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5회
충격과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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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격과 공포
블루오션이란 단어 하나로 유재원과 레이 커즈와일 사이에 빠르게 공감대가 형성되고 이야기가 진행되려는 그때.
“잠깐! 블루오션 개척이라고 하셨는데요. 블루오션이 뭔지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브라이언 앵커가 브레이크를 걸었다.
블루오션이란 단어를 브라이언 앵커가 모르는 건 아니었다. 다만 뉴스 앵커답게 배경지식이 전무한 시청자도 있다는 걸 가정하고서 그들을 배려해야 했다.
“제가 설명해 드리죠.”
여기에서 레이 커즈와일이 나섰다.
“블루오션 개념은 프랑스 인사이드 경영대학원의 김위찬과 러네이 모본 교수의 논문 ‘블루오션 전략’에서 나온 개념입니다. 막 탄생한 푸른 바닷물로 가득한 대양을 떠올려 보세요. 그리고 그 바다를 홀로 독차지한 생물이 있다면, 그 바다에서는 경쟁이라는 게 없습니다. 반대의 개념은 레드오션이죠. 붉게 물든 바다에서는 수많은 생물이 생존을 위해 피를 흘릴 정도로 치열하게 경쟁해야 합니다. 바닷물이 붉다는 게 아니라, 이들이 흘린 피로 붉어졌다고 해야겠지요.”
레이 커즈와일의 설명대로 김위찬과 러네이 모본 교수의 블루오션 전략이란 논문은 동명의 책으로 출판되어서 43개 언어로 350만 부의 판매고를 기록한 히트작이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들은 브라이언 앵커는 추가적인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레이 박사님은 유 회장님의 2009년 비전을 듣고 왜 놀라신 거죠?”
블루오션의 개념에 대해 물어보는 건 배경지식의 설명을 위해서였고, 본론은 바로 이 질문을 하기 위해서였다.
“바이오 의약품이란 단어 때문이죠. 매일같이 뉴스를 전하시는 앵커님이니 많이 들어본 단어 아닌가요?”
“맞습니다. 바이오 의약품 뉴스를 많이 전해드렸지요.”
영국에서 복제양 돌리가 나온 다음부터, 생명공학 분야는 급속도로 발전했다.
한국에서 한때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줄기세포 사기 사건도 이에 연장된 사건이었다. 줄기세포 관련 이슈는 이후 급속도로 사그라졌지만, 투자나 연구의 규모가 줄어든 건 아니었다. 이후에 뜨고 있는 게 바이오 의약품 분야였다.
현재 가장 뜨고 있는 바이오 의약품은 관절염 치료제인 엠프렐이었다. 기존의 화약 의약품보다 효과가 우수했고, 부작용도 덜했다. 비싸다는 게 제일 큰 문제고 주사제라는 방식도 접근성에 제약을 주지만, 장점이 이를 커버하고도 남는다.
“제가 ID 그룹에 집중하기 시작한 지는 벌써 10년도 넘었습니다. 덕분에 ID 그룹의 패턴도 어느 정도 읽을 수 있었죠. 유 회장님이 바이오 의약품을 언급했다는 건, 최소 1년 내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보일 수 있다는 말과 같습니다.”
레이 커즈와일의 말에 유재원은 속으로 살짝 놀랐다.
유재원은 본인의 행보 때문에 레이 커즈와일의 성향이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지만, 기우였다. 오히려 레이 커즈와일은 미래학자답게 기술을 선도하고 있는 ID 그룹과 유재원에게 호의가 있었고, 더 나아가 집중적인 모니터링의 대상으로 삼고 있었다.
“더욱이 유 회장님은 2007년 오스카 상을 수상하는 자리에서 바이러스에 대한 위협을 예고하신 적이 있습니다. 세계 종말을 가져올 위험 요소로 전쟁보다 바이러스가 더 위험하다고 말씀했지요.”
ID 그룹과 유재원을 집중해서 보고 있다는 말은 빈말이 아니라는 게 또 드러났다.
“그때는 다들 웃고 넘어갔지요. 저는 이 말 속에 조만간 바이러스 관련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고, 그에 대한 대비도 했다는 뜻이 숨겨져 있다고 봤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자리에서 바이오 의약품을 언급하는 유 회장님을 보니 오래전부터 준비하고 있었다고 하니 소름이 돋을 수 밖에요.””
“흠, ID 그룹 계열사를 보면 생명공학 관련 기업은 없는데 말입니다.”
브라이언 앵커의 말은 사실이다.
“네,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생명공학 계열사를 직접 거느리진 않았을 뿐, 투자를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투자는 현금뿐만이 아니라, 기술 투자도 있었지요. 덕분에 제법 놀라운 성과를 보고하는 리포트를 받아 볼 수 있었습니다.”
그에 대한 대답은 유재원이 직접 했다.
ID 인베스트먼트의 포트폴리오를 보면 생명공학 관련해서도 상당수 업체에 지분이 있다.
물론 ID 인베스트먼트의 투자는 경영권 행사를 노리고 한 건 아니지만, 여차하면 대규모 자본을 통한 M&A를 노려볼 수 있다.
대신 생명공학 스타트업 업체에 대한 엔젤투자는 얼마든지 ID 그룹에 편입할 수 있는 만큼 이뤄지고 있는 중이다.
유재원의 쌈짓돈이 투자된 바이오 스타트업을 보자면 한국의 셀트리온, 바이오로메드가 대표적이고, 미국에는 셀젠, 바이오젠, 파마수테크, 마일란이 있다. 게다가 ID 파운데이션에서 연구 개발 용역을 주고 있는 비영리 바이오 연구소도 수십 곳이다.
이렇게 ID 그룹의 영향력을 강하게 투사할 수 있는 업체 중 바이오 의약품 개발 역량이 유재원의 눈높이에 도달한 업체를 선정해서 ID 그룹 계열사로 편입하고, 본인이 알고 있는 바이오 의약품 레시피 중 현시점에서 가장 파급력이 큰 것을 골라서 양산하여 빠른 속도로 FDA의 임상실험을 돌파하겠다는 게 목표였다.
신종플루 백신도 그런 아이템 중 하나였다.
2009년에 유행할 신종플루는 그나마 타미플루라는 약이 있지만, 타미플루의 부작용은 제법 심각한 탓이다.
가장 빈번히 보고되었던 부작용은 설사, 메슥거림, 식욕 감소다. 이 정도면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부작용이다. 그런데 소아와 청소년들 부류에서는 환청과 환시 등의 환각 증상이 보고되었다. 게다가 환각 증상과 연계되어서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 크게 다치거나 죽는 경우까지 나왔다.
소 뒷걸음질치다 쥐 잡는 식의 타미플루보다는 신종플루의 원인 바이러스인 H1N1에 맞는 항체의 형성을 유도하는 백신이 완벽한 해답이었다.
문제는 임상실험이지만, 신종플루는 팬데믹으로 유행된 전염병이었으니, 제때에 나오기만 하면 긴급 사용 승인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이후 임상실험도 병행하면 정식 인가도 빠르게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유재원의 계획이었다.
“기술? 역시 답은 인공지능이었죠?””
레이 커즈와일이 말을 보탰다.
정답이다.
“네, 단백질 구조 분석은 엄청난 단순 반복 작업입니다. 단순 반복 작업을 수행하는 데 있어 가장 효율적인 도구는 컴퓨터죠. 컴퓨터에 지능을 더한 인공지능이야말로 가장 효율적인 바이오 의약품 개발 도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호오! 참 대단하군요. 이쯤되면 인공지능 기술이 쓰이지 않는 분야를 찾기가 더 힘들 것 같습니다. 그러면 일각에서는 인공지능 만능주의가 생겨날 것 같기도 한데요. 여기에 대한 부작용도 크지 않겠습니까. 일자리 문제 말입니다. 우리 NBC만 해도 차세대 번역기가 나온 다음, 외국어 번역을 맡았던 분들의 일감이 꽤나 줄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유재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브라이언 앵커가 날카롭게 찌르고 들어왔다.
인공지능의 고도화와 맞물려 일어날 수 있는 가장 큰 문제였고, 많은 이들이 지적하고 있는 일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유재원에게 대놓고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건 브라이언 앵커가 처음이었다.
“전고체 배터리 이야기도 할 게 많은데 시작도 못 하고, 다음 일자리 이야기로 넘어가야겠군요.”
유재원도 브라이언 앵커의 지적을 받고 그냥 넘기진 않았다.
인공지능 그리고 초고속의 무선 통신망이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며 시작될 4차 산업혁명이다. 그리고 혁명이 시작된 초기에 가장 크게 대두될 문제점은 일자리였다.
지금 대충 넘긴다고 해도 완전히 회피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그 문제에 대해서는 제가 먼저 이야기하겠습니다.”
대신 유재원보다 더 전문적 지식을 가진 이론가가 여기에 있다.
“제 자랑 같지만, 특이점이 온다라는 제 책에서도 언급한 문제이니까요.”
레이 커즈와일은 잔뜩 상기된 표정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본인의 전문 분야를 북미 전역에 생중계되는 새해 특별 대담 프로그램에서 하게 될 줄은 일주일 전만 해도 몰랐던 상태였다. 게다가 유재원을 앞에 두고 있으니 그야말로 이보다 좋은 세팅은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
그렇기에 레이 커즈와일은 방송 출연을 결심할 때부터 어떻게 하면 수천만, 어쩌면 수억이 될 시청자들에게 본인이 상상하고 있는 미래상을 강렬하게 심어줄지 고민하고 고민했다.
“어렵게 생각할 게 있습니까? 노동으로부터 해방된 진정한 자유를 즐기면 됩니다.”
노동 해방!
레이 커즈와일이 며칠 밤 열심히 고민해 찾은 임팩트 넘치는 단어였다. 게다가 이게 끝이 아니다.
“더 나아가서는 우리의 의식을 거대한 시스템에 업로드해 영생을 누리게 될 겁니다. 저는 특이점이 온다라는 책에서 2045년을 기술적 특이점이 오는 기점으로 삼았지만, 여기 계신 유 회장님의 출연으로 그 시일이 최소 20년은 빨라질 거라고 단언합니다.”
순간의 정적이 스튜디오 안에 내려앉았다.
“아이고.”
정적을 깬 건 유재원의 탄식이었다.
유재원도 나름 급발진에 대해 어디서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레이 커즈와일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물론 레이 커즈와일의 예상에 큰 이견은 없었다.
유재원이 목표로 하는 기술적 특이점이 발생할 시기는 2020년이었다. 기술 가속으로 IT기술의 발전 속도는 회귀 전보다 한층 빨라졌다.
IT기술의 바탕인 반도체 미세 공정은 올해 14나노미터 공정의 정복을 예고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서 2011년에는 7나노미터에 돌입한다. 다음 3나노미터는 2014년을 예상하고 있다.
3나노미터 이하의 공정은 실리콘 기반을 벗어나 다이아몬드-붕소와 산화하프늄 반도체로 단숨에 점프하는 로드맵을 가지고 있다.
다이아몬드-붕소 반도체는 고클럭, 고온에 강하다는 특성 덕에 CPU와 AP, GPU, 텐서코어 같은 비메모리 칩을 만들 때 좋고, 산화하프늄 반도체는 고밀도 특성이 좋아 메모리 반도체 양산에 적합하다.
인공지능 소프트웨어 기술도 빠르게 발전 중이었다.
2020년 기술적 특이점 달성은 그야말로 무난하게 달성할 수 있다. 다만 사람들의 의식 수준이 과연 기술적 특이점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었다.
그렇기에 오래전부터 특이점이 온다고 설파한 레이 커즈와일에게 거는 기대가 남달랐던 유재원이었다.
그런데 이런 식의 급발진이라니.
“아아, 레이 커즈와일 박사님의 노동 해방이라는 말은 생산과 소비 두 가지 역할을 동시에 수행했던 우리가 인공지능 기술의 발달로 생산이라는 굴레를 벗어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유재원은 급하게 레이 커즈와일의 돌발 발언에 대한 해설을 시작했다.
사람이 태어나 사회에 편입되면 생산 활동을 해야 하고, 동시에 소비도 하게 된다.
돌잔치에서 이미 웬만한 부자 이상의 자산을 선물로 받은 혜성이처럼 특별한 경우도 있지만, 대다수 사람은 일을 해야만 사회에서 안정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인공지능의 수준이 고도로 발달하고, 로봇 기술도 발달하게 되면 대다수 사람들의 노동력을 대신할 수 있다. 심지어 사람만 할 수 있는 창의적인 작업이라고 자부한 창작 분야의 일도 얼마든지 대신 할 수 있을 정도다.
이것을 지금은 일자리를 빼앗겼다고 인식하지만, 다르게 보면 노동에서의 해방이다.
관건은 과도기를 잘 지나가는 것이다.
레이 커즈와일 박사도 특이점이 온다라는 저서에서 괜히 ‘2045년까지 생존한 생존자들’이라고 주어를 명시한 게 아니다.
레이 커즈와일의 생년이 1948년인지라 2045년이면 97세의 나이이니 본인 스스로 그때까지 죽지 않고 버텨야 한다는 의식이 투영된 문장이었다. 하지만 문장에 담긴 진정한 의미는 2045년까지 일어날 엄청난 사회적 혼란을 예견한 것이기도 했다.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에서 노동이 차지하는 부분이 로봇과 인공지능으로 완전히 대체될 때의 사회적인 혼란상은 상상 그 이상이다. 여기에 지구의 기후 변화가 더해지면서 극심한 혼란이 벌어졌다.
제3차 세계대전 수준은 아니어도, 미국과 중국이 제대로 격돌하는 대규모 전투가 터지기도 했다.
구시대 노동력과 생산성에 기반한 자본주의의 중국과 4차 산업혁명의 완성을 초읽기에 두고 있던 미국의 충돌이었다. 무시무시한 인구수를 갈아 넣으면 달성한 가성비로 전 세계의 공장을 자처했던 중국이었지만, 쉬지 않고 일하는 로봇으로 가득한 스마트 팩토리는 인간의 수준을 초월해 있었다.
조바심이 난 중국이 먼저 도발했고, 미국은 기다렸다는 듯 받아쳤다.
평범한 흐름이었다면 제3차 세계대전으로 확전이었지만, 미국과 중국의 충돌은 전면전도 되지 못했다.
한 번의 전투에 모든 게 끝장이 나 버린 탓이다. 물론 승자는 미국이었다.
“아, 박사님의 논리에서 생략한 게 너무 많습니다. 자세한 설명이 필요한데요.”
“물론입니다!”
브라이언 앵커의 요청에 레이 커즈와일은 방긋 웃으며 답했다.
그야말로 잔뜩 신이 나서 신나게 기술적 특이점이 오는 세상을 이야기하는 레이 커즈와일이었다. 유재원도 레이 커즈와일에게 말을 보태면서 그가 터트린 급발진을 최대한 수습하기 위해 힘을 썼다.
다음 날.
유재원과 레이 커즈와일의 대담은 NBC의 새해 특별 대담 프로그램 중에서도 역대급의 시청률을 찍었다. 미국에선 시청 가구수 2천만이 넘었고, 캐나다까지 포함하면 3천만이 넘었다. 인터넷 스트리밍 그리고 짧게 편집된 클립을 통해 전 세계로 전파된 것까지 계산하면 역대 최고의 파급력이었다.
-노동 해방? 잠꼬대 같은 소리.
-대규모 기술적 실업은 이제 현실의 문제.
-4차 산업혁명의 끝은 매트릭스?
덕분에 아침이 되자마자 관련 기사들이 쏟아지는 건 당연했다. 그리고 기사들 중 상당수는 타이틀에서 보듯 매우 부정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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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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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이네요!
건강 유의하시면서 즐겁게 보내시고, 다음 주에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