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1회
프로듀스 마이 슈퍼스타
=============================
-NBC 아서 왓슨 사장이 4G 시대 양방향 참여형 쇼프로그램에 대해 발표합니다.
수천 명이 들어서는 거대한 컨벤션 센터 메인 스테이지에 홀로 선 아서 왓슨 사장은 장내를 울리는 인공적 아나운서의 목소리에 짜릿함을 느꼈다.
‘내가 돌아왔다!’
짜릿함 속에는 시련을 이겨냈다는 승리감이 깔려 있었다.
아서 왓슨은 ID 그룹의 NBC 인수와 함께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던 사람이었다. 방송계의 사람들은 그걸로 아서 왓슨의 경력이 끝났다고 생각하며 손가락질했다. NBC가 ID 그룹에 인수될 수밖에 없었던 건 경영의 실패 때문이었으니까.
그 책임은 당시 NBC의 CEO였던 아서 왓슨이 혼자 덤터기를 썼다.
실의에 빠졌던 아서 왓슨에게 기회를 준 건 놀랍게도 NBC를 인수한 유재원이었다. 한국의 케이블 방송국 3개사와 인터넷 신문사 한 곳을 묶어 출범한 ID 미디어 그룹의 사장으로 스카우트 되었다.
미국 공중파의 사장이었다가 한국이란 태평양 너머 조그만(?) 나라의, 그것도 케이블 방송 사장이 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강등이었다.
메이저 리그식으로 따져 보면 양키스 같은 곳의 단장이, KBO의 야구팀 감독이 되는 걸 감수했다는 것이니 말이다.
아서 왓슨이 이러한 굴욕을 감수한 건 딱 하나의 이유였다.
ID 미디어 그룹이 성과를 낼 경우 NBC로 복귀시켜 주겠다는 유재원의 약속 하나만 믿었기 때문이다. 계약서에도 확실히 명시했지만, 사실 아서 왓슨은 약속이 이뤄질 거라는 믿음은 약했다. 야생의 약육강식보다 더 심한 힘의 논리가 작용하는 곳이 바로 경제였다.
NBC의 CEO를 하면서 경제적 논리에 따라 말이 바뀌는 걸 얼마나 많이 보았던가.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ID 미디어 그룹의 케이블 채널의 시청률 평균이 4%를 돌파한 게 작년이었다. 그리고 2008년. 아서 왓슨은 NBC의 사장이 되었다.
방식은 간단했다.
한국 케이블 방송만 즐비했던 ID 미디어 그룹이 확대 개편되면서 ID 그룹이 보유했던 미디어 계열사들이 대거 편입되었다. NBC 역시나 ID 미디어 그룹에 편입되었다. 그리고 NBC의 임시 사장이었던 거친 입의 테드 터너가 타임워너 넥스트컴의 부회장으로 복귀하면서 NBC 사장은 공석이 되었다.
그 상태에서 아서 왓슨이 ID 미디어 그룹 사장이자 NBC 사장도 겸임하게 되는 식으로 복귀가 이뤄졌다.
위상 자체가 전과는 차원이 달랐다.
NBC가 끝없는 추락을 할 때의 CEO였던 아서 왓슨은 거의 허수아비 같은 존재였다. 아래서는 제멋대로인 방송 제작자들과 자기만의 루틴이 확고한 간부들을 이끌어야 했고, 위에서는 이사회에서 쪼아 댔다. 어떤 변화를 주려고 해도 반발이 장난이 아니었다.
반면 지금은?
독불장군의 테드 터너가 NBC 인수 후 임시 사장이 되면서 혁신의 장애물을 해치워 버렸다. 모자란 능력을 사내 정치로 커버하며 밥만 축내던 간부들을 찾아내 내쫓았고, 신선한 피로 제작진을 채워 놓았다.
NBC의 조직 구조도 대개편해서 각자의 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게 만들었다. 단적으로 드라마국의 총괄책임자로 영입한 J.J 에이브럼스는 연달아 히트작을 내놓으면서 HBO에 빼앗겼던 드라마 왕국 NBC의 타이틀을 되찾았다.
결정적으로 이사회의 존재감은 0에 가까워졌다.
아예 존재 자체가 없어진 건 아니었지만, 시어머니처럼 사사건건 딴지를 걸었던 예전의 모습은 더는 없다.
상장 회사였던 NBC가 ID 그룹으로 인수된 후 상장이 폐지되었고, 이사회도 ID 그룹에서 임명한 이들로 채워진 덕이다.
대신 약간 불편한 건 하나 있다.
예전에는 상상도 해 보지 못했던 IDDC에서의 신규 프로그램 발표라는 임무가 아서 왓슨 사장에게 주어진 것이다.
-안녕하십니까. 아서 왓슨입니다. 2008 IDDC 메인 스테이지라는 과분한 자리에서 NBC의 신규 프로그램을 발표하게 되어 무한한 영광입니다.
“무한한 영광이라니.”
오늘도 모니터로 IDDC를 보고 있는 유재원은 메인 스테이지에 서서 감개무량한 표정의 아서 왓슨의 말에 헉 소리가 절로 나왔다.
유재원에겐 NBC라는 북미 최대의 공중파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한 인사로 아서 왓슨만 한 사람이 없었다.
공중파를 사적화한다는 소리를 듣지 않으면서도, NBC의 방향성을 유재원이 원하는 곳으로 이끌어갈 사람은 한국서 4년이 넘게 있었던 아서 왓슨밖에 없었다.
4년이란 시간은 대학교 하나를 졸업할 시간이었다. 미국인이었던 아서 왓슨 사장이 ID 미디어 그룹을 이끌면서 한국식 문화를 온전히 익힐 수 있는 시간이었다. 특히 시청률 4%라는 미션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했다.
덤으로 유재원이 콕콕 찍어주는 방향으로만 움직여도 본인에게 도움이 된다는 걸 몸소 확인했다.
예능 전문 방송국 tvN을 시청자들에게 확실히 각인시킨 리얼카메라의 큰 그림은 유재원으로부터 나온 것이었다. 심지어 지금은 전설로 남은 첫 방은 유재원 본인이 직접 출연해서 민감한 사생활까지도 확실히 공개했다.
리얼카메라 덕에 tvN은 케이블임에도 대중에게 확실히 그 존재감을 각인할 수 있었다. 다음으로 유재원이 찍어준 웰빙 라이프라는 테마도 유효했다. 먹는 예능, 여행 예능, 관찰 예능은 방송하는 족족 새로운 시청자들을 끌어모았으니 말이다.
딱 하나 의문이 있었다면 여행지나 먹거리 테마에서 일본의 출연 빈도는 극도로 제한하는 속뜻을 알 수 없는 조치였다.
그것은 죽 쒀서 개 주는 일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회귀 전 국내의 방송사들이 일본의 협찬을 받아서 일본 여행을 열심히 소개했더니, 한류 붐을 타고 일어난 동아시아 시청자들이 일본 여행에 나섰던 탓이다.
푼돈 받고 전 세계에 일본의 관광지를 소개해 줘서, 일본의 배만 불리는 결과를 이번엔 방지하기 위해서 일본이 테마로 등장하는 빈도에 내부적으로 쿼터를 준 것이다.
ID 미디어 그룹의 다른 케이블 방송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온게임넷은 그야말로 환골탈태를 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과거 오리온그룹에 속해 있던 때에는 그저 자그마한 게임 전문 방송사였다. 지금은? EPL과 메이저 리그, 그리고 대형 e스포츠 리그를 전담하는 전문 채널이 되었다.
처음에는 잘될까 싶었던 것들이 모두 대박이 났다.
마지막에는 NBC 사장으로의 복귀의 약속도 지켜줬다. 아서 왓슨이 유재원의 열렬한 신봉자가 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덕분에 NBC로 복귀 후 아서 왓슨 사장 체제가 처음 선보이는 기념비적인 프로그램도, 유재원이 권한 글로벌 오디션 프로그램을 대뜸 선택했다.
-누구나 한 번쯤은 슈퍼스타가 되어 보는 꿈을 꾸어 보았을 겁니다. 저 역시 그랬지요. 그렇지만 용기가 없어서 실행해 본 적은 없습니다.
왓슨 사장은 본인의 스타일로 무대를 이끌었다.
-와. 이 아저씨 말투 되게 클래식하다.
-GE나 GM 같은 회사에서 넘어왔나?
-그런데 대체 뭘 발표한다는 거지?
안타깝게도 그러한 스타일이 유튜브 라이브 스트리밍 시대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애초에 IDDC를 처음 시작한 게 유재원이었고, 유재원의 스타일은 긴 설명 필요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유재원의 뒤를 이어 무대에 섰던 이들 역시나 유재원이 정립한 프레젠테이션 스타일을 열심히 따라갔다.
왓슨 사장은 본인의 스타일을 그대로 가져갔다. 덕분에 채팅창에는 온갖 드립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래도 그렇지 GE, GM이라니.”
굴뚝 기업의 대표 기업이 GE와 GM이었다.
다행히 유튜브 채팅창 같은 건 컨벤션 센터에 전해지지 않았기에, 아서 왓슨 사장은 꿋꿋하게 본인의 페이스로 밀고 나갔다.
-글로벌 오디션 프로그램과 시청자 참여형 서바이벌의 결합. 그것이 바로 프로듀스 마이 슈퍼스타입니다.
오디션 프로그램은 90년대 말부터 인기를 끌었던 프로그램이었다.
영국의 아이돌 제작자인 사이먼 폴러가 제작한 ‘팝 아이돌’이라는 프로그램이 원조였고, 사이먼 폴러가 미국으로 넘어와서 폭스TV에서 아메리칸 아이돌이란 프로그램을 런칭하면서 대박을 쳤다.
우승 상금은 한국 돈으로 10억에 이를 정도였고, 아이돌의 정식 데뷔 앨범 제작도 과감하게 지원해 준다.
아메리칸 아이돌의 포맷을 최대한 참조해서 한국식으로 바꾼 게 슈퍼스타K였고, 거기에서 한 차원 더 발전한 모델이 프로듀스 시리즈였다.
최종 진화 모델인 프로듀스 포맷을 글로벌 규모로 확대한 것이 NBC의 야심작 프로듀스 마이 슈퍼스타였다.
-슈퍼스타를 꿈꾸는 전 세계의 모든 이들의 도전을 기다립니다. 말 그대로 누구나 응모할 수 있습니다. 본인의 재능을 찍어 유튜브의 슈퍼스타 채널에 업로드하는 것으로 끝입니다. 노래와 댄스 아니면 무대에 올릴 수 있는 어떤 퍼포먼스라도 환영입니다.
프로듀스 마이 슈퍼스타의 예선전은 바로 유튜브 대전이다.
스마트폰이 수억 대나 보급된 지금 영상물의 촬영은 너무도 간편했다. 스마트폰을 적당한 곳에 거치한 다음 녹화 버튼을 누른다거나, 인공지능 비서에게 녹화하라고 명령만 내리면 끝이었다.
-단 하나의 조건은 유튜브 업로드는 본인이 직접 해야 한다는 겁니다. 타인의 영상이나 대리로 업로드하셨다면, 아무리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더라도 탈락입니다. 팀으로 등장해도 문제없습니다. 본인의 계정이라면 말입니다.
아서 왓슨 사장은 주의사항도 확실히 발표했다.
그에 맞춰서 메인 스크린에는 아서 왓슨 사장의 발표문을 재미있게 영상으로 바꾼 내용이 재생되며 이해를 도왔다.
-유튜브 예선을 통과한 분들은 나라별 최종 예선을 치르게 될 겁니다. 2,500만 인구를 기준으로 한 팀의 쿼터가 주어집니다. 인구 3억의 미국이라면 12팀, 인구 5천만인 한국은 2팀이겠지요.
그렇게 국가 예선을 통과한 이들은 모두 미국으로 입성한다. 거기서부터 본격적인 트레이닝과 서바이벌이 시작되는 것이다.
과제가 주어지고, 트레이닝을 해 줄 선생님들이 배정된다. 트레이닝과 과제를 치르는 모습이 관찰 예능 수준으로 생생히 보도될 것이고 시청자들은 이를 보고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투표를 해서 최종 한 팀이 남게 되면 끝이 난다.
전체적인 일정을 보면 9월 말까지는 유튜브 예선, 10월까지는 지역별 예선이고 11월부터 본선 경쟁이 시작되어서 내년 1월 말쯤에 최종 우승자를 배출하게 된다.
-시청자 투표의 비중은 70%. 나머지 30%는 심사위원의 몫으로 배정될 겁니다.
아메리칸 아이돌의 경우 전화 투표 100%였다.
시청자의 취향을 적극 반영한다는 취지는 좋았지만, 폐단도 많았다. 그래서 유재원은 프로듀스 마이 슈퍼스타의 투표권을 7:3으로 나누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시청자 투표 데이터는 정확한가. 심사위원 투표가 공정하느냐는 질문이 이어질 수 있다.
-물론, 시청자 투표는 그 누구도 해킹하지 못할 겁니다. 최신의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한 앱이니 말입니다.
프로듀스 마이 슈퍼스타의 시청자 투표의 방식은 문자 투표가 아닌 전용 앱 투표다. 중복 투표 방지와 정확한 집계를 위해서다. 스마트폰의 고유 번호와 전화번호, 이메일닷컴의 공통 아이디, 이렇게 세 가지 개인 데이터가 모여서 한 표가 된다.
스마트폰을 여러 대 보유했다고 해서 중복으로 여러 표를 행사할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한 표 한 표 암호화를 진행한 후에 블록체인으로 데이터를 전송해 관리하는 방식이니 조작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구조다.
그러면 이제 남은 불안 요소는 하나. 심사위원들이다. 그러나 첫 번째 심사위원이 발표되자마자 불안감 따위는 깔끔하게 삭제되버렸다.
-마이클 잭슨.
아서 왓슨 사장은 시작부터 끝판왕을 불렀다.
-머라이어 캐리, 50센트, 존 본 조비. 그리고 도니 월버그.
이름값 하나하나가 너무도 대단한 레전드들이 프로듀스 마이 슈퍼스타의 심사위원으로 기꺼이 참가했다.
NBC가 아니면 이 거물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일은 거의 불가능했다.
심지어 돈으로 움직일 사람들도 아니었다. 이들이 기꺼이 참가를 수락한 건 유재원과의 돈독한 인맥 덕이었다. 유재원과 마이클 잭슨이야 이미 유명한 관계였고, 머라이어 캐리의 경우에는 새해맞이 행사를 비롯한 ID 그룹 행사에 여러 번 초청되면서 쌓은 인연이 있었다.
본조비의 리더 존 본 조비와 90년대를 풍미한 아이돌그룹 뉴키즈 온 더 블록의 도니 월버그는 넥스트 뮤직 사업 덕에 맺은 인연이 있다.
특히 도니 월버그는 뉴키즈 온 더 블록의 재결성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넥스트 뮤직이 이를 서포트하면서 프로듀스 마이 슈퍼스타에 합류하게 되었다.
다만 50센트는 유재원의 인맥은 아니다.
심지어 프로듀스 마이 슈퍼스타의 제작진에서 추천한 인물도 아니었다. 하지만 유재원의 권유로 출연을 타진하게 되었고, 성사된 것이다. 미래의 음악판에서 힙합이 대세라는 걸 알고 있는 유재원이 힙합계의 거물을 끌어들여야 한다고 주장했고, NBC의 임직원들이 갖가지 인맥을 동원해 출연을 성사시켰다.
결과적으로 보면 팝의 제왕, 빌보드의 여왕, 록 스타, 아이돌 스타에 힙합의 대부까지.
그야말로 역대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 역사상 가장 무게감 있는 심사위원진이라 자부할 만했다.
-아 참, 제일 중요한 걸 말씀드리지 않았군요.
-우승 상금과 결선 진출자들에 대한 혜택 말입니다.
-ID 미디어 그룹은 우승팀의 정규 앨범의 발매와 전 세계 프로모션을 전력으로 지원합니다.
-우승 상금은 1천만 달러입니다.
폭스티비의 아메리칸 아이돌이 100만 달러였다. ID 그룹이 전폭적으로 밀어주는 NBC라면 0을 하나 더 붙여 1천만 달러로 올려도 부담이 없다.
인터넷 커뮤니티는 그야말로 폭발적이었다.
아서 왓슨의 말투가 지루하고 재미없다며 떠났던 이들이 다시 돌아와 열광하기 시작했다. 특히 슈퍼스타를 꿈꾸는 이들에겐 이보다 더한 기회는 없었다.
오죽하면 아서 왓슨 사장의 발표가 끝난 다음, 모두가 기대하고 있던 신작 영화 아이언맨의 최종 트레일러가 공개되었음에도 인터넷의 검색어 최상위는 프로듀스 마이 슈퍼스타가 자리하고 있었을 정도다.
=============================
[작품후기]
추천과 리플,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원고료 쿠폰, 후원 쿠폰도 완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