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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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부품의 가격이 정해지는 방식은 단순했다.
가장 중요한 부품 중 하나인 CPU를 예로 들어 이야기하자면, 세계 최대의 CPU 생산 업체인 인텔에서 생산 원가에 마진을 붙인 공장도 가격과 중간 유통업자들의 마진까지도 보장하는 MRSP를 발표한다.
최근 발표된 네할렘 아키텍처 CPU의 최상급 모델인 제온 E7-8870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면 소비자 가격은 4,999달러지만, 공장도 가격은 3,999달러다.
대략 1천 달러의 차이가 있다.
물론 아무나 공장도 가격을 받을 수 있는 건 아니고, 1천 개 단위로 구매했을 때 3,999달러를 만날 수 있다.
그러니 3,999,000달러라는 큰돈을 굴릴 수 있는 중간 유통업자가 1천 개를 구매한 다음 적당한 마진을 붙여서 소매업자에게 파는 게 리테일 유통시장의 흐름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특별한 방법을 사용하면 공장도 가격보다 더 저렴하게 공급받을 수도 있다. 선주문으로 100만 개 정도 주문하고 계약금으로 10억 달러 정도 먼저 지불한다면, 3,199달러까지 가격을 낮출 수 있다.
이것이 바로 ID 테크놀로지가 CPU를 공급받는 방식이었다.
ID 테크놀로지의 자랑인 클라우드 시스템이지만, 시스템 전체가 언제나 세계 최고의 스펙을 자랑하는 건 아니었다. 현재 시점에서는 동아시아 권역을 담당하고 있는 한국의 데이터 센터가 AMD의 애슬론 아키텍처의 서버용 제품인 옵테론 시스템이었는데, 이를 네할렘 제온으로 업그레이드하는 계획을 수립하고 선주문으로 제온 100만 개를 넣은 것이다.
100만 개짜리 CPU가 집적된 클라우드 시스템이라면 세계 최고 순위 슈퍼컴퓨터에 당당히 올라서고, 최소 5년은 넘게 군림할 수준의 컴퓨팅 파워를 자랑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ID 그룹이 제공하는 인터넷 서비스들은 하나같이 막대한 연산력을 요구하는 것들이다.
차세대 번역기부터, 이미지 해석, 음성 인식, 기계학습 알고리즘이 원활히 구동하기 위해선 특별한 시스템이 필요했다. 게다가 전통적인 웹서버 운영이나, 타임플렉스의 VOD 서비스, 그리고 요즘 대폭발 중인 유튜브 서버 운용도 상당한 용량의 서버를 요구했다. 게다가 해킹을 막는 것 역시 강력한 서버가 필요했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ID 그룹의 서버의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고 있었다. 미리미리 증설해 놓지 않으면 치명적인 서비스 장애가 튀어나온다. 게다가 이번에는 CPU의 아키텍처와 메모리 규격까지 바뀌는 대대적인 시스템 교체 시기라서 미리 계약금을 걸고 선주문을 해 놓는 게 최고였다.
할인이 팍팍 들어가도 남는 게 많은 서버용 CPU를 100만 개나 선주문을 받은 인텔은 그야말로 터져 나오는 웃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차원이 다른 주문량도 주문량이지만, ID 그룹이 대량으로 구매한다는 건, 그 성능을 보장한다는 것이었다. 어마어마한 주문량이 인텔에게 쏟아졌다. 그것도 CPU 중에서 제일 비싼 제온 모델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그도 그럴 것이 클라우드 시스템은 이제 ID 테크놀로지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클라우드 시스템의 파워를 실감한 인터넷 업체들은 너도나도 독자적인 클라우드 시스템 구축에 나섰다. 시스템 구축 자체는 기술이 아닌 자본금만 충분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었기에, 다들 엄청난 돈을 풀면서 시스템을 만들기로 했고, 인텔은 최대 수혜 기업이 되었다.
한편, 애슬론 아키텍처로 인텔을 능가하기도 했던 AMD는 지금 닭 쫓던 개 신세로 전락했다. 보급형 CPU도 8코어를 기본으로 하는 불도저 CPU에 다들 환호했지만, 전문 리뷰가 쏟아지고 나서는 환호성이 뚝 끊겼다.
불도저 8코어 CPU의 성능은 인텔의 네할렘 4코어에도 밀려 버렸다. 특히 개인용 PC에서 중요한 게임 성능에서는 더더욱 밀렸다.
유재원이 발표한 Z+ 덕에 게임이든 전문 프로그램이든 멀티코어 지원이 훨씬 간단해졌음에도, 성능 차이가 엄청나게 벌어졌다. Z+의 컴파일러 인공지능은 네할렘 아키텍처에 대한 최적화 지원도 아무런 차별 없이 이뤄졌기에 두 회사의 차이가 극단적으로 벌어진 것이다.
애슬론 시절만 해도 인텔보다 비싸게 팔았던 AMD였지만, 이제는 동급의 제품이라도 더 싸게 팔아야 했다.
AMD가 CPU 가격을 매기는 방식은 인텔과 같았다. 공장도 가격과 MRSP로 리테일 가격이 정해지는 것이다.
물론 MRSP가 정해져 있다고 해도, 한국과 같이 용산 전자 상가처럼 특수한 유통 구조가 있다면 MRSP에 용산 프리미엄이 더 붙어서 훨씬 비싼 가격에 팔린다.
GPU나 메인보드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램만은 달랐다.
“어? 메모리 가격이 하루아침에 확 내렸네?”
대학생 양정민은 새로운 컴퓨터를 맞추려고 용산을 찾았다가 매장 유리창을 보고 반색했다. 거기에는 어제밤 기억해 뒀던 가격보다 크게 내린 메모리 가격이 박혀 있었던 것이다.
컴퓨터 공학과 학생인 양정민은 유재원 키드였다.
무슨 말인고 하니, 유재원의 성공을 두 눈으로 확인했던 자식 가진 부모들이, 제2의 유재원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컴퓨터 관련 교육을 집중적으로 시키는 게 유행이었다.
지금도 그 유행은 끝나지 않았다.
유재원의 성공 신화는 아직도 진행 중이었으니 말이다.
양정민의 부모님도 본인의 자식이 제2의 유재원이 되길 바라는 분이었다. 비록 남들보다 모자란 살림이었음에도 i웍스를 사다 주셨을 만큼 진심이었다.
다행히도 양정민은 컴퓨터에 흥미도 있었고, 능력도 뒷받침이 되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한국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이름난 덕진대 컴퓨터 공학과에 당당히 입학할 수 있었다.
덕진대는 모든 재학생들에게 전액 장학금을 지급하는 건 물론이고, 성적 우수자들에겐 학업 성취 지원금이라고 포장된 용돈도 줬다.
양정민은 그렇게 받은 용돈을 차곡차곡 모아 새로운 시스템을 맞추기 위해 용산, 일명 용산 던전을 찾은 것이었다.
명색이 덕진대 컴퓨터 공학과 학생이니 i웍스 같은 걸 써줘야 제맛이겠지만, 양정민의 취향은 아니었다. i웍스가 좋은 건 알고 있지만, 가성비라는 건 전혀 없는 시스템이었으니 말이다. 어렸을 때, 부모님이 i웍스를 사주셨을 때는 멋모르고 좋아했지만, 할부금 갚느라고 3년을 고생하셨던 걸 생각하면 용산 딱지 붙은 조립 컴퓨터가 더 마음이 편했다.
던전이라는 말처럼 호구 잡히면 무섭게 털어가는 용산이었지만, 반대로 좋은 가게를 찾아서 정확한 주문을 하면 가성비 넘치는 시스템을 만들 수도 있다.
대신 사전에 숙지해야 할 정보들이 넘쳤다.
CPU와 GPU 그리고 메모리 가격의 시세까지 잘 따져 봐야 했으니 말이다.
“학생, 컴퓨터 보러 왔어? 좋은 거 있는 데 한 번 봐. AMD 알지? 거기서 최신형 8코어 CPU가 나왔다고. 8코어 모델인데 4코어랑 가격 차이도 얼마 안 나!”
양정민이 낸 인기척에 근처의 매장에 있던 남자가 나와서 바로 호객 행위를 펼쳤다. 슬쩍 가격표를 보니 49만 원이라는 가격이 큼지막하게 적혀 있었고, 그 밑에는 AMD FX-8150이라는 모델명이 붙어 있었다.
초보라면 혹할 가격이었다. 그렇지만 함정이다. FX-8150이란 모델명이 바로 문제의 불도저 아키텍처였으니 말이다. FX가 붙은 AMD의 신형 모델이 불도저라는 걸 모르고, 싸다고 하면서 구매했다간 덤터기 쓰는 것이다.
“메모리 가격은 왜 떨어졌어요?”
양정민은 CPU에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고, 대신 메모리 가격만 물었다.
“아, 그거? 오늘 아침에 슈퍼그린 메모리 가격이 뚝 떨어졌잖아.”
그 말 한마디에 양정민은 컴퓨터 업계의 현황을 대충 이해할 수 있었다.
메모리 가격의 표준이 바로 ID 일렉트로닉스의 소매 시장 전용 제품인 슈퍼그린 메모리였다. 인텔이나 AMD, 엔비디아와 ATI 등등. 주요 컴퓨터 부품 제조 업체들은 소매 시장에 직접 제품을 공급하진 않는다.
반면 ID 일렉트로닉스는 자체 리테일 공급망을 통해 소매용 제품을 전 세계에 공급했다. 플래그십 스토어, ID 일렉트로닉스 대리점, P마켓 그리고 소매용 제품 공급 계약을 맺은 전자제품 양판점에도 공급된다.
용산과 같은 곳에서 마음대로 프리미엄을 얹어서 팔 수 있는 제품이 아니었다. 덕분에 가격 하락이 발생하면, 소매점에도 즉각 반영된다.
그러면 소매 시장의 기준 가격은 또 어디서 정해질까? 인텔처럼 자체적인 원가와 MRSP가 있을까?
아니다.
바로 최첨단의 금융 자본 시장이라 할 수 있는 선물 시장에서 결정된다.
이유는 간단했다. CPU는 인텔과 AMD 두 곳뿐이었고, 두 제조사마다 생산되는 제품의 성능 차이는 지대했다. 네할렘 CPU는 오직 인텔에서만 나오는 것이니, 인텔만의 가격 정책을 강제할 수 있다.
반면 메모리는 달랐다.
JEDEC 솔리드 스테이트 기술 협회의 표준만 지키면 어떤 제조사의 메모리든 컴퓨터에 장착할 수 있다. ID 일렉트로닉스의 슈퍼 시리즈 제품이 오버클럭에서 앞서 있다고는 해도, 표준 세팅에서는 차이가 없다.
이처럼 표준화된 제품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제조사들이 많아지니 선물 시장에 메모리 칩이 등록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디램익스체인지라는 업체는 선물 시장에서 결정되는 메모리 칩의 시세를 실시간으로 보여주고, 앞으로의 시세를 예측하는 곳이었다.
월 스트리트의 금융 업체였으니, 컴퓨터 커뮤니티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사이트지만, 양정민은 익히 알고 있던 곳이었다.
바로 스마트폰을 꺼내 보니 디램익스체인지 발로 올라온 기사가 있었다.
-유재원 회장의 메모리 반도체 지배력 발언, 현실화.
-DDR3 램의 대량 공급 실현.
-치킨레이스 본격 시작.
-낸드 플래시 메모리도 확전 가능성 높아.
어려운 말들이 가득했지만, 양정민은 이것 하나는 확실히 이해했다. 당분간 메모리 가격이 상승할 일은 없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면 기다리는 게 남는 장사다.
오늘만 30%의 가격이 하락했지만, 다음 달에는 지금 가격보다 더 떨어져 있을 확률이 매우 높았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양정민은 발길을 돌리지 않았다.
최신형 컴퓨터가 꼭 필요했기 때문이다. 8월 초에 발표된 차세대 프로그래밍 언어인 Z+ 때문이었다.
덕진학교에서는 재학생 모두에게 Z+를 스탠드얼론 버전과 온라인 버전 두 가지를 무료로 제공해 주었다. 유재원 키드답게 양정민은 C언어를 마스터한 상태였기에 Z+의 프로그래밍 문법을 익히는 것도 그다지 어렵진 않았다.
C언어보다 훨씬 이해하기 쉬운 고급 언어로 만들어진 Z+의 문법이었고, 경우에 따라서는 C의 문법도 그대로 사용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프로그래밍을 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컴파일 작업도 학교에서 온라인에 접속해 컴파일러 인공지능에 업로드하면 순식간에 끝난다.
다만 양정민에게 필요한 건 블록체인 버전 때문이었다.
열심히 프로그래밍하면 소정의 보상으로 Z코인이 날아온다. 처음에는 암호화폐라고 해서 이게 얼마나 가치가 있나 싶었는데, 의외로 쓸 일이 많았다.
Z스택이라는 개발자 커뮤니티에서 실무 수준의 질문을 하려면 Z코인이 필수였다. 코인을 걸지 않고 질문을 할 수는 있지만, 답변이 달리는 속도나 답변의 질은 Z코인의 유무에 따라 크게 달라졌다.
해외에 자주 나가는 사람들에게도 Z코인이 쏠쏠했다. 환전에서 큰 이득이었으니 말이다. 심지어 Z코인을 대량으로 매집을 하는 사람도 나타났다. Z코인의 가치가 나중에는 훨씬 올라갈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양정민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Z+로 프로그래밍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Z코인은 돈이 된다는 확신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Z코인을 타겠다고 프로그램을 계속 만들 수는 없었다. 개발자라고 해서 아이디어가 끊임없이 샘솟는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쓸모없는 코드를 만들어 컴파일을 하면 인공지능은 기가 막히게 알아내고서 Z코인을 내주지 않았다.
대신 프로그래밍을 하지 않더라도 Z코인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
Z+ 블록체인 버전을 설치하면 된다. 컴파일러 인공지능 시스템에 본인 PC의 리소스를 제공하면 그 기여도에 따라 Z코인이 나오는 것이다.
이전까지 양정민이 사용하던 시스템은 부모님이 사주신 i웍스였다. 물론 몇 년 전 그대로는 아니었고, 업그레이드 서비스를 한 번 받은 상태였다. 하지만 그걸로는 만족할 만큼의 Z코인이 나오지 않았다.
온종일 Z+ 블록체인을 돌려 봐야 Z코인이 4~5개 정도 나오는 수준이었다.
현재 Z코인 1개의 가격은 8백 원 선이니, 한 달에 3만 원 정도 이익이 나오는 것이다. 그렇지만 네할렘 시스템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벤치마크 사이트에서 보니 보급형 4코어만으로도 하루에 10개가 넘는 Z코인을 기대할 수 있다고 했다. 클럭당 처리 능력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었고, 캐시메모리 적중률을 높이는 특수한 알고리즘이 적용되면서 처리 능력이 대폭 향상된 것이다.
반면 용산 업자가 권한 문제의 불도저는 8코어 최상급을 써도 6~7개라고 한다. 게다가 전기 효율을 따지면 불도저는 더욱 불리하다. CPU 혼자서 250W를 먹는 전기 먹는 하마였으니 말이다.
“DDR3 메모리라도 줄까?”
“아! 괜찮아요.”
양정민은 바로 용산 업자의 영역을 빠른 걸음으로 벗어났다.
원래 용산 던전 공략 계획도 더 안쪽에 있는 양심 업체를 찾을 작정이었는데, 불도저를 저렴한 8코어라며 팔아먹으려고 했기에 더는 볼 일이 없었다.
다만 메모리 가격이 폭락하는 중이니 원래 사려던 32기가바이트 대신, 시스템 구동을 위한 최소 용량인 4기가바이트만 사고, 나머지 분량은 메모리 가격이 바닥을 치는 걸 확인하고 사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유재원이 촉발시킨 메모리 모듈 가격 폭락의 여파는 덕진대 컴공과 대학생의 조립 컴퓨터 세팅에 변화를 줄 만큼 크고 강력했다.
대학생의 조립 컴퓨터 세팅도 확 달라지는 마당에 메모리 생산 업체들이 받는 타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컸다.
그렇게 메모리 분야에 평지풍파를 일으킨 장본인은 정작 ID 일렉트로닉스에 신경을 쓸 여력이 없었다.
ID톡 메이저 업데이트에 모든 신경이 집중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혜성이의 첫 번째 생일, 일명 돌잔치 전까지 끝장을 내겠다는 게 유재원의 목표였고, 이를 위해서는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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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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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이네요!
건강 유의 하면서 잘 보내시고, 다음 주에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