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6회
권력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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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480메가톤이란 말씀입니까?
“네, 그것도 보수적으로 잡았을 때의 이야기죠. 게다가 진앙이 육지가 아니라 동일본 바다라는 것도 문제입니다. 해일이 크게 일어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죠. 일본이 해일 대비가 잘 된 나라이긴 해도 30미터짜리 초대형 해일이라면……. 기존의 방파제로는 감당할 수 없을 겁니다.”
유재원은 정교한 시뮬레이션으로 만들어진 CG를 자료화면으로 띄웠다. 그야말로 거대한 파도에 의해 일본의 동쪽 해안가는 초토화되는 모습이 사실적으로 그려진 영상이었다.
“그런데, 지금 일본 정부의 대비는 어떻죠? 정말 유감스럽게도 저희와 아무런 접촉도 없었습니다.”
-설마요.
“제가 괜한 소리 하겠습니까?”
-음, 제가 알기로는 신중한 결정을 위해서 교차 검증 중에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교차 검증이라니.
애초에 지진 예측이란 기술 특이점이 만든 기적이었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상상할 수도 없는 어마어마한 인적, 기술적 자원이 투입되어 만들어진 인공의 기적이다.
컴퓨터 테크놀로지에서 궁극을 경험한 유재원도 지질 분석 알고리즘의 공식은 알아도, 어떻게 해서 그 공식이 도출되었는지는 아직도 모른다.
즉, 이러한 지질 분석 알고리즘을 검증하려면 최소한 기술 특이점을 넘어서야 가능하다는 이야기였다.
“쓰촨성 대지진은 5월에 있었고, 지금은 9월입니다. 그리고 대지진의 예고를 낸 지는 1년이 지났고요.”
-그렇게 보자면 일본 정부가 상당한 시간을 그냥 보내고 있는 것 같군요.
“네. 그게 너무 답답해서 제가 이렇게 일본을 찾은 거죠. 사실 저는 외부인이니까 참견하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만, 제 마음이 너무나 불편하더군요. 제 머리가 너무 좋아서 그런지 몰라도 대지진이 터지면 일어날 일들이 너무도 생생히 떠오르니 말입니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대비라도 해 볼 생각입니다.”
-네? 그게 뭔가요?
“동일본 대지진은 분명 거대한 해일을 동반합니다. 그런데 해일의 이동 방향을 살펴보니 도교 전력이 운영 중인 원자력 발전소가 있더군요.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말입니다. 해일이 원자력 발전소를 덮치면 어떻게 될지는 안 봐도 아시겠죠?”
-그, 그래도 내진 설계가…….
후루타치 이치로 앵커는 어떻게 해서든 좋은 쪽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가고 싶었다. 이번 인터뷰는 TV아사이의 특종이었고, 오늘 저녁과 내일 아침에 대대적으로 보도될 예정이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유재원은 딱 잘라 말했다.
“앵커님은 내진 설계가 무슨 게임에나 나오는 에너지 실드라고 생각하시나 봐요? 30미터짜리 해일을 견디는 내진 설계는 들어본 적도 없는데 말이죠. 게다가 근처에는 폐연료봉을 보관하는 시설도 있더군요. 고농도 방사능 물질이 유출되면 어떻게 될지는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에서 잘 나타나고 있죠.”
“헉! 체르노빌이라니.”
체르노빌까지 언급되자 후루타치 이치로 앵커는 사색이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이가 좀 있는 후루타치 이치로 앵커는 체르노빌이 터졌을 때의 기억도 선명하게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방사능 물질이 일본까지 날아왔다며 일본 정부가 소련을 향해 강하게 항의했던 기억이 선명했다.
“저는 지금 인터뷰가 끝나면 도교 전력에 가서 한 가지 제안을 할 겁니다.”
-그 제안이 뭔지 들어볼 수 있겠습니까?
“그럼요. 어차피 보도자료도 다 나올 테니까요. 흠흠, 제 제안이란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와 폐연료봉 보관 시설을 당장 셧다운 하는 겁니다. 알아보니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는 1971년 가동을 시작해서 폐기가 얼마 남지 않은 노후 시설이더군요. 그걸 당장 폐기하고 방사능 물질도 다른 곳으로 옮기라고 말입니다.”
-그렇게 하면, 회장님이 반대급부로 뭔가를 제시하겠군요.
“네! 2기가와트 토륨 원자력 발전소 2개를 지어 드리겠습니다. 만약 제가 예고한 날, 대지진이 일어나지 않으면 공사비도 받지 않고, 연료봉도 10년간 무상 제공해 드리죠.”
낡디낡은 구형 원자력 발전소를 최신의 친환경 토륨 원자로로 업그레이드해 준다는 이야기였다.
그것도 무료로 말이다. 게다가 발전 용량을 따지면 훨씬 좋아진다. 현재 후쿠시마 발전소의 발전 설계 용량은 2.2기가와트지만, 실제로는 낡은 설비로 인해 가동 효율이 떨어지면서 1.4~1.6기가와트 수준에서 유지되고 있었으니 말이다.
반면 토륨 원자로의 2기가와트는 꾸준히 유지되는 퍼포먼스였다. 그런 토륨 원자로를 1기도 아니고 2기를 지어 준다고 했으니, 총 4기가와트 수준으로 업그레이드가 되는 것이다.
대신 유재원의 대지진 예측이 실패했을 경우라는 조건이 달려 있지만, 어떻게 봐도 도쿄 전력에 유리한 제안이었다.
-음. 일본에서 회장님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져야겠네요.
후루타치 이치로 앵커의 태도는 처음과 완전히 달라졌다.
일본에서의 유재원의 이미지는 폭군 이상이었다. 동아시아 외환 위기에서 별 탈 없이 넘어갈 수 있었던 일본을 공격해 잃어버린 10년을 20년으로 만든 장본인이었다. 이뿐만이 아니라 반도체와 전자제품, 게임 등등 일본이 자랑하던 분야에 진출해 일본 기업들을 초토화시키기도 했다.
닌텐도와 플레이스테이션으로 대표되던 비디오게임도 이제는 엑스박스에 밀려서 만년 2위가 되었으니 말이다. 심지어 애니메이션도 ID 엔터테인먼트에서 훨씬 잘 만들었다. 몇 년 전의 일이지만, ID 엔터테인먼트가 각 잡고 만든 드래곤볼 RM은 일본에도 방영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도 했다.
여기에 더 퍼시픽 사태도 있었다.
더 퍼시픽 게임이 공전의 히트를 치기 전까지는 욱일기가 종종 패션 아이템으로 쓰일 만큼 긍정적이었지만, 그 이후에는 나치 문양과 동급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일본인이라면 유재원을 좋아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그런 유재원이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를 폐기하면 최신의 토륨 원자로를 무료로 설치해 준다고 하는 것이다.
대지진 예측이 틀렸을 때 공짜라는 조건도 있었지만, 후루타치 이치로 앵커에겐 딱히 귀에 들어오는 말은 아니었다. 그건 도교 전력 입장이었으니 말이다.
-제발 도쿄 전력이 좋은 결정을 해 줬으면 좋겠네요.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고민하는 데 많은 시간을 드릴 수는 없습니다. ID 웨스팅 하우스의 스케줄은 꽉 차 있는 상태거든요.”
방사능에 오염되어 서서히 죽어갈 뻔했던 수백만 명도 구하고, 태평양의 수산물도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면 토륨 원자로 2개쯤 지어 주는 건 일도 아니다. 게다가 공짜도 아니니 손해 볼 것도 아니었다.
TV아사이와의 독점 인터뷰를 마친 유재원은 바로 도쿄 전력 본사를 찾아서 후루타치 이치로 앵커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던 후쿠시마 원자로를 토륨 원자로로 교체해 주겠다는 제안서를 냈다.
그들 역시 유재원과 이야기를 길게 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지만, 제안서를 낸 유재원은 바로 출국했다.
그야말로 신속 출국이었다.
안타까운 건 신일본투자은행 사람들이었다.
ID 인베스트먼트의 자회사인 신일본투자은행은 일본 경제가 회복기에 접어들자 놀라운 성장을 보였다. 산요 전기만 봐도 신일본투자은행이 처음 지분을 사들였던 때보다 10배는 성장했다. 전 세계 모바일 디바이스 분야가 대폭발하면서 리튬 이온 배터리의 수요도 그만큼 늘어난 덕이다.
화낙 역시 마찬가지였다.
IT 혁명과 함께 스마트 팩토리도 성장했고, 산업용 로봇의 수요도 크게 늘어났다. 이뿐만이 아니라 신일본투자은행의 투자는 대부분 성공했다. 덕분에 자산 규모는 처음의 몇 배로 불어나 있었다.
그 액수가 수천억 엔 규모였으니 신일본투자은행의 사장 신도 고세이는 나름 유재원과의 만남을 기대했다. 게다가 신도 고세이 사장은 취임한 지 1년도 되지 않는 신임 사장으로, 의욕이 남달랐다.
넘치는 의욕으로 혹시나 하며 열심히 의전을 준비했지만, 유재원은 허망하게도 도쿄 전력과의 미팅을 마치고 미국으로 출국했다.
신도 고세이 사장에겐 안타까운 일이지만, ID 그룹 전체에서 신일본투자은행이 차지하는 비중이란 극히 미미했던 탓이다. 일본에 대한 ID 그룹의 생각도 성장 가능성이 좋은 투자처가 아니라, 한국에 있는 제조 라인에 부족한 기초 기술을 공급해 줄 곳이었을 따름이다.
샌프란시스코에 돌아온 유재원은 중국을 시작으로 한국과 일본에서도 본인을 잘 수행해 준 이들에게 3일 유급 휴가를 포상으로 주고, 본인도 3일 휴가를 냈다.
베이징 올림픽 개막부터 거의 한 달간 장기간 출장으로 떨어져 있게 된 티파니와 혜성이에게 그동안 다하지 못한 애정 공세를 펼치기 위함이었다. 티파니도 유재원의 일정에 맞춰서 휴가를 냈다.
집에만 있는 게 아니라, 인근의 풍경 좋은 별장으로 가서 오붓한 시간을 즐길 수 있도록 말이다.
가족들과의 좋은 시간을 보내며 재충전을 마친 유재원은 9월 8일 월요일에 자리로 복귀했다. 유재원이 일선에서 잠깐 물러나 있는 동안에도 많은 일들이 있었다.
P마켓 차이나가 그랜드 오픈 이벤트를 시작으로 중국 내에서 영업 활동을 시작했다는 소식이 ID톡 제일 상단에 있었다.
그랜드 오픈 이벤트로 등록된 모든 아이템에 대해 10%의 기본 할인이 더해졌고, 특정 카테고리에는 추가 할인이 붙었다.
인구 대국답게 접속자가 폭주했다는데, 이벤트 당일 누적 접속자만 1억 명이 넘었다고 했다. 한 사람이 여러 번 접속해서 데이터가 뻥튀기될 수도 있지만, 웬만한 나라의 경제인 인구수보다 많은 사람들이 접속했다.
누적 매출액도 대단해서 그랜드 오픈 날에만 10억 위안이 넘는 매출이 나왔다. 파격적인 할인율을 보인 전자제품과 가전제품이 이뤄낸 성과였다.
중국의 전자 상거래 유통망을 장악하는 데 성공만 한다면, 하루 10억 위안 매출은 일도 아니다. 중국판 블랙프라이데이 이벤트인 광군제에서 1천억 위안을 찍는 건 당연하다는 듯 이뤄냈으니 말이다.
“오호, 이놈들 면상이 이렇게 생겼네.”
다음 파일은 악플러 고소 건이었다.
아직은 피의자 소환이 비공개로 전환되지 않았다. 덕분에 피의자 소환에도 포토라인에 세우는 관행이 여전했는데, 이번 건은 무려 유재원이 직접 고소했기에 매스컴의 관심이 뜨거웠다. 덕분에 악플러들이 인터넷에 싸지른 악플들도 재조명되었는데, 하나하나가 어마어마한 것들이라 고소를 당해도 싸다는 여론이 크게 형성되었다.
처음엔 글로벌 기업의 회장이 겨우 악플러나 상대한다는 비아냥이 있었지만, 그런 여론은 악플의 내용이 공개된 지금은 완전히 사라졌다.
정치권에서도 빠르게 움직이면서 악플러의 처분에 대한 법률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지금은 형사재판에 명예훼손과 폭행으로 기소되는 게 전부였다.
안타까운 점은 C8대왕이 김앤장 고용에 실패했다는 점이었다.
김앤장 측에서도 ID 그룹 법무팀과 맞서는 걸 어려워했다. 게다가 C8대왕이 나서서 총대를 맸던 모금도 실패로 끝났다. 다들 만 원씩만 내면 문제없다고 했지만, 모금용 계좌에는 100만 원도 모이지 않았으니 말이다.
“악플 하나에 10만 원씩은 받아내야지.”
실제로 악플 숫자가 얼마 되지 않는 잔챙이들은 악플 하나에 10만 원씩 내는 것으로 합의를 해 줬다.
C8대왕의 모금이 실패한 것도 이렇게 합의를 한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물론 아이돌이 입은 피해에 비하면 10만 원도 싸다. 마음 같아서는 100만 원도 모자라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는 악플 하나당 10만 원씩 받는 것도 ID 그룹 법무팀이 전력을 다해야 가능할 정도였다.
어떻게 보면 솜방망이 처벌이지만, 중요한 건 1개당 10만 원이라는 것이다. 잔챙이들과 악플 1개에 10만 원씩 합의를 해 주는 것도 이러한 사례를 모으기 위함이었다.
바로 몸통인 C8대왕이란 녀석을 정조준하기 위해서 말이다.
C8대왕의 악플은 수준도 수준이지만 물량도 굉장했다. 매크로를 밥 먹듯 썼던 모양인지, 유재원이 고소장에 넣은 것만 해도 100만 개였다. 이 분량은 모두 종이로 옮기는 게 불가능해서 스크린 샷 파일을 블루레이로 구워서 제출해야 했다.
1개당 10만 원이라면 C8대왕이 물어야 할 액수는 1,000억 원이다.
C8대왕이 악플 다음으로 잘했던 게 돈 자랑이었다. 도용인지 아니면 진짜인지 진위 파악이 된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네티즌 대다수는 인증 짤방만 보고는 그저 떠받들기에 바빴다.
과언 C8대왕의 럭셔리 라이프는 1,000억 원이란 배상금을 내고도 지속 가능할 것인가? 아니, 그의 통장에 그만한 돈이 들었을까가 의문이다.
유재원은 상관없었다.
악플 달다가 패가망신한 대표 케이스로 C8대왕이 영원토록 기억되기만 한다면 말이다.
“다음은……. 아, 이거 중요하지.”
-미국 대통령 선거 현황 보고.
유재원의 모니터에 뜬 3번째 파일은 바로 미국 대선에 대한 최신 뉴스였다.
민주당은 일찌감치 힐러리 클린턴으로 확정되었지만, 공화당은 7월이 될 때까지도 부시 W 조시와 존 매케인의 경선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7월의 캘리포니아 경선에서 결판이 날 줄 알았는데, 거기서도 승패를 가리지 못했다. 공화당 대통령 후보 경선 역사에서도 역대급으로 기록될 만큼 매케인과 부시는 치열하게 싸웠다. 그만큼 서로 간에 주고받은 공격으로 생긴 감정의 골은 메우는 게 불가능할 만큼 깊어졌다.
결국, 공화당은 마지막 경선지인 워싱턴 DC 경선을 베이징 올림픽이 끝나는 9월 초에 열기로 했다.
그렇게 느지막이 대통령 후보를 결정해도, 대통령 선거에 지장이 없다고 자신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안정적인 지지도를 유지하던 앨 고어 행정부는 리먼 브라더스 사태 한 방으로 침몰해 버렸기 때문이다.
공화당 경선이 대통령 선거와 다름없어질 정도로 말이다. 덕분에 경선 자체는 치열해졌지만, 본선 자체는 낙관했다.
마지막 워싱턴 DC 경선에서 최종 확정된 공화당의 후보는…….
-공화당 대선 후보로 존 매케인 상원의원 확정!
유재원은 존 매케인이란 이름에 입꼬리를 올리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만약 유재원이 표정으로 말해요라는 쇼프로에 나가서 ‘계획대로’라는 지시어를 봤다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지었을 그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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