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7회
충격과 공포
=============================
“30%라니.”
애매한 수치였다.
그렇지만 2009년의 굵직한 사건들을 다 알고 있는 유재원에게는 경각심을 자극하는 숫자였다. 유재원의 경고등을 깜빡거리게 만든 건 원래 흐름이라면 3월에 벌어질 H1N1 신종플루 유행이었다.
신종플루는 3월 하순쯤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서 최초 보고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순식간에 전 세계로 유행이 되었다.
미국에서 최초 보고가 시작되었다고 해서, 미국이 진원지라고는 확신할 수 없다. 그나마 세계 최고 수준의 질병관리본부가 있는 미국이라서 H1N1 바이러스가 유행한다는 걸 파악한 것이지, 다른 나라들은 신종 바이러스 분석 능력이 떨어졌으니 말이다.
멕시코에서 올라온 보고서 역시 신종 바이러스가 아니라 독감(인플루엔자)의 발병 수가 늘었다고만 되어 있다.
만에 하나 지금 멕시코에 유행 중인 독감이 신종플루라면?
유재원은 바로 답신을 보냈다.
독감의 유전자 분석을 해 보라는 지시였다. 만약 이제껏 보고되지 않은 독감이라면 샘플을 확보하라는 명령도 추가했다.
현실적으로 멕시코에서 수행 가능할까 싶은 지시였다. ID 그룹의 계열사들이 멕시코에 직접 진출해 있지 않고, 정보팀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충분히 가능했다. ID 파운데이션의 활동 조직이 있었기 때문이다.
ID 파운데이션은 전 세계 거의 모든 나라에 진출한 후원 재단이었다. 심지어 북한에도 진출해 있었고, 그 위험하다는 소말리아에도 있다.
참고로 소말리아에 사람을 억지로 보낸 건 아니고, 해당 나라에서 활동하던 사회운동가나 복지가를 ID 파운데이션으로 고용하고, 자본과 장비를 제공해서 후원과 복지 사업을 펼치는 형태였다.
한국과 미국에서는 장학 사업이 중심이었고, 소말리아 같은 최빈국에서는 의료 지원이 중심이다. 멕시코 역시 의료 지원 중심이기에, 바이러스의 DNA 검사 정도는 충분히 해 볼 수 있는 일이었다.
“다음은…….”
유재원은 그룹 전산망에 접속해 신종플루 대비 수준을 체크했다.
새해 특집 대담에서 레이 커즈와일에게 말했던 그대로 ID 그룹이 직접 바이오 관련 계열사를 거느리진 않았지만, 투자를 해 놓은 업체들은 수십 곳이었다. 이 중에서 바이오 의약품을 복제할 수 있는 수준, 이른바 바이오 시밀러 제조 업체를 추려 보는 것이다.
의외로 답은 빨리 나왔다.
“역시 셀트리온이네.”
한국의 바이오 의약품 업체인 셀트리온이 제일 앞서 있었다.
시중에 나온 바이오 의약품 모두는 아직 특허가 풀리기 전이었다. 이 중에서 그나마 제일 빨리 특허가 풀리는 건 관절염 치료제인 레미케이드와 유방암 치료제 허셉틴이다. 2012년 특허가 풀리는데, 셀트리온은 일찌감치 바이오 시밀러 양산에 투자한 덕에 2005년에 제1공장을 준공했고, 복제 의약품도 이미 생산되어서 임상 실험을 준비 중이었다.
바이오 시밀러는 오리지널 의약품이라도 생산 주체에 따라서 수율이 달라지는 탓에, 다른 회사가 복제한 바이오 시밀러의 경우에는 성능의 차이가 더 커질 수 있었다. 그렇기에 완벽하게 복제되었다고 해도 임상 실험 절차는 신약 수준으로 복잡했다.
그럼에도 셀트리온에 이렇게나 열심히 투자한 건 바이오 의약품 시장의 크기가 2010년경에는 연간 2천억 달러로 예측될 만큼 거대했기 때문이다. 사실 이것도 현시점에서 예상한 크기였고, 실제로는 이보다 더 거대했다.
시장 선점을 위해서 셀트리온은 벌써 용량이 5만 리터에 이르는 생산 설비를 완공한 상태였고, FDA 인준을 받았다.
무엇보다 유재원의 마음을 끄는 건 셀트리온에 백호 펀드의 지분이 상당했다는 점이다.
바이오 시밀러라는 단어 자체가 생소한 한국에서 대규모 설비 투자를 한다는 건 너무도 위험한 일이었다.
게다가 셀트리온이 창업했던 당시엔 황 박사의 줄기세포 논문 사기 사건으로 인해 바이오 스타트업 업체엔 찬바람이 부는 시기였다.
뜻이 있는 업체들이 돈을 빌릴 구석이라고는 그나마 백호 펀드였다.
백호 펀드의 위상은 IMF 외환위기 당시에도 거대했다. 자고 나면 들려왔던 게 거대 기업들의 부도 소식이었다. 유재원이 사재를 털어 만든 백호 펀드가 출범하고 나서부터는 전 국민을 가슴 철렁하게 만든 부도 소식이 크게 줄었다.
자본금 100억 달러로 시작했던 백호 펀드는 10년이 지난 지금 1,200억 달러 규모로 확 불어난 상태였다.
일성과 미래, 금성과 같은 한국 재계 순위 1, 2, 3위 기업들의 주가만 봐도 IMF 때보다 최소 10배에서 많게는 20배 이상 오른 상태였다.
요즘 한국 증시의 상승을 주도하고 있는 건 게임 주식과 토목, 건설 주식인데, 백호 펀드가 대량 보유하고 있는 주식들이었다.
바이오 관련 주식들도 예외는 아니다.
백호 펀드는 셀트리온의 지분도 보유 중이었다.
“39% 정도면 양호하지.”
이 정도 지분이면 유재원이 생각하는 H1N1 신종플루 백신 양산에 대해 충분히 컨트롤 할 수 있는 수치였다.
H1N1 백신 레시피는 ID 그룹에서 만들고, 유통도 ID 그룹에서 하면서, 생산만 셀트리온에 위탁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바이오 의약품 연구 파트를 신설해야겠군.”
유재원의 머릿속에는 온갖 백신의 단백질 구조는 물론이고 양산할 수 있는 방법도 고스란히 들어 있었다.
아직 멕시코의 독감 증가세가 H1N1이란 신종플루라는 것으로 확정되지 않았지만, 유재원의 결정에는 거침이 없었다.
멕시코가 아니더라도 3월이면 미국 내에서 유행이 시작된다. 미리 만들어 놔야 대비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음, 업무 형태도 신종플루 유행에 대비해야겠지.”
유재원은 아주 간단한 지침을 추가했다.
‘아프면 쉬자!’
‘특히, 감기에 걸린 것 같으면 푹 쉬고 나오자!’
문장은 간단했지만, 실행하는 건 무척이나 어려운 지침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의 직장 문화는 시키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근무 시간을 늘리는 게 미덕으로 자리를 잡았으니 말이다. 기본적으로 나오는 월차나 연차도 마땅히 쓰고 싶은 날에 제대로 쓰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윗사람들이나 동료들의 눈치가 보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ID 그룹은 창업부터 미국식 기업 문화가 기본이 되었다.
조직의 최소 단위도 팀 단위로 짜여 있었기에 한국식 기업 문화에 크게 침식된 건 아니었다. 하지만 모든 계열사들이 그런 건 아니었다.
ID 일렉트로닉스 같은 경우는 일성, 미래, 대호라는 한국 굴지의 재벌 기업 셋이 거느리고 있던 전자업체를 하나로 흡수하며 출범된 기업이었다.
색이 다른 기업의 조직 셋이 한 지붕 아래 모였으니 얼마나 난리였겠는가.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다. 그나마 지금은 백색가전 사업부와 반도체 사업부라는 양대 축으로 중심을 잡고 순항 중이었지만, 여기까지 오는 데에는 유재원과 ID 일렉트로닉스 임직원들의 노고가 엄청났다.
“그때, 참 많이도 쳐냈지.”
유재원도 열심히 조직 안정화에 힘을 썼다.
그 방법이 바로 ‘해고’였다. 조직 안정과 해고라니 뭔가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ID 일렉트로닉스 한정해서는 가장 효과가 빠른 처방이었다.
일반적으로 해고라는 건 저성과자들에게 내려지는 가장 강력한 처분이었다. 하지만 유재원이 해고라는 카드를 꺼내는 건 성과와는 상관이 없었다.
조직력을 망치는 사람들이 유재원의 주된 표적이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아무런 규칙도 없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해고하는 건 아니다. 한국에서 ‘정규직’이 갖는 특별한 의미 중 하나는 해고가 어렵다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웬만하면 정년이 보장되는 공무원 수준은 아니지만, 대기업 정규직이면 마냥 해고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재원은 그러한 어려움을 감수하고 해고를 했다.
이렇게 해고된 사람들이 쌓이고 쌓여서 충분한 빅데이터가 만들어졌고, 이들의 공통점을 뽑아 보자 다음과 같이 나왔다.
-신속한 결정이 필요할 때 잦은 회의나 위원회 개최를 제안하는 사람
-회의에서 주제와 관련 없는 이야기만 늘어놓는 사람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면 구체적이지 않다느니, 단어가 부정확하다느니 시비를 거는 사람
-실패할 때 누가 책임질 거냐고 말하며 공포감을 조성하는 사람
-차별 받고 있는 거 아니냐며 불평 확산을 하는 사람
-신입사원에게 관행이라며 불법이나 잘못된 방향으로 업무를 지시하는 사람
임직원 중에 6개 중 하나라도 해당되면 무조건 해고였다.
특히 유재원이 제일 싫어하는 사항이 책임 전가를 하는 사람이었다.
회의나 위원회 개최를 밥 먹듯 제안하고, 회의 석상에서 실패할 때 누가 책임질 거냐고 말하는 사람을 제일 싫어했다.
팀장급 이상 임원들에게 업계 평균 최소 50% 이상 많은 임금을 주는 건 책임을 지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본인이 져야 할 책임을 부하 직원들에게 전가하는 꼴을 유재원은 절대 볼 수 없었다.
다음이 불평을 확산하는 사람이다.
사내 정치질의 시작이 불평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었다. 하나가 되어 최선을 다하는 것도 모자랄 판에 콩가루 집안처럼 흩어져 있으면 최악이었다.
다만 현실적으로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해서 이런 사람들을 골라내는 건 어렵다. 다른 기업이라고 이런 사람들이 조직력을 좀먹고 있다는 걸 몰라서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찾아내는 게 어려워서 솎아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ID 그룹이 갖는 차별성이 여기에 있다.
ID 그룹은 말단 임시직이라도 유재원에게 다이렉트로 메시지를 보낼 수 있었다. 바로 ID 톡으로 말이다.
ID 그룹의 임직원 숫자가 1백만에 근접하고 있는 지금이었으니, 하루에 수천 개의 메시지가 쌓였다.
새해와 같이 특별한 날짜에는 수만 단위를 가뿐하게 넘었다.
소수의 직원들은 유재원이 읽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 시시껄렁한 잡담을 보내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일부 영리한 직원들은 내부 고발을 위한 통로로 활용하기도 했다.
동시에 이러한 인식이 가능한 건 유재원의 ID톡 관리에 인공지능 골드의 어시스트 덕이었다. 농담을 보내는 직원에겐 농담으로 돌려줬고, 내부 고발을 한 직원에게는 내부 고발의 내용에 따라 처리 과정에 대한 경과를 답신으로 보냈다.
이러한 처리 결과가 쌓이면서 하나의 자료가 되자 시답잖은 농담을 보내던 숫자도 크게 줄어들었다.
2009년 지금 시점에 이르러서는 많은 직원이 유재원과의 다이렉트 메시지를 신중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이처럼 여타의 기업과는 다른 차원으로 다져진 ID 그룹의 조직력이었다.
유재원은 자신의 지시가 ID 그룹 전체에 하달되어 즉각 시행될 거라고 믿었다. 샌프란시스코의 ID 테크놀로지 본사나 태평양 너머의 대한민국 경기도 덕진리 공단의 패키지 공장 생산직까지 말이다.
멕시코에서 독감 환자가 평년보다 30% 늘었다는 보고서에서 시작해 여기까지 온 유재원은 레밍턴과 최강욱 부회장 그리고 ID 그룹 계열사 사장들에게 공문을 보내는 것으로 오늘의 업무를 마무리했다.
며칠 후.
-나는 내가 가진 능력을 다해 성실히 미국 대통령직을 수행하고 미국 헌법을 존중, 수호할 것을 엄숙히 선언한다. 신이여 나를 도우소서.
유재원의 서재 한쪽 벽을 차지하고 있는 대형 보르도 LED 텔레비전에서 존 매케인 대통령의 취임식 선서 장면이 비치고 있었다.
무려 16년간의 민주당 정권의 집권에 마침표를 찍고서 대통령이 된 존 매케인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그렇지만 현실이 존 매케인의 표정처럼 녹록한 건 아니었다. 미국 대통령의 힘은 강력했지만, 이를 견제하는 의회의 힘도 상당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미국 국회의 구성을 보면 하원이든 상원이든 민주당이 반수 이상이었다. 존 매케인이 무슨 정책을 추진할 때마다 사사건건 의회의 간섭을 피할 수가 없다는 이야기였다. 게다가 하원 의장은 민주당에서도 강경파로 분류되는 낸시 펠로시였다.
“부시나 오바마보단 낫겠지.”
그래도 유재원의 걱정이 덜한 건 최악인 부시는 피했다는 안도감이었다. 게다가 부통령으로 에드 로이스가 있으니, 유사시 존 매케인 대통령과의 소통도 충분히 가능했다.
걱정이 없는 유재원은 바로 텔레비전을 끄고, 업무로 복귀했다.
마침 유재원이 지시했던 사안 중 하나의 결과 보고가 올라왔다.
-멕시코 독감 바이러스 DNA 분석 결과 H5형으로 파악됨.
멕시코에서 발생 빈도수가 30% 높아진 독감의 바이러스 원인 유전형질이 밝혀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신종플루인 H1N1형은 아니었다. 하지만 H5형도 감염성이 높은 인플루엔자 A형 바이러스였다.
신종플루는 아무래도 원래의 흐름 그대로 샌디에이고에서부터 시작될 모양이었다.
H1N1 바이러스를 포집하진 못했기에, 신종플루 백신 개발 프로세서에는 일시 정지가 걸렸다. 아무리 정교한 바이러스 분석 알고리즘이 있다고 해도, 분석할 바이러스가 없는 상태에서는 프로그램을 돌릴 수가 없다.
선제대응을 할 수 없다는 게 아쉬운 일이었지만, 파장이 큰 사건인 만큼 순리대로 풀어가는 수 밖에 없다.
“대신 이건 가능하지.”
유재원이 새롭게 꺼낸 문서는 바로 이벤트 기획안 파일이었다. 기획안의 이름은 ‘오염된 피’였고, 수신인은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의 마이크 사장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