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1회
충격과 공포
=============================
미국계 멕시코인 호세 벨라스케스는 엊그제 멕시코의 수도 멕시코시티 출장을 다녀온 뒤로 몸의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몸살감기인가 싶었다.
멕시코시티에 1월부터 감기가 크게 유행 중이었으니 말이다.
바로 약국에 가서 약을 처방받았다. 해열제와 몇몇 종합 감기약이었다. 그렇지만 약을 먹어도 차도는 별로 없었다.
몸이 으슬으슬 떨리고, 높은 열이 났다. 기침도 쉬지 않고 터졌다. 기침을 할 때마다 피를 토하는 것처럼 목구멍이 아팠다.
그렇게 3일을 끙끙 앓고서야 병원에 가겠다는 마음이 생긴 호세 벨라스케스는 본인이 직접 차를 끌고 나가려고 했다.
가족이라도 있으면 대신 운전이라도 해 줬을 텐데, 부모님과는 멀리 떨어져 살고 결혼도 하지 않은 상태였던 탓이다.
하지만 고열에 감기약까지 먹은 탓에 도저히 운전대를 잡을 수가 없었다. 상식적으로는 구급차를 부르는 게 맞지만, 돈이 너무 들었다.
호세 벨라스케스는 번듯한 직장인인 덕에 회사 의료 보험이 있었기에 병원에 갈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보험이 있음에도 구급차를 부를 때 본인 부담금이 상당하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감히 구급차는 부를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선택한 건 사설 콜택시였다.
21세기 스마트 시대답게 우버라는 사설 콜택시 서비스가 이달 초에 시작되었는데, 서비스 런칭 기념 이벤트로 콜 비용을 50%나 할인해 주는 행사를 하고 있었다.
우버로 부른 사설 콜택시를 타고 병원에 가는 동안, 호세 벨라스케스는 차 안에서도 기침이 끊이지 않았다.
병원에 도착한 다음에도 호세 벨라스케스는 제대로 된 진료를 보기까지 번호표를 뽑고 대기를 해야 했다.
응급실로 갔다면 빠른 조치를 받았겠지만, 그렇다고 응급실로 갈 만큼 또 급박하게 몸 상태가 나빠진 건 아니었고, 응급실 비용도 부담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기다린 끝에 내과 전문 의사를 만나서 검진을 받는데 뭔가 일이 심상치 않게 벌어진다는 걸 직감했다.
여러 가지 검사를 하더니, 급기야 DNA 분석을 해 봐야겠다고 하는 거 아닌가.
장대 같은 면봉을 하나 가져오더니 코안으로 쑥 밀어 넣었다. 뇌가 찔리는 거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 정도로 콧구멍 깊숙이 들어오더니 면봉을 돌돌 돌리면서 후비적거리기까지 했다. 너무나 자극적이라서 의자에서 펄쩍 뛸 정도였다.
그리고는 곧장 음압 병동이라는 곳으로 옮겨졌는데, 그야말로 외부와는 완전히 단절된 곳이었다.
결과는 다음 날 나왔다.
H1N1이라는 신종 인플루엔자에 걸렸다는 통보였다.
-샌디에이고에서 신종 인플루엔자 감염자가 발견되었습니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A형으로 H1N1으로 등록되었고, 질병관리본부와 보건당국은 역학조사를 시작했습니다. 시민 여러분의 각별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유재원의 인공 지능 비서 골드가 H1N1 키워드 검색에 성공하고 나서 몇 시간 지나지 않아 텔레비전에 긴급 속보가 떴다.
“빠르네.”
유재원은 텔레비전 속보에 감탄했다.
“빠른 거야?”
그런 유재원의 모습에 티파니가 되물었다.
“그럼.”
상당히 기민한 대응이었다.
전염병 사태에서 제일 중요한 게 초기 방역이었다. 거대한 산불도 작은 불씨에서 비롯되는 것처럼, 전염병도 시작은 조그마했다. 작은 감염 고리를 사전에 모두 차단한다면 전 세계적인 유행을 막을 수 있다…… 는 희망은 후속 보도로 와장창 무너졌다.
“응? 뭐야.”
십여분 후 후속 보도로 나오는 최초 감염자의 동선은 그야말로 상상 그 이상이었다.
감염자가 발열 증상을 느낀 후 3일 동안이나 평소처럼 활동을 했고, 병원에 올 때도 우버를 이용했으며, 병원에서 진찰을 받기 전까지 대기실에서 여러 사람들과 함께 기다렸다는 사실들이 속보로 쏟아졌다.
최초 감염자의 끔찍한 동선을 보아하니 신종플루 사태의 흐름이 이전과 비슷하게 전개될 것 같다는 느낌이 밀려 들어왔다. 게다가 최초 감염자가 나온 동네가 과거 신종플루 사태의 시발점이었던 샌디에이고 아닌가.
그나마 기대해볼 만 한 건 전보다 한층 더 기민해진 미국 질병관리본부의 행동력이었다.
블리자드로부터 오염된 피에 대한 데이터를 받은 질병관리본부는 전염병이 어떻게 확산되는 지 한눈에 이해할 수 있었다.
아제로스라는 사이버 세상은 현실과 거의 동일한 사회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다. NPC의 숫자도 많았고, 각자 직업이 있는 플레이어들은 저마다의 인적 네트워크를 이루며 행동했다. 친구 리스트처럼 가벼운 조직도 있고, 공격대처럼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조직도 있었다.
오염된 피를 통해 생성된 데이터는 전염병의 전파 패턴을 다양하게 시각적으로 나타내 주었다.
또한, 마스크에 대한 전염병 예방 효과도 즉각 확인되었다.
게임 시스템으로 구현된 마스크였지만, 착용의 유무에 따라서 감염 확률이 어마어마하게 달라진다. 본인뿐만이 아니라 본인이 속한 조직까지도 위험에 빠뜨릴지, 위험으로부터 구할지 갈리는 것이다.
이렇게 오염된 피라는 게임 속 이벤트에서 얻은 귀중한 지식들을 현실에 대입할 능력이 있다고 유재원은 판단했다.
이는 뉴스 마지막 쯤, 질병관리본부의 신종플루 긴급 지침으로 확인 되었다.
-미국질병관리본부, 외출 시 마스크 착용과 손 씻기 권장.
신종플루 사태 초기에 가장 필요한 지침이 바로 발표되었다.
“자기도 외출할 때 무조건 마스크 착용해.”
유재원도 티파니에게 바로 마스크를 권장했다.
“자, 이거.”
그냥 말로만 하는 게 아니라, 미리 준비한 마스크를 꺼내서 전해 줬다. 한국에서 공수한 KF 인증 방역 마스크였다.
중국이 개혁 개방 이후 세계의 공장을 자처하며 공장을 돌리기 시작하면서 동아시아의 공기 질은 급속도로 나빠졌다. 2000년대 초만 해도 서울에서는 파란 하늘을 볼 날이 많았지만, 2009년인 지금에는 겨울부터 봄까지는 미세먼지 경보가 울리지 않는 날이 없을 정도였다.
그에 따라 공기청정기 시장이 크게 확대되었고, 미세먼지 마스크도 만들어졌다.
유재원이 몇 년 전 ID 일렉트로닉스에 공기청정기를 만들어 보라고 했을 때만 해도 이런 제품이 팔릴까 싶어했던 사람들은 이제 없다.
금성전자는 물론 한국의 중소 가전 업계에서 공기청정기를 만들지 않는 업체가 없을 정도다.
MB필터를 만드는 건 좀 까다롭긴 했다. 그렇기에 ID 일렉트로닉스처럼 자체적으로 만드는 기업은 소수였고, 외부에서 원단을 사서 쓰는 기업들이 많았다.
다만 마스크 착용 권장에 사람들이 쉽게 따를 것 같진 않았다.
“흐음, 마스크라고?”
티파니만 봐도 그다지 반기는 기색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이나 일본과 같은 동양권에서는 미세먼지 때문이라도 마스크를 쓰는 게 자연스러웠지만, 미국에서는 약한 사람들이나 착용한다는 고정관념이 있는 탓이다.
게임에서도 이러한 고정관념이 보일 지경이었다.
오염된 피의 통계 데이터를 보면 두건 착용률은 미국 서버가 압도적으로 꼴찌였다. 그렇기에 사망 통계도 압도적으로 높았다.
“혜성이를 위해서라도 말이야.”
“으음, 혜성이를 위해서라면 써야지. 흐유.”
결국 유재원은 혜성이를 거론했고, 티파니도 혜성이를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마스크를 받았다.
“나는 잠깐 서재에서 일 좀 보고 올게.”
티파니에게 마스크를 건넨 유재원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신종플루 사태가 시작되었는데, 한가하게 밥을 먹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유재원도 지금 당장 할 일이 있었다.
“응, 너무 무리하진 말아.”
티파니도 그 점을 잘 알고 있었기에 식사 중간 자리를 뜨는 걸 이해해 줬다.
바로 서재에 온 유재원은 질병관리본부의 리처드 베서 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유 회장님?
전화는 바로 연결되었다.
오염된 피 통계 데이터를 제공해 준 덕에 그 이후로도 종종 연락을 주고받는 수준으로 친분이 쌓였다. 덕분에 신종플루가 발견된 당일이라 정신없이 바쁠 텐데도 유재원의 전화를 바로 받아 주었다.
“샌디에이고에서 신종플루가 확인되었다면서요?”
-회장님도 속보를 보셨군요? 설마 했는데, 신종 인플루엔자가 발견되니 놀랍기 그지없군요. 유 회장님의 선견지명이 남다르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말이죠. 혹시 오염된 피 이벤트도 이걸 예측하고 기획하신 겁니까?
무척이나 상기된 듯한 음성의 리처드 베서 소장이다.
오염된 피의 통계 데이터에 매진한 게 저번 달이었다. 그런데 이렇게나 빨리 분석된 데이터를 활용할 일이 생길 줄은 몰랐던 탓이다.
“네! 사실입니다.”
반면 유재원은 마음이 급했다.
한국과 달리 미국에서는 겸양의 자세를 높게 쳐주는 것도 아니라서 바로 수긍했다. 게다가 오염된 피 역시 신종플루에 대한 대비는 사실이었다
다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앞으로의 대응이 더 중요했다.
“아마 신종플루에 타미플루와 리렌자 로타디스크가 잘 들을 겁니다.”
-타미플루? 리렌자 로타디스크? 타미플루라면 길리어드 사이언스의 인플루엔자A형 치료제고, 리렌자 로타디스크라면 글락소스미스클라인사의 치료제군요.
2009년 신종플루 사태가 그나마 최악으로 가지 않은 건 타미플루 덕이 컸다. 부작용이 좀 심해도 약효는 확실했으니 말이다.
리렌자 로타디스크 역시 인플루엔자 치료제였다. 신종플루에도 효과가 있다고 검증되었다. 다만 캡슐약 형태인 타미플루와 달리 분말 흡입식이라서 천식이나 기관지 질환이 있는 환자에게는 적합하지 않은 형태였다.
“네. 맞아요.”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알고 있는 건 아니고 촉입니다.”
-아, 네.
리처드 베서 소장의 목소리만으로 기대감이 훅 날아가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유재원의 말을 절대 가볍게 넘길 수는 없을 것이다. 게다가 타미플루와 리렌자 로타디스크의 효용은 유재원이 먼저 언급하지 않더라도 질병관리본부에서 시중의 인플루엔자 치료제를 검증할 때 주머니 속 송곳처럼 튀어나오게 되어 있다.
유재원은 그저 질병관리본부가 수많은 치료제를 두고 검증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줄여 주기 위해 신종플루에 효과가 있는 걸 딱 짚어 주었다.
그렇지만 타미풀루나 리렌자 로타디스크는 정답이 아니다.
-회장님은 그 두 개의 약물을 알려 주시려고 전화를 걸었던 건 아니군요?
리처드 베서 소장은 감이 좋은지, 유재원이 다른 용무가 있다는 걸 알아챈 모양이다.
“네, 다름이 아니라 우리 ID 그룹도 H1N1 샘플을 얻을 수 있을지 여쭤보고 싶어서요.”
-신종플루 샘플을요?
“리처드 소장님도 아실지 모르겠지만, 제가 완성한 인공 지능은 이제 전문 분야에도 도전을 하고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바이오의약 분야죠. H1N1 바이러스를 분석해서 백신을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아, 네.
또, 수화기 너머로 리처드 베서 소장의 기대감이 빠지는 소리가 넘어왔다. 그도 그럴 것이 인공 지능을 통한 백신 연구라는 건 리처드 베서 소장처럼 현장 실무자 입장에서는 영 현실성이 없게 들렸기 때문이다.
백신을 만드는 게 얼마나 어려운 과업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리처드 베서였다. 백신 후보를 산더미처럼 확보해 놓고도, 죄다 꽝으로 나올 확률이 더 높은 게 백신 개발 사업이었다.
-그러시다면 기꺼이 제공해 드리겠습니다.
그렇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승낙이었다.
결과는 뻔히 보이는 일이지만 유재원과 같은 큰손이 의약 분야에 투자를 한다는데 질병관리본부 소장으로서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어디로 배달해 드릴까요?
“시간이 급한데 앉아서 기다릴 수 없죠. 저희가 샌디에이고로 사람을 보내겠습니다.”
그룹차원에서 바이오 의약품에 도전할 팀은 이미 결성되었다.
바이오 의약품 분야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는 레이몬드 바터스 박사를 팀장으로 삼고 그의 연구팀을 통째로 데려왔다. 여기에 바이오의약 개발에 어느 정도 성과를 보이던 스타트업업체도 인수했다.
제일 중요한 소속은 ID 하이테크였다.
원래는 ID 테크놀로지에 넣으려고 했는데, 주식회사로 전환된 ID 테크놀로지는 커다란 신규 사업을 할 때마다 공시를 해야 했기에 자유롭지 못했다. 게다가 첨단 기술은 ID 하이테크가 전문이었고, 연구 시설에도 건물과 장비가 대부분 마련되어 있어 바이오 의약품 개발에 안성맞춤이었다.
다음 날.
ID 하이테크의 레이몬드 박사 팀이 유재원의 연락을 받고서 전용기 편으로 샌디에이고에 도착해 신종플루 샘플을 인계받았다.
샘플을 인계받았다는 보고에 유재원도 오랜만에 샌프란시스코 집에서 나와 ID 하이테크가 있는 시애틀로 이동했다.
시애틀의 연구시설로 돌아온 레이몬드 박사팀과 힘을 합쳐인공 지능을 통한 신종플루 바이러스의 분석과 백신 개발 절차를 시작하기 위함이다
그 사이 신종플루 환자는 빠르게 늘어났다.
하루에 수백 명의 의심 환자들이 쏟아져 나왔다.
더욱 큰일은 샌디에이고에서만 생겨난 게 아니라, 이웃 나라인 멕시코의 수도, 멕시코시티에서도 신종플루 환자들이 보고되었다는 점이다.
그아말로 엄청난 확산 속도였다.
=============================
[작품후기]
추천과 리플,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원고료 쿠폰, 후원 쿠폰도 완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