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1회
블루오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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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점점 커진다.
혜성이의 첫돌 행사를 설명하는 데 이보다 적절한 말은 없을 것 같다.
몇 달 전 베이징 올림픽을 위해 중국에 갔을 때만 해도, 이렇진 않았다. 혜성이의 첫돌 행사에 초청되길 바라는 텐센트의 마 회장의 기대를 유재원은 간단히 거절하면서 행사는 가족끼리 간소하게 치를 거라고 말했었다. 그나마 초대장을 받은 외부 인사는 레밍턴과 최강욱 그리고 예전부터 혜성이를 찜(?)해 두었던 마이클 잭슨까지였다.
이러한 규모는 티파니는 물론 양가 부모님들과도 이미 이야기가 다 된 상태였다. 그렇기에 유재원이 동아시아에 출장을 가 있는 동안 혜성이의 첫돌 행사에 대한 언급은 마 회장이 전부였다.
일이 점점 커지게 된 것은 건강을 회복한 프레더릭이 혜성이에게 관심을 쏟기 시작하면서였다.
냉정히 보자면 프레더릭에게 혜성이는 외증손자였다.
한국에서나 미국에서나 상당히 거리감이 있는 위치였고, 실제 촌수를 따져도 그렇다. 단적으로 성씨가 완전히 다르지 않은가. 하지만 프레더릭에게 혜성이는 친손자 이상으로 각별했다.
프레더릭의 유일한 아들이었던 제이콥이 불행한 사고에 휘말려 죽는 것부터가 문제였다. 보통 재벌 가문의 후계자라면 문란한 생활이 기본으로 따라붙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사생아 문제도 생기기 마련이다.
한국의 수많은 드라마에서 필수 요소로 써먹는 출생의 비밀 따위가 이런 식으로 만들어지는 거 아니겠는가.
만약 제이콥에게 그런 사생아가 있었다면, 셰브롱의 후계 구도가 이런 식으로 흐르진 않았을 것이다.
한국식 드라마 전개라면 제이콥의 사생아가 주인공이고, 유재원과 티파니는 딱 악역의 포지션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제이콥에게는 사생아도 없었다. 한 번 놀기 시작하면 끝장을 보는 것이 제이콥의 파티 스타일이었고, 여자친구도 여럿 있었지만 아이는 없었다.
제이콥의 사망이 알려지고 나서, 여자친구라는 사람들이 아이를 안고 프레더릭이나 셰브롱 본사를 찾아오긴 했었다. 제이콥의 아이라고 주장하면서 말이다. 프레더릭도 문전박대하지 않고 이들을 친절하게 맞아 주었다. 그렇지만 유전자 검사를 해 보니 제이콥의 유전자와 일치하는 아이는 없었다.
실망에 빠진 프레더릭의 눈에 티파니가 들어온 것도 그때쯤이었다.
결국, 프레더릭이 한평생을 바친 셰브롱은 티파니에게 상속되었다. 티파니가 후계자 경쟁에서 승리하는 데엔 유재원의 공도 각별했고 프레더릭도 잘 알고 있었다.
유재원 역시 프레더릭에겐 사위 이상의 존재감을 자랑했다. 그런 둘 사이에서 나온 아들이 혜성이였으니, 프레더릭에게는 너무나 특별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프레더릭은 12월이 딱 되자 알프레드 집사를 유재원에게 보내주었다. 첫돌 행사를 잘 준비할 수 있게 도와주라고 말이다.
심지어 유재원의 저택이 있는 샌프란시스코의 소살리토 지역에 알프레드 집사를 위한 사무실 하나도 마련해 주었다.
유재원의 저택에 게스트 룸도 많이 있었지만, 일을 본격적으로 하려면 사무실이 하나 있는 게 좋다고 말이다.
알프레드 집사님이 오니 행사 준비는 그야말로 물 흐르듯 척척 준비되었다. 유재원이나 티파니는 알프레드 집사님의 보고를 받고 고개만 끄덕이면 끝이었다.
한편, 알프레드 집사의 등장에 긴장한 사람이 있으니 김대석이었다.
이제는 10년이 넘게 비서실장으로 있으면서 유재원을 보좌했던 김대석이었는데, 알프레드 집사의 등장으로 본인의 입지가 위태로워진 거 아니냐는 불안감이었다.
그렇지만 알프레드 집사는 사적인 영역에서 돕는 것이었고, 일시적인 출장 서비스와도 같았다. 반면 김대석은 사적인 영역도 돕긴 하는데, 절대적 비중은 비즈니스 영역이 크게 차지하고 있었다. 게다가 무기 계약직이라는 형태가 있었기에 지금의 우려는 기우였다.
참고로 비서실장이 계약직이라는 사실을 알고 의외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ID 그룹의 임원들 모두는 1년 단위의 계약 형태였다. 대신 계약은 대부분 자동 갱신되는 형태였다.
그도 그럴 것이 정규직의 경우 ID 그룹의 임금 체계를 따르게 되는데, 그렇게 하면 복잡해지는 일이 많았다.
단적으로 월급과 근무 시간의 문제가 있다.
ID 그룹에는 레밍턴과 최강욱 이렇게 두 명의 부 회장이 있고, 최근에는 유럽 지역을 담당할 부회장과 조직을 만들 계획이 잡혀 있었다.
레밍턴과 최강욱 부회장의 올해 월급은 343억 원인데, 정규직의 월급 체계에서는 쉽게 나올 수 없는 액수다.
근무 시간 역시 탄력적이었다. 유재원이 임직원들에게 과도한 노동을 요구하진 않지만, 시시때때로 이것저것 지시하는 게 많았다. 근무 시간이 정확히 명시된 정규직들은 이러한 지시를 제때 따르는 데에 무리가 있다.
김대석 비서실장의 경우는 월급이 2008년 기준으로 7억 원이었다. 전 세계 직장인들과 다 비교해 봐도 상위 0.1% 안에 드는 수준이었다.
알프레드 집사님의 급여는 프레더릭에게서 나오니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김대석이 조금 더 많이 받는 건 확실했다.
그렇기에 김대석이 알프레드 집사의 등장 때문에 불안해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여기 혜성 도련님께 선물을 보내신 분들을 정리한 리스트입니다.”
오늘도 알프레드 집사님은 본인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유재원을 찾아와 내민 서류에는 깔끔하게 정리된 리스트가 있었다. 선물을 보내주신 분들의 이름과 소속, 직책 그리고 선물 내용이 잘 담겨 있었다.
“집사님, 이걸로 끝이죠?”
유재원의 물음에는 이걸로 끝났으면 좋겠다는 희망이 담겨 있었다.
“오늘은 끝일 겁니다.”
담담히 말하는 알프레드 집사님의 답에 유재원은 실망했다. 하지만 이미 예상한 바였기에 실망의 크기가 크진 않았다.
ID 그룹의 일을 하며, 때론 사적으로 맺어진 다양한 인맥들이 모두 혜성이의 생일을 챙겨주셨다. 그런데 이분들이 한날 한시에 모여서 다 함께 선물을 보내는 게 아니라, 각자 사정에 따라 준비가 되는 대로 보내주셨다.
그러니 선물들이 도착하는 날짜는 제각각이었고, 유재원과 티파니는 이러한 리스트를 12월 중순 들어서 매일 받아보고 있었는데, 선물 리스트도 벌써 5일째 이어지고 있었다.
“흠, 역시나 혜성이 선물이라기보다는 나나 티파니 쓰라고 보내는 게 더 많네요.”
이제 한 살 되는 아기가 쓸 만한 물건이 얼마나 많겠는가. 덕분에 선물 리스트에는 혜성이를 위한 용품이나 장난감보다는 유재원이나 티파니를 위해 보내는 품목들이 더 많았다.
“답례품은 어떻게 할까요?”
“집사님께서 말씀하신 기준으로 보내드리세요.”
선물을 받으면 2배의 답례를 하는 것.
그것이 프레더릭 가문의 방식이었다. 물론 어느 정도 친분이 쌓여 있고 원만한 관계가 유지된 상태라는 전제 조건이 있지만, 받은 것 이상으로 돌려준다는 원칙이 지금의 프레더릭 가문을 만든 원천 중 하나였다.
유재원도 괜찮은 것 같아서 따르기로 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건…….”
지시를 받은 알프레드 집사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새로운 문서를 하나 더 내밀었다.
“초대에 응해 주신 VIP 분들입니다.”
알프레드 집사님의 본론은 이거다.
프레더릭이 혜성이의 첫돌 행사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달라진 것이 바로 초대장 발송이었다.
“와, 응답률이 100%네요.”
“그렇습니다. 오랜만에 마스터께서 직접 호스트로 나선 생일 파티이니까요. 게다가 그 주인공이 혜성 도련님 아니겠습니까.”
유재원의 말에 알프레드 집사님이 자부심 가득하게 답했다.
유재원과 티파니의 가족 행사라면 초대장이 나갈 일은 없었겠지만, 프레더릭은 달랐다. 전 세계에 어마어마한 인맥을 가진 프레더릭이었고, 그런 프레더릭이 고르고 고른 사람들에게로 초대장을 보냈다.
초대장 봉투에 받는 사람으로 쓰인 이름의 면면을 보면 미국은 물론 세계를 움직이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단적으로 셰브롱과 엑손모빌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록펠러의 현 가주인 저스틴 록펠러와 음모론에서 절대 빠지지 않는 로스차일드 가문도 프레더릭의 초대에 응한 사람들이었다. 여기에 철강 재벌인 카네가 가문이라든가, 금융 분야에서 빠지지 않는 모건 가문도 있었다.
이처럼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가문들은 다 있는 것 같았다. 어쩌면 이들 모두가 유재원의 저택에 모인 후 단체사진이라도 찍으면, 음모론자들이 사골처럼 두고두고 우려먹을 증거가 될 것 같다.
더욱이 유재원의 인맥이 이보다 떨어지는 건 아니다.
아직은 임기가 남은 앨 고어 대통령이나, 내년부터 임기가 시작되는 존 매케인 당선인도 초대에 응했다. 스케줄이 있는 푸틴 총리는 축하 카드와 선물로 대신했다. 여기에 마이클 잭슨과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같은 연예계 거물들도 있다.
스포츠 쪽도 무시 못한다.
시즌 중이라 바빠서 참석은 불가능했지만, 퍼거슨 감독님이 보내준 혜성이의 생일 선물은 축구공 2개였다. 소박하다면 소박한데, 세상에는 둘도 없는 유니크 아이템이었다. 하나는 2008년 맨유의 1군 스쿼드 멤버의 모든 사인이 들어간 공이었고, 다른 하나는 맨유의 리빙 레전드들이 사인한 공이었다. 보비 찰턴 경, 데니스 로, 브라이언 롭슨, 앤드루 콜 등의 사인이 들어간 공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기꺼이 혜성이의 첫돌 행사에 참석할 수 있는 건, 생일 일자가 크리스마스와 가까운 21일인 덕이었다.
서양권에서 제일 큰 명절이 크리스마스였고, 크리스마스 휴가를 위해 미리미리 스케줄을 빼 두는 게 이들의 문화였다. 게다가 2008년 12월 21일은 일요일인 덕에 휴가를 내기 어려운 사람도 시간을 낼 수 있었다.
그나마 비공개 행사로 치러지는 덕에, 언론에 알려지진 않았지만 만에 하나 외부에 알려진다면 며칠은 특종이 될 만한 일이었다.
그리고 비슷한 성격의 행사가 지구 반대편에서 열리고 있었다. 분위기는 정반대였지만 말이다.
-중국 시진핑 주석, 조문 위해 방북.
-푸틴 대통령도 사상 첫 방북.
특종이 연달아 터지는 곳은 역시나 북한이다.
일명 조문 정치라는 형태의 정치 이벤트가 큼지막하게 열리는 중이었다.
베이징 올림픽 이후 바로 권력을 이양받은 이가 시진핑이었다. 시진핑은 예고했던 그대로 부폐와의 전쟁을 선언했고, 중국 경제 개혁에도 고삐를 당겼다. 외국계 기업의 투자 유치에도 열심이었는데, P마켓을 성공 사례로 선전했다.
P마켓의 스마트 물류 시스템은 반만 완성된 상태다.
강남 아래쪽으로 쓰촨성과 상하이, 그리고 광동성이 삼각 라인만 겨우 완성된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산당이 대놓고 밀어주니 P마켓 차이나의 실적은 폭풍 성장이었다.
블랙프라이데이 행사에서 P마켓 차이나 역시 참여를 했는데, 전체 매출액이 50억 위안을 넘어섰다.
한국 돈으로 대략 9천억 원 정도로, 중국 인터넷 쇼핑몰 업체 중에서도 단연 최상위권이었다. 만약 P마켓이 중국 전역을 커버할 수 있는 유통망을 완성한 상태로 중국 점유율 1위 업체가 된다면, 지금보다 100배는 더 성장할 수 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닌 게, 회귀 전 알리바바라는 중국 업체가 광군제라는 자체 이벤트로 하루에 거둔 매출액만 1,700억 위안. 한국 돈으로 30조 원에 육박하는 규모였다.
이번에 열었던 P마켓 차이나의 블랙프라이데이는 영업 후 처음 개장하는 것이라 제로 마진 수준이었다. 소나기처럼 뿌려진 할인 쿠폰에 배송비 무료 이벤트 비용까지 다 더하면 손해였다.
그렇지만 블랙프라이데이 행사가 성공리에 끝나면서 중국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P마켓이 다시 한 번 각인되었다. 쓰촨성 대지진 때의 활약도 강렬하긴 했지만, P마켓의 위력을 체감한 건 쓰촨성 지역에 한정되었다.
반면 이번 할인 행사는 중국 강남 이남 지역 사람들에겐 실제 체감할 수 있는 이득을 골고루 뿌려준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나중에 P마켓이 중국의 내수 시장을 싹쓸이 할 때, 시진핑의 태도가 확 달라질 위험은 여전했지만, 적어도 지금 걱정할 단계는 아니었다.
이러한 시진핑의 광폭 행보에 북한의 조문도 포함이 되었다.
따지고 보면 이는 상당히 파격적인 선택이었다. 국가 주석에 오른 시진핑의 첫 외국 순방이 러시아나 미국도 아닌, 북한이었으니 말이다.
당연히 여기엔 숨겨진 이유도 있었다.
사실 시진핑이 뒤에서 밀었던 후계자는 바로 김정은이었으니 말이다. 지금은 차가운 감옥에 갇혀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장성택이 가진 뒷배 역시나 중국이었다.
김정일의 사망과 함께 북한의 거물급 친중파 인사 둘이 사라져 버렸으니, 중국 수뇌부는 난리가 났다.
회귀 전 북한이라면, 이렇게까지 크게 논의되지 않았을 텐데 지금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대형 유전이 두 개나 나온 것은 물론이고, 토륨 원자로를 명목으로 미군도 북한에 주둔 중이었으니까. 비록 그 숫자는 1개 중대도 되지 못하는 소수였지만, 미군이란 숫자에 상관 없이 경계의 대상이었다.
결정적으로 새로운 지도자로 떠오른 김정남에 대해서도 중국은 정보가 부족한 상태였다. 그렇기에 시진핑이 직접 가서 만나보고 앞으로의 북중 관계에 대한 확답도 받으려고 방북을 결심한 것이다.
푸틴 대통령의 방북 목적 역시 시진핑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잘하고 있네.”
유재원의 모니터에 뜬 건 김정남과 백강철이 나란히 시진핑을 맡는 사진이었다. 김정남으로서는 처음으로 정상회담급 의전에 참여하는 것이었지만, 제법 의젓한 자세가 나왔다.
시진핑에 푸틴이 조문 정치에 직접 나설 정도이니 북한의 긴급 상황도 이제는 끝이었다.
이후, 큰 사건 없이 시간은 흘렀고, 12월 21일. 혜성이의 첫돌 날짜가 찾아왔다.
유재원 부부의 샌프란시스코 저택은 엊그제부터 행사 준비로 북적거린 상태였다. 오후 1시부터는 초대장을 받은 손님들이 속속 도착하면서, 경호팀의 긴장감은 최고조로 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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