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2회
블루오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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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큰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 같다.
샌프란시스코를 근거지로 활동하는 프리랜서 기자들의 단톡방에 도는 ID톡이었다.
지역에 무슨 일이 벌어졌을 때, 제일 빠르게 출동해 기삿거리를 따고 사진을 찍어서 커다란 언론에 파는 일로 먹고 사는 이들이 프리랜서 기자들이었다.
보통은 파파라치와 동급으로 취급되었다. 이런 기자들이 제일 쉽게 타깃으로 노릴 수 있는 부류는 연예인들이나 셀럽었다.
오늘은 좀 달랐다.
-엑손모빌 전용기,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 착륙.
-렉스 틸러슨이다!
-어어! 록펠러 가문 전용기도 왔다!
-저스틴 록펠러 확인.
-뭐지? 올해의 빌더버그 회의는 끝난 거 아닌가?
점심시간이 좀 지나서, 샌프란시스코의 프리랜서 기자들의 단체 ID톡방이 뜨거워졌다.
정재계의 거물들이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사실 때문이다. 사실 크리스마스 연휴는 어제부터 시작되었다. 북미 최대의 명절인 크리스마스 연휴를 기다리며 휴가를 계획했던 이들이 오가는 통에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은 몹시도 혼잡스러웠다.
그런 혼잡 속에서 파파라치들과 프리랜서 기자들 중 일부가 매의 눈으로 공항에 말뚝 근무 중이었다.
메뚜기도 한철이라고 하는 것처럼 요즘같은 날이 프리랜서 기자들에게 대목이었다. 그런데 엑손모빌이나 록펠러 가문의 전용기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비록 이들이 대중의 관심을 받는 연예인들이나 셀럽들은 아니지만, 무게감이 남다른 만큼 매스컴에서 비싸게 사주는 사람들이었다.
-우와! MJ다!
-뭐? 진짜?! 나도 당장 공항으로 간다!
그런 프리랜서 단톡방에 기름을 부은 건 기자들 입장에선 정말 뜬금없이 등장한 마이클 잭슨 때문이었다.
2000년대 초 마이클 잭슨의 이미지를 망쳐놓는 데, 이들과 같은 파파라치들이 지대한 공을 기여했다. 순둥이처럼 쏟아지는 루머에도 가만히 있던 마이클 잭슨이 유재원과 만난 다음부터 반격을 시작했고, 모든 소송에서 이겼다.
전보다 훨씬 조심하는 분위기가 생겼지만, 프리랜서 기자들 중엔 마이클 잭슨의 뒤꽁무니 사진 한 장을 얻으려고 뒤늦게 출발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
언제나 화제를 몰고 다니는 마이클 잭슨이었는데, 지금은 그 존재감이 한층 커진 상태였다. 바로 프로듀스 마이 슈퍼스타의 심사위원 역할 덕이었다.
마이클 잭슨의 피드백들은 진심 가득하고 시기적절했다.
그의 멘토링을 받은 이들 모두가 200% 만족했을 정도였고, 멘티 중 하나였던 아델은 최종 결승까지 올라갔다.
프로듀스 마이 슈퍼스타가 끝났지만, 그 여진은 계속 진행 중이었고, 마이클 잭슨에 대한 관심도 최고였다.
-렉스 틸러슨, 금문교 통과.
-유 회장네 집으로 가는 모양!
-아! 그러고 보니 오늘 유 주니어 생일 아님?
-맞아!
-그럼, 이런 거물들이 다 유 주니어 생일 축하를 위해 모인 건가?
감 좋은 누군가가 엄청난 거물들이 속속 샌프란시스코에 모이는 모습에 본질을 꿰뚫어 보았다.
-가자!
곧이어 누군가의 선동에 프리랜서 기자들의 최종 목표는 유재원의 저택으로 정해졌다.
물론 저택에 들어가는 건 불가능하고, 저택을 둘러싸고 있는 엄청난 넓이의 사유지는 강력한 경비 시스템으로 개구멍 하나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저택으로 가는 길목은 몇 개 되지 않으니, 길목만 지키고 있어도 공항에서 기약 없이 말뚝을 받고 있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거라는 게 프리랜서 기자들의 계산이었다.
잠시 후.
-샌프란시스코에 무슨 일이?
-정재계 거물 총집결!
-마이클 잭슨, 샌프란시스코 등판!
-마린1도 목격!
-목적지는 한결같이 유재원 회장 저택!
-유재원 회장에게 무슨 일이?
-ID 그룹, 개인적인 행사라 노코멘트.
프리랜서 기자들을 통해 유명인사들의 유재원 저택 방문 기사들이 거의 실시간으로 인터넷을 도배하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행사는 오후 늦게 시작하는데, 인터넷으로 인해서 분위기는 벌써부터 달아올랐다.
네티즌들은 유재원의 저택에 엄청난 이들이 모이는 걸 보고 무슨 일이 터졌나 싶었다. 그러다가 혜성이의 생일이라는 게 알려지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혜성이의 첫 번째 생일이라면 이런 거물들이 행차할 이유로 충분하다는 것에 모두가 동의했다.
같은 시각.
“힘들지?”
“아냐. 이 정도로는 끄떡없어!”
유재원의 물음에 티파니는 활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평소 집에 있을 땐 편안한 이지웨어를 입고 살았던 유재원과 티파니 부부였지만, 오늘만큼은 그야말로 슈트와 드레스로 한껏 멋을 낸 상태다.
오늘 행사를 주최한 건 프레더릭이지만, 손님들이 집에 도착할 때마다 맞이하는 건 유재원과 티파니의 역할이었다.
중간중간 앉을 수는 있지만, 1시간쯤 전부터는 손님들이 끊임없이 입장하고 있었기에 계속 서 있어야 했다. 평소 신지 않던 하이힐까지 신은 티파니였기에 오래 서 있는 게 힘들 텐데도 괜찮다는 것이다.
사실 유재원에게 이런 상류층의 홈파티는 처음이지만, 티파니는 어렸을 때에 쌓은 경험이 제법 많이 있었다. 게다가 오늘 행사는 다른 누구도 아닌 아들 혜성이의 첫 번째 생일 파티이니 조금 몸이 피곤해도 충분히 참을 만한 일이었다.
“자기야, 한 분 더 온다.”
티파니의 말에 유재원도 자세를 바로 했다.
곧이어 유재원과 티파니가 있는 쪽으로 알프레드 집사님이 훤칠한 영국의 신사를 모시고 왔다.
원래는 밝은 갈색이었을 머리카락에 은발이 반쯤은 섞인 중년의 신사였다.
“로스차일드 그룹의 에드몽 아돌프 드 로스차일드입니다.”
로스차일드?
유재원도 로스차일드 사람을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럼에도 어디서 본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대신 회귀를 준비하며 마스터플랜을 짤 때, 에드몽 로스차일드의 사진도 보았던 기억이 났다.
로스차일드라고 하면 언제나 음모론의 중심에 선 가문이었다. 그렇지만 음모론에 등장하는 로스차일드는 실제보다는 존재감이 훨씬 과장된 것이었다.
에드몽 아돌프 드 로스차일드는 그런 로스차일드 가문을 현 세대에 이끌고 있는 가주와도 같은 인물이다.
사실 90년대까지만 해도 로스차일드 가문은 원래 유럽의 여러 나라에 흩어져 있던 상태였다. 일종의 분파였다. 이렇게 흩어진 로스차일드는 근대 유럽에서 벌어진 평지풍파에 많이들 휩쓸렸다.
나폴리 로스차일드 같은 경우는 이탈리아 통일 이후 급격히 쇠락했고, 오스트리아 로스차일드는 철도 산업에 투자해 성공했다가 갑자기 나치에게 전 재산을 몰수당하기도 했다.
프랑스 로스차일드는 격동의 시기를 잘 넘겼지만, 1981년 미테랑 정부의 은행 국유화로 큰 타격을 입었다.
그나마 영국 로스차일드는 건재했고, 다른 분파와 달리 프랑스에는 도움을 준 덕에 프랑스 로스차일드 사람들은 재기에 성공했다.
이렇게 로스차일드라는 이름값을 그나마 유지하고 있던 건 영국의 로스차일드였다. 그렇지만 세계 금융의 중심이 시티 오브 런던에서 월 스트리트로 이동하면서 영국 로스차일드도 힘을 점점 잃고 있었다.
그러다가 2000년대에 접어들어 에드몽이 가주에 오르면서 영국을 중심으로 유럽에 흩어졌던 로스차일드 가문을 로스차일드 그룹이라는 현대적 금융 그룹으로 묶어내는 데 성공했고, 그 결과로 로스차일드의 위상을 다시금 띄울 수 있었다.
당연히 로스차일드 그룹은 영국에 위치해 있었고, 주 업무는 은행업으로 예금과 대출은 물론 다양한 투자 활동을 하고 있는 기업이었다.
“에드몽 회장님. 오랜만이네요!”
“티파니 양, 아니 이제는 티파니 유 부인인가요? 아니면 셰브롱 회장님인가요? 오랜만입니다. 마지막으로 봤던 게 스탠퍼드 입학식이었죠?”
“네! 맞아요. 따님과 함께 오셨죠?”
“그때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한데, 이제는 세계 석유 업계를 쥐락펴락하는 셰브롱의 회장님이 되었군요. 게다가 이렇게나 멋진 남편을 만나서 아이까지 낳았다니. 앞만 보고 달릴 땐 몰랐는데, 뒤를 돌아보니 시간이 참 빠르군요.”
서로 구면인 티파니와 에드몽이 먼저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알고 봤더니 에드몽 회장의 차녀도 티파니와 같은 학년에 스탠퍼드에 입학을 했다는 거다. 그 전에도 교류가 있었던 상태였기에 입학식 후에도 잠깐 만나서 식사까지 했던 모양이다.
유재원은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비록 유재원이 회사일 때문에 대학교를 드문드문 다니긴 했지만, 그래도 교수님들과 두루두루 친한 편이었고 덕분에 학교에서 일어나는 이슈도 놓치는 것 없이 잘 따랐다고 자부했는데, 로스차일드 이야기는 처음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스탠퍼드에 티파니와 같이 입학했다는 에드몽 회장의 딸은 학업에 딱히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리 메르세데스도 티파니처럼 사윗감이나 일찍 데려왔으면 참 좋았을 텐데.”
로스차일드의 가주라도 자식 걱정은 평범한 사람과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티파니를 그저 부럽게 바라보던 에드몽 회장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유재원에게 닿았다.
“제 남편이에요.”
그러자 티파니가 자연스럽게 유재원을 소개했다.
“안녕하세요! 유재원입니다. 먼 걸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무려 프레더릭 어르신의 초청장 아닙니까. 게다가 유재원 회장과의 좋은 인연이 생기는 자리인데, 누구라도 기꺼이 달려왔을 겁니다.”
“좋게 봐주시니 너무 감사하네요.”
“저 역시 유 회장님께 물어보고 싶은 것도 많고, 제안해 드릴 것도 참 많았습니다만 인연이 없어서 마음에만 두고 있었습니다. 만약 시간이 나신다면 우리 할턴 하우스로 초청해 드리고픈데, 괜찮겠습니까?”
할턴 하우스란 로스차일드 가문의 본가였다.
알프레드 로스차일드가 1880년 영국 버킹엄셔 지역에 있는 저택을 매입했는데, 원래는 홀튼의 영주 저택이었다. 이후 로스차일드 가문의 흥망성쇠를 함께 했던 집이기도 했다. 로스차일드가 어려웠을 땐 매물로 나와서 팔리기도 했지만, 에드몽 대에 다시 사들여 본가로 쓰고 있었다.
“그럼요. 언제든 초청해 주시면 스케줄을 빼서라도 참가하겠습니다.”
유재원의 2009년도 스케줄도 이미 나온 상태다.
2009년도의 제일 큰 이벤트는 뭐니뭐니 해도 인공지능 골드의 바둑 도전이었다.
바둑을 정복하고 나서는 곧바로 의약과 의학, 신소재 등의 분야에 대한 투자도 대대적으로 늘릴 작정이었다.
시범 경기에서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던 인공지능 골드의 바둑 모듈이었고, 지금 이 순간까지도 꾸준히 학습 중인 상태였다. 학습 프로그램의 컴파일러를 Z+로 업그레이드 했고, 클라우드 서버에 올려진 상태였기에 바둑의 기력은 날이 갈수록 올라가고 있다.
그렇지만 사람들의 인식은 실패를 점치는 이들이 아직도 훨씬 많았다.
시범 경기 제3국에서야 겨우 19*19의 정식 바둑판으로 맞바둑을 두었는데, 거기에선 불계패로 패배한 것이 문제였다.
이러한 인식을 일거에 반전시키고 나서, 그 기세로 바이오 의약품 시장에 들어가 혁신을 일으킨다는 그림이다. 20세기까지는 화학 합성 의약품의 시대였다면 앞으로 21세기는 바이오 의약품의 시대다.
바이오 의약품이란 이름 그대로 화학 합성 약품이 아닌 모든 것을 통칭한다. 백신이 대표적이었고, 재조합 단백질, 이식용 배양 조직, 줄기세포 등도 있다.
질병의 원인 물질에 바로 반응하기 때문에, 화학 합성 의약품보다 우수하고 부작용도 훨씬 적다. 대신 엄청나게 복잡한 단백질 구조를 분석해야 하고, 균질성도 떨어지는 편이다.
이러한 단점을 보완하는 연구 방법이 바로 인공지능 기계학습을 통한 연구였다. 더욱이 유재원은 여러 개의 가치 높은 바이오 의약품 제조 공식을 알고 있었다. 주요 바이러스의 백신은 물론이고, 암 치료제, 치매 치료제 그리고 다이어트제나 발모제 같은 상품이었다.
줄기세포를 비롯해 바이오 의약 연구에 대해서는 한국이나 미국보다 좋은 환경을 제공하는 나라가 유럽이었다.
더욱이 ID 그룹은 새로운 부회장 자리를 만들 유럽 진출을 모색하고 있었으니, 유럽 전역에 굳건한 인맥을 자랑하는 에드몽 회장과의 친분을 쌓아두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었다.
“제가 두 분을 너무 독점하고 있었군요.”
이야기는 좀 더 길어질 것 같았지만, 뒤에 기다리고 있는 손님들도 결코 에드몽 회장에 뒤지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알프레드 집사님의 눈치에 에드몽 회장도 어쩔 수 없이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유재원과 티파니는 에드몽 회장 이후로도 수십 명의 VIP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서 저녁이 되자 겨우 혜성이의 첫돌 행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첫돌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뭐니뭐니 해도 돌잡이였고, 혜성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만 은쟁반에 놓인 돌잡이 물품들은 평범한 것들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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