾였다.
한국에서도 5월에 최초 감염자가 나왔고, 이후 산발적인 감염자가 나오면서 긴장감이 높아졌지만, ID 하이테크의 신종플루 백신이 등장하면서 불안감은 해소되었다. 당연히 한국도 평소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속도로 신속하게 백신 사용 승인이 떨어지면서 지역 감염 위험을 조기에 진압했다.
“그렇다고 긴장을 완전히 풀어선 안 됩니다. 북반구는 이제 2개월만 있으면 가을이잖아요. 재유행이 더 위험할 수 있어요.”
과거의 한국도 봄철 유행은 잘 막았다. 그런데 2차로 가을에 다시 재발하는 걸 막지 못해서 큰 피해를 냈다.
판데믹 선언이 처음 나왔던 봄철 때만 해도 사망자는 얼마 없었는데, 가을에 재유행하는 걸 막지 못하면서 270명이나 되는 사망자가 나왔고, 감염자는 80만에 이르렀다. 사실 그것도 제대로 된 집계는 아닐 것이다. 본인도 모르는 사이 신종플루에 감염되었다가 무증상으로 끝났다거나 얕게 앓고 나은 사람들의 숫자는 훨씬 많을 것이다.
-물론입니다.
유재원의 당부에 다들 다부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따지고 보면 이상한 모습이었다. 감염병이나 의학 쪽 학위는 아무것도 없는 유재원이었고, 모니터 화면 속의 인물들은 의학 관련 경력이 그야말로 호화찬란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레이몬드 박사나 셀트리온 쪽 임원들이 유재원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이번 신종플루 백신으로 바이러스 연구의 패러다임을 확 바꿔 버린 존재였기 때문이다. 실시간으로 바이러스의 RNA와 단백질 구조가 분석되었고, 그에 맞는 백신 후보 물질까지 파악해 내는 건 그야말로 기적이라고밖에 할 말이 없었다.
유재원은 굳게 대답하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니 백신의 퀄리티 유지라거나, 안정적인 배송 따위의 당부의 말은 따로 할 필요가 없어 보였다.
그러다가 문뜩 생각나는 게 있었다.
“아 참, 논문은 어떻게 잘 만들어지고 있나요?”
-예, 회장님! 임상 실험 데이터가 정리되는 대로 완성될 겁니다. 그런데 진짜 제1 저자로 저희가 들어가도 되는 겁니까?
백신 탐색 알고리즘의 공개에 대해서는 이미 몇 달 전 방침을 정해두었기에 따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알고리즘은 그야말로 가치를 따질 수 없는 골든 코드이긴 했지만, 공개하는 게 오히려 더 큰 이득이라는 건 일찌감치 세운 원칙이었다. 공포는 미지에서 오는 것이기에, 숨기는 게 많을수록 공포는 점점 커진다.
인공지능도 예외는 아니었다.
기계학습 알고리즘이 공개되고 나서 전 세계 기업과 연구소에서는 기계학습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서버 시장의 규모가 몇 배로 늘어난 것도 이때부터였다. 그에 따라 인텔과 AMD 그리고 메모리 반도체 업체들에게 묻지 마 주문이 쏟아졌다. 그것도 제일 비싼 서버 라인업 제품들로 말이다.
AMD가 불도저라는 괴작을 만든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서버용 스펙에 집중하다 보니 밸런스가 깨진 물건이 튀어나온 것이다.
실제로 서버용 프로그램 중심으로 꾸려진 벤치마크에서 불도저의 성능은 네할렘에 크게 뒤지는 건 아니었다. 가성비를 따지면 AMD의 우위다. 그렇지만 서버의 세계에서 가성비라는 건 의미가 거의 없는 단어였다.
기계학습 알고리즘은 자원을 투입한 만큼 결과를 내주는 아주 정직한 구조였기 때문이다. 투입한 만큼 퍼포먼스가 나오기에 무조건 인텔의 제온 라인업은 연일 매진 중이었다. 만약 기계학습 인공지능이나 클라우드 시스템의 효용이 떨어졌다면, AMD로 눈길을 돌리는 업체도 나왔을 테지만, ID 그룹이 인공지능 골드를 통해 기계학습 인공지능이 나아갈 방향을 제대로 짚어주고 있었다.
실제로 ID 그룹의 뒤를 열심히 따라 한 업체 중 상당수가 유의미한 성과를 내고 있었다.
타도 안드로이드를 외치며 스마트폰 생태계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애플도 시리라는 인공지능 비서를 선보였다. 처음에는 골드에 비해 모든 게 떨어졌던 시리지만, 지금은 꽤 쓸 만한 수준에 이르렀다.
이런 상황에서 백신 탐색 알고리즘이 논문을 통해 공개되면 기계학습 알고리즘에 대한 투자는 한층 가속화할 것이 분명했다.
백신 시장이란 그야말로 노다지와 같았으니 말이다. 성공 확률을 비약적으로 높여주는 도구가 나왔는데, 쓰지 않을 제약 업체는 없을 것이다. 덤으로 제약 분야에 참여하고 싶었지만, 노하우가 부족해 참여하지 못했던 업체들도 힘을 낼 수 있다.
무엇보다 인공지능에 대한 우려의 시선이 불식된다는 것은 유재원에게 큰 이익이었다.
NBC에서 레이 커즈와일과 했던 신년 대담에서 너무 나간 발언 때문에 약간 부정적인 여론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일각에서는 유재원이 너무나 낙관적인 기술주의자라면서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영화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스카이넷과 매트릭스 시리즈의 매트릭스가 주는 대중적 이미지는 너무나도 강력했다.
더욱이 유재원의 로드맵 중에는 가상현실 기술도 있었다.
단순히 시각과 청각 정도의 감각만 이용한 가상현실이 아니라, 의식 자체가 사이버 세계로의 다이브를 하여, 오감은 물론 육감까지도 가상의 세계에 접속할 수 있는 진짜 가상현실이었다.
레이 커즈와일의 예측이 절대 틀린 게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렇기에 더욱 열심히 인공지능에 대한 미지의 공포를 빠르게 불식시킬 필요가 있었고, 유재원의 의지는 백신 탐색 알고리즘 자체를 공개할 수 있을 정도로 진심이었다.
물론 백신 탐색 알고리즘을 바탕으로 경쟁 업체들이 기계학습을 시작한다고 해도, 절대 따라잡히지 않을 거라는 자신감도 그 바탕에 깔려 있었다.
현재도 엑사플롭스 단위의 연산력을 내는 시스템은 ID 테크놀로지의 클라우드 시스템이 유일했다. 그런 시스템으로도 21일이 소요되었다. ID 테크놀로지의 클라우드 시스템의 1/10 성능이라면 210일이 걸린다는 것이고, 1/100이면 2,100일이나 걸린다.
그런데 공개된 슈퍼컴퓨터 중에서는 ID 테크놀로지 클라우드 시스템 성능의 1/1000을 겨우 따라오는 것도 얼마 없었다.
세계 최고의 슈퍼컴퓨터를 가진 업체라고 해도 H1N1 백신을 탐색한다면 21,000일이나 걸린다는 이야기였다.
유재원이 컴퓨터의 성능이 지금보다 5,000배는 빨라져야 한다고 말하고 다니는 게 다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렇지만 제약 업체들이나 백신 산업에 참가하려는 기업들은 절대 백신 탐색 알고리즘을 포기하지 못할 것이다.
QIV-A1으로 돈을 쓸어 담고 있는 ID 하이테크 바이오 팀과 셀트리온이란 확실한 증거가 있으니 말이다.
현재 가장 핫한 백신을 만드는 과정을 담아낸 논문이었으니, 레이몬드 박사가 부담스러워하는 것도 당연하다.
“물론입니다. 저는 교신저자 정도로로 충분합니다.”
그렇기에 유재원은 본인의 이름을 빼진 않았다. 대신 마지막 저자 자리이자 교신저자로서의 이름을 넣었다.
논문을 보고 의문이 들면 연락할 때 쓰라고 들어가는 자리였다.
보나마나 엄청난 연락이 쏟아질 테지만, 유재원은 태평했다. 본인에겐 비서실도 있고, 인공지능 골드의 개인 비서 기능도 아주 훌륭했으니 걱정할 게 하나도 없었다.
“다음은…….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온 이 행사로군.”
신종플루 백신과 조만간 발표될 논문에 대한 점검을 마친 유재원은, 새로운 문서를 열었다.
매년 이맘때쯤이면, ID의 열성 팬들의 가슴을 뜨겁게 달굴 이벤트가 구체화되기 시작한다. 바로 IDDC 2009 행사 준비였다.
올해에도 풍성하게 꾸려질 IDDC는 작년과 구성이 많이 달랐다.
작년에는 차세대 프로그래밍 언어인 Z+와 NBC와 유튜브의 콜라보였던 프로듀스 마이 슈퍼스타가 주인공이었다면, 올해는 전통의 IDDC로 돌아간다.
PC용 운영체제인 안드로이드 시스템의 2009년 버전이 당일 출시될 것이고, 여기에 8세대 게임기인 엑스박스 3도 공개 예정이다. 덤으로 ID 엔터테인먼트에서 열심히 만든 엑스박스 3용 게임들도 잔뜩 공개된다.
IDDC 2009의 화룡점정은 라이트닝 볼트의 2세대 전기자동차 라인업이다.
슈퍼패스트를 시작으로 불칸과 뉴로까지, 과거에는 낯선 전기자동차가 이제는 세계 어디서도 틈틈이 볼 수 있을 만큼 보급된 상태다. 그런 전기자동차의 수준을 한 차원 더 끌어올린 2세대 라인업이 드디어 완성된 것이다.
유재원의 계획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백신 탐색 알고리즘의 성공으로 얻은 탄력을 IDDC 2009가 받아서 더욱 증폭시키고, 연말 인공지능 골드의 바둑 도전에서 완벽하게 승리한다는 것까지 그리고 있다.
그렇게 해서 나중에 2009년을 돌아보았을 때, 지구의 기술 수준이 퀀텀 점프를 한 것처럼 튀어 오른 해로 기억되도록 만들겠다는 큰 계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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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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