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8회
미래와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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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와의 전쟁
풍선효과라는 게 있다.
풍선의 한쪽을 누르면 해당 지점은 들어가지만, 눌린 만큼 다른 곳이 팽창한다는 이야기다. 어떻게 보면 문제가 해결되면 또 다른 문제가 생겨나는 현상이라고도 볼 수 있다. 보통은 부동산 쪽에서 주로 사용하는 단어지만, 이번엔 유재원의 악플러와 기자들 대량 고소에서도 쓰일 수 있을 것 같다.
악플러들 수천 명을 한 방에 고소했다는 소식이 뜬 지 며칠 지나지 않아서, 악플러들은 각자 피의자 신분이 되었고, 경찰서로 나오라는 통지서를 송달받았다.
유재원의 고소장을 접수 받은 서울 중앙 지방 검찰청은 번갯불에 콩 구워 먹을 속도로 사건을 특수부에 배당했다.
법리적으로 따지면 형사부에 배당될 사건이었지만, 서울 중앙 지검장은 본인의 권한으로 특수부를 선택했다.
특수부라면 일반인은 상상도 못 하는 고도의 기법을 이용해 저지른 범죄를 담당하는 곳이었다. 초대형 뇌물 사건이라든지, 재벌들이나 정치인들의 범죄를 다루는 그런 곳이었다. 거기서도 에이스라고 불리는 김일두 부장검사가 담당하게 되었다.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유재원이 악플러들을 고소하는 것 역시 유례가 없는 일이었기에, 검찰도 파격적인 대응으로 눈높이를 맞춘 것이다.
김일두 부장검사는 사건을 맡자마자 바로 경찰 수사관들을 지휘해 피의자 소환장부터 송달시켰다. 유재원이 직접 검찰에 낸 고소장과 증거들은 너무나도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종이로 출력된 증거물과 실제 서버에 남은 증거들을 비교했을 때, 틀린 게 하나도 없을 정도였고, 사용자도 빠르게 특정할 수 있을 만큼 디테일한 정보가 담겨 있었다.
수사 지휘를 받은 경찰도 기민하게 움직이면서 피의자들에게 소환장을 보냈다. 경찰도 눈과 귀가 있으니 이번 사안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고 있었기에, 평소보다 훨씬 빠르게 움직였다.
그 결과가 악플러들의 집단 대응이었다.
-C8대왕이다!
-개 같은 피의자 소환 통보받은 사람들, 여기로 다 모여 봐라.
-유재원이가 고소한 사람들이 수천 명은 된다니 각자 1만 원씩만 내면 김앤장 사서 공동 대응하자. 모자란 돈은 내가 다 낸다!
-표현의 자유 침해로 해서 헌법 재판소로 바로 가자!
집단 대응에 선두에 선 작자가 C8대왕이라는 녀석이었다. 닉네임부터가 범상치 않은 C8대왕은 모두 까기로 유명했다. 인터넷이 대중화되기 시작하던 때부터 악플을 달고 살았던 사람이었는데, 그와 함께 본인이 부자라는 것도 숨기지 않았다.
살고 있는 집이라던가, 보유한 자동차들을 찍어 인증을 했는데 하나같이 평범을 뛰어넘는 것들이었다.
덕분에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컬트적인 인기를 끌었다. C8대왕 본인 역시 관심종자의 끼를 숨기지 않았다. 그러면서 더큰 관심을 끌기 위해서 악플을 도구로 이용했다.
마약을 하면 할 수록 내성이 생기는 것처럼, 악플 역시 마찬가지였다. 날이갈 수록 악플의 수위가 올라갔다. 지금에 이르러 이 작자가 올리는 악플의 수위는 바닥을 뚫고 지옥까지 떨어졌다. 수천 페타바이트의 저장용량을 보유한 유재원이지만, 이딴 녀석의 악플을 저장하는 데는 단 1비트도 쓰고싶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악플을 받는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최악인 인물이었다.
당연하게도 유재원의 고소장에서 제일 먼저 이름을 올린 사람이었다. 드림 엔터테인먼트 소속 아이돌과 아티스트 중에 C8대왕의 악플 세례를 받지 않은 이가 없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이번 악플러 소송전의 승패는 C8대왕이란 녀석의 처벌 수위로 정해지게 될 것이다.
비슷한 시각.
유재원은 ID 글로벌헤드쿼터 빌딩의 최상층 펜트하우스에서 쉬는 중이었다.
서울 집이라고 해서 쉬는 모습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서재에서 본인만을 위해 커스텀된 컴퓨터로 게임부터 웹서핑까지 온갖 잡다한 일을 하는 게 유재원이 쉬는 방식이었다.
여행이라든가, 유흥 같은 것은 유재원의 선택지엔 존재하지도 않았다.
유재원은 점심때부터 스타크래프트 두 번째 확장팩 자유의 날개 멀티 게임도 즐겼고, WOW 리치왕의 분노도 2렙이나 올렸다.
역시나 한국이라 그런지 스타크래프트의 승률은 2%나 떨어졌다. 미국 배틀넷에서는 패배라는 걸 모르던 유재원이었는데, 한국에서는 10게임 중에 4번이나 졌다.
초보 환영이라고 쓰였던 방을 대뜸 들어갔다가 지고 말았다.
정규리그 랭크 그랜드 마스터인 유재원이 초보 방에 들어간 것도 문제지만, 초보 환영이라는 방을 파 놓고 있던 게이머도 그랜드 마스터 랭크였다.
출시된 지 아직 한 달도 안 된 게임이었는데, 벌써 고이다 못해 석유가 되어 버린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았다.
완전히 새롭게 뜯어고친 게 아니라 스타크래프트 첫 번째 브루드워를 계승하고 발전시킨 확장팩이라서 기존 게이머들의 적응이 빨랐다. 승리의 관건은 이번 확장팩에 추가된 새로운 유닛들을 활용한 전략이었는데, 전 세계 게이머 중에 한국의 전략 연구가 제일 빠르게 이뤄졌다.
이 정도 속도라면 다음 달이면 자유의 날개로도 충분히 스타리그와 스타 팀리그를 진행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GG.
“GG~!”
이번엔 유재원이 GG를 받아냈다.
이전 판에서 졌던 것에 대해 설욕전을 치러낸 것이다. 초반 러시에 불곰을 적절하게 섞어 주고 컨트롤도 제대로 해 주니 숫자가 조금 부족했지만, 프로토스였던 상대 병력을 싹싹 쓸어내 버렸다.
-리겜?
그랜드 마스터라 그런지 미지의 상대는 투지가 넘쳤다. 승률이나 게임을 풀어가는 센스를 보니 분명 프로게이머의 부계정이 틀림없어 보였다.
“다음에.”
설욕전을 마친 것으로 만족한 유재원은 게임을 종료하고 웹브라우저를 띄웠다. 살짝 뜨거워진 머리를 식히는 데엔 웹서핑만 한 게 없다……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엔 아니었다.
평소 자주 가는 커뮤니티에 딱 접속하자마자 보이는 건 C8대왕의 악플러 공동 전선 선언장이었으니 말이다.
“공동 대응이라?”
C8대왕을 콕 찍어서 최상단에 올려놓은 장본인이 유재원이었으니 말이다.
“쓰레기들이 알아서 모이면 치우기 편하겠지.”
유재원은 헌법 재판소니 표현의 자유니 하는 건 깔끔하게 무시했다.
손가락 멋대로 놀려서 지저분한 글이나 쓰는 게 어떻게 표현의 자유란 말인가. 설사 그러한 글들이 표현의 자유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쳐도, 타인의 인권을 넘어서 행사할 수는 없는 법이다.
본인의 자유가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의 권리도 소중한 것 아니겠는가.
“김앤장이라.”
언제 적 김앤장인지 모르겠다.
현재 한국 최고의 법무법인은 김&정이었으니 말이다. 사실 역사만 따지면 김&장이 일찍 시작하긴 했다.
1973년에 김영무라는 사람이 혼자서 법무법인을 창업했고, 좀 나중에 장길수가 합류하면서 지금의 김&장을 만들었다. 반면 김&정 법무법인은 90년대 초에 ID 파운데이션의 사회 약자를 위한 법률 지원 정책으로 만들어졌다.
처음엔 김&정이 김앤장을 따라 한다는 말도 있었다. 일단 법무법인 이름에서 점 하나의 위치만 달랐으니 말이다.
2008년이 된 지금에는 그 이야기가 쏙 들어갔다.
사법 관련 종사자들이 최고로 선망하는 법무법인에 김&정이 등극한 지도 오래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전세금 반환 소송과 같은 서민들의 소소한 민사부터, 거대 기득권 세력의 비리를 폭로한 공익 제보 관련 소송이나 대규모 피해자가 발생한 리콜 소송 대리까지.
사회 전반에 걸쳐 꼭 필요한 일들을 함으로써, 사회를 보다 정의롭게 만드는 일을 했다. 그러면서도 돈도 잘 벌었다.
김&정 법무법인에 속한 변호사는 500여 명 정도인데, 김&정 법무법인의 한 해 매출은 1조 원이 넘는다.
단순 계산으로 한 사람당 20억 정도의 일거리를 받은 것이다. 수임료는 거의 대부분 변호사의 수익이 된다. 변호사에게 지원되는 직원들의 인건비 역시 ID 파운데이션에서 지원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반면 김앤장의 경우에는 극한의 배금주의적 행태를 띠면서 논란이 많이 되는 법무법인이었다. 단적으로 친일 매국노 변호, 강제 노역 피해자를 위한 배상 소송에서 미쓰비시 측 변호, 재벌 3세들의 막장 범죄 변호 등등.
욕을 아무리 많이 먹어도 돈을 많이 주는 고객이라면 누구라도 OK라는 태도가 일관되게 유지되는 중이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C8대왕이 김앤장 측이 만족할 만큼의 수임료를 제시한다면, 변호를 수락할 수도 있다.
“김앤장이 이걸 받으려나?”
만약 김앤장이 하겠다고 한다면 상대할 사람들은 ID 그룹의 법무팀이다.
김&정도 할 수는 있다. 그렇게만 되면 김&정 대 김앤장으로 재미있는 구도가 연출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유재원이 대리인에 써넣은 이름은 ID 그룹의 법무팀이었다.
김&정은 이번 일이 아니더라도 할 일 많은 사람이었다. 그걸 잘 알고 있는 유재원은 그냥 회사의 법무팀을 동원하기로 했다. 더욱이 타이밍 좋게도 ID 그룹에 걸렸던 소송들이 올해는 크게 줄어들면서 법무팀의 업무 부담도 크게 낮아진 상태였다.
그럼에도 법무팀은 긴장 상태에 들어갔다. 법리를 따졌을 때, 승소는 명백한 사안이었지만, 유재원의 최우선 현안이라는 게 중요했다.
즉, 이번 소송은 승소가 문제가 아니라 유재원이 재판 결과에 만족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ID 그룹 법무팀 모두가 전력을 다하기로 한마음이 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며칠 후.
오늘부터는 제법 가벼운 스케줄만이 남았다.
한미 FTA에 대해 통일국민당과의 조율도 끝냈고, 전자정부 2.0 계약식도 성공리에 마쳤고, 악플러 집단 고소도 끝냈다.
여자 연습생 A팀, 이제는 에프엑스라는 이름을 받아서 프로듀스 마이 슈퍼스타에 당당히 지원하는 것도 성공리에 마무리되었다.
그런 유재원에게 남겨진 일은 전 세계 동시 개봉으로 확정된 아이언맨의 최초 시사회 참석이었다.
시사회도 한국에서 제일 먼저 열리는데, 시사회 행사에 아이언맨의 주연 배우들과 감독들이 모두 참석하기로 했다.
-아이언맨 팀이 입국했습니다.
-공항 통과도 아무 일 없이 순조롭게 진행되었습니다.
유재원은 앉은 자리에서 아이언맨 팀이 입국하는 순간부터 실시간으로 보고를 받았다.
아이언맨 팀의 입국부터 의전을 담당한 건 한국 ID 엔터테인먼트였다. 아이언맨의 국내 배급사로는 CJ엔터테인먼트가 선정되었다.
ID 엔터테인먼트는 제작 CGV라는 멀티플렉스를 비롯해 전국 2천여 개의 상영관을 확보한 배급사였다. 게다가 다른 배급사들보다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덕분에 이번 아이언맨 1편뿐만이 아니라 2편과 3편까지도 확보했다.
-너무 일이 없다는 게 문제였지만 말입니다.
ID 엔터테인먼트의 의전팀장이 보낸 사진을 보니 과연 고개가 끄덕여졌다. 무슨 말인고 하니 공항까지 나올 적극적인 팬들이 적었다는 이야기였다. 보통 한국에 들어오는 할리우드 스타가 있으면 해당일에는 입국장에 장사진을 치게 된다.
열성적인 팬들은 몇 초 안 되는 짧은 시간이라도 직접 얼굴을 보겠다고 나오는 경우가 상당했다.
유재원의 경우 입국장에는 기자가 반 이상이지만, 그래도 일반 사람들도 상당한 숫자를 차지했다.
반면 아이언맨 주연들의 입국장 사진에서 팬을 몰고 다니는 건 여우 주연인 기네스 펠트로였다. 그렇지만 그 규모는 소담한 정도였다. 혹시나 몰라서 유재원 규모의 의전을 준비했던 ID 엔터테인먼트 직원들은 부담이 확 줄었다.
반면 메인 주인공인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경우 기네스 펠트로와는 조금 떨어진 뒤쪽에서 그저 그 모습을 부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사진을 자세히 보니 비행기를 타러 갔다가 그 모습을 보고 짤방으로 남기는 이들이 좀 있었다. 나중에 굴욕 샷이라고 돌아다닐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유독 별난 패션 센스도 여전하고.”
스크린에서 볼 땐 멋이 철철 넘치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였지만, 현실에서의 패션은 그야말로 자기 멋대로였다. 남다른 개성적인 감각이라고 좋게 봐주고 싶어도, 그런 수준을 한참 넘어섰으니 말이다.
이번에도 여전했다.
공항패션이라는 건 그에겐 남의 나라 이야기였다. 검은색 워커에 짙은 카키색의 카고 바지, 국방색 위장 무늬 야상에 하얀색의 가방을 대충 걸치고 들어오는 모습이라니.
좋게 봐준다면 밀리터리룩이었지만, 딱 보면 그냥 편한 옷을 아무렇게나 입은 모습이다. 여기가 한국이라서 눈에 띄는 거지, 미국인들 사이에 있었다면 FBI의 인물 추적 인공지능도 찾아낼 수 없을 만큼 평범했다.
그렇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하다.
아이언맨 1의 전 세계 개봉이 끝나면, 그의 위상은 차원이 달라질 거라는 사실 말이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시작인 아이언맨 1은 전생에서도 대단했다. 그렇지만 이번엔 그 완성도가 몇 차원 더 높아졌다.
원래 일정보다 개봉일이 3개월 정도 밀린 것도 영화의 완성도를 극한까지 끌어올리기 위함이었다.
CG의 업그레이드는 기본이었고, 주연인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연기도 최고였다. 미운 오리 새끼가 백조로 거듭나는 것처럼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재평가도 즉각적으로 이뤄질 거라고 유재원은 확신했다.
“그럼, 나도 이동해 볼까.”
그 모습을 두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유재원도 강남 CGV로 이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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