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0회
블루오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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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했는데, 악몽은 없었다.
김정은이 타고 있던 러시아제 헬기에는 네 명이 타고 있었고, 생존자는 없었다. 전생과 현생을 통틀어 누군가를 해하는 건 처음이었다.
신의 존재나 사후세계의 존재에 대한 증거가 본인이었으니, 혹여 김정은이나 헬기 탑승자들이 한을 품은 귀신이 되어서 본인을 찾아와 잠자리를 사납게 할지도 모른다고 충분히 각오하고 있던 유재원이었다.
그렇지만 일이 터지고서 2주가 더 지난 지금까지도, 유재원의 취침 시간은 전과 달라진 게 하나도 없었다.
회귀한 다음부터 꿈을 꾸지 않게 된 상태에서 조금의 변화도 없었다는 이야기였다.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한 순간부터 무슨 일이 일어나도 받아들이겠다고 각오했던 유재원으로서는 맥이 풀리는 일이었다.
대신 이러한 유재원의 마음가짐이 뜻하는 바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직행할 만큼 회귀 전 북한의 지도부에는 희망이 없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김정은과 그가 꾸릴 북한 지도부가 최악은 아닐지라도, 최선은 되지 못했다. 잘 쳐줘 봐야 수우미양가에서 양 정도다.
이러한 회귀 전의 평가는 현재 시점에서는 더욱 추락했다.
유재원의 주관적인 평가가 아니라, 확실한 증거를 바탕으로 한 객관적인 평가였다.
숙청된 장성택의 해외 은닉 자금의 규모가 그 증거다.
무려 200억 달러.
처음 숫자를 들은 서방 사람들은 김정남과 백강철이란 쌍두 정치체제를 띄우기 위해서 과장한 숫자라고 생각했지만, 실제 존재하는 은닉 계좌들의 실제 잔고를 합산해서 나온 액수였다.
즉, 조금의 과장도 없는 것이다.
장성택의 심문을 맡았던 실무진들도 깜짝 놀랄 규모였다.
현재 한국 환율로 22조 원에 달하는 자금이니 당연했다.
이 정도 규모의 자본이라면 북한 땅에 딸린 노후된 철도를 죄다 현대화 한다거나, 여름마다 물이 넘치는 제방을 다시 쌓을 수 있을 정도였다.
물론 이 돈이 전부 장성택의 은닉 재산이라고 하는 건 무리다. 일부 자금에는 김정일이나 김정은의 비자금도 섞여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돈이 품고 있는 의미가 훼손되진 않는다. 오히려 사실 그대로 발표했다간 김씨 일가인 김정남의 이미지까지 나빠질 정도다.
백강철은 이미 고인이 된 사람들을 위해서, 그리고 앞으로 손을 잡아야 할 김정남을 위해서 이들의 해외 비자금도 모조리 장성택의 것으로 발표했다.
이 돈들은 원래대로라면 국가 금고에 들어가 사회에 재투자되었어야 할 자금이었다. 그런데 해외로 빼돌려지면서 북한의 발전 속도는 예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게 되었다.
유재원의 개입으로 90년대부터 확 달라진 북한의 경제 사정이었는데, 북한 사회의 발전 속도나 북한 사람들의 소득 수준 향상이 그닥 빠르지 않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장성택 한 사람만 이렇게 해먹은 게 아니라, 김씨 일가 그리고 김씨 일가를 보위하는 북한 수뇌부들 모두가 해먹고 난 다음에 남은 찌끄러기가 북한 사람들의 몫인 상황이다.
개성공단이 회귀 전의 3, 4배로 규모를 확장해도, 금강산 관광이 2008년인 지금까지도 꾸준히 안정적으로 유지가 되어도, 유전이 무려 2개나 동시에 터져도 지금의 이 꼴이었다.
이런 상태에서 김정은이 3대 세습을 한다고 해도 희망은 없었다.
그렇기에 유재원은 기꺼이 자신에게 도움을 청한 김정남의 손을 들어줬다.
만에 하나 김정남이 화장실 들어가기 전과 나온 후의 태도가 달라지는 것처럼, 승계가 끝난 다음 태도를 바꾸어도 상관없다.
김정남도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준다면, 억지로라도 좋은 쪽으로 끌고 가면 그만이다. 김정남을 압박할 수단은 많고 많았으니까.
백강철 쪽도 마찬가지다.
김정남을 치우고 백씨 왕조를 시작하겠다는 낌새만 보이면 즉각적인 대응을 할 수 있도록 대비책을 만들었다.
유재원은 누구보다 북한의 후계 작업에 깊게 개입을 해 버린 만큼, 앞으로는 훨씬 적극적으로 대북 정책을 수행할 작정이었다.
“영식아, 서버 준비 상태는?”
-시스템, 올 그린! 당장 서버를 열어도 문제없어!
롤러코스터처럼 급박한 사건들이 연달아 터진 11월도 이제 며칠 남지 않은 지금, 마지막 이벤트의 시작이 불과 몇 분 남지 않았다.
유재원이 영식이에게 물어본 준비 상태는 바로 블랙프라이데이 이벤트였다. 재작년에 시작한 블랙프라이데이 세일은 단숨에 전 세계인의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오픈 특가 세일은 대부분 품목도 적었고 준비된 물량도 소량이었다. 반면 블랙프라이데이 세일은 그야말로 창고 대방출을 한 것처럼 할인율은 물론이고 물량도 넉넉했다.
워낙 많이 팔려서 북미의 택배사들이 정시 배송이 힘들 만큼 무리가 올 정도로 호응이 일었다.
작년에는? 당연히 행사의 규모는 더더욱 확대되었다. P마켓뿐만이 아니라, 다른 인터넷 쇼핑몰까지도 합류했다. 재작년에는 11월 말쯤에 손익분기점을 넘는 업체가 P마켓 하나였다면, 작년에는 그 숫자가 더욱 늘어났다. 아마존과 이베이, 베스트바이와 같은 업체도 자체적인 물류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고, 혁신을 거듭하면서 물류 비용을 절약했다.
덕분에 작년에는 경쟁 업체들도 블랙프라이데이 행사를 시작하면서 행사의 질과 양 모두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그렇다면 올해는?
두말할 것도 없이 블랙프라이데이 세일만 노리고 있던 사람들이 대폭 늘어났다.
오죽하면 10월 초에 접어들자 P마켓이나 온라인 쇼핑몰의 매출액이 전년 동기 대비 눈에 띄게 낮아질 정도였다.
10월 초에 사느니, 차라리 한 달만 더 기다려서 대박 세일을 기다리겠다는 소비자들의 전략이었다.
한두 사람만 그런 게 아니라, 집단 지성처럼 움직이니 P마켓의 월 단위 매출액이 흔들릴 정도로 영향을 받았다. 이는 곧 올해 블랙프라이데이 세일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숫자가 작년과는 차원이 다를 거라는 의미였다.
방심 없이 철저한 대비가 필요했다.
클라우드 서버의 강점이 서버의 확충이 빠르다는 점이지만, 그렇다고 도깨비방망이처럼 뚝딱 늘어나는 건 아니다. 실시간으로 트래픽의 증가에 맞춰 서버 용량이 늘어나는 건 아직 구현되진 않았고, 미리 서버에 결제나 배송과 관련된 백 엔드 프로그램들을 세팅해 두고서 추가하는 식이었다.
클라우드 시스템의 관리 책임자인 영식이는 P마켓의 서버 담당자들과 함께 오늘의 블랙프라이데이 세일을 대비하는 작업을 꾸준히 했었다.
“자, 그러면 이번에도 잘해 봅시다.”
-서버 오픈까지 10초 남았습니다.
유재원의 말에 맞춰 인공지능 비서의 알람이 울렸다.
10초는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는 시간이었고, 11월 28일 0시 0분이 되자마자 P마켓의 인터넷 서버에 접속자들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와우! 작년의 2배는 될 거 같은데?
영식이의 호들갑이다.
유재원도 P마켓의 모든 상황을 모니터링 할 수 있는 툴을 띄워두고 수치를 체크하고 있었다. 2배가 뭔가. 폭발적인 수치를 보면 3배도 가능할 것 같다.
그와 함께 결제 금액도 쭉 늘어나가고 있다.
단순히 P마켓에 블랙프라이데이 세일을 구경하러 접속한 것뿐만이 아니라, 실제 구매까지 이어진다는 긍정적인 신호였다.
-누적 매출액, 100만 달러 돌파!
이벤트를 시작한 지 1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누적 매출 100만 달러를 찍어버렸다.
아무래도 P마켓 사용자들은 구매할 상품들을 장바구니에 담아두었다가, 세일 가격이 적용되자마자 결제하기를 누른 모양이다.
-2007년형 i웍스 품절!
최초의 품절 아이템도 나왔다.
연식이 1년이 넘는 i웍스였다. 2008년형 모델이 몇 달 전 출시된 탓에 구형으로 전락했지만, 그래도 CPU와 GPU가 모두 듀얼로 장착되는 최고 사양인지라 지금도 충분히 현역이었다. 당연히 몸값도 묵직했는데 개시 1분 만에 품절 딱지를 받았다.
-아! 네티즌들이 꼼수를 찾은 모양이야. CPU를 네할렘으로 업그레이드 해도 할인율이 그대로 적용되나 본데.
영식이의 말에 유재원도 바로 P마켓에 들어가 해당 상품을 열어 봤다.
실제로 옵션에서 CPU를 변경해도 할인율은 일괄 적용되었다. 2008년형 네할렘 i웍스는 블랙프라이데이 상품이 아니었는데, 이렇게 하니 비록 외형은 구형일지라도 내용물은 최상급인 i웍스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것도 반값으로!
-취소할까?
“아니. 그럴 수는 없지.”
이제 이벤트를 시작했는데, 취소 상품이 나온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P마켓 혼자서 하는 것도 아니고, 경쟁 업체들도 일시에 오픈한 상황이었다.
차라리 통 큰 할인으로 어필을 하는 게 났다.
1년 지난 구형이라고 해도 최고 사양 모델이라 가격이 묵직했다. 50% 세일이 적용되고도 1만 달러가 넘는 몸값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할인 전 가격은 2만 달러라는 미친 가격이었다.
한국 출시 가격은 1,800만 원이다. VAT 포함이니, 미국 출시 가격보다는 한국이 세계에서 제일 저렴한 가격을 자랑했었다.
다만 이 가격은 플래그십 스토어의 오프라인 가격이고, 해외로 배송은 되지 않으니 외국인들에겐 그림의 떡이었다.
최고의 개인용 워크스테이션이란 타이틀이 당연하다고 느껴질 만큼, 최상급 부품이 아낌없이 적용된 탓이다. CPU는 인텔의 제온 라인업이고 GPU는 엔비디아의 쿼드로 라인업인데, 이런 제품이 2개씩 들어간다. 스토리지나 메모리 용량도 메인보드가 받쳐주는 최대치였다.
그리고 여기에 비밀 하나가 있는데, 블랙프라이데이 세일이라고 이렇게 반값에 공급해도, 마진은 조금 남아 있어서 유재원에게 손해는 아니라는 점이었다.
각종 부품을 대량으로 공급받는 덕에 원가를 절감할 수 있었고, i웍스라는 브랜드 가치가 있어서 동급의 제품보다 조금 더 받아도 사용자들이 인정을 해 준 덕이다.
결정적으로 이번에 풀린 2007년형 i웍스 구매자 중에 옵션을 변경해 네할렘 CPU로 선택한 사람들의 숫자는 100명 정도 수준이라서,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다.
-5천만 돌파!
온갖 호들갑 속에서 매출액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5천만 달러를 찍기까지는 7분 정도 걸렸다.
-1억 돌파.
1억까지는 10분이다.
그야말로 파죽의 기세였다.
이번 블랙프라이데이 세일을 위해 준비한 상품의 숫자는 작년의 3배였으니, 매출액이 증가하는 속도도 그만큼 빨라졌다.
이는 경쟁 업체와 비교해도 눈이 부실 만큼 강렬한 성적표였다.
아마존도 열심히 따라오고는 있었지만, 모든 면에서 P마켓에 밀렸다. 인터넷 커뮤니티만 봐도 후발주자인 아마존이 P마켓을 따라잡기 위해 파격 세일을 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오히려 P마켓에 살 것이 더 많다는 후기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호오, 이건 좀 신기한 일이네.”
유재원의 눈에 P마켓 모니터링 중 신기한 것들이 보였다.
캠코더, 고성능 마이크, LED 조명 등등.
작년에는 보이지 않았던 품목들이 올해에는 판매 우선순위에 새롭게 나타난 것이다. 누가 보더라도 이는 프로듀스 마이 슈퍼스타의 대흥행 덕이라는 걸 분석할 수 있었다.
우승자인 이매진 드래곤스뿐만이 아니라 아델과 에드 시런, 그리고 에프엑스를 비롯한 본선 진출자 모두는 슈퍼스타가 되었다.
우승자에게 가장 많은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긴 했지만, 나머지 진출자들 역시나 하룻밤 자고 나니 스타가 되어 있었다. 미국에서도 큰 인지도가 쌓였고, 본국으로 돌아가자 그야말로 폭발적인 반응이 나왔다.
에프엑스만 해도 아직 정식 데뷔 앨범을 내지 않은 상태였는데, 팬카페가 만들어졌고 10만이 넘는 사람들이 가입했다. 가입 속도는 쇼가 끝난 지금에도 전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게 NBC의 프로듀스 마이 슈퍼스타의 2회 제작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프로듀스 마이 슈퍼스타는 NBC 입장에서는 유재원이 기획한 방송을 제작 대행한 것 정도였다. 성공의 가능성도 반반이었다.
결과를 확인한 지금, 1회로 끝낸다는 건 NBC에겐 너무도 아쉬운 일이었다. 매년 방송하는 것은 무리더라도 최소 2년이나 3년에 한 번씩 개최하는 쪽으로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물론 유튜브를 이용한 예선전은 당연히 유지하면서 말이다.
이렇게 본인의 노력으로 슈퍼스타가 될 수 있는 시대라는 걸 누구나 확인한 사람들은 너도나도 유튜브의 문을 두드렸다.
제대로 된 방송을 만들기 위해서 전문 장비를 사는 사람들이 늘었고, 이들은 블랙프라이데이 세일을 적극 이용했다.
이들이 만들어갈 미래가 기대가 되는 유재원이었다.
-아, 서버 로드율이 내려간다.
28일 0시에 시작된 블랙프라이데이 행사였다. 새벽 3시를 넘기자 잠자러 가는 사람들이 많아졌는지, 서버 리소스가 남아나기 시작했다.
오픈 후 2시간 동안 DDOS 수준의 트래픽이 몰렸을 정도였고 이를 다 받아냈으니, 올해의 블랙프라이데이 행사도 성공이었다.
이제 유재원에게 남은 행사는 혜성이의 생일이었다.
냉정히 따지면 혜성이의 첫 번째 생일이라는 건 개인적인 일이었다.
그렇기에 유재원의 마음은 가족끼리 간소하게 치르고 싶었다. 하지만 세계에 남다른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는 유재원이었고, 티파니와 프레더릭 역시 마찬가지였다.
혜성이의 첫돌 행사의 스케일은 처음 계획과는 차원이 다른 규모로 확대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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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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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끔한 질책과 응원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완결까지 이 긴장감을 놓치 않고, 열심히 달리겠습니다!
주말인데 건강히 잘 보내시고, 다음 주에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