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4회
권력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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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도 벌써 11월이다.
엊그제 해피뉴이어 이벤트를 한 것 같은데, 이제 두 달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에 실감하는 사람들은 상당했다.
SNS에서 칼라일 제이너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는 롭 카다시안에게도 2008년은 어느 해보다 빠르게 지나가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칼라일 제이너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한 SNS 톡톡에서의 성장세는 그 어느 때보다 2008년이 가팔랐으니 말이다.
팔로워 1천만 돌파!
억 단위 사용자를 보유한 톡톡에서도 상위 0.01% 정도에 들 만큼 엄청난 숫자였다. 이러한 팔로워 중 상당수는 누나인 킴벌리 카다시안이 만들어 준 것이긴 했지만, 적어도 반은 롭 본인이 만들었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스트리트 패션의 유행을 선도하고, 할리우드 셀럽 사이에 일어나는 사건 사고들을 옆에서 본 거처럼 빠르게 전해준 것이 팔로워를 급속도로 늘릴 수 있던 비밀이었다.
“아, 그 일도 있지.”
롭 카다시안은 아직도 생각만 하면 가슴 두근거리는 일이 떠올랐다.
-아직도 ID톡 쓰는 사람이 있냐? 나만 안 쓰는 건가??
두 줄의 짧은 문장이지만, SNS상에서 며칠을 뜨겁게 달궜던 사건이었다.
인터넷에서 ID 그룹의 비평은 조심스러웠다. 일종의 불문율이었다. ID 그룹과 비교해서 훨씬 나은 점을 찾을 수 있는 기업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으니 말이다. 특히 미국 전역에 100MBps를 염가에 공급해 주는 걸로 미국 네티즌들의 호감을 크게 얻었다.
롭도 넥스트컴의 20달러짜리 100Mbps 서비스를 받고 있다. 원래는 40달러 정도의 가격이었는데, 결합 상품이라는 할인 서비스로 반값에 공급받는 것이었다.
롭도 처음에는 망설였는데, 워낙 큰 의뢰였기에 눈 딱 감고 질러 버렸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롭의 칼라일 제이너 계정에 올리는 광고의 단가는 적으면 5천에서 8천 달러였다. 그런데 웬 듣도 보도 못한 자그마한 마케팅 업체에서 온 ID톡 저격 의뢰는 5만 달러였다.
5만이라니!
웬 듣보잡이냐 했던 롭은 가격을 듣는 순간 바로 수락했고, 입금이 되자 톡톡에 글을 올렸다. 놀랍게도 두 줄의 짧은 메시지는 톡톡상에서 빠르게 확산되면서 논란과 함께 유명세까지도 얻게 해 줬다.
어째서 누나인 킴 카다시안이 패리스 힐튼의 시녀 소리 들으면서도 힐튼 옆자리를 사수하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유명해지려면 유명한 사람 옆에 서는 게 최고라는 걸 바로 체감했다.
심지어 해당 업체에서는 기대 이상의 효과로 평가한 모양인지, 5만 달러짜리 의뢰를 한 번 더 줬다. 사진 하나를 올리는 것이었다. 평소 올리던 스트리트 패션인데, 페이스북 메시지를 사용하는 모습이 살짝 비치는 구도의 사진이었다.
잘나가는 변호사인 아버지의 가업을 물려받기 위해 로스쿨에 다니는 롭이었기에, 의뢰주가 페이스북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페이스북이라니.
4년 전쯤부터 빠르게 성장한 SNS 서비스였다.
롭은 큰 사건에 휘말렸다는 걸 직감했지만, 이제 와서 되돌릴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추가로 더 내려온 의뢰는 거부하는 것으로 선을 그었다.
마음 같아선 문제의 게시글을 삭제하고 싶었다.
그런데 로다주와 같은 인기 배우들은 물론이고 네티즌들의 성지 순례가 이어지면서 관심이 끊이지 않았기에 지울 수도 없었다.
“응? 이건 뭐야?”
11월 넷째 주 금요일이 있을 블랙프라이데이 행사를 대비한 게시물을 준비하기 위해 웹서핑을 하던 롭 카다시안의 눈에 큼지막하게 들어오는 기사들이 있었다.
-한국 법원, 악플러 C8대왕에 유죄, 징역 3년에 집행 유예 5년 선고.
-민사에서 배상금 1천만 달러 확정.
-유재원과 C8대왕 모두 항소.
“미친! 1천만 달러라고?”
이제는 발을 뺀 롭이지만, 가슴 한편을 섬뜩하게 만들어 주는 기사였다.
유재원 회장이 한국의 대표 악플러인 C8대왕을 고소했다는 건 롭도 알고 있는 일이었다. 악플러 문제는 미국에서도 심각한 일이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이 사건은 어떻게 보면 유재원의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를 방해한 개인에 대한 첫 처분이었다.
결과는 유죄에, 1천만 달러의 배상금이 떨어졌단다.
심지어 유재원은 그것도 가볍다고 항소를 했으니, 롭에겐 식겁할 일이었다. 만약 그 의뢰를 계속 받아서 ID 톡 저격을 이어 나갔다면, ID 그룹의 칼날이 본인을 향했을지도 모를 일 아니겠는가.
ID 그룹의 정보팀이 칼라일 제이너 계정을 지금도 모니터링 중이라는 걸 모르는 롭의 생각이었다.
나름 정확했다.
실제 유재원은 C8대왕의 1심 선고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한국의 형법 체계는 통일국민당이 90년대 초에 완전히 틀을 바꾸어 놓은 상태다. 가장 큰 변곡점은 연쇄 범죄를 하나로 퉁치는 게 과거였다면, 이제는 개별 사건으로 합산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예를 들어 강도와 살인을 동시에 저지른 악질 범죄 사범에게 과거에는 최고 형벌인 살인죄만 적용되었다면, 이제는 강도 사건 역시 따로 계산되고 합산되어 최종적으로 선고가 내려지는 것이다.
C8대왕도 마찬가지였다.
과거에는 악플을 수십, 수백만 개를 달아도 하나의 범죄로 취급되어서 몇백만 원의 벌금 정도에서 끝이었다. 반면 지금은 악플 하나당 하나의 케이스가 되어서 합산되었다. 그런데 책정된 배상금의 액수가 1만 원에 불과했던 것이다.
유재원이 생각한 10만 원의 1/10에 불과한 금액이다. 목표에 한참 미달된 금액이었기에 유재원은 바로 항소를 주문했고, ID 그룹 법무팀도 바로 움직였다.
다만 이번 1심 판결은 한국에도 적잖은 파장을 일으켰다. 일각에서는 배상금 규모의 상한을 정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악플 한 번 잘못 달았다가 자본주의 시스템에서의 퇴출을 의미하는 파산이었으니 말이다.
C8대왕이라는 녀석도 1천만 달러를 물게 된다면 확실히 파산이었다.
인터넷에서는 홍콩의 펜트하우스에 슈퍼 카에 온갖 사진을 올리며 허세를 부렸지만, 대부분 가짜였다. 진짜 슈퍼리치인 지인들의 프라이빗 SNS에서 올라온 사진을 잘라내고 반전시켜서 만든 가짜였다. 그렇게 주변인들로부터 느끼는 열등감을 악플로 풀었으니, 기네스 북에 오를만한 한국 최악의 악플러가 된 거 아니겠는가.
현재 C8대왕이 가진 현금으로는 1천만 달러, 한화로 120억 정도 되는 돈도 낼 수 없는 처지였다. 마찬가지로 C8대왕과 함께 고소당한 악플러들 모두가 배상금을 낼 능력은 없었다.
그렇기에 벌금과 배상금에 상한을 정해야 한다는 말이 언론에서 먼저 나왔고, 국회에서도 일부 의원들이 말을 하기 시작했다. 혹시나 C8대왕 쪽이 여론전을 시작한 건가 싶었는데, 그런 것도 아니었다. 정보팀이 파악하기로는 언론에서 먼저 말이 나왔다고 한다.
피해자들이 받은 고통보다는 그저 배상금 100억이라는 숫자에만 집중했다. 결과적으로 C8대왕에 대한 비호 여론 조성에 앞장섰다. 말로는 균형 보도라면서 언제나 가해자 쪽에 서사를 부여하는 한국 언론의 싸구러 저널리즘이었다.
그런 움직임에 유재원의 반응은 간단했다.
형이 확정되고 나서 이야기해도 늦지 않는다.
그 말 그대로 지금 내려진 판결은 1심에 불과했다. 유재원과 C8대왕 모두 항소를 했고, 대법원까지 갈 게 분명했기에 최종 판결은 1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 그것도 재판이 빠르게 진행되었을 때의 이야기였다.
즉 유재원의 의지 형량이나 배상금의 합산에 상한을 두는 개정이 이뤄진다고 해도 C8대왕 이 녀석만은 예외라는 것이었다.
띵.
롭 카다시안이 가슴을 쓸어내릴 때.
“응?”
-ID톡, 메이저 베타 업데이트 가능.
-강화된 친구 추가 기능과 차세대 타일 인터페이스 탑재.
-인공지능 비서의 능력 강화 등등.
ID톡 알람이었다.
신세대라면 페이스북 메신저를 써야 한다고 어필했던 롭이었다. 직접 페이스북으로부터 의뢰를 받은 건 아니었지만, 광고비도 넉넉히 받은 덕에 의리로 페이스북 메신저를 써 봤던 때도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이렇게 ID톡으로 복귀했다.
후발 주자답게 모든 면에서 ID톡에 부족했다. 결정적으로 페이스북 메신저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너무 적었다. 메신저라는 게 소통을 위한 것인데, 친구 목록에 친구들이 없으니 뭘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결국 이렇게 ID톡으로 돌아온 지 몇 달은 되었고, 덕분에 메이저 업데이트 알람을 받을 수 있었다.
롭은 바로 받기 버튼을 눌렀다.
다운로드는 순식간에 끝났고, 업데이트도 바로 이뤄졌다. 일련의 작업들이 끝나고 나서 바로 ID톡을 실행하자 완전히 새로운 인터페이스가 롭을 맞이했다.
타일 인터페이스였다.
완전 낯선 모습이었고, 약간은 투박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렇지만 패션에 일가견이 있는 롭이었기에 심플함이 만드는 깊고도 진한 세련미를 놓치지 않았다. 피트 몬드리안의 명작인 빨강, 파랑과 노랑의 구성 II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강화된 친구 추가라…….”
곧이어 친구 목록에서 이번에 주력으로 업데이트된 기능을 하나둘 살펴보기 시작했다.
몇십 분이 흘렀을까.
롭 카다시안은 떡 벌어지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단순한 친구 추가 기능은 ONLY HUMAN이라는 보이지 않았던 한계를 뛰어넘음으로써 상상 그 이상의 확장력을 선보였다. 롭의 방 안에 있던 IoT 기기들은 물론이고, 주로 접속했던 웹사이트 역시 기본이었다.
이를 통해 몇 시간이고 헤매며 찾았던 정보들을 ID톡으로 대화를 하면서 받아 볼 수 있게 되었다. 심지어 이건 어떠냐고 추천까지 해 줬다. 시답잖은 추천이라면 바로 실망으로 이어졌을 텐데, 롭이 찾고 싶어 하던 정보들이었다.
마치 평소 접속했던 스트리트 패션 사이트가 하나의 인공지능이 되어서 롭에게 수준 높은 접객 서비스를 해 주는 것 같았다.
물론, 실제로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상에서 구동되는 건 롭의 느낌과는 정반대였다. 인공지능 비서 골드의 개인화 데이터를 ID톡에 활용하는 방식이었으니 말이다. 롭 카다시안이 만족감을 느낀다는 건, 인공지능 비서의 개인화 데이터를 충분히 쌓아놓았다는 이야기와 같았다.
“어우, 잘 만들었네.”
롭의 마음속에서 만족감이 절로 피어올랐다.
단순 반복 작업에서 본인이 할 일이 상당히 줄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앞으로 출시될 신제품들과의 연동도 기대가 되었다.
이를테면 라이트닝 볼트사가 조만간 출시할 거라는 레벨4 자율주행 자동차나, ID 하이테크 연구소에서 슬쩍 정보가 나오는 증강현실 안경과 결합하게 되면 SF영화의 그 인상적이었던 장면들이 현실화가 되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한편으로 ID 그룹의 저력에 대단함도 느껴졌다.
특히 무료로 제공되는 서비스라는 것에서 경쟁사들에게 애도를 표했다.
경영이나 IT를 전문으로 배운 적은 없는 롭이었지만, ID톡의 수억에 달하는 사용자들에게 이러한 차세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자본이 필요할지, 상상할 수는 있었으니 말이다.
“음!”
잠깐이나마 상상의 나래를 펼쳤던 롭은 이런 느낌을 SNS에 올리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누가 뭐라고 해도 SNS는 그의 사업체였으니 말이다. 분명 ID톡 업데이트는 큰 이슈가 될 것이고, 거기에 한 발 거들고 싶었다. 게다가 ID톡이 이렇게 메이저 업데이트를 하게 된 건 자신의 톡톡 때문이 아니겠는가.
분명 본인이 반응하면, 팔로워들도 뜨거운 반응으로 호응해줄 거다.
마음의 걸림돌은 딱 하나, 예전에 해놓은 말이었다. 어떻게 하면 과거에 뿌려 놓았던 말과 상충되지 않게 ID톡의 업데이트를 언급할 수 있을까 하며 롭 카다시안의 머리가 비상하게 돌았다.
그렇게 1분쯤 고민했을까.
생각을 끝낸 롭은 ID톡에 친추된 톡톡과의 대화창을 열고 터치 키보드로 문자를 써 넣기 시작했다.
완성된 문장을 몇 번이나 다시 읽어보면서 퇴고를 거듭한 후, 마음의 준비를 한 롭은 전송이란 타일을 탭했다.
그의 천만 단위 팔로워들에게 문장은 즉각 전송되었다.
띵.
-칼을 갈고 나온 ID톡, 제법 쓸 만해졌네. 진작 이렇게 나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 정도 수준이 계속 유지된다면 유료화로 전환되더라도 계속 사용할 듯.
-다만, ID톡 업데이트 후 스마트폰의 배터리가 빨리 줄어드는 느낌. 발열도 좀 심해졌고.
“유료?”
본명 롭 카다시안, 인터넷 닉네임 칼라일 제이너의 톡톡을 실시간으로 받아본 사람 중에는 유재원이 있었다.
유재원이 몇 달을 집중하면서 ID톡 메이저 업데이트를 하게 한 장본인이 칼라일 제이너 아니겠는가. 분명 업데이트 후 반응을 보여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여지없이 적중했다.
이번에도 헛소리를 했다면 가만있지 않을 작정이었는데, 유재원까지 나설 필요는 없었다. 비추천의 숫자가 좋아요 숫자보다 훨씬 빠르게 늘어나고 있었으니 말이다.
더욱이 유료화는 애초에 상상해 본 적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좋은 서비스도 유료화를 하면 사용자가 뚝 떨어져 나가는 게 현실이었다.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게 기업의 본분이지만, ID톡은 지금의 비즈니스 모델로도 충분히 서버를 유지하고도 남는다.
더욱이 유재원이 원하는 건, 돈보다 더 높은 차원의 힘인 권력이었다.
과거 권력이란 소수가 독점하는 형태였다면, 지금은 전 세계를 연결하는 네트워크에 모인 개인들 하나하나가 힘을 만들었다.
이렇게 모인 이들은 이미 힘을 증명해냈다.
미국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조지 부시를 밀어내고 존 매케인을 선택했고, 결국에는 존 매케인을 백악관에 입성시켰다.
프로듀스 마이 슈퍼스타도 확실한 예였다. 결승 무대 하나만을 남겨 놓고 있었지만, 본선의 진출자 대부분이 슈퍼스타로 거듭났다. 그리고 이들을 거기까지 올려 보내준 것이 수많은 개개인의 1표가 모인 힘이었다.
이를 보고 몇몇 매스컴에선 스타를 만들어내는 권력이 방송국에서 인터넷으로 옮겨갔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처럼 사람들을 인터넷으로 연결해 하나의 권력이 되게 한 장본인이 유재원이었다.
ID톡 메이저 업데이트는 권력의 이동 속도를 보다 가속화하는 킬러 소프트웨어였다. 그렇기에 유재원은 유료화 계획 따위는 앞으로도 영원히 백지상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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