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3회
미래와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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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팔과 사람의 바둑 대결.
정확하게는 로봇 팔 형태의 착수 로봇과 이창호 9단의 대국은 시작과 함께 바로 세계적인 뉴스가 되었다.
특수 룰을 시범하는 경기였지만, 인간과 인공지능의 본격적인 대결은 처음이었기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다만 지구 반대편인 미국까지 전해지는 시간은 좀 걸렸다.
대국이 시작한 시간은 한국 시간으로 오후 4시, 샌프란시스코는 밤 12시로 많은 사람들이 꿈나라에 입장할 시간이었다.
그렇지만 밤 깊은 줄 모르는 네티즌들 중엔 그때까지도 깨어 있던 사람들이 있었고, 이들은 유튜브 라이브라는 간편한 수단으로 인공지능과 인간의 대결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었다.
-자비스네!
-역시! 유재원 회장네 집에는 자비스가 있을 줄 알았어!
-완전 동의! 진돌이가 90년대 말에 나왔으니, 10년이 지난 지금은 자비스가 현실에 나와도 이상하지 않지.
-우리 집에도 한 대 놓을 수 없을까?
-돈은 있고?
늦은 시간 유튜브 라이브로 대국을 지켜보던 이들은 대뜸 자비스를 떠올렸다.
자비스란 캐릭터는 바로 전 세계 동시 개봉 중인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첫 번째 타자 아이언맨에 등장하는 로봇 팔이었다.
형태는 로봇 팔이지만 영화 속에서는 아이언맨의 사이드 킥으로서 언제 어디서든 도움을 주는 캐릭터였다.
멀리 떨어진 상태에서는 무선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아이언맨에게 각종 정보를 제공하고, 난관이 생기면 해킹까지 해 주었다. 집에서 대면할 때엔 강철 슈트를 입거나 벗을 수 있게 도움을 주고, 실험을 도왔다.
일단 자비스는 물리적으로 로봇 팔이란 형태를 지니고 있었지만, 자유롭게 움직이면서 살아 있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로봇 팔 착수 로봇의 모습도 그랬다.
1.6m로 축소된 형태 로봇 팔은 크게 최하단의 본체에 3개의 관절이 붙어서 긴 팔을 이루고 있고, 일반 성인의 손바닥 모양에 3개의 정교한 손가락이 있는 형태였다. 아이보리색의 고급스러운 초경량 알루미늄 합금의 케이스로 깔끔한 느낌을 자아냈다.
그런 로봇 팔은 이창호 9단과의 대국 중 상황에 따라 다양한 제스처를 연출했다.
복잡한 수읽기가 필요한 난맥이 닥쳤을 때에는 3개짜리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다그닥다그닥 두드리는가 하면, 영 답이 나오지 않을 땐 머리라고 달아놓은 이모티콘용 모니터를 긁적이기도 했다.
반대로 이창호 9단이 초읽기를 쓰면서까지 고심하고 있으면 휘파람을 불기까지 했다. 물론 소리는 나지 않고 이모티콘으로 ♪♬~^>^ 하는 식의 모양이 나온 것이다.
물론 이창호 9단은 다양한 성향의 기사들과 대면하며 대국을 둬 본 경험이 있었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아 돌부처라는 별명까지 얻은 초일류였다. 그렇기에 로봇 팔 착수 로봇이 어떤 이모티콘을 띄우든 이창호 9단의 모습은 초지일관 무표정이었다.
오히려 유재원이 우려했던 그대로 로봇 팔의 다양한 제스처를 보고 인공지능 골드의 연산 상태를 짐작하며 대국을 본인에게 유리하게 이끌어갔다.
그렇지만 11*11 규격의 미니 바둑이란 것이 이창호 구단에게는 패널티로 작용했던 모양이다. 전장의 넓이가 줄어든 만큼, 인공지능 골드에게 대국 후반은 전혀 부담이 되지 않았다. 반대로 이창호 9단의 정석과 끝내기는 19*19의 정식 바둑에 최적화되어 있었기에 실수가 나오기도 했다.
그 실수를 인공지능 골드는 놓치지 않았고, 최종 계가에서 4집 반의 차이로 승리를 따냈다.
“아자!”
인공지능 골드의 승리에 유재원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미니 바둑이라 정식 승리로 인정받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소규모 실험실 규모의 기계학습으로도 이 정도 성과를 내었다는 건, 바둑 모듈의 설계 방향이 제대로 되었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ID 클라우드 시스템 전체의 컴퓨팅 파워를 동원해 기계학습을 1년만 시킨다면, 과거 알파고 마스터 수준은 충분히 도달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다만 언론이나 유튜브 관전자들은 인공지능 골드의 승리보다는 다른 쪽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었다.
“회장님, 로봇 팔에 대한 문의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자택에 자비스가 있는 거 아니냐는 말도 나오고 있습니다.”
김대석 비서실장이 기뻐하는 유재원에게 인터넷 반응을 정리해 보고하는 것에서 그 모습이 제대로 드러났다.
“아, 그럴 줄 알았어요. 준비한 보도 자료 있죠? 대국이 모두 끝나면 보내준다고 해요.”
“예, 회장님.”
로봇 팔 착수 로봇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깜짝 등장이었다.
이번 시범 경기가 갖는 진정한 속뜻을 알아보지 못하는 이들이라면, 일단 눈에 보기에 화려한 로봇 팔 착수 로봇에 시선이 끌릴 거라고 충분히 예상하는 바였다.
그렇기에 착수 로봇에 대해 상세한 보도 자료도 미리 다 만들어 둔 상태다. 이뿐만이 아니다. 인공지능 골드의 바둑 모듈이나, 바둑 모듈의 주요 부품인 TPU에 대한 정보를 담은 보고서도 만들었다.
ID 테크놀로지가 나스닥에 등록한 주식회사가 되면서 비상장 때의 비밀주의는 완전히 타파되었다.
주주는 물론이고, ID 그룹의 주식들을 사려는 잠정적인 투자자를 위해서 보도 자료는 물론 공시까지도 철저히 준비했다.
그렇기에 착수 로봇과 바둑 모듈의 스펙에 대해 상세한 데이터를 담은 자료도 얼마든지 공개할 수 있었다.
타도 ID를 외치는 경쟁자들이 이러한 데이터를 보고 영감을 받을 수도 있지만, 따라 하긴 불가능할 거라는 자신감도 바탕에 깔려 있었다.
-5분 후, 제2국이 시작됩니다.
장내 아나운서의 말에 유재원은 다시 화면에 집중했다.
시범 경기는 3번의 대국으로 이뤄져 있다. 그런데 같은 조건으로 대국이 계속되는 게 아니라, 누가 승리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변수가 있다.
바로 바둑판의 크기였다.
골드가 승리할 경우 바둑판의 크기가 점점 넓어지고, 이창호 9단이 승리할 경우 바둑판의 사이즈는 점점 줄어든다.
승리한 쪽에 점차적으로 패널티를 늘려나가는 방식이고, 이를 통해 대등한 대국이 되도록 맞춰 가는 것이었다.
방식은 바둑판의 크기를 조절하는 것이었다.
1국에서 골드가 승리했으니 바둑판의 사이즈가 15*15로 늘어났다. 가로세로 4줄이 늘어나는 단순한 변화였지만, 실제 바둑 모듈이 감당해야 할 연산력 부담은 엄청나게 커진 셈이었다.
물론 내년에 있을 본게임에서는 19*19인 정식 규격을 써야 하니, 여기서 앓는 소리를 할 일은 없다.
경기는 계속되었다.
다음 날.
-화제의 인공지능 골드와 이창호 9단의 시범 경기!
-녹화 중계에도 시청률 11% 기염!
-바둑 대회의 시청률 두 자리 탈환은 제6회 신라면배 상하이 대회 이후로 처음!
-시범 경기는 2:1로 인공지능 골드의 승리지만, 제3국 정식 바둑 룰에서는 인공지능 골드의 패배.
-이창호 9단, 인공지능이라고 절대 방심은 금물.
베이징 올림픽이라는 지구촌의 축제가 어제 끝났지만, 한국은 월요병을 느낄 시간도 없었다. 인공지능과 사람의 바둑 대결로 일어난 이슈는 한국을 완벽히 들었다 놔 버렸기 때문이다.
이창호 9단에게 패널티가 있었던 제1국과 제2국은 골드의 승리였다.
제1국에서는 4집 반이라는 넉넉한 승리를, 제2국에서는 반집의 승리를 따냈던 인공지능 골드는 19*19인 정식 바둑에서는 불계패로 졌다. 불계패라는 건 계가까지 갈 것도 없이, 대마가 잡히면서 패배를 했다는 이야기였다.
아쉽진 않았다.
오히려 유재원은 제1국은 몰라도 제2국에서 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승리했고, 제3국에서도 132수까지 진행되고서 불계패를 했으니 기대 이상의 결과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인공지능 골드의 바둑 모듈이 i웍스에서 1개 서버랙 규모로 커졌고, 유재원이 며칠 동안 최적화에 힘을 쓰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걸로는 바둑으로 입신의 경지에 든 프로 9단, 심지어 이창호 9단을 이긴다는 건 처음부터 기대하지도 않은 일이었다.
애초에 유재원이 내년에 있을 메인 이벤트를 겨냥해 만든 시범 경기였다.
그 목표는 확실히 이뤄냈다.
게다가 바둑계에서도 더 이상 인공지능을 기존의 바둑 게임처럼 얕잡아 보는 태도가 사라졌다. 마지막 제3국은 이창호 9단에게 패널티도 없이 주어진 대국이었고, 후반부에 갑자기 인공지능의 기력이 꺾이기 전까지는 팽팽한 접전이 이어졌으니 말이다.
패배의 원인도 명확했다.
바둑에 대한 데이터베이스가 충분히 쌓이지 못한 탓에, 귀중한 연산력을 낭비해 버린 탓이다. 연산력이 부족하니 이창호 9단의 수에 대한 대응력도 부족했고,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무너졌다.
이는 추가적인 연산장치를 더하는 것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다.
바둑판에서 일어나는 모든 경우의 수를 계산한다는 건 ID 클라우드 시스템이 자랑하는 엑사플롭스 단위의 연산력으로도 부족했으니 말이다.
이를 해결할 방법은 몬테카를로 알고리즘을 통한 연산력의 효율적인 배분이었다. 여기에 연산력을 낭비하지 않고 적재적소에 제대로 쓰기 위해서는 바둑에 관한 빅데이터를 쌓고 있어야 한다.
현재의 바둑 데이터는 그야말로 미미한 수준이었다. 그 상태에서 이 정도 성과라면 내년에는 충분히 기대해 볼 만했다.
여기에 생각지도 못한 부수입도 있었다.
-아이언맨의 자비스, 상상이 아닌 현실!
넥스트컴에서 최고 인기 기사의 제목이었다.
착수 로봇으로 보스턴 다이나믹스의 로봇 팔 소형 모델을 가져다 쓴 건 번뜩이는 아이디어였고, 기술력의 과시였다.
-나스닥 산업용 로봇 관련 주식, 개장과 함께 일제히 상승!
-보스턴 다이나믹스에 대한 문의도 폭주.
사람들은 이것을 아이언맨과 연결했고, 주식 투자와도 연계했다.
IT 붐이 끝난 월스트리트는 다음의 먹거리를 찾고 있었기에, 그야말로 찰떡궁합을 자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리먼브라더스 파산으로 촉발된 양적 완화로 인해서 시중에 풀리는 돈은 엄청났다.
이 돈이 자원시장으로 가서 원유 가격을 폭등시켰고, 부동산의 가격도 천정부지로 올려놨다. 물론 리먼브라더스 사태 이전처럼 아무 부동산이나 올리는 건 아니고, 프라임 등급의 극소수 부동산 품목에 한정되긴 했다. 그렇게 고르고 고른 상위 1% 부동산의 가격 폭등세는 무시무시했다.
뉴욕 맨해튼의 자랑거리인 센트럴 파크와 접한 아파트가 대표적이었는데, 불과 1년 사이에 아파트 가격은 2, 3배를 펄쩍 뛰었다.
그에 못지않게 주식 시장에도 다시 거품이 끼고 있었다.
ID 그룹의 쌍두마차라 할 수 있는 ID 테크놀로지와 안드로이드가 각각 시총 5천억 달러를 사정권에 넣었다. 여기에 부동산 시장 안정화로 인해서 부실이 급속도로 줄어드는 ID TLS의 가치도 급상승했다.
ID TLS의 단순 자본금만 3천억 달러였지만, 이제는 아무리 보수적으로 잡아도 4천억 달러 후반대에 이르렀다. 양적 완화로 부는 부동산 훈풍을 다 잡아넣으면 ID TLS 단독으로 5천억 달러를 넘어선다.
단숨에 ID 그룹의 주포로 자리를 잡는 것이다.
유재원이 ID TLS를 만드는 데 든 돈은 겨우 30억 달러였으니, 리먼브라더스 사태의 최고 수혜자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이렇게 정처 없이 자본 시장에 고여 있는 자금은 엄청났다. 그리고 그 돈이 ‘자비스’로 요약되는 어제의 시범 경기로 인해서 로봇 공학 쪽으로 급속도로 쏠리기 시작했다.
스타트업이든, 이미 나스닥에 상장된 회사든 가리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유재원을 반만 따라가도 성공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유재원이 제시한 비전은 무패 행진을 이어 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 유재원이 로봇 분야에도 일찌감치 투자를 하고 있었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었다.
다만 대중에게 많은 정보가 공개된 편은 아니었다. 그러다가 착수 로봇을 자비스라고 착각할 만큼의 퀄리티로 완성해 공개하자 시장이 바로 반응했다.
스타트업을 하는 모험가들이나 이미 나스닥에 상장해 주식을 나눠 가진 사람들은 쏟아지는 돈벼락에 환호했다.
그러나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다.
해당 업체에서 실질적인 개발 업무를 담당하고 있던 실무진은 그야말로 경악을 금치 못했다. 산업용 로봇에서 로봇 팔이라는 카테고리는 진작 완성된 분야였다. 그렇지만 어제 착수 로봇이 보여준 그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구현하는 건 아무리 머릴 굴려 봐도 불가능했다.
각 관절의 구동 범위라든가, 손가락의 미세한 컨트롤은 어떻게 설정하는 것인지 감도 오지 않았으니 말이다.
개발자들에겐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그러나 승산은 없었다. 이들이 싸워야 할 것은 단순히 보스턴 다이나믹스라는 선구자가 아니라 미래의 기술이었으니 말이다.
단적으로 착수 로봇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은 역시나 기계학습에 기반하고 있다.
관절과 손가락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형태와 동력을 갖추고서, 이를 종합적으로 제어하는 프로그램은 기계학습을 통해 완성했다. 사람의 팔과 손가락의 움직임을 그대로 모방하는 방식으로 구동되는 것이기에, 정해진 바대로 움직이는 산업용 로봇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제야 투자를 받아서 따라잡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반대로 ID 그룹과 파트너가 된 업체들은 이 바람을 그대로 즐겼다.
바둑 모듈의 CPU를 담당하게 된 인텔이 대표적이었다.
인텔이 칼을 갈며 준비한 차세대 프로세서 네할렘의 프로모션을 9월이 되자마자 대대적으로 시작했다.
네할렘 아키텍처의 가장 큰 변화는 최대 10코어에 달하는 멀티코어와 주 메모리의 형식을 DDR3로 변경한 것이었다. AMD 역시나 CPU의 소켓은 물론이고 메모리 규격까지도 DDR3로 변환했다.
CPU와 주기억장치 그리고 GPU와 메인보드까지 모조리 갈아 치워야 하는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9월부터 시작되는 것이었다.
-마이크론, DDR3 양산!
-인피니온, 키몬다, 난야도 DDR3칩 준비 완료!
기다렸다는 듯 메모리칩 제조 업체들도 저마다의 각오를 다지며 DDR3에서의 전투 의지를 드러냈다. 다들 지금 이 순간이 너무도 중요한 골든타임이란 걸 잘 알고 있었다.
유재원 역시 마찬가지였다.
9월 1일, 유재원은 한국에서의 마지막 스케줄인 대전 공장 출장을 앞두고 ID 일렉트로닉스 주주들에게 편지를 띄웠다.
법무팀의 감수를 거치면서 글로벌 그룹의 회장 다운 격식을 갖춰졌지만, 편지 안에 담긴 내용은 단순 명쾌했다.
‘ID 일렉트로닉스는 반도체 시장의 지배적인 위치를 사수하는데 있어 모든 준비를 마쳤고, 과감히 수행할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준비라는 것은 바로 끝이 없는 물량전.
가장 단순하고 명쾌한 전투 방식이지만, 그 어떤 기업도 선뜻 하겠다고 나서지는 않았던 그 방식이다. 오직 미래를 가진 유재원만 선택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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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추천과 리플,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원고료 쿠폰, 후원 쿠폰도 완전 감사합니다~!!
골드가 인성질을 하기엔 배워야할 게 많이 있지요.
그나저나 미래와의 전쟁을 치러야 할 반도체 업체들에게 드릴 건 그저 묵념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