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4회
블루오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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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원은 가족들과 새해를 맞이했다.
샌프란시스코는 실리콘 밸리의 온갖 기업들의 후원을 받아 성대한 불꽃놀이로 아쉬운 2008년을 보내고, 새로운 2009년을 맞이했다.
불꽃놀이는 샌프란시스코의 상징인 금문교를 배경으로 펼쳐졌는데, 해안가의 좋은 명당자리는 아침 일찍 나가야 맡을 수 있을 만큼 인기였다. 그런 새해맞이 불꽃놀이를 유재원 부부와 양가 식구들은 거실에서 편안하게 보았다.
저택의 특별한 구조 덕분이다.
해안 절벽에 반쯤 걸친 형태의 저택이었기에 거실 뷰만으로도 태평양은 물론이고 샌프란시스코만과 금문교까지 한눈에 보일 정도였다.
처음 유재원의 저택 구조가 대중에 알려졌을 때, 매우 위태로운 구조 때문에 풍수지리를 하는 사람들이 크게 우려했었다. 심지어는 대가 끊기지 않으려면 당장 이사해야 한다는 식으로 무작정 비판을 쏟아내기도 하는 풍수사도 있었다.
하지만 저택에 입주하고서 10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 유재원이나 ID 그룹이 승승장구하고 혜성이도 태어나는 걸 보자 이제는 풍수지리를 하는 사람들이 말을 바꾸었다. 태평양의 기운이 유재원의 집으로 모이고 있으니, 천하의 명당이라고 말이다.
처음부터 후자의 내용으로 글이 올라왔다면 유재원도 솔깃했을 텐데, 이미 10년 전쯤 이들 부류가 큰일났다며 난리를 칠 때부터 봤었기에, 그저 쓴웃음만 나올 뿐이었다.
오붓한 분위기 속에서 새해맞이 행사를 조촐하게 치른 유재원은 2009년 1월 3일. 전용기를 타고 출장길에 올랐다.
NBC의 특집 프로그램 출연을 위해 NBC의 LA 스튜디오로 가기 위함이었다.
프로그램 기획자와 NBC 방송국은 유재원의 출연 수락에 깜짝 놀랐다고 한다. 혹시나 하고 의례적으로 던진 제안이었는데, 긍정의 답변이 돌아오니 난리가 났다. 제대로 일을 키워보자면서 편성 시간부터 제대로 잡았다.
그게 1월 3일. 새해의 첫 주말 저녁 8시부터 10시까지의 프라임 타임이다. 프로그램의 구성도 생방송 대담이었다. NBC가 일을 키우면서 유재원의 카운터 파트너도 레이몬드 레이 커즈와일 대신 이름값이 더 있고, 유명한 사람으로 교체하려고 했다.
그렇지만 유재원이 레이몬드 레이 커즈와일이 아니면 출연하지 않겠다고 했기에, 사람이 바뀌는 불상사는 없었다.
프로그램의 제목도 나왔다.
“유재원 회장에게서 듣는 ID 그룹의 성공 전략과 미래 비전이라니.”
대놓고 유재원의 이름을 팔았다. 그리고 그게 또 먹혔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흥행을 가장 쉽게 따져볼 수 있는 지표가 바로 광고 판매였다. 유재원의 특집 프로그램이 띄워지자마자 광고는 순식간에 완판되었다고 했다. NBC 내부에서 들리는 말에 의하면 프로듀스 마이 슈퍼스타급이라고 했다.
유재원은 낙관적 미래학자인 레이몬드 레이 커즈와일과의 만남을 더 기대했는데, 광고가 붙는 속도나 인터넷서 이야기되고 있는 걸 보니 살짝 긴장되었다.
그렇지만 부담감이 생기진 않았다.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이야기하는 것이나, ID 그룹의 성공 비결을 이야기해 주는 건 유재원에게 있어서는 너무도 쉬운 일이었다. 대신 레이몬드 레이 커즈와일이라는 미래학자와의 대담은 신중했다.
이름만 듣고도 출연을 결정했을 만큼 호감이 컸지만, 상대가 과연 본인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는 아직 몰랐으니까.
유재원이 본인에 대한 일개 학자의 평가를 따지는 건 이례적이다.
누가 뭐라고 하건 유재원은 스스로 세운 목표를 향해 후진 없는 직진뿐이었으니까. 그렇지만 레이몬드 레이 커즈와일은 좀 달랐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낙관적인 미래학자는 매우 희귀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미래를 그리는 많은 영화나 소설들 중에 유토피아 세계관을 쓴 작품은 얼마 없고, 디스토피아 세계관이 대부분이었다.
타임워너에서 만든 매트릭스 시리즈도 디스토피아고, 터미네이터 시리즈도 디스토피아다. SF영화의 바이블인 블레이드 러너나 스타워즈 역시 디스토피아다.
영화나 소설의 구성에서 유토피아보다는 디스토피아가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는 데 훨씬 수월하기 때문에 디스토피아물이 많은 것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고도의 기술 발전이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 주지 않는다는 공감대가 전 세계 사람들에게 존재하기 때문에 디스토피아물이 유행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된다.
실제로 인공지능 골드가 영화 터미네이터의 스카이넷이 될 거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의 기본 인공지능 비서는 동접자가 100만 단위였다.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의 보급 대수는 수억 단위였으니, 100만 단위의 동접자는 오히려 적은 것일 수도 있다. 아무래도 수년간 손가락으로 스마트폰을 쓰던 사람들이 갑자기 스마트폰에게 말을 하는 건 어색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인공지능 비서와 대화를 하며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건 아직 대중화되지 않았다. 이러한 사용자들이 인공지능 골드에게 하는 말들은 클라우드 시스템에 차곡차곡 빅데이터로 쌓이고 있다.
빅데이터를 분석해 보면 스카이넷을 언급하는 경우가 제법 있었다. 워낙 자연어 해석 모듈이 잘 만들어진 탓에, 사람과 대화를 하듯 자연스러워서 혹시나 기계의 힘이 사람을 능가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건 차세대 번역기였다.
일각에서 우려했던 그대로 차세대 번역기로 인해서 외국어 관련 일자리 숫자가 줄었다는 게 통계에 잡히기 시작했다.
기술의 발전이 누군가의 생존에 위협이 되고, 그런 일이 본인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어지면,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는 상상이 아닌 현실이 되는 것이다.
지금의 기술 발전도 느리다고 느끼며, 기술의 발전 속도를 한층 끌어올리려는 유재원에게는 부담이 되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낙관적인 미래학자인 레이몬드 레이 커즈와일과 같은 학자들의 존재가 너무도 간절한 유재원이었다.
이런 사람들은 신념이 있어야 행동하기 때문에 아무리 돈을 쏟아부어도 만들 수 없었다. 더욱이 현시점에서 회귀 전에 보았던 그 모습이 나올지는 유재원도 확신할 수 없었기에, 뭔가 포석을 놓을 것도 없었다.
그러다가 NBC 새해 특별 대담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자연스러운 연결 고리가 만들어지자 냅다 수락한 유재원이다.
“음. 미래 예측에 대한 날카로움은 여전하시네.”
전용기로 이동 중 유재원이 안드로이드 패드로 살펴보고 있는 건 레이몬드 레이 커즈와일이 매스컴이나 인터넷에 올린 칼럼이었다. 여기에 정보팀에서 올린 보고서도 있다.
다행히도 현재의 레이몬드 레이 커즈와일은 일단은 회귀 전 유재원이 알던 것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합격점이다.
몇 시간 후.
“레이몬드 커즈와일일세! 그냥 레이라고 불러주시게! 오늘을 무척이나 기대하고 있었다네.”
NBC의 LA 스튜디오에서 만난 레이몬드 레이 커즈와일은 사전 조사 그대로 유재원에게 호의적이었다.
본인이 먼저 소개를 하면서 악수를 청했다.
“유재원입니다. 만나서 영광입니다. 레이 선생님.”
유재원도 바로 악수하며 같은 호감을 표시했다.
레이몬드 레이 커즈와일은 1948년생이다. 그러니 2009년인 올해에 61세가 되는 사람이다.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다. 이러한 전공을 살려서 여러 가지 발명품들을 만들어냈다.
광학 문자 인식 기술, 음성 인식 기술, 텍스트 음성 변화와 같이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에서 유용하게 활용되는 휴먼 인터페이스의 기초를 쌓았다. ID 테크놀로지가 관련 기술을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에 탑재하기 위해 인수한 특허 중에는 레이에게 로열티가 돌아가는 기술도 있을 정도다. 이뿐만이 아니라 음성 관련 기술을 개발하면서 쌓은 노하우로 디지털 신디사이저도 만들었다.
본인의 이름을 딴 커즈와일 신디사이저라는 회사를 통해 관련 제품을 판매했는데, 이와 관련해 한국과도 인연이 있었다. 영창 피아노가 사업을 확장하면서 커즈와일 신디사이저를 인수했기 때문이다.
원래대로라면 이후 레이 커즈와일은 커즈와일 신디사이저사를 매각한 대금을 구글에 투자하려고 했다가, 오히려 구글의 기술 이사로 취직을 하게 된다.
유재원의 등장으로 인해 흐름이 크게 바뀐 지금은 직접 만든 헤지펀드를 운영 중이었다. 팻캣이란 이름의 헤지펀드인데, 자체적으로 개발한 인공지능 투자 소프트웨어를 통해 주식 거래를 하면서 수익을 올리는 펀드였다.
인공지능 투자 소프트웨어의 핵심 알고리즘은 통화 변동 및 주식 소유권 추세의 패턴 인식이었는데, 헤지펀드가 출범한 2006년부터 지금까지 시장 수익률보다 더 높은 수익률을 꾸준히 찍고 있었다.
ID 인베스트먼트가 운영 중인 초단타 매매 프로그램 퀀텀보다는 떨어지는 수익률이지만, 월 스트리트의 투자은행 전체로 보았을 때는 상위권에 위치해 있다. 비록 회귀 전처럼 구글 기술 이사는 되지 못했지만, 훨씬 성공한 상황이다.
“사인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악수를 마친 유재원은 가방에서 책 한 권을 꺼내 레이 커즈와일에게 내밀었다.
“오! 이건!”
책을 보고 반색하는 레이 커즈와일.
유재원이 내민 책은 레이 커즈와일에게 세계 최고의 미래학자라는 타이틀을 부여해 준 바로 그 책 ‘특이점이 온다’였다.
“유 회장도 내 책을 읽었나?”
“그럼요! 재미로 읽다가 나중에는 각 잡고 읽었죠. 사인 해주실 거죠?”
“물론! 오히려 내가 더 영광이야! 유 회장에게 사인해줬다고 자랑하고 다녀도 되지?”
“네! 문제 없습니다.”
레이 커즈와일은 사인펜을 꺼내 멋들어진 사인은 물론이고 유재원만을 위한 좋은 글귀까지 써 주었다.
‘기술적 특이점에 가장 가깝게 접근한 유 회장의 최종 승리를 완전 기원!’라고 말이다.
글귀에서 알 수 있듯 레이 커즈와일은 특이점이 온다라는 책에서 완전한 기술적 특이점이 곧 이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심지어 정확한 연도까지 못을 박아 놓았는데, 2045년이었다.
2045년이 되면 기술적 특이점이 도래해 본인을 포함한 2045년 생존자들이 기계와 융합해 영생을 누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 줄로 요약을 해 놓으니 무슨 헛소리를 써 놨나 싶지만, 책을 다 읽어 보면 고개가 끄덕여질 만큼 논리와 맥락이 있었다.
그 수준도 매우 정교했다. 매사추세츠 공과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고, IT 기술 개발과 발명품을 직접 만들었으며, 미래학이란 새로운 사회과학 학문을 개척한 사람이었으니 절대 과대망상으로 가득한 책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학계에서 레이 커즈와일에게 미래학자라는 타이틀을 선사한 것이었다.
무엇보다 유재원은 2045년보다 몇 년은 더 빠르게 기술적 특이점이 도달한 것을 두 눈으로 본 사람이다. 그 이후의 흐름은 레이 커즈와일이 예상한 것과는 많이 다르게 흐르긴 했지만, 특이점이 발생할 시점을 근소한 차이로 예측한 것만으로도 대단한 성과였다.
유재원이 레이 커즈와일에게 호의적일 수 밖에 없었다.
사전 미팅의 좋은 분위기는 생방송에서도 이어졌다.
잠시 후.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브라이언 윌리엄스입니다. 오늘은 NBC가 신년 특별 대담 프로그램을 마련하였습니다. 유재원 회장에게서 듣는 ID 그룹의 성공 전략과 미래 비전!”
시작은 NBC의 간판 앵커 브라이언 윌리엄스의 인사였다.
“많은 일이 있었던 2008년이 가고 2009년이 되었지요. 21세기가 시작한 게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 2010년대를 코앞에 두고 있습니다. 90년대 상상했던 21세기 모습은 지금과는 많이 다르죠. 우주여행도 요원하고, 순간이동 장치도 없습니다. 하늘을 나는 자동차도 보이진 않는군요. 그렇지만 주변을 돌아보면 90년대에는 상상하지 못한 것들이 많이 있죠. 단적으로 스마트폰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브라이언 윌리엄스는 본인의 안드로이드 S8을 들어 보였다.
“제가 대학을 다닐 때만 해도 컴퓨터는 한 방을 가득 채울 만큼 거대했죠. 지금은? 보시는 바와 같이 그때보다 몇백 배는 강력한 컴퓨터가 손 안에 들어와 있고, 항시 연결되는 무선 통신을 통해 다양한 인공지능이 우리를 도와주고 있습니다. 이제는 스마트폰이 없는 세상은 상상하기도 힘들죠.”
유재원과 레이 커즈와일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다만 의미는 조금 달랐다. 레이 커즈와일은 브라이언 앵커의 말에 십분 동의한다는 표정이었고, 유재원은 스마트폰이 없는 건 불편하지만, 이 정도로 만족할 건 아니라는 표정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기술적 특이점을 넘어서고 나서 출시된 IT 기기를 직접 다뤄 본 경험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유재원의 목표 중 하나가 21세기 중반 수준의 기기를 원래 역사보다 훨씬 빨리, 전 세계 모든 이들에게 보급하는 것이었다.
“오늘 이 자리에는 이러한 스마트폰이 없었던 시절, 스마트폰을 누구보다 빠르게 만들어 보급한 장본인을 모셨습니다. 바로 ID 그룹의 유재원 회장입니다.”
“안녕하세요. 유재원입니다.”
유재원의 시청자에 대한 인사는 간단했다.
“그리고 모바일 기기가 보급된 미래를 가장 빠르게 예측한 레이 커즈와일 미래학자를 모셨습니다.”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입니다.”
“네, 그러면 두 분을 모시고 2009년 그리고 가까운 미래에 대한 큰 변화를 예측해 보겠습니다.”
NBC의 간판 앵커답게 서두부터 매끄럽게 끊었다.
“먼저 유 회장님께 질문을 드리지요. 2009년 ID 그룹의 전략과 준비하고 있는 신상 아이템은 무엇인가요?”
“ID 그룹의 대전략은 창업하고 나서 지금까지 일관되게 유지되고 있습니다. 블루오션 개척이었지요.”
역시나 유재원은 처음부터 본론으로 시작했다.
블루오션은 새로이 탄생한, 그래서 경쟁자가 전무한 시장을 의미했다. 반대말로 레드오션이 있고, 기존의 강자들이 탄탄히 구축된 시장으로의 진입은 물론 생존에서도 피 튀기는 경쟁을 치열하게 치러야 하는 시장이었다.
스마트폰, PC와 모바일 운영체제, LCD, 리튬이온배터리 등등. ID 그룹이 출시한 제품들은 모두 블루오션 제품이었다.
다만 기존의 블루오션 전략과 ID 그룹의 블루오션 전략에는 큰 차이가 있다.
ID 그룹의 블루오션 전략 앞에는 ‘공격적’이라는 수식어가 생략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운영체제만 해도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는 MS-DOS를 삽시간에 눌러 버리고 자기만의 블루오션을 만들었고,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역시 극심한 레드오션이었던 피처폰 시장을 엎어 버리고 스마트폰 시장을 새로 만들었다.
“2009년에는 더욱 공격적인 블루오션 창출 전략을 펼칠 생각입니다. 구체적인 아이템으로는 전고체 베터리 그리고 바이오 의약품 분야에 새로운 지평을 열 준비를 마쳤습니다.”
굳이 2009년에는 신종플루가 유행할 거라는 식의 예언은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충분했다. 하나를 말하면 열은 아니어도 서너개는 알아들을 사람이 옆에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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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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