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796화 (796/1,007)

772회

충격과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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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원은 시애틀의 ID 하이테크 신관에 임시 거처를 만들었다.

신종플루에 대한 ID 그룹만의 해답이 나올 때까지 숙소에서 벗어날 생각이 없었다. 티파니와 혜성이가 보고 싶을 테지만, 위기가 지나갈 때까지는 꾹 참을 생각이다.

“좋네요.”

그렇게 각오를 하고 도착했는데, 숙소의 수준은 샌프란시스코의 저택만큼이나 좋았다.

비서실에서 먼저 움직여 거처를 조성했는데, 저택과 비슷한 분위기를 내기 위해 노력한 티가 확실히 났다.

다만 유재원은 숙소에 짐만 풀고 바로 연구실로 향했다.

미국 질병관리본부에서 수령해 온 신종플루 샘플을 분석하여 완벽한 백신을 찾아내는 건 시간 싸움이었던 탓이다.

단 1분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신종플루 감염자의 증가세는 무서웠다.

미국의 경우 첫 감염자가 나온 샌디에이고뿐만이 아니라 인근 도시에서도 감염자가 나오기 시작했다. 멕시코의 경우 수도 멕시코시티에서 사방으로 전파 중이었다.

매일 쏟아져 나오는 신규 감염자 숫자는 벌써 1천 단위로 치솟았고, 미국과 멕시코의 누적 감염자 숫자도 1만 단위를 넘어섰다.

-안타까운 소식입니다.

-신종플루로 인한 사망자가 보고되었습니다.

유재원의 숙소 한쪽에는 보르도 텔레비전이 9대나 세팅되어 있었고, 9대의 텔레비전 모두가 신종플루의 첫 번째 사망자에 대한 속보를 전하고 있었다.

텔레비전을 9대나 세팅해 놓은 건 유재원이 텔레비전에 푹 빠져서는 아니다. 미국의 6개 공중파 채널과 3개의 뉴스 채널을 24시간 모니터링 하기 위한 도구로서 준비된 것이었다.

인터넷 미디어가 이미 뉴스 시장에서 커다란 지분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텔레비전도 여전히 강력했다.

특히 지금처럼 신종플루라는 전염병 사태에 있어서 일치된 메시지와, 정확한 뉴스를 보도하는 게 중요했다.

파편화가 심해 온갖 뉴스는 물론 루머까지 쏟아지고 있는 인터넷에 비해 텔레비전이 가지는 장점이었다.

곧이어 텔레비전에서는 사망자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가 나왔다.

사망자의 이름은 호세 벨라스케스. 39세. 작은 데이터베이스 관리 회사의 팀장. 멕시코 출장을 다녀온 뒤로 독감 증세가 나타났고,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지경이 되자 병원을 찾았다가 신종플루 확진을 받았다.

-의료진이 파악한 사인은 다발성 장기 부전.

-신종플루가 면역 체계에 교란을 줘서 급성 면역 이상 반응을 이끌어내는 것으로 의심.

텔레비전 속 누군가의 멘트처럼 안타까운 일이었다.

저 사람이 신종플루에 최초로 감염되어 슈퍼 전파자 노릇을 하긴 했지만, 스스로 슈퍼 전파자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속에서는 슈퍼 전파자는 물론 바이오 테러리스트가 되어 엄청난 트롤 플레이로 활약하긴 했지만, 현실은 다르다.

“아직까지 치명률은 좀 낮은 편이군.”

신종플루 감염자 중에 미국서 보고된 사망자는 호세 벨라스케스 씨 한 명뿐이었다. 멕시코에서는 아직 보고가 없었으니 1천 명 중에서 1명 사망이다.

치명률은 0.1%.

최종적으로 나온 신종플루의 치명률이 0.3%였으니 아직은 양호하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치명률 수치는 언제라도 튀어 오를 수 있다. 게다가 0.3%라는 수치는 타미플루와 리렌자 로타디스크를 미친 듯이 생산하고 적극적으로 처방한 덕에 나오는 수치였다.

유재원이 미국 질병관리본부에 타미플루와 리렌자 로타디스크에 대해 추천을 하긴 했지만, 실제 환자들에게 투약을 해서 구체적인 임상 데이터가 나온 후에야 정식 치료약으로 인정을 받을 것이다.

길리어드 사이언스로부터 타미플루의 독점권을 구매한 로슈에서도 아직 긴가민가하고 있을 시점이었다.

비록 부작용이 심한 치료제인 타미플루지만, 치명률을 낮추는 것에는 유용했다. 그런데 아직은 대량 생산을 시작하지 못한 시점이니 치명률이 튀어 오를 가능성은 무척 높았다.

마음이 급해지는 대목이었다.

유재원은 점심밥이 반 이상이나 남았음에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회장님! 마침 잘 오셨습니다.”

레이몬드 박사가 빠르게 점심을 끝내고 돌아온 유재원을 반갑게 맞이했다.

“아, 염기서열 분석이 끝났나요?”

유재원은 레이몬드 박사가 하려는 말을 먼저 알아듣고 답했다.

레이몬드 박사는 신종플루의 RNA 염기서열 분석을 담당했었으니 말이다. 과거에는 무척이나 시간이 오래 걸리던 작업이었다. 인간 DNA 분석에만 10년이 넘게 걸렸으니 말이다. 단순히 구조만 파악하는 것에 그렇게 긴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지만 신종플루의 RNA 분석은 5일 만에 끝났다. 유재원이 직접 ID 그룹의 기술과 자본을 투입하자 시간이 급속도로 단축되었다. 또한, 신종플루는 바이러스라서 사람과 같은 이중 나선 구조가 아니라 반쪽에 불과한 RNA였다. 게다가 길이도 짧아서 시간을 크게 단축할 수 있었다.

“네! 정답입니다. 서버에 업로드는 이미 시작했습니다.”

염기서열 데이터의 업로드?

생명공학과는 매칭이 되지 않는 단어일 것이다.

덕분에 본인이 직접 보고를 하면서도 목소리에는 어색함이 남아 있었다.

“좋아요. 그러면 이미 끝난 3D 모델과 결합하면 가상의 신종플루 바이러스가 완성되는 거죠.”

ID 하이테크에 신설된 바이오테크 팀에서 신종플루 백신을 만들기 위한 방법으로 선택한 것이 인공지능 기계학습을 통한 분석이었다. 기존에 백신이 나온 바이러스에 대한 딥러닝으로 지식을 쌓도록 하고, 새롭게 등장한 신종플루의 바이러스를 완벽히 분석해 백신을 찾도록 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백신을 도출해내는 인공지능 알고리즘이었는데, 이 알고리즘에 대해 완벽히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유재원이 유일했다. 급하게 뽑은 바이오테크 팀이었지만, 팀원들의 수준은 세계구급이었다. 하지만 이런 인재들도 기존 생명공학과는 궤를 달리하는 유재원의 방식을 이해하는 게 어려웠다.

만약 유재원이 지금껏 이뤄놓은 성과가 없었더라면, 분명 다른 말들이 쏟아져 나왔을 것이다.

“그나저나 참 신기하네요. 이렇게 완성된 가상의 신종플루는 현실의 것과 완전히 똑같단 말씀이시죠?”

“네. 장담합니다.”

유재원은 아직도 실감하지 못하는 레이몬드 박사를 위해서 친절히 설명했다.

21세기 중반이 되면 가상현실은 현실을 거의 완벽하게 대체하게 된다. 가상현실에서 구현된 각종 오브젝트가 현실을 99.999999% 반영하게 되면서부터 모든 게 달라졌다.

위험한 바이러스 연구도 사이버 세계에서 마구잡이로 다루면서 병에 걸릴 위험이 전혀 없었다. 물론 가상현실이 크게 발전하면서 다른 종류의 위협이 생겨나긴 했지만, 그래도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는 진보였다.

지금 유재원이 선보이고 있는 현실 바이러스의 가상화 역시 그러한 가상현실 기술의 일부였다.

이렇게 만들어진 가상의 바이러스와 백신 생성 알고리즘은 실제 인체 속에서 면역 체계가 작동하는 것처럼 움직이면서 싸울 것이다.

얼마나 현실과 똑같은 환경을 가상에 만드느냐가 백신 완성도에 큰 영향을 주지만, 현재 시점에서도 신종플루 백신 정도는 충분히 찾아낼 수 있다.

“이제 기다리면 되는 건가요?”

“그건 아닐세. 참고할 데이터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법이야. 게다가 찾아낸 백신이 현실에서도 제대로 작동하는지 검증하는 것이나, 검증이 끝난 백신의 양산은 또 다른 문제 아니겠는가?”

어떤 연구원의 질문에 레이몬드 박사가 답했다.

"네, 정답입니다."

유재원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인공지능이 찾아낸 백신을 대량 생산해 공급하는 건 또다른 문제다.

다만 백신 양산과 그 이후의 일은 이미 계약을 끝낸 셀트리온에서 담당하게 될 거다. 레이몬드 박사팀은 그저 백신 탐색 인공지능 알고리즘이 잘 돌아가도록 관리하는 일에 집중하면 된다.

더욱이 이번 프로젝트는 매우 전문적인 지식을 다루는 만큼 유지 보수에도 높은 지식이 필요하고, 이를 인공지능에 적용하는 것 역시 쉽지 않은 작업이다.

기계학습 프로그램이 멈췄을 때, 취해 줘야 하는 조치도 단순 프로그래밍과 차원이 달랐다.

디버깅도 디버깅이지만, 새로운 유전 정보를 입력한다거나, 연산이 멈춘 지점에 대한 생명공학 데이터를 입력해 줘야 하는 등의 작업이 필요했다. 신종플루에 걸렸다가 나은 환자로부터 체취된 항체에 대한 정보를 업로드 해주면 백신 탐색 시간 단축에 큰 도움이 된다.

레이몬드 박사와 그의 연구원들이 이번 프로젝트를 성공리에 마무리한다면 차세대 바이오 의약 분야 연구법을 숙달하게 될 것이다.

추후 바이오 팀 앞으로 내려질 과제도 지금과 비슷한 방식으로 치러질 예정이었으니 지금부터 익숙해지는 게 중요했다.

궁극적으로 유재원은 과거와 같이 가상세계에 분자 단위에서 일반 사람과 똑같은 ‘가상 인간’을 구현하고 이를 통해 현실에서는 사람 대상으로 절대 수행할 수 없는 인체 실험까지도 해낼 수 있기를 바랐다.

일단 버추얼 휴먼 프로젝트라 명명했는데, 갈 길은 한참 남았다.

단적으로 조금 전 유재원과 바이오테크 팀이 분석해낸 신종플루의 RNA 염기서열 데이터만 해도 18메가바이트라는 대용량을 자랑했으니 말이다.

바이러스의 RNA를 디지털 데이터로 변환하는 것에 이 정도 용량이었는데, 수백 조 개의 세포로 이뤄진 사람이라면? 게다가 인종의 종류도 다양했으니 이들 인종을 다 버추얼 휴먼으로 구현한다면 전 세계 서버들의 용량을 다 가져다 써도 모자랄 만큼의 무지막지한 데이터 크기를 자랑할 게 분명했다.

더욱이 그걸로 끝이 아니라 거대한 용량을 자랑하는 버추얼 휴먼을 주기억장치 상에 띄워 두고 온갖 실험을 하기 위해서는 엄청나게 거대한 컴퓨팅 파워가 필요했다.

그렇지만 당장은 불가능해 보이는 버추얼 휴먼도 미래에는 충분히 구현 가능했다.

실제로 유재원이 과거에 눈을 감기 몇 주 전에 들었던 소식이 버추얼 휴먼 프로젝트의 완성이었다.

당시에는 삶에 대한 의욕이 뚝 떨어지고 있었고, 몸의 상태도 죽음에 곧 이를 만큼 위중해서 자세히 알아보진 못했지만, 그래도 사실이었다.

“아참,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지.”

오랜만에 회귀 전의 편린을 꺼내 봤던 유재원이지만, 고개를 저으며 현실로 돌아왔다.

지금 중요한 건 과연 인공지능 골드가 제대로 된 백신을 얼마나 빨리 만들어 내 줄 것인가였다.

유재원은 적어도 30일을 넘기지 않길 바랐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신종플루 사태도 조만간 범유행 전염병, 이른바 판데믹으로 확대되겠지만, 뒤에 나올 2020년 전 세계를 강타할 코로나 19에 비하면 새 발의 피였다. 같은 판데믹이지만, 바이러스의 복잡성이나 전염성, 치명률이 차원이 달랐다.

지금 유재원이 사용 중인 백신 탐색 알고리즘은 신종플루 바이러스보다 차원이 다른 난해함을 가진 코로나 19 바이러스 백신도 불과 10시간 만에 찾아낼 만큼 찬란한 업적을 자랑하는 알고리즘이었다.

2020년에 이런 기술이 떡하니 나왔다면 정말 좋았을 거다. 그때의 혼란이란 이루 말도 못 할 만큼 엄청났고, 전 세계가 입은 인적, 물적 피해도 계산할 수 없을 만큼 거대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백신 탐색 알고리즘이 나온 건 기술적 특이점을 넘고 나서 4년은 더 지난 다음이었다.

긴가민가하는 사람들에게 기술 특이점을 넘어선 인공지능 골든실버는 마치 자기 과시라도 하는 것처럼 뚝딱 하고 백신을 찾아냈고, 백신을 만들 수 있는 레시피까지 뽑아주었다.

실제로 만들어진 백신은 코로나 19를 완벽히 잡아냈다.

더욱이 탐색 시간이 불과 10시간밖에 되지 않아서 변종이 나온다더라도 즉각 백신을 수정할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백신 탐색 알고리즘의 완성은 그야말로 인간과 바이러스의 싸움에서 인간의 승리를 선언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바로 컴퓨팅 파워였다.

골든실버가 뿜어내는 컴퓨팅 파워와 유재원이 만든 클라우드 시스템의 컴퓨팅 파워는 질적으로 너무나 차이가 났다.

클라우드 시스템은 현재 시점에서 지구에 둘도 없는 엑사플롭스 단위의 연산력을 뿜어내지만, 이걸로는 골든실버의 발끝도 따라잡지 못한다.

유재원 나름대로 최적화에 최적화를 거듭해 지금의 시스템 스펙에 백신 탐색 알고리즘을 욱여넣긴 했다. 다만 퍼포먼스가 얼마나 나올지는 유재원도 돌려보기 전엔 몰랐다.

30일 내에 나온다면 희망적이다.

만약 30일 내에 나온다면 2020년에 찾아올 코로나 19도 광범위한 피해를 발생시키기 전에 사전 봉쇄가 가능해진다.

유재원은 숨을 죽이며 모니터에 집중했다.

그렇게 날짜가 흘렀다.

벌써 3월의 중후반에 다다른 시점이 되어 임시 숙소 서재에서 인터넷을 살펴보던 유재원은 문뜩 가슴이 너무 답답했다.

유재원이 느끼는 답답함이란 바로 위기감 상실이었다. 위기감이 넘쳐서가 아니라 너무 부족하다는 게 문제였다.

“음? 처음엔 좀 호들갑을 떠는 것 같더니만, 지금은 나만 급한 것처럼 보이지?”

무지막지한 코로나 19와 비교하면 신종플루의 악명은 빛이 바래졌지만, 2000년대 반짝했던 사스보다는 훨씬 독했다.

실제 정보팀의 보고로는 멕시코에서는 매일같이 수천 명의 감염자가 나오고, 신규 사망자도 매일 10명 이상이 나오고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스에서 다루는 신종플루 속보의 비중이 어느 순간부터 뚝 떨어졌다. 그렇다고 매일 나오는 감염자 숫자가 뚝 떨어진 것도 아니었고, 사망자 숫자가 갑자기 획기적으로 준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미국이나 전 세계의 일상은 유지되고 있었고, 불안감도 없었다.

실리콘밸리의 기업들이나 미국의 대기업들을 다 돌아 봐도 ID 그룹 말고는 신종플루 위기에 대한 특별 조치는 없었다. 오히려 체온이 37도가 넘어가면 출근하지 말고 집에서 쉬라거나, 자택근무 확대 조치를 하는 ID 그룹을 유별나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텔레비전 뉴스에서도 신종플루 관련 소식은 뒤로 뒤로 밀려나고 있는 중이다.

이뿐만이 아니라 NBA 같이 좁은 실내에 무지막지한 관중이 몰리는 프로 스포츠 리그도 문제없이 열리고 있었다. 며칠 후인 28일에 LA에서는 세계피겨선수권이라는 커다란 대회도 열린다.

심지어 유재원에게 세계피겨선수권 초정장도 날아왔다. ID 파운데이션에서 전부터 후원 중인 김연아 선수가 세계피겨선수권에 진출한 덕이었다.

이쯤 되자 유재원은 자신이 신종플루에 너무 겁을 내고 있는 거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세계피겨선수권 초대장을 한참이나 보던 유재원은 응하기로 했다. 대신 개인 방역 수칙은 확실히 지키기로 했다.

방역용 마스크 착용 역시 당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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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추천과 리플,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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