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8회
블루오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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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원이 짧은 시간에 만들어낸 프로그램은 블루투스 통신 모듈의 취약점을 공격하는 바이러스였다.
“함께 해서 더러웠고, 다신 보진 말자.”
이상한 주문을 읊은 유재원은 곧 엔터키를 눌렀다.
그러자 짧은 시간 만들어진 바이러스는 곧장 인터넷 네트워크를 타고 태평양을 넘어서, 한반도에 도착했고, 여러 개의 무선통신 중계기를 타고 북한 땅으로 들어갔다. 그리곤 빠른 속도로 라선특별시에 다다르고 있는 김정은 일행의 헬리콥터에 도착했다.
유재원이 만든 바이러스의 최종 안착 지점은 김정은과 경호 수행원의 스마트폰이었다.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이었다면 진작에 패치가 되어서 사용하지 못할 방법이었다. 다행히도 김정은은 아이폰, 경호원은 북한 자국산이라 자랑하지만 실제로는 중국산 OEM 제품을 쓰고 있어서 블루투스 취약점 공격이 가능했다.
-바이러스 작동 개시.
“그래, 화려하게 타올라라.”
인공지능 골드의 알람 소리에 유재원은 타오르라고 빌었다.
블루투스 모듈의 취약점을 타고 들어온 바이러스는 바로 루트 권한을 탈취했고, 바이러스를 실행함과 동시에 의미도 없으면서 급격하게 AP를 갈구는 연산 작업을 시작했다.
바이러스에 담긴 공격 메커니즘이 스마트폰의 리미트를 풀고 급격하게 로드율을 올려 배터리를 혹사시키는 것이었다.
바로 배터리 발화를 유도해 헬리콥터를 불덩이로 만들겠다는 게 유재원의 의도였다.
“음.”
실패인가?
블루투스 취약점 공격 후 몇 분이 지났을까.
GPS 위치 추적 프로그램에서 나오는 노란 점의 이동 속도는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30분 후에 라선특별시에 도착이다. 스마트폰 배터리에 불이 붙으면 유독가스도 엄청나게 나오고 불도 붙으니 비좁은 헬리콥터 안에서는 치명적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몇 분이 지나도 김정은 일행의 헬리콥터의 속도가 떨어지지 않았다. 정확하게는 김정은의 스마트폰 GPS 모듈의 이동 속도지만, 유재원이 의도한 결과는 나오지 않은 것 같았다.
결과 확인을 위해서 유재원은 다시 컴퓨터를 조작했다.
이번에는 스마트폰의 마이크를 탈취해서 들리는 소리를 전송하도록 했다. 그런데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면 바이러스가 제대로 작동은 되었다는 뜻이긴 한데. 도대체 어떻게 되고 있는 건지.”
북한의 3대 세습 후계자 중에 가장 앞서 있는 김정은에 대한 공작을 진행하고 있는 유재원은 지금의 상황이 너무도 답답했다.
전달 받을 수 있는 정보가 너무도 제한된 상황에서 일을 하는 건 유재원의 취향은 전혀 아니었으니 말이다.
-모니터링 목표 ‘옐로우1’의 속도가 50% 이하로 떨어졌습니다.
“어! 속도가 줄어든다.”
인공지능 비서 골드의 말처럼 노란색 무리의 이동 속도가 크게 떨어졌다. 심지어 노란 점 하나는 사라졌다. 경호원의 GPS 모듈이었다. 다만 같이 공격을 받은 김정은의 아이폰은 GPS 신호가 정상이었다.
의도한 대로 일은 반만 일어난 모양이다.
하긴 아이폰이라면 배터리 과열에 대한 대책은 확실히 있을 것이다. 반면 되는대로 만들고, 백도어를 비롯한 다양한 취약점들을 억지로 쑤셔 넣은 중국산 스마트폰은 걸어다니는 시한폭탄과 다름이 없었다. 게다가 북한에 OEM으로 들어가는 제품이니 북한의 검수에 걸리지 않는 한에서 최대한도로 뒷구멍을 만들어 놓았다.
덕분에 시한폭탄이 제대로 작동한 것 같은데, 결과가 대체 뭔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직접 봐야겠다.”
이미 일을 저지른 유재원은 거침이 없었다.
직접 결과를 확인하기로 마음먹었고, 그와 동시에 떠올린 아이템은 두만강 하류 유전에서 유정을 뚫고 있는 거대 해상 플랫폼 아틀라스의 경비&탐색용 드론이었다.
셰브롱은 ID 그룹과의 결혼 동맹 이후에 많은 것이 바뀌고 있는 굴뚝기업이었다. 적극적으로 IT를 도입하며 도전적으로 혁신을 이뤄냈다. 그 결과 석유 업계의 절대 원탑이었던 엑손모빌을 따라잡은 상황이다.
엑손모빌을 비롯한 나머지 원유 업체의 신규 유전 탐사가 지지부진한 가운데 셰브롱만이 지난 몇 년간 대박을 계속 터트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여기에 초고유가라는 특수가 붙으면서 셰브롱의 주가는 엑손모빌을 뛰어넘었다.
이러한 결과로 셰브롱의 경영진은 IT 기기의 도입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게 되었다. 프로펠러의 날개 하나가 30cm에 이르는 대형 드론을 경비 업무, 탐색 업무에 도입하는 것도 그러한 IT 혁신의 일환이었다.
인공지능을 통한 완전 자율화된 무인 경비 시스템으로 드론 4기와 컨트롤 컴퓨터가 한 세트를 이루는 시스템이었다.
연료도 배터리가 아니라 휘발유를 쓰기에 작동 시간이 훨씬 길었다. 휘발유 동력 드론의 최대 단점은 시끄럽다는 것인데, 이는 노이즈 캔슬링 기술을 써서 전기 드론 수준으로 낮춘 모델이었다.
보안용 상품인 탓에 드론 시스템은 화웨이의 스마트폰처럼 해킹이 쉽지 않았다.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유재원의 풀파워라도 최소 한 시간 이상은 필요했다. 한 시간 후라면, 급변 사태가 어떻게 흘러갈지 아무도 모르는 시간이다.
이런 경우 해킹보다는 차라리 정면 돌파를 하는 게 훨씬 빠르다.
“자기야! 아틀라스 플랫폼의 경비 드론 마스터 코드가 필요해!”
유재원은 바로 티파니에게 전화를 걸어 다짜고짜 마스터 코드를 요구했다.
-응? 무슨 일인데?
“라선특별시에서 급변 사태가 일어나 확인을 해야 할 것 같아.”
-급변? 세상에! 바로 보낼게!
급변 사태라는 말에 티파니는 바로 유재원에게 숫자와 특수 문자를 포함한 32자나 되는 긴 암호를 문자메시지로 전했다.
문자를 받은 유재원은 바로 경비용 드론의 컨트롤 시스템에 마스터 코드를 입력했고, 제어권을 확보할 수 있었다.
천만다행히 정비도 끝나고, 연료도 가득 찬 예비용 드론이 있었고, 유재원은 이를 김정은의 스마트폰 GPS 좌표를 입력하고 발진시켰다. 동시에 드론의 카메라에 달린 영상을 샌프란시스코 집까지 전송하도록 지시했다.
“들어온다!”
화면이 들어오자 답답함이 상당히 풀리는 유재원이었다.
한반도는 지금 깊은 밤중이라 깜깜했지만, 경비용 드론답게 적외선 카메라가 달려 있어서, 지상의 상황이 대충은 보였다.
대충이라는 건 드론의 성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북한의 부실한 통신 인프라 때문이었다.
북한도 한국처럼 4G 중계기가 전국에 걸쳐 빽빽하게 설치되었다면 FHD 영상도 실시간으로 받아볼 수 있었을 텐데, 지금은 VCD 해상도 수준에도 미달했다.
그나마 3G 통신망은 유지가 되었기에 실시간으로 영상이 전송이 되는 것이다. 회귀 전의 북한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천지개벽할 일이기도 했다.
빠르게 목표 지점까지 날아간 유재원은 곧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험준한 산속에서 불타오르고 있는 헬기의 잔해들이었다.
사람이었던 것으로 보이는 조각들도 널려 있었지만, 흑백의 적외선 영상이었고 해상도도 낮아서 현장의 끔찍함이 유재원에게 곧장 전달되진 않았다.
처음 의도한 그대로 헬리콥터 안에서 휴대폰 배터리가 불타오르며 유독가스를 내뿜자, 당황한 헬기 파일럿이 실속했고, 그대로 험준한 산에 떨어진 것이다. 한편으로는 다행이었다. 만에 하나 헬기 사고가 벌어지지 않았더라면, 플랜B 가동으로 드론과 헬기를 충돌시키려고 마음을 먹었던 유재원이니 말이다.
“끝났군.”
3대 세습 경쟁은 이걸로 끝이었다.
김정일에게 눈도장도 확실히 받아 놓고, 장성택을 비롯한 지지 세력도 튼튼히 만들어 놓으면 뭐하나. 이렇게 본인이 가면 끝인데 말이다.
모니터로 전달되는 화면을 보고도 유재원은 감정의 동요가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기존의 마스터플랜에 따른 대북 전략이라면 북한의 대대적인 변화는 2010년대 중반에서야 시작된다.
북한은 변수가 너무나도 많으니 최대한 보수적으로 타임라인을 잡았다. 김정은이 2011년에 3대 세습을 하고서, 내부 안정을 끝내고 나서야 뭔가를 해볼 만하다는 결론이었다. 그렇지만 모든 게 달라진 지금 굳이 그때까지 기다릴 필요도 사라졌다.
이미 북한의 상황은 유재원이 마스터플랜으로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전향적이었으니 말이다. 북한 관련해서는 전명헌 할아버지 덕에 로또를 맞은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러면 굳이 회귀 전과 같이 김정은의 세습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 유재원의 판단이었다.
김정은보다 훨씬 유화적이고, 본인과의 접합점도 있는 김정남이 되는 게 낫다는 판단이었고, 이렇게 일을 저지르고야 말았다.
“김정남은?”
GPS 모니터링 도구에서 유재원은 파란 점을 찾았다.
일이 잘 풀렸는지, 평양을 나와서 동북쪽으로 빠르게 이동 중이다.
구금된 김정남을 움직이게 만든 건 전화 한 통이었다. 위험 요소가 해소되었으니, 라선으로 최대한 빨리 김정남을 데리고 오라는 통화였다.
김정남을 구금하고 있던 보위부 요원들은 바로 말을 따랐다. 그도 그럴 것이 명령한 사람이 바로 보위부 사령관인 장성택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장성택이 미쳤다고 이런 식의 명령을 내리진 않았다.
음성 합성으로 만들어진 가짜 장성택의 목소리였다. 딥페이크 기술의 일종으로, 인공지능 비서 골드의 음성을 중성적인 것 하나만 지원하는 지금에서, 사용자가 원하는 목소리로 확대하기 위해 만들고 있던 프로젝트였다.
아직 완벽한 것은 아니라서 자세히 들어 보면 실제와 차이가 느껴지지만, 워낙 다급한 상황이었기에 현장 요원들은 깜짝 속아넘어갔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녹음된 멘트만 읊는 게 아니라, 보위부 요원들의 반응을 듣고 그에 대응해서 대화를 하듯 명령을 하달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골드의 자연어 해석 능력과 음성 합성 능력의 결합이었다. 그것도 장성택의 평소 말투까지도 참고해서 멘트가 작성되었으니, 현장의 보위부 요원들도 깜빡 넘어갔다.
만에 하나 이동 중 방해를 받을 수 있어 통신기기는 모두 꺼놓으라는 명령도 내렸으니, 김정은의 변고를 알아챈 장성택이 무슨 수를 쓰려고 해도 김정남에게 당장 위해를 가할 수 없을 것이다.
다음 날 아침.
-긴급 속보!
-김정일 위원장 라선특별시 현장 지도 중 심근경색으로 긴급 수술 받아.
-아직 의식 불명 중. 회복 가능성 낮아.
-북한군 수뇌부, 김정일 위원장 사망 대비 움직임 포착.
-긴급 속보! 김정일 위원장 위독 소식에 라선으로 이동 중이던 김정은 선전부장 사망!
-헬리콥터 추락 확인!
한국 사람들은 아침부터 쏟아진 긴급 속보에 경악했다.
북한과의 관계 개선이 90년대부터 시작해 거의 20년 동안 이어지면서, 북한으로 인한 긴장 모드는 거의 잊힌 상태였다.
그런데 갑자기 김정일이 쓰러지고, 사상 초유의 3대 세습으로 확실시되고 있던 김정은이 실종되었다는 소식에 다들 깜짝 놀랐다.
비단 한국 사람들뿐만이 아니라, 한국에 투자를 했던 외국인 투자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침부터 터진 속보였으니, 주식 시장이 열리자마자 외국인들은 매도에 나섰다. 그것도 무조건 시가에 내던지는 투매였다.
어제까지만 해도 코스피는 주가지수 3천 시대를 불과 2포인트 남겨두고 장이 종료된 상태였다.
코스피의 대장인 ID 일렉트로닉스가 메모리 반도체 패권 확보를 위한 치킨레이스를 선언했음에도, 주가는 꺾이지 않았다. 단기로는 손해겠지만, 장기적으로는 큰 이익이 될 거라는 전망 덕이었다.
여기에 시베리아-태평양 송유관 관련 기업들, 차세대 배터리 관련 기업들이 끝없이 오르면서 주가지수 상승을 이끄는 중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오늘 아침부터 북한발 속보가 연달아 터졌고, 불안감을 느낀 외국인들이 대량 매도에 들어갔다.
상승세는 단번에 꺾였고, 주식 시장은 대부분 파랗게 물들었다. 주가지수 기준으로 순식간에 -5%를 넘겼을 만큼 대대적인 매도였고, 개미들과 기관 투자자들 역시 패닉에 빠졌다. 20년 가까이 잊고 있던 북한 리스크라는 단어가 주식 시장에 빠르게 돌기 시작했다.
이렇게 다들 떨어지는 칼날이 무서워 어쩔 줄 모르던 그 상황에서 주식을 주워 담는 회사가 있었다.
ID 인베스트먼트 한국 지사였다.
황재홍 사장은 유재원을 신처럼 따르는 사람이었기에, 주식 대량 매도 사태가 터질 경우 물량을 받아내라는 지시를 충실하게 따랐다. 그렇지만 무작정 매입하진 않았고, 대량 매도 물량이 쌓인 블루칩들을 중심으로 매입했다.
주식 시장이 급변할 때, 청와대나 정치권은 각자 가진 대북정보자산을 총동원해서 사태의 파악에 나섰다. 그래 봐야 유재원만큼 정확한 정보를 얻지는 못했지만, 대강의 사태 파악은 가능했다.
김정일 위원장이 라선특별시에 있다가 급성 심근경색으로 수술을 받게 됐다는 것도 확인했고, 아직 회복 불명이라는 사실도 확인했다.
다만 북한 군부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어떻게 행동할지는 짐작할 수 없었다. 또한 헬기 추락으로 사망이 확인된 김정은과 관련된 일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것들이 오리무중인 상태에서 삼 일이 더 지났다.
한국의 코스피 지수가 최고점인 2,998포인트에서 2,200포인트로 수직 낙하하는 데 걸린 시간이었다.
-김정일 위원장 사망 확인!
심근경색으로 긴급 수술을 받았던 김정일 위원장은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사망했다. 언론은 가 버린 사람에게는 더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대신 집중적으로 조명되는 건 이제 북한은 어떻게 되는가였다.
90년대부터 이어진 개혁 개방으로 많은 게 달라진 북한이지만, 독재 체제는 그대로였다. 그러니 평소 같으면 확고한 후계자였던 김정은이 3대 세습을 했을 텐데, 그 김정은도 같이 가 버렸으니 말이다.
이제 남은 건 김정남, 김정철, 김여정인데.
김여정은 여자라서, 김정철은 약쟁이라서 절대 불가능이다. 그러면 김정남이지만, 유재원도 그건 확신할 수 없었다.
장성택과 백강철이라는 두 변수 때문이었다.
둘이서 짜고 김정남을 축출한 다음, 권력을 나눠 가질 수도 있으니 말이다.
다행히도 유재원은 누구보다 확실한 빨대를 통해 북한의 상황을 훤히 볼 수 있었다. 한순간 한반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김정남이 유재원의 확실한 빨대였다.
띵!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는 속담처럼, ID톡 알람은 김정남이 보낸 메시지였다.
“됐어!”
메시지를 읽은 유재원은 쾌재를 외치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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