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787화 (787/1,007)

763회

블루오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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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잡이는 아기의 미래를 예측하는 소소한 행사였다.

전통적인 돌잡이 용품은 책, 엽전, 실, 활, 마패 등이 있다. 책은 학자나 작가, 엽전은 부자, 실은 무병장수, 활은 직업군인이나 경찰관, 마패는 법조인이 되는 걸 의미한다고 한다.

다만 아기가 특정 용품을 잡는다고 그것이 상징하는 직업을 갖는 건 아니었다. 아기가 뭘 집든 거기에는 아무런 인과 관계가 없었다.

그저 돌잔치 행사 중에서 빠지면 섭섭한 순서였기에 진행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현대에 와서는 돌잡이 용품도 많이 달라졌다.

돌잡이 물건에 현대적인 용품이 추가된 것이다.

의료인을 의미하는 청진기, 각종 스포츠 용품, 컴퓨터 전문가를 의미하는 마우스,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한 직책을 의미하는 지휘봉 등등이다.

혜성이의 돌잡이 용품 역시 유재원의 부모님이 가져온 전통의 돌잡이 용품을 기본으로 현대적인 아이템들이 가득 추가되었다.

대표적으로 당나귀와 코끼리 배지였다.

웬 당나귀와 코끼리냐 싶지만, 성조기 문양으로 이뤄진 귀여운 아이콘 배지다. 바로 미국의 양대 정당인 민주당과 공화당의 상징이었다. 게다가 하나는 앨 고어 대통령이 다른 하나는 존 매케인 당선인이 내놓은 배지라서 의미도 각별하다.

혜성이가 배지를 잡는다면 미국의 대권에 도전할 만큼 강력한 정치인이 된다고 해석할 수 있을 거다.

실제로 혜성이는 미국에서 태어났고, 시민권도 가지고 있으니 미국 대통령에 도전할 수 있는 자격은 충분히 갖췄다. 게다가 지금부터 2020년대 중반까지는 인종 차별 문제가 심각하지만, 그 이후로는 완화가 되니 혜성이가 장성할 때쯤이면 딱히 큰 문제도 아니다.

기후 변화라는 전 지구적인 위기에 사람들끼리 아웅다웅할 때가 아니라는 걸 다들 깨우칠 때였으니까.

당나귀와 코끼리 배지 옆에는 번쩍거리는 큐빅이 촘촘히 박힌 하얀 장갑이 있었다. 마이클 잭슨의 트레이드 마크와 같은 보석 왼손 장갑이었다. 메인 홀의 화려한 조명 덕에 보석 장갑의 영롱한 빛이 훨씬 더 잘 보였다. 메인 홀 맨 뒤에 있는 사람에게도 보일 정도였다.

연말 콘서트 때문에 1분 1초가 바쁜 마이클 잭슨이었지만, 예전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기꺼이 오늘 혜성이 첫돌 행사를 찾아와 주었다. 게다가 혜성이의 첫 번째 생일 선물로 자작곡까지 선사해 주었다.

원래 아이들을 좋아했던 마이클 잭슨이었다. 게다가 유재원은 마이클 잭슨이 제일 힘들 때 손을 내밀어준 사람이었다.

혜성이가 생겼다는 소식을 전한 유재원에게 마이클 잭슨이 기대하라고 했던 게 바로 노래 선물이었다.

혜성이의 찬란한 미래를 기원하면서 만든 노래의 제목은 ‘starboy’. 한국식 태명인 별똥이를 적당히 미국식으로 바꾼 것이었는데, 마이클 잭슨은 그 단어가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진심이 담긴 노래였다. 그렇기에 노래가 끝나자마자 누구 하나 손뼉을 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혜성이의 찬란한 인생에 음악도 함께하길.”

마이클 잭슨은 혜성이의 앞날을 축복하면서 본인이 제일 아끼는 장갑을 은쟁반 위에 올렸다.

이처럼 돌잡이 용품은 부모님이 가져온 전통 물품 외에도 손님들이 내놓는 애장품으로 추가되고 있는 것이었다.

유난히 반짝거리는 장갑에 티파니의 품에 안겨 있던 혜성이도 눈을 떼지 못했다.

“다음은 제가 올리겠습니다.”

마이클 잭슨 다음으로 앞에 나온 인물은 로스차일드 그룹의 에드몽 회장이었다.

에드몽 회장이 양복 안주머니에서 꺼낸 건 금화였다. 로마 시대의 금화였다. 정확하게는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초상이 들어간 금화였는데, 크기는 좀 작아도 정교함은 고대 시대라고 볼 수 없을 만큼 정교했다. 금화의 뒷면에도 암소가 들어가 있는데, 목 주변의 털은 물론 근육과 힘줄, 골격까지도 세밀하게 표현되어 있었다.

“저에게 수많은 행운을 가져다준 금화입니다만, 혜성이의 앞날을 축복하는 데 이보다 더 좋은 건 없을 것 같군요.”

금화에 담긴 의미를 따져 본다면 역시 돈복이겠다.

은쟁반에 금화가 놓이자 혜성이의 눈빛도 달라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마이클 잭슨의 장갑에 꽂혔던 눈이 단번에 금화로 옮겨 갔다.

진짜 에드몽 회장의 애장품인 모양인지 반질반질 광택이 났다. 비록 보석 장갑의 영롱한 빛에는 많이 모자라지만, 누런 금빛은 사람을 잡아끄는 마력이 있었다. 게다가 금화는 기원전에 만들어진 유물이기도 했으니, 그 가치는 상상 이상일 것이 분명했다.

이렇게 손님들이 내놓는 물품으로 쌓인 돌잡이 물품은 수십 개였다.

다들 사전에 돌잡이에 대해 안내를 받은 만큼, 의미가 겹치는 건 거의 없었다. 게다가 초대된 인물들의 면면이 대단한 만큼, 은쟁반에 쌓인 물품의 가치도 특별했다.

프레더릭도 은쟁반에 반지 하나를 올렸다.

티파니나 장인, 장모님이 크게 놀란 걸 보면 마냥 평범한 반지는 절대 아니다.

중세시대 귀족들이 인감도장으로 쓰던 반지처럼 가문의 문양이 정교하게 새겨진 반지였다. 실제 프레더릭 가문에서 쓰이는 의미로는 캘리포니아 저택의 주인이란 뜻이었다. 궁전처럼 커다란 저택과 거기에 딸린 1만 에이커 넓이의 포도 농장이다.

“자네도 올려야지. 이런 자리에 아빠가 빠져서야 되겠나?”

반지를 올린 프레더릭은 유재원에게도 권했다.

“네, 당연히 그래야죠.”

모두의 시선을 받으며 앞으로 나섰지만 유재원은 살짝 난감했다.

혜성이의 첫 번째 생일잔치를 차리는 일이 점점 커지면서 지금의 규모에 이르렀다. 유재원은 커져 가는 스케일을 따라잡는 것에도 힘들었다.

돌잡이 역시 부모님이 준비하신다기에 안심하고 있었다. 즉, 따로 준비한 건 없었다는 이야기다.

유재원은 느린 걸음으로 움직이면서, 머릿속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움직이며 본인의 소지품 중에 그럴듯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아이템을 찾았다.

‘있다!’

천만 다행히도 그런 물건이 하나 있었다.

인공지능 골드의 루트 권한 접속을 위한 OTP 카드였다.

유재원은 OTP 생성 공식을 암기하고 있었고, 이를 빠르게 계산할 수 있었기에 발급만 해 놓고 몇 번 쓰지도 않은 물건이었다.

이걸 혜성이에게 준다는 건 인공지능 골드의 관리 권한을 혜성이에게 승계한다는 의미가 있으니, 의미는 완전히 각별해진다.

동시에 유재원은 짧은 순간 법률적인 문제나 현실적인 문제도 빠르게 파악했다.

OTP카드의 리튬베터리만 제거하면 문제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OTP카드에 내장된 프라임키는 휘발성 램에 저장된다. 전원이 끊어지면 데이터나 날아가니 OTP카드는 껍데기만 남게 된다. 지금의 혜성이에겐 그 껍데기만으로도 상징성은 충분했다.

평범한 카드의 등장에 뭔가 하고 시선을 집중했던 손님들도 인공지능 골드라는 소리에 과연 유재원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돌잡이 아이템 세팅이 끝나고, 혜성이 앞에 드디어 은쟁반이 놓였다.

과연 혜성이의 선택은 무엇일까 유재원과 티파니 부부, 그리고 메인 홀에 모인 모든 시선이 은쟁반 위로 쏠렸다.

“와하하! 역시 혜성이로군!”

프레더릭의 시원한 웃음소리가 터졌다.

그도 그럴 것이 티파니의 품을 빠져 나와 은쟁반을 앞에 두고 장고에 들어갔던 혜성이는 급기야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버렸다. 그리곤 유재원과 티파니를 번갈아 보며 옹알이를 했다.

마치 꼭 하나만 잡아야 하느냐고 아쉬움을 토로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제 만으로 한 살인 아기가 보여줄 수 있는 최대의 귀여움이었다.

그러다 마치 좋은 생각이 난 것처럼 방긋 웃더니 뭔가를 덥석 잡았다.

은쟁반이었다.

이걸 어떻게 풀어봐야 할지 그저 난감했지만, 혜성이 녀석은 마치 어려운 문제를 잘 풀었다는 듯 꺄르르 웃었다.

알프레드 집사님 그리고 전문 사진사가 은쟁반을 잡고 웃는 혜성이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나중에 혜성이가 컸을 때 보여주면 재미있어 할 것 같다.

마지막으로 모두가 함께 앞으로 나와 사진도 찍었다.

여행이나 행사 모두 먹는 게 남는 거라고는 해도, 나중에 가장 확실히 추억할 수 있는 건 뭐니 뭐니 해도 사진이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단체 사진을 찍어 보니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위용을 자랑하는 사진 한 장이 나왔다. 사적인 행사로 정치와 경제계 통틀어 이보다 강력한 모임은 두 번 다시 나오지 않을 것 같은 사진이었다.

“아우, 이제 좀 살 것 같다.”

혜성이의 돌잔치 행사를 잘 끝낸 유재원과 티파니 부부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저택이 완성되고 나서 처음으로 1층부터 3층, 심지어 최하층 선착장까지도 사람들로 북적거렸던 행사였다. 유재원 부부를 도와주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해도, 호스트는 프레더릭이었다고 해도 그 피곤함이란 상상 이상이었다.

초대된 손님 중에는 초면인 사람들도 많아서 항상 자세를 바르게 하고 있어야 했다. 옷도 편한 옷은 아니었고, 스타일 유지에도 심력을 쏟아야 했다.

다행히 행사는 성공리에 끝이 났고, 모든 부담을 다 벗어 던지고 편안한 차림으로 서재에 홀로 앉아 있으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올해도 이제 4일 남았네.”

그러다가 유재원은 스마트폰을 들어 스케줄러를 보곤 중얼거렸다. 12월 27일이었고, 2008년의 마지막 토요일이었다.

일이 대책 없이 커지면서 치러진 혜성이 돌잔치 덕분에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새삼 다시 느끼는 유재원이었다. 동시에 아쉬움도 밀려왔다.

그것은 매년 이맘때쯤이면 절로 피어오르는 감정이었다.

뭔가 열심히 해 놓은 것 같은데, 막상 결과를 확인하면 아쉬움이 생겼다.

특히 2008년의 경우에는 즉흥적으로 일을 벌였던 게 많았다. 특히 북한 정권 승계에서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일을 벌였고, 그 여파는 진행 중이었다.

그나마 북한의 권력 구도가 유재원이 설계했던 그대로 김정남과 백강철의 쌍두 정치로 나아가고 있다는 건 다행이다. 돌이키지 못할 일을 벌였는데도, 북한의 혼란이 가중되었더라면 후회막급이었을 테니 말이다.

더욱이 북한의 권력 균형을 자세히 따져 보면 김정남이 백강철보다 우세했다.

김정일의 선군정치가 쭉 이어졌더라면, 이와 같은 상황에서 군부를 등에 업은 백강철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을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군보다 경제가 우선인 시대였다.

시진핑과 푸틴이 북한에 조문을 와서 은근히 압박감을 준 것 역시 압록강 유전과 두만강 유전의 차질 없는 개발 그리고 시베리아-태평양 송유관 사업의 안정적인 진행이었다.

북한과 중국의 혈맹 관계 재확인이라든가, 북한과 러시아 사이의 경제 협력도 이야기되긴 했지만, 주요 의제는 역시나 석유였다.

그에 따라서 시진핑과 푸틴도 경제 감각이 0점인 백강철보다는, 스위스 유학도 다녀오고 자본주의에도 익숙한 김정남에게 힘을 실어 주었다.

-넥스트 뮤직 어워드, 올해의 싱글 앨범은…….

-플로라이다, 로우!

떠들썩한 소리에 현실로 돌아온 유재원의 눈에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고 있는 넥스트 뮤직 어워드가 비쳤다.

미국 공중파인 NBC를 통해 북미 전역에 특별 생방송으로 송출되고, 한국에서는 캐이블인 엠넷으로 송출되고 있었다. 물론 유튜브 라이브를 통해서 인터넷만 되면 어디서든 시청 가능했다.

커다란 환호 속에서 덩치 큰 흑인이 허세 가득한 걸음으로 무대 위로 올라와 상을 받았다.

플로라이다는 올해 번쩍 뜬 신인 힙합 가수로 1월부터 3월까지 넥스트 뮤직 차트를 점령한 사람이었다. 연말에 빵 터진 프로듀스 마이 슈퍼스타의 본선 진출자들이 플로라이다를 위협하기도 했지만, 11월에 터진 탓에 누적 성적에서는 밀리면서 싱글 차트에서는 밀려났다.

대신 신인상부터, 인기상을 독식했고, 소셜 네트워크 핫 차트와 같이 네티즌의 여론이 즉각 반영되는 곳은 점령해 버렸다.

그에 따라 넥스트 뮤직 어워드의 생방송 행사에도 초청되어서 이매진 드래곤스는 물론이고 4강 진출자 모두가 특별 공연을 펼칠 정도였다.

올해 ID 그룹이 내놓은 신제품 중에 최고의 히트작은 Z+나 안드로이드 S8이 아닌 프로듀스 마이 슈퍼스타라고 유재원도 인정할 수밖에 없을 만큼 뜨거운 열기를 자랑했다.

그나저나 시상식 무대를 보니 연말 분위기가 난다.

띵!

유재원의 스마트폰이 다시 알람을 울렸다. 김대석 비서실장의 ID톡이었다.

-NBC로부터 새로운 스케줄 제안이 들어왔습니다.

-2009년 그리고 더 나아가 미래에 대한 회장님의 비전을 듣는 특집 프로그램에 나와 달라는 요청입니다.

올해 유재원 맛을 제대로 본 NBC는 화려한 피날레도 유재원으로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대담 프로그램이라니. 공중파에 나가는 것 자체는 망설여지지 않지만, 유재원에게 있어서 너무 재미없는 프로그램이었다.

실제로 새해 대담 프로그램들의 시청률은 보통 바닥부터 찾아보는 게 빠를 만큼, 시청자들이 많은 것도 아니다.

평소처럼 거절할까 싶었던 유재원이었지만, 일단 궁금했던 것 하나를 먼저 물어봤다.

“음, 대담 프로그램이라면 상대가 있겠죠? 누군가요?”

-레이몬드 레이 커즈와일이라는 미래학자입니다. 특이점이 온다라는 저서도 하나 있습니다.

이름을 들은 유재원의 표정이 달라졌다.

“출연하겠습니다.”

심지어 거절 쪽으로 굳어졌던 유재원의 마음도 출연으로 완전 뒤집어졌다.

이름만 듣고도 마음을 바꿀 만큼, 레이몬드 레이 커즈와일은 유재원에게 있어 그 존재감이 남다른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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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추천과 리플,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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