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793화 (793/1,007)

769회

충격과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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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핵심 콘텐츠는 공격대다. 5인, 10인, 20인 공격대도 있지만, 최고의 공격대는 역시 40인 공격대였다.

공격대는 인스턴트 던전이 열릴 때마다 마구잡이로 모이는 막공과 레이드 대원들 전체가 정식 회원으로 구성된 공격대로 나뉜다.

당연히 능력과 인지도에서 정규 공격대가 크게 앞선다.

네임드 보스 몬스터 사냥에 최초 성공한 정규 공격대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서 슈퍼스타 취급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40인 레이드용 던전은 그 이하의 던전과는 난이도부터가 완전히 달랐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톱니바퀴 돌아가듯 40인의 마음이 맞아야 성공이 가능했다. 물론 사냥에서 나오는 포상도 40인 레이드용 던전이 제일 컸다.

과거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는 한 파티에 5명이 최대였고, 인원 수급이나 인원 관리, 렉 문제로 인해서 불타는 성전 확장팩부터 레이드 인원을 10인과 25인으로 한정하는 정책을 펼쳤다.

그렇지만 지금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는 최대 40인 공격대의 형태를 꾸준히 유지했다. 유재원이 만들어 준 네트워크 엔진으로 한 화면에 수백 명의 플레이어가 몰려 있어도 버벅거리지 않게 된 게 가장 큰 이유다.

다음으로는 2009년 현재 시점까지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인기는 전혀 식지 않았다.

원래대로라면 40인 막공도 하루 종일 사람들을 모아야 결성될까 말까 했는데, 지금은 모집하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자리가 찼다.

플레이어 중에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딜러 클래스의 자리는 지원자에 비해 늘 부족하지만, 그래도 명성과 장비 수준이 평균 정도만 되는 딜러라면 공치는 날은 없다.

막공이 이렇게 활성화되어 있는 상태였으니 40인 정규 공격대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특히 네임드라고 할 만한 퍼스트킬 타이틀 소유 공격대가 전 세계에 100개는 넘게 존재했다. 이들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의 구독자는 최소 수십만에서 많게는 500만이 넘는 구독자를 자랑했다.

그중에서도 최고의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공격대가 있었으니 엔시디아 공격대와 파라곤 공격대, 메소드 공격대 그리고 악의 제국 공격대가 있었다.

참고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진영이 얼라이언스와 호드로 나눠진 것처럼 공격대도 양대 진영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얼라이언스 진영 공격대와 호드 진영 공격대는 진영의 차이만큼이나 강렬한 투쟁심을 발휘했다. 같은 진영 내에서의 공격대끼리도 경쟁은 하긴 하는데, 반대편 진영의 공격대와 투쟁하는 것처럼 극심한 건 아니다.

필드에서 양대 진영의 전쟁이 터졌을 때 공격대까지 참가하는 수준까지 올라간 건 아직 없었다.

공격대는 전쟁보다는 레이드를 위해 맞춰진 조직이기 때문이다. 만에 하나 전쟁에 참가했다가 죽어서 레벨이라도 떨어지면 공격대 운영에 차질이 컸기에, 공격대 차원에서 전쟁 참가를 금지하는 규칙을 만들어 놓은 경우가 많았다.

참고로 레벨 다운은 원래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는 적용되지 않았던 규칙이지만, 이번에는 전쟁서버 한정으로 적용되었다. 레벨 다운 말고도 한국식 온라인 게임의 매운 맛이 꽤나 첨가시켰는데, 지금 보는 것처럼 반응은 매우 긍정적이었다.

하여튼, 공격대는 레이드가 최우선 순위의 가치였다.

그런 상황에서 40인 인스턴트 던전이 새롭게 나왔고, 보스 몬스터 역시 이제껏 봉인 상태였던 혈신 학카르라는 게 밝혀지면서 공격대들은 기민하게 대응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빠른 움직임을 보인 건 엔시디아 공격대였다.

-엔시디아의 형제들아, 모여라!

엔시디아의 공격대장 쿤겐의 외침에 수많은 이들이 호응했다.

현재 제일 많은 보스 몬스터 퍼스트킬 기록을 가진 엔디시아였기에 이번에도 그 타이틀을 놓치지 않으려고 했다. 물론 엔시디아의 뒤를 바싹 쫓는 공격대 역시 빠르게 소집되어 전열을 정비했다.

그렇게 모인 공격대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서버 전체에 수십 곳이 넘었다. 이들은 인스턴트 던전이 열리자마자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진입했다. 퍼스트킬의 명예와 혈신 학카르의 보물창고가 자신들의 몫임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같은 시간.

“너무 달아올랐네. 단순한 인스턴트 던전 레이드 이벤트가 아닌데 말이지.”

유재원도 엔시디아 공격대의 출진 행사를 지켜보고 있었다.

덕분에 무턱대고 던전에 진입하는 엔시디아 공격대를 보며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유튜브 라이브까지 켜 준 엔시디아 공격대였기에, 아주 편안한 상태로 혈신 학카르의 레이드 상황을 직관할 수 있었다.

공격대들 모두가 단순하게도 인스턴트 던전 공략과 보스 몬스터 학카르를 가장 먼저 처치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다.

이번 이벤트는 단순 레이드 경쟁이 아니라, 아제로스 전체를 뒤덮을 전염병과의 전쟁이었다. 분명히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홈페이지에도 이러한 힌트를 숨겨 놓았다. 대놓고 말해줬다간 김이 빠지니 판타지 세계관에 맞춰서 서술을 해 두었다.

그렇지만 공격대 모두는 오랜만에 등장한 40인 레이드 던전에 흥분해서 퍼스트킬을 따내겠다고 전력투구 중이었다.

과연 오염된 피 이벤트가 어떻게 끝날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 될 것 같다. 다만 유튜브 스트리밍으로 전송되는 공격대들의 공략을 보고 있자니, 첫 도전에서 학카르 킬에 성공할 공격대들은 없어 보였다.

다음 날, 아침.

-엔시디아 공격대, 전멸!

-도트 데미지에 전염 특성의 오염된 피 스킬이 치명적.

-파라곤 공격대, 후퇴!

-학카르 던전 도전했던 막공들 대부분 전멸.

-학카르의 오염된 피 스킬에 대응책 찾는 게 급선무!

가족과 오붓한 아침 식사를 마치고, 서재로 출근한 유재원이 인터넷에 접속하자마자 볼 수 있는 속보였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40인 레이드는 기본이 4시간 이상이었다. 최초 등장한 보스라서 제대로 된 공략이 없을 때에는 8시간을 훌쩍 넘기기도 한다. 막공으로 40인 레이드가 성공한 경우가 거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날 처음 만난 사람들끼리 모여 봐야 제대로 된 시너지 효과가 나오지 않는다.

어제 유재원은 유튜브로 새벽 2시까지 엔시디아는 물론 다른 공격대들이 좌충우돌하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일어났다.

역시나 유재원의 예측처럼 어제 첫 번째 도전에서 레이드에 성공한 공격대는 하나도 없었다. 학카르가 아낌없이 뿌리는 오염된 피에 대한 대책을 세웠던 공격대는 전무했으니 말이다. 무데뽀로 냅다 학카르 레이드를 시작한 엔시디아 공격대의 초반 기세는 굉장했다. 중간 보스들을 빠르게 격파하면서 순식간에 학카르가 강림하던 대공동까지 진입했다.

그리고 거기서 전멸했다.

오염된 피라는 스킬은 아주 정교하게 설계되었다.

21세기 가장 끔찍했던 바이러스의 특성이 오염된 피라는 스킬에 그대로 적용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형광 녹색으로 빛나는 오염된 피에 직격 당하면 큰 데미지와 함께 도트 데미지도 들어간다. 바닥에 뿌려진 오염된 피와 닿았을 때에도 도트 데미지가 들어간다. 그리고 바닥을 잘 피했다고 해도 도트 데미지에 걸린 공대원들 주변에 5분 이상 같이 있으면 전염이 되고, 학카르와 10분 동안 대면하고 있으면 무조건 감염된다.

도트 데미지는 몇 분간은 1초에 1데미지 정도로 미미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데미지의 크기가 2배, 3배로 커지면서 1시간만 지나면 풀 버프 상태의 만렙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해진다.

그렇기에 단순 무식한 학카르 공략 방법은 오염된 피에 닿지 않으면서 10분 내에 보스를 처리하는 것이다.

일반 40인 던전의 보스 몬스터보다 3배는 더 많은 피통을 가진 학카르를 10분 만에 처리할 수 있는 딜량을 보유한 공격대는 지금 없다.

그러니 오염된 피를 정화할 수 있는 성수와 오염된 피의 전염성을 떨어뜨리는 두건을 착용해야 시간을 벌 수 있다. 또한, 오염된 피에 맞은 대원은 랜덤으로 오염된 방어구를 교체해야 한다.

“필드 전염은 아직인가?”

그런데 여기서 더 무서운 점은 학카르 던전에서 나왔다고 해서 오염된 피의 저주가 풀리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오염된 피의 특성은 그대로 유지되는데, 감염된 사람 옆에 5분 이상 같이 있으면 100% 전염이다. NPC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그렇기에 레이드를 하고 나온 공대원 중에 오염된 피 효과가 남아 있는 상태라거나, 오염된 장비를 정화하지 않고 다시 착용하게 되면 슈퍼 전파자가 되어서 병을 퍼트리게 된다.

인터넷 커뮤니티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대도시 상태를 보니 아직 본격적인 전염이 시작되진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인스턴트 던전 밖에서 최초 전파가 시작되면, 병이 확산되는 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며칠 후.

새해가 시작된 지 어제 같은데, 벌써 2월이 되었다.

-오염된 피 사태! 급속도로 확산!

-스톰윈드, 오그리마 등 주요 대도시에서 사망자 1천 명 이상! NPC도 감염!

-전염병 전파에 따른 유저들의 반응도 천태만상!

-버그인가? 설계된 이벤트인가?

-버그이든 게임이든, 게임의 범주 초월.

오염된 피 이벤트가 시작되고 나서 수일이 지나자, 사태의 흐름은 과거와 거의 동일하게 흘렀다.

학카르 레이드에 참여했던 공대원으로 오염된 피는 필드에 나왔고, 빠르게 전파되었다. 오염된 피에 걸리게 된 플레이어나 NPC들이 죽어 나가기 시작했다.

체력에 올인한 만렙이 쉬지 않고 포션을 마시며 버티더라도 게임 시간으로 3일을 넘기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이번에 일어난 오염된 피 사태가 과거와 다른 점은 현실의 방역용 마스크 역할을 하는 하얀 두건이 있고, 오염된 피 전용 치료제의 존재와 이를 만들기 위한 재료를 구하는 퀘스트도 존재한다는 점이다.

두 가지를 적절하게 사용하면 필드와 도시로 스며든 오염된 피를 제거할 수 있고, 이번 사태의 근원인 학카르 레이드도 성공할 수 있다.

아무리 어렵게 만든 콘텐츠라도 순식간에 공략해 버리는 게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유저들, 일명 와우저 혹은 와저씨들이었다.

그렇지만 이번은 달랐다.

-더러운 트롤들이나 쓰는 두건은 거절한다!

오염된 피의 전염 속도를 크게 늦춰 주는 하얀 두건 자체를 얼라이언스 진영 쪽에서 먼저 거부했다.

“역시 이럴 줄 알았다. 그렇다고 호드가 잘하는 것도 아니고.”

-트롤도 안 쓸 하얀 두건을 누가 쓰냐?

호드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호드는 그나마 빨간색 두건이라면 드래곤독이라는 유저가 유행을 시켜놓아서 많이들 쓰고 있지만, 하얀 건 밋밋해서 싫다는 것이다. 오염된 피에 효과적인 건 깨끗한 하얀 두건이고 하루에 한 번씩 새로운 걸로 착용해야 하는데 그걸 지키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치료제는 더 가관이다.

오염된 장비를 정상으로 돌리는 정화제의 가격이 폭등했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는 상점 NPC들이 내놓는 물량도 무한한 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물량이 엄청나게 부족해서 모자란 것 역시 아니었다. 그저 한두 개씩 산다면 모두에게 돌아갈 수 있는 수량을 세팅해 두었는데, 큰돈 냄새를 맡은 이들이 모두 쓸어갔다. 그리곤 경매장 혹은 대도시에 좌판을 깔고 값을 몇 배로 올린 정화제를 팔았다.

치료제는 더 했다.

일단 치료제 재료는 노가다성 퀘스트를 수행해야 얻을 수 있고, 어떤 퀘스트를 얻느냐에 따라서 치료제의 성능도 달라졌다.

1골드짜리 단순 힐링 포션을 치료제라면서 100골드에 파는 건 약과고, 잘못된 레시피로 만들어져 부작용이 더 큰 치료제를 멀쩡한 치료제인 것처럼 팔기도 했다.

또한, 일부 유저들은 바이오 테러리스트가 되어서 일부러 오염된 피에 걸린 후에 사람들에게 의도적으로 전파하기도 했다.

얼라이언스와 호드라는 양대 진영으로 갈려 있는 구도 역시 바이오 테러리스트가 활개를 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줬다.

오염된 피 이벤트가 시작된 지, 불과 일주일 만에 스톰윈드와 오그리마는 바이오 테러리스트에게 방역망이 2번씩 털렸다. 바이오 테러리스트가 아니더라도 이미 오염된 피가 퍼져서 인구의 50%가 죽음을 경험했을 정도였는데, 테러로 인해서 80%가 다 몰살되었다.

안타까운 점은 이번 오염된 피 이벤트가 워낙 매운 맛이다 보니 라이트하게 게임을 즐기던 유저들에게는 너무도 어려웠다는 점이다.

그로 인해서 부정평가가 늘어났고, 실제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메타크릭 평점이 0.1점이나 하락했다.

그렇지만 전염병의 가장 무서운 점은 평소 당연하다고 여겼던 일상이 송두리째 파괴된다는 점이었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유저 한정이지만, 전염병의 무서움을 누구나 체감할 수 있다는 것에서 이번 이벤트의 의미는 너무도 특별했다.

-온라인 세계의 전염병 발발!

-전염병의 실체적 확산 경로의 확실한 예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오염된 피 사태로 온라인이 하도 떠들썩하다 보니, 급기야 공중파를 탔다.

미국의 NBC와 영국의 BBC에서 크게 다루었고, 덕분에 한국 공중파에서도 해외 소식을 소개할 때 비중 있게 다뤘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서버가 크게 열린 곳이 한국이었고, 한국도 오염된 피 사태로 인해 난리가 났음에도 외신의 보도가 있기 전까지는 이를 다루는 방송국이나 신문이 없었다.

그나마 외신 보도가 시작되자 한국 서버에서 일어나고 있는 케이스에도 집중했다.

한국의 서버에서는 그나마 두건 사용률이 높았고, 치료제 확보 퀘스트에 압도적인 물량이 투입되면서 다른 지역보다는 사망률이 많이 낮은 편이었다.

또한, 학카르 레이드를 위한 드림팀 구성의 진척도 제일 빨랐다. 오염된 피 사태의 완전 종식은 숙주인 학카르를 죽여야만 끝나는 일이다. 그런데 미국이나 유럽 서버는 필드와 도시에 풀린 오염된 피 때문에 제대로 된 준비를 할 수가 없었다.

언론 보도가 시작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유재원의 ID톡 알람이 울렸다.

“왔다.”

-회장님! 미국 질병관리본부 리처드 베서 소장의 연락입니다!

-오염된 피 사태에 대한 통계 데이터를 얻고 싶다고 합니다.

“바로 연결해주세요!”

미국 질병관리본부.

오염된 피 이벤트를 설계했던 유재원이 가장 기다리고던 연락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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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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