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6회
프로듀스 마이 슈퍼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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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불길한 상상은 다음 날 현실이 되었다.
유재원이 본격적으로 시작한 한국의 첫 번째 스케줄은 대한민국 정부에 인공지능 기술을 제공하는 계약식이었으니 말이다.
정확한 명칭은 전자 정부 2.0! 노무현 정부 2기가 야심차게 추진하는 행정 시스템 대개편을 ID 테크놀로지가 수주해냈다.
전자정부 2.0이란, 국가의 모든 업무 처리를 행정 전산망의 전자 문서로 대체하는 것은 물론, 인공지능의 업무 보조를 통해 공무원에게 가해지는 업무 부담을 줄이겠다는 야심찬 사업이었다. 행정의 전산화는 한국이 90년대부터 추진하던 사업이었고, 제법 그럴 듯한 성과도 많이 나왔다.
전 세계 정부를 조사해 발표하는 정부의 인터넷 활용 지수에서 한국이 늘 선두권에 자리할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지만 지표로 보이는 순위와 달리 실제 행정 업무에서 전자 정부의 활용성은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여전히 업무 처리에서 상당한 분량의 종이 문서가 쓰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재선으로 힘을 얻은 노 대통령은 이를 완전히 뜯어고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리하여 야심차게 출범한 게 전자 정부 2.0 사업이었다.
전자 정부 2.0 사업이 단순한 전산화였다면 테헤란로에 자리한 자그마한 IT기업도 용감하게 출사표를 던졌을 것이다. 그러나 전자 정부 2.0 사업에 지원한 기업은 한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반복 작업이 많은 행정 업무의 효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인공지능을 도입하겠다는 걸 명시했기 때문이다.
세계 인공지능 기술 개발에서 제일 앞서 있는 건 자타공인 ID 그룹이었다. 국내에서도 21세기 새로운 먹거리라며 중소기업부터 대기업까지 열심히 투자하고 있었지만, 뭔가 가시적인 성과를 낸 곳은 ID 그룹뿐이었다.
그렇기에 노무현 행정부에 못마땅한 시선을 보내던 사람들은, 연정을 위해서 ID 그룹에 퍼주기식 사업을 시작했다고 전자 정부 2.0을 싸잡아 봤다. 인공 지능이란 단어를 넣어서 ID 그룹이 아니면 커트라인을 통과하지 못하게 만들었다고 말이다.
노무현 행정부를 비난하고 싶어서 아무 말이나 마구 내뱉는 것이었다.
전자 정부 2.0 사업의 사업비는 500억도 채 되지 않았다. 이렇게 말하면 허세 같지만 500억짜리 사업은 ID 그룹에서는 사장 혹은 그 아래 단계에서 끝나는 규모의 사업이었다. 유재원에게 보고는 올라갈지언정, 유재원이 신경 쓰면서 진행 상황을 체크할 일도 아니었다.
조 단위 투자가 들어가는 P마켓 차이나도 텐센트에 거의 일임하다시피 했으니 말이다. 그런 자잘한(?) 사업들을 챙길 시간에 유재원은 Z+ 같은 혁신을 이뤄내는 게 더 가치 있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한국의 전자 정부 2.0 사업을 직접 챙기는 건 전적으로 미래 전략 차원이었다.
공무원들의 업무 능력은 곧 국가의 역량과 비례했다. 비효율을 제거하고 인적 자원의 최적화를 이뤄내면 상당한 퍼포먼스의 향상을 기대할 수 있다.
당장 눈에 보이는 변화는 적겠지만, 국가적 위기 상황이 닥치게 된다면 이는 곧 강력한 힘이 된다.
500억을 투자해서 100배 혹은 1,000배의 대박을 기대할 수 있는 영역이었다. 물론 그 돈은 유재원이나 노 대통령의 주머니로 가는 게 아니라, 국익의 절대량이 증가하는 것이다.
유재원이 기꺼이 달려올 이유는 충분했다.
계약식은 행정자치부 서울 청사에서 이뤄졌다.
국가행정 전산망의 관리 책임이 행정자치부 장관에게 있었고, 전자 정부 2.0 사업도 노 대통령이 주도했지만, 법적으로는 행정자치부가 책임지는 사업이었기 때문이다.
“유 회장님께 거는 기대가 매우 큽니다.”
노무현 정부 2기에도 행정자치부 장관에 유임된 김부겸 장관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이번 전자 정부 2.0 사업은 최고의 선택으로 역사에 기록될 겁니다.”
이에 유재원도 화답했다.
ID 테크놀로지는 요즘엔 스마트폰으로 유명해졌지만, 원래는 소프트웨어와 전산화에 일가견이 있는 회사였다.
동네 슈퍼마켓에서도 쓰는 POS 기기와 재고 관리 서버 시스템도 ID 테크놀로지에서 만들었고, 기업과 연구소 등이 필요한 SI(System Integration)에서도 최고의 평판을 가지고 있었다. 유경 그룹의 치킨 물류 시스템이나 택배 시스템도 ID 테크놀로지가 만들어 준 것이었다.
단순히 전산 소프트웨어만 만든 게 아니라, 물류를 처리하는 초대형 물류 창고와 자동화된 컨베이어 시스템까지도 모두 만들었다.
TG모바일의 중계기 제어 시스템과 과금 시스템을 만든 곳도 ID 테크놀로지였다.
일성 통신이나 KT도 TG모바일과 비슷한 스펙의 중계기를 사용했지만, 데이터 처리 능력은 TG모바일이 월등했다. 2천만에 달하는 가입자들의 개인 정보 관리와 과금을 체크하는 것도 TG 모바일이 탁월했다.
TG 모바일에 가입자의 불만이 전화나 온라인으로든 접수되었을 때, 물리적인 문제만 아니라면 한 번의 신고로 해결할 수 있는 것도 고도의 관리 시스템 덕이었다.
ID 테크놀로지의 전체 사업 포트폴리오 중에 SI부분이 너무나 작아서 그렇지, 품질은 세계적이라고 자부할 수 있었다.
전자 정부 2.0은 아예 유재원이 직접 나서서 체결한 계약이었고, 개발 상황도 틈틈이 체크할 작정이었다.
혹여 미진한 부분이 있다면 본인이 프로그래밍까지 직접 할 용의가 있었다. 유재원의 말 그대로 역사에 남을 선택으로 기록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렇게 유재원과 김부겸 행자부 장관은 덕담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서명이 들어간 계약서를 주고받았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악수도 나누었는데, 그 모습이 사진과 영상으로 찍혀서 매스컴을 장식했다.
베이징 올림픽이 한창이었고 야구 대표팀이 놀라운 활약을 보인 탓에 정치 이슈는 뒤로 밀려났지만, 그래도 유재원은 유재원이었다.
사진이 담긴 기사들이 인터넷에 오르기 시작하자, 클릭수가 절로 차올랐다. 올림픽 기사를 밀어내고 열독률 상위에 단번에 오를 정도였다.
그러면서 전자 정부 2.0에 대한 홍보도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인공 지능의 업무 보조가 있을 거라는 내용에 흥미를 갖는 사람들도 많았다. 민원이 빠르게 처리되는 것만큼 확실히 체감되는 건 없었으니 말이다. 일부 소수의 사람들은 불안감을 보이기도 했다.
-설마, 내년도 공무원 시험 합격자 정원이 줄어드는 건 아니겠지?
IMF 외환위기 이후 최고의 인기 직종으로 공무원이 떠올랐고, 그에 따라 공무원 시험에 응시하는 수험생도 대폭 늘어났다.
때문에 인공지능의 업무 보조로 인해서 정원이 줄어드는 거 아니냐고 불안감을 느끼는 수험생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아직은 소수였기에 큰 반향은 없었지만, 나중에 가면 모를 일이었다.
몇 시간 후.
“운영에 어려움이 있나요?”
“없습니다! 이렇게 쉬운 판을 깔아주셨는데, 못한다면 제가 무능한 거죠!”
유재원 앞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은 드림 엔터테인먼트 사장 한상수였다.
90년대 말 아이돌 시스템을 최초로 한국에 도입했던 LSM이 HxT 사태로 망했다. 이후 도망가고 남은 이들이 유재원에게 인수되어 드림 엔터테인먼트로 새 이름을 받았다. LSM시절 떵떵 거렸던 임원들은 모두 잘려 나갔고, 실무진에서 최선임이던 한상수가 사장으로 승진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드림 엔터테인먼트는 이후 무시무시한 성장세로 대한민국 연예 사업을 이끌었다. 지금 연예계에서 드림 엔터테인먼트의 위상은 단연 최고였다.
덕분에 한상수 사장의 유재원에 대한 충성심은 ID 그룹 전체 임직원들을 통틀어도 최상급이었다. ID 인베스트먼트 한국지부 사장인 황재홍에 비견될 정도로 말이다.
전자 정부 2.0 계약식을 마친 유재원은 바로 드림 엔터테인먼트 본사로 이동했다.여자 연습생 팀장의 예상 그대로였다.
다만 아직 여자 연습생 A팀과 대면한 건 아니었고, 한상수의 사장실에서 업무 보고를 받고 있는 중이었다.
“제가 지시했던 건 준비했나요?”
“물론입니다!”
유재원의 물음에 한상수가 큼지막한 서류 꾸러미를 책상 위로 올렸다. 쿵하는 소리가 났다. A4용지로 5천 장 정도 되는 분량을 자랑했기 때문이다. 한 손에 들기 힘들 정도라서 보자기로 싸서 옮겨야 할 정도의 분량이었다.
책상에 놓인 종이 뭉치 중에 유재원은 맨 위에 있는 것 하나를 집어 들었다.
“읽어 보시는 건 권해드리지 않습니다. 악플 중에서도 추리고 추린 거라서요.”
그렇다.
이 많은 종이 뭉치가 전부 악플이었다. 악플의 대상은 드림 엔터테인먼트 소속 아이돌과 아티스트, 그리고 임직원들이었다.
ID 그룹의 인터넷 서비스들은 기본적으로 악플 필터링 시스템이 항시 운영되고 있었다. 그렇기에 악플을 다는 게 불가능했지만, 다른 회사들의 서비스나 커뮤니티는 그렇지 않았다. 필터링 시스템도 없었고, 관리자의 관리도 느슨했다.
자연스럽게 악플러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그런데 아이돌이나 아티스트라면 모를까, 임직원들까지 악플 세례라니. 언뜻 이상한 것처럼 보이지만, 아이돌판이 굴러가는 걸 보고 있으면 그리 이상한 것도 아니었다.
아이돌의 열혈 팬들은 안티와도 싸우지만, 소속사와도 열심히 전투를 벌이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콘셉트나 안무, 스타일 등등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곧바로 회사가 지탄의 대상이 된다. 자기가 편애하는 아이돌이 좀 푸대접을 받는다고 느껴질 때도 마찬가지다.
그런 사람들의 사고 방식은 마치 자기가 편애하는 일부의 아이돌 빼고는 모두가 욕을 먹어도 싸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드림 엔터테인먼트는 그러한 악플을 차곡차곡 모았다. 그리고 악플러들의 아이디와 이메일 주소, IP를 수집해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었다.
그 분량이 지금 유재원 앞에 놓인 5천 장 분량이다.
“으, 사장님 말 안 들어서 눈 버렸네요.”
첫 장을 들추던 유재원이 바로 종이 뭉치를 내려놓았다. 밥만 먹고 악플만 연습하는 건지, 타인인 유재원이 봐도 기분이 확 상해 버렸다.
그렇지만 종이 뭉치는 하나 더 있었다.
“그리고 이것이…….”
한상수 사장이 올린 두 번째 뭉치는 ‘턱’ 하고 울린 소리처럼 부피가 이전 것보다 작았다.
“기사 스크랩입니다.”
드림 엔터테인먼트 소속 아이돌과 아티스트에 대해 악의적인 기사가 나온 것을 일일이 스크랩해 놓은 문서다.
말이 기사지 내용으로만 따지면 먼저 나온 악플 뭉치에 못지않았다. 우후죽순 난립하는 인터넷 미디어 업체들은 오로지 클릭 하나만 노리고 자극적인 기사를 생산했다. 루머를 검증 없이 퍼 나르는 건 일상다반사였고, 네티즌 의견이라면서 악플 비슷한 말들을 기사 말미에 넣는 짓도 서슴지 않았다.
대형 매스컴이라면 ID 그룹의 눈치 때문이라도 기사를 송고하기 전에 검토를 한 번 더 하는데, 이들은 그런 것도 없었다. 그런 기사들을 차곡차곡 모아서 정리한 것이 바로 이 종이 뭉치였다.
“그럼 검찰청에 다녀오죠.”
유재원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옆에서 대기 중이었던 김대석 비서실장이 보자기로 책상에 놓인 악플 덩어리들을 튼튼하게 담아 양손에 들었다.
전자 정부 2.0 프로젝트가 끝났다면 고소장과 증거 제출도 온라인으로 할 수 있었을 텐데, 지금은 이렇게 바리바리 싸 들고 직접 접수를 해야 한다.
“진짜 하시는 겁니까?”
자리에서 일어나는 유재원의 모습에 설마 하던 한상수가 깜짝 놀랐다.
“그럼 이걸 제가 읽어 보려고 수집하라고 했겠어요?”
유재원은 악플을 즐기는 자학 취향의 변태가 아니었다.
악플을 수집하라고 했던 건 바로 고소를 하기 위함이었다. 한국의 연예기획사들은 악플러에 법적 대응을 하는 걸 늘 망설였다. 이미지로 먹고사는 연예인들이 괜히 대중과 척을 지는 모습이 나쁘게 보일까 걱정했다.
그런 태도가 악플에 직격탄으로 노출된 아이돌과 연예인들에게 마음의 병을 만드는 원인이었다. 최악의 경우에는 극단적인 행동으로 이어졌던 경우도 많았다. 드림 엔터테인먼트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그만큼 악플이라는 건 보기보다 훨씬 깊고 치명적인 파괴 행위였다.
해결책은 하나다.
인생은 실전이라는 걸 확실히 체감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타인에게 정신적 타격을 준 만큼, 본인의 일상도 뿌리째 흔들릴 만큼의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걸 느끼게 해 줘야 한다.
“제가 하겠습니다!”
한상수는 유재원은 고개를 저었다.
“이런 건 제가 나서야 효과가 극대화됩니다.”
악플러 고소는 잘 하지도 않았고, 설사 고소를 진행해도 시끄럽게 떠들진 않았다. 특히 이런 일에 기업의 대표가 나서는 건 위신이 떨어지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다. 한상수처럼 말이다.
유재원에겐 통하지 않는 이야기였다.
사회에서 벌어지는 사건 사고 중 대부분은 책임질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아서 생기는 사고가 대부분이다. 아니,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책임은 복잡하게 나눠 놓고, 이익은 본사가 독점하는 게 이제는 경영의 기본이 되었으니 말이다.
유재원은 그런 이들과 똑같아질 생각이 전혀 없었다.
책임질 일은 책임진다. 본인이 움직여 최고의 효과가 나는 일은 기꺼이 한다. 그것이 유재원의 마음가짐이었다.
악플러와 저질 언론을 고소하는 일은 이러한 생각에 완벽히 부합했다.
“회장님, 준비가 끝났다고 합니다.”
김대석 비서실장이 말한 준비란 포토라인이었다.
악플 뭉치를 들고 경찰서로 가는 게 아니라 서울중앙지방 검찰청에 직행할 작정이었으니 말이다. 비서실에서 매스컴에 유재원의 검찰청 행차에 대해 언질을 줬고, 특종이다 생각한 기자들은 검찰청 앞에 진을 치기 시작했다.
“허무하네.”
검찰청에 고소장을 접수하는 것은 허무하리만큼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악플과 쓰레기 기사를 스크랩하는 데 1년 가까이 걸렸지만, 고소는 10분도 안 되어 끝났다. 너무 빨리 끝나서 제대로 접수가 된 건지 모르겠을 정도로 허무했다. 대신 손에 쥐어진 고소장 접수 확인증이 제대로 고소가 이뤄졌다는 걸 상기시켜줬다.
유재원은 본인의 톡톡과 파워블로그 계정에 고소장을 업로드했다. 그리곤 다시 드림 엔터테인먼트로 돌아와 여자 연습생 A팀을 만나 프로듀스 마이 슈퍼스타 유튜브 예선 진행에 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직은 연습생들이지만, 하나하나 보석처럼 반짝거리는 아이들의 모습이 너무나도 보기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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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추천과 리플,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원고료 쿠폰, 후원 쿠폰도 완전 감사합니다~!!
와, 벌써 6월 2일이네요.
공기도 훨씬 후끈해진 느낌입니다.
코로나만 없으면 참 좋을 텐데~~
이번 여름도 파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