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800화 (800/1,007)

776회

충격과 공포

=============================

수집된 데이터에 따르면 H1N1의 치명률이 2020년의 코로나 19, 혹은 메르스 수준으로 상승한 변종은 아니었다.

데이터가 보여주는 건 확실히 세계 평균보다 한참 위에 있는 멕시코만 유별나게 튀는 치명률 수치였다.

멕시코를 제외하면 한창 신종플루가 유행 중인 미국이나 캐나다, 유럽은 1% 이하의 치명률을 보여주고 있었다. 중국, 대만, 일본과 같은 동아시아 나라의 경우 0.1% 이하로 더욱 떨어진다. 심지어 한국은 아직도 신종플루 청정국이었다.

기존의 0.3%와 멕시코를 제외한 나라들의 1% 치명률도 3배쯤은 상승한 것이긴 한데, 전 세계가 멕시코가 보이는 치명률이었다면 그야말로 큰일이었다.

튜토리얼 수준이라 생각한 신종플루가 코로나 19 같은 본게임이었다면, 난리도 아니었을 테니 말이다.

그렇다면 멕시코는 왜 이럴까?

그건 얼마 전 티파니와의 대화에서 힌트가 있었다.

티파니는 셰브롱의 멕시코 지부에 자체적인 신종플루 현황을 점검하게 했고, 그 데이터와 멕시코 정부의 발표가 맞지 않는다는 것에 의문을 표했었다.

그에 대해 유재원은 즉각 멕시코 정부가 숨기고 있다고 답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아니, 숨긴다기보다는 멕시코 정부는 아직도 신종플루 감염자 전체를 파악할 능력이 없다는 게 정답이었다.

제대로 된 데이터를 모르니까, 실제와 오차가 큰 것이다. 그나마 사망자는 숨길 수 없기에 그런 대로 집계가 되었다. 다만 신종플루에 의해 사망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호흡기 질환으로 사망한 것인지는 제대로 조사를 할 여력이 없으니, 무조건 신종플루 사망으로 라벨링을 해놓고 있다는 것이 ID 그룹 자체 조사에 걸렸다.

그리고 또 하나.

통신과 인터넷 그리고 IT 기술의 발달도 신종플루 감염자 증가에 한몫했다.

과거 코로나 19 때, 5G 무선통신이 코로나 바이러스를 퍼트린다는 루머처럼 4G 무선통신이 신종플루를 퍼트린다는 게 아니다.

통신과 IT 기술의 발달로 과거에는 모니터링조차 하지 못했던 지역이나, 얼마든지 높으신 양반들이 의도적으로 숨길 수 있었던 데이터가 인터넷에 바로 올라왔다.

이를 더욱 가속화하는 게 톡톡을 비롯해 난립 중인 SNS였다.

톡톡에는 신종플루라는 태그를 달고 있는 게시글이 매시간 엄청난 숫자로 전 세계로부터 쏟아지고 있었다. 톡톡뿐만이 아니라 트위터와 페이스북과 마이피플과 같은 곳에서도 신종플루 해시태그 유행은 현재진행형이었다.

중국의 황금방패처럼 대놓고 자국민 검열 시스템을 도입한 나라도 있고, 미국의 프리즘처럼 숨겨 놓고 운용하는 나라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검열 시스템이 완벽한 것도 아니었고, 멕시코 같은 나라는 천문학적인 예산과 기술력 부족으로 시도조차 못했다.

보고서는 신종플루의 독성이 올라간 것이 아니라, 과거의 잘못된 데이터가 정정되고 있다는 걸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참, 다행이야.”

안도의 말이 절로 나왔다.

동시에 이제껏 본인이 했던 일이 바른 방향이었다는 게 눈으로 확인된 것이었기에, 뿌듯한 느낌도 일어났다.

같은 시각.

쿵.

미국은 물론 세계의 정세를 좌지우지하는 곳이 바로 워싱턴 DC의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인 오벌 오피스였다.

오벌 오피스를 울리는 묵직한 타격음은, 미국 대통령 단 한 사람을 위해 마련된 고풍스러운 원목 책상에 큼지막한 종이 상자가 안착하며 나는 소리였다.

레졸루트라는 이름까지 따로 있는 원목 책상은 영국 빅토리아 여왕이 미국의 제19대 대통령 리더퍼드 B. 헤이스 대통령에게 보낸 선물이었다. 북국에 좌초되었던 영국 해군의 함선 레졸루트 호를 미국이 찾아주었고,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은 이에 감사하다며 레졸루트 호를 해체하며 얻은 나무로 책상을 만들어 미국에 보내주었다.

여왕으로부터 답례로 책상을 받은 미국은 백악관 집무실에 놓았고, 그때부터 오벌 오피스를 상징하는 물건이 되었다.

미국에서 정치를 시작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꿈에 그리는 그 자리가 되었다.

이번에 새롭게 백악관의 주인이 된 존 매케인도 그런 사람이었다. 레졸루트 책상에 앉아서 집무를 보는 자신의 모습을 늘 마음 속에 품고 있었다. 하지만 1월 취임식과 함께 미국 대통령의 임기를 시작한 다음에는 오벌 오피스에 한가하게 앉아 있을 시간은 얼마 없었다.

지금의 세계 질서를 만들어낸 나라가 미국이었고, 미국의 새로운 대통령이 된 존 매케인은 그에 걸맞은 직무를 수행해야 했다.

존 매케인 대통령이 취임하고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본인의 존재감을 세상에 알리고, 확인하는 것이었다.

세상에 알린다는 건 주요 동맹국의 순방 일정을 시작했다는 이야기였다.

여기서 존 매케인의 해외 순방 일정에서 제외된 나라들의 경우, 해당 나라에서 대통령들이 직접 미국에 국빈으로 방문해 정상 회담을 치렀다. 스스로 미국을 먼저 찾아오는 나라들을 보면 인도,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아시아의 주요 나라와 스페인, 벨기에, 노르웨이 등의 유럽 강소국들이 있었다.

최근 미국에 국빈 방문이 확정된 나라는 중국이었다.

중국의 새로운 국가주석인 시진핑은 의욕적으로 개혁 개방 정책을 수행했고, 동시에 부패와의 전쟁을 벌이면서 중국 공산당의 썩은 부위를 과감하게 도려내고 있었다. 덕분에 중국 인민들의 시진핑에 대한 지지는 하늘을 뚫을 듯 높았다.

과거에도 시진핑이 독재에 대한 야욕을 드러낸 건 2010년 중반부터였으니, 지금은 옆집 아저씨와 같은 후덕한 인상에 속는 사람들이 절대 다수였다.

더욱이 미중 관계도 과거와는 크게 달라진 구도였다.

과거의 중국이었다면 2008 베이징 올림픽 이후, 세계 초강대국이 된 것 같은 자세로 주변국을 향해 팽창의 의지를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었을 것이다.

심지어 미국을 향해서도 강하게 나왔다.

유재원의 강력한 개입으로 인해 현재의 미국 대통령은 존 매케인이지만, 그때는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오바마였다.

그런 오바마가 취임 직후 일본과 한국을 국빈 방문할 때, 아주 이례적으로 중국도 방문했다. 중국의 강력한 초청 때문이었다.

오바마를 맞이한 중국은 그야말로 최고의 예우를 갖추며 국빈으로 대접했고, 오바마도 이에 만족했다는 기사들이 쏟아졌다. 그러면서 오바마와 시진핑은 장장 8시간에 걸친 마라톤 정상 회담을 했다.

그렇게 긴 정상 회담 동안 서로 입고 있던 정장 상의를 벗고 와이셔츠를 드러냈을 만큼 격렬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중국은 각자의 속내를 다 보였고 서로의 이해를 더욱 깊이 이해했다는 식으로 포장했지만, 사실은 달랐다.

베이징 올림픽의 성공으로 중국의 저력을 확인한 중국 공산당은 태평양 진출에 대해서도 자신감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중국은 미국 대통령을 불러다 놓고 태평양을 양분해서 서쪽은 자신들이 관리할 테니, 미국은 동쪽을 관리하라는 식으로 합의를 구하려고 했다.

미국으로서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미국은 그때의 정상 회담으로 중국의 야욕을 파악했고, 대중국 포위망 구축에 즉각 착수했다. 반대로 중국은 미국의 거센 반발에 당황했고, 이를 뚫어내기 위해 일대일로라는 전략을 수립했다.

지금은?

러시아가 무너지고 나서 세계의 패권을 차지한 미국은, 다음의 숙적으로 중국을 점찍은 지 오래였다.

과거에는 방심하고 있다가 부랴부랴 견제에 나서며 대중국 포위망에 구멍이 숭숭 뚫려 당황했다면, 지금은 오래전부터 중국의 부상을 예견하고 있었다. 게다가 청나라 채권 상환이라는 목줄이 걸려 있는 상태였기에, 과거보다 일찍 시진핑이 국가주석에 올랐다고 해도 감히 미국과 직접 충돌하겠다는 마음을 먹을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존 매케인 대통령을 중국으로 초청하겠다는 게 아니라, 본인이 직접 미국에 방문해 청나라 채권 문제를 비롯한 동아시아 현안에 대한 양해를 구하겠다는 게 지금의 상황이었다.

중국이 미국의 위세에 눌린 것과 반대로, 과거와 달리 존재감이 커진 나라가 있었다.

대한민국이었다.

원래대로라면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최우선 동맹국은 일본이었다. 대한민국은 늘 일본에 우선순위가 밀린 나라였다. 미국 대통령의 아시아국가 국빈 방문에서도 한국으로 바로 날아오는 법이 없이, 일본에 들렀다가 한국에 오는 게 마치 관행처럼 굳어진 상태였다.

이제 그런 건 없다.

앨 고어 대통령 때부터 한국 다음 일본을 가기 시작했고, 존 매케인 대통령 역시 마찬가지였다. 일본 방송들은 이것을 한국과의 회담 이후, 이 결과를 바탕으로 일본에 설명을 하기 위해 순서를 바꾸었다고 설명했지만. 실제로는 반대였다.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의 축은 한반도라는 게 이제는 명백해졌다. 이를 위해 한국과 북한과 먼저 이야기한 후, 일본에 통보하는 식이었다.

4월 초에 이뤄진 존 매케인 대통령의 대한민국 국빈 방문 역시 앨 고어 대통령의 동아시아 전략을 그대로 수용한 모양새였다. 비록 전직과 현직 대통령의 정당은 서로 달라도 미국이란 나라의 국익을 위해서 움직이는 건 같았다.

존 매케인 대통령 역시 앨 고어 대통령이 만든 동아시아 전략을 수정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이번 순방에서 보여준 것이다.

그렇게 해외 순방과 국빈 방문이라는 과제들을 처리하던 중, 갑자기 신종플루의 판데믹 사태라는 사상 초유의 전염병 사태까지 터졌다.

취임 초기부터 매운 맛을 제대로 보고 있는 매케인 대통령이었다.

겨우 지금 약간의 자투리 시간이 나왔다. 그렇지만 매케인 대통령은 그 시간도 허투루 낭비하지 않았다.

“이게 다 뭔가? 내가 보고 싶다고 한 건 유재원 회장에 대한 정보이네만.”

유재원에 대한 정보!

존 매케인 대통령의 머릿속에 그런 궁금증이 생긴 건 북한의 2대 독재자 사망 이후에 번개처럼 처리된 3대 세습 때문이었다.

미국이 유력하게 보고 있던 김정은 대신, 김정남이라는 생각지도 못한 존재의 등극이라니. 미국의 강력한 첩보망에는 김정일의 사망 직후, 김정남과 유재원 회장 사이에 짧은 통신이 오고 간 것을 파악해냈다.

당시 시기가 앨 고어 대통령 임기 때였다.

퇴임이 얼마 남지 않은 앨 고어 대통령은 북한에 큰 소요 사태나 급변 사태가 일어나지 않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하지만 세계를 불태웠던 세계 대전도 단초가 사소한 것에서 시작했다는 걸 알고 있는 미국 첩보 조직들은 사소한 것도 놓치지 않고 잡아 놓았다가 존 매케인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마침 한국에 다녀왔던 차에 북한과의 관계 설정에 고민 중이었던 존 매케인 대통령에게 딱 맞는 일이었다.

원래 구상대로라면 앨 고어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피날레로 북한과의 수교가 예정되어 있었다. 북한의 핵 개발 의혹도 잘 해소되었고, 북한의 유전 개발에도 미국이 한 발 걸치게 되었고, 경수로를 이유로 북한에 미군도 주둔 중이었으니 북한의 신용 회복 작업은 완료된 것이나 다름이 없다.

국가 차원에서 위조 달러를 만들고, 마약을 만들어 팔면서 불량 국가 타이틀을 달고 있던 것을 기억하는 사람은 이젠 아무도 없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김정일이 갑자기 사망하면서 앨 고어 대통령의 피날레 이벤트인 미국과 북한의 수교 행사가 무기한 미뤄진 것이다.

존 매케인이 보수 성향의 공화당 대통령이긴 해도 상식이 있기에, 북한과의 수교는 조만간 치를 예정이었다. 이번 한국에 다녀온 것도 북한과의 수교에서 한국의 의견을 듣기 위함이었다.

다만 신경이 쓰이는 건 북한의 3대 세습인 김정남과 유재원의 관계였다.

그렇게 의문이 생기다 보니, 존 매케인의 머릿속에서는 자연스럽게 유재원에 대한 궁금증도 한층 구체화 되었다.

존 매케인 대통령의 의중은 곧장 미국 정보공동체로 전해졌고, 그에 대한 미국 첩보 조직과 정보 조직의 대답이 바로 지금, 레졸루트 책상에 쿵 하고 내려앉은 커다란 상자였다.

“예, 대통령님. 여기에 원하시는 정보가 다 들어 있습니다.”

존 매케인의 지명으로 새롭게 CIA의 수장에 오른 존 맥마흔의 답이었다.

클린턴 때만 해도 CIA의 과학기술본부장이었던 존 맥마흔은, 프리즘 프로젝트 이후 승진을 거듭했고, 앨 고어 대통령 때는 부국장까지 올랐었다. 그리고서 존 매케인이 차기 대통령에 오르면서 CIA의 신임 국장으로 발탁되었다.

민주당 정권에서 부각된 인사를 CIA의 국장에 임명하는 걸 두고 공화당 안에서 조금 이견이 나오긴 했지만, 존 매케인의 인사 원칙인 능력 우선주의에 꼭 맞는 사람이 존 맥마흔이었다. 게다가 날로 발전하는 IT 기술이었고, 미국을 위협하는 위기 중 IT 관련 비중도 날로 커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존 매케인 대통령은 새로운 CIA의 국장으로 존 맥마흔을 선택했다.

IT 전문가이니 유재원에 대한 보고도 당연히 컴퓨터 파일로 전할 줄 알았는데, 상자라니.

존 매케인은 조심스럽게 상자를 개봉했다.

역시나.

딱 봐도 종이 문서가 잔뜩 들어 있을 것 같은 상자에는 큼직한 서류철들이 가득했다. 하나같이 탑시크릿이라는 붉은 도장이 찍혀 있는 서류들이었다.

“조지 W.H 부시 전 대통령 때부터 유재원 회장 관련 극비정보는 모두 종이의 형태로 가공하도록 하는 원칙이 세워졌습니다.”

조지 W.H 부시 대통령 때부터라니.

그러면 대략 1990년 때부터 미국 정보부는 이런 파일을 만들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어째서 그런가?”

“보시면 자연히 알게 되실 겁니다. 기왕이면 순서대로 보시길 추천합니다. 웬만한 소설보다 더 흥미진진하게 읽으실 수 있습니다.”

맥마흔 국장의 대답에 매케인 대통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유재원이란 인물에 대해서는 꼭 알고 넘어가야 할 일이었다. 생각보다 훨씬 많은 분량에 살짝 질리기도 했지만, 주말 동안 큰 일만 일어나지 않는다면 다 읽어 볼 수 있는 분량이었다.

“그럼, 의문이 생기면 언제든 불러주십시오.”

매케인 대통령은 인사를 하고 물러간 존 맥마흔을 뒤로하고, 상자에서 파일을 꺼냈다. 맥마흔 국장의 추천에 따라 제일 처음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가장 낡은 파일을 꺼내 들고 읽기 시작했다.

다음 날.

맥마흔 국장의 예언처럼 밤을 꼬박 새우며 상자 안의 극비 파일들을 다 읽어버렸던 존 매케인 대통령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충격에 빠져 버렸다.

=============================

[작품후기]

추천과 리플,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원고료 쿠폰, 후원 쿠폰도 완전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