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1회
황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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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1일.
쓰촨성 대지진 발생 후 9일이 지났다.
전 세계는 축구인들의 축제인 챔피언스 리그 이야기로 떠들썩해졌다. 반면 쓰촨성 대지진 이야기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중국이 대지진으로 나라 전체가 흔들리고 있었지만, 전 세계 기준으로 보았을 때는 일주일짜리 정도의 이슈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사람이 4만 명이 죽었는데, 겨우 일주일?
그것도 많이 쳐준 것이었다.
인공지능 골드의 예측이 적중했기 때문에 일주일이나 핫이슈가 될 수 있었던 것이지, 회귀 전이었다면 더 짧게 끝났을 것이다.
중국의 존재감이 아직은 그다지 크지 않은 시점이기도 했고, 중국 자체에서 쓰촨성 대지진의 소식이 외부로 알려지는 걸 열심히 막기도 했다. 쓰촨성에서 활동 중이던 유튜브를 죄다 연행했을 정도로 적극적이었으니 할 말이 없을 정도다.
그럼에도 불가능해 보였던 지진 예측에 성공했다는 점이나, 부시와 같은 유력 정치인들이 이슈를 덥석 물면서 일주일이나 전 세계를 뜨겁게 달굴 수 있었다.
물론 실무적인 선에서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인 일이긴 했다.
지진 예측을 위해 평생을 투자했던 지질학자들이나, 지진이 많이 일어나는 불의 고리 근처의 나라에서는 추가적인 지진 예측을 위해 ID 그룹의 문을 두드렸다. 동시에 하프와 수라 같은 전리층을 이용한 지질 탐사 연구도 다시금 활발하게 시작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인공지능 골드의 예측 능력에 버금가는 예측을 해낼 수 있는 조직이나 연구소는 없을 거라고 유재원은 장담했다.
일단 처리 능력이 엑사플롭스 단위에 도달해야 하고, 지질 예측 알고리즘 역시 공개할 생각은 없었으니 말이다. 검증을 위해서 시뮬레이션이 구동되는 모습 정도는 얼마든지 보여줄 수 있지만, 그 이상은 아니었다.
대신 적당한 대가만 준다면 추가적인 의뢰로 여러 지역의 지진 예측은 얼마든지 해 줄 수 있다. 규모 M6 이상만 되어도 인명 피해가 상당한데, 그런 지진이 2008년부터는 매년 일어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 시작할 일은 아니었다.
유재원에게 지금 가장 급한 일은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직관이었으니 말이다.
“자기랑 혜성이도 함께 왔으면 좋았을 텐데.”
-괜찮아. 내년에 가면 되지. 혜성이도 그렇지?
-아부부!
숙소에서 결승전이 열리는 루즈니키 스타디움으로 출발하기 전, 유재원은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으로 티파니와 화상 통화 중이었다. 티파니의 품에는 혜성이도 안겨 있어서 옹알이와 꼼지락거리는 모습도 다 전해졌다.
지금 통화에서 알 수 있듯 티파니는 집에 남기로 했다.
함께 왔으면 좋았을 텐데, 너무 아쉬웠다. 반면 집에 남은 모자는 전혀 아닌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티파니는 축구보다는 야구 쪽에 더 관심이 컸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직 돌도 되지 않은 혜성이가 비행기를 타는 건 건강에 좋지 않다는 전문가 소견이 있었다.
고고도에 올라가는 비행은 방사능 노출량도 많아지는데, 이게 아기에게 좋지는 않다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건강염려증 아닌가 싶을 정도로 깐깐한 것 같지만, 전문가의 의견을 지켜서 나쁜 건 없기에 유재원은 이번 러시아행은 혼자 가기로 했다.
“그래, 내년에는 함께 오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회귀 전과 같은 퍼포먼스를 발휘한다면 내년에도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진출은 따 놓은 당상이긴 했다. 다만 회귀 전 그대로의 흐름이라면 바르셀로나 FC를 맞이해서 처참하게 박살이 나버린다는 게 문제였다.
하지만 스포츠 경기는 유재원도 몇 번이나 체감했던 역사적 필연성에서 많이 벗어나 있었다.
필연성이란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고 요약할 수 있었다..
세계의 주요 사건 중에 존재감이 특별한 사안들은 유재원이 개입하더라도 회귀 전과 비슷하게 일어난다.
대표적인 사건이 9‧11이었다.
유재원은 본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개입으로 막아 보려고 했지만, 사건은 터졌다. 그나마 쌍둥이 빌딩 중 하나는 지켜냈지만, 대신 미국 국회의사당이 피격되기도 했다.
반면 스포츠는 달랐다.
사소한 변동이 제법 큰 변화로 이어졌다.
2002 월드컵이 그랬다. 한일 월드컵이 아닌, 남북 월드컵이 되었고 남북 단일팀으로 출전한 한국팀은 결승전까지 올라갔으니 말이다.
지금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도 비슷했다.
유재원이 인수한 다음, 한국 선수의 영입도 전폭적으로 이뤄져서 안정환과 박지성 선수가 일찌감치 1군에 들어왔다.
그로 인해서 져야 할 경기에서 이기기도 했고, 이겼어야 할 경기를 지기도 했다. 그야말로 바로 앞도 예측할 수 없는 변동성이 생겨난 것이다. 그나마 퍼거슨 감독의 놀라운 능력 덕에 맨유의 전체 성적이 유재원의 개입 전보다는 좋았다.
빈말이 아닌게, 이번 결승전에서 승리한다면 두 번째 트레블 달성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변동성은 여전히 큰 만큼, 유재원은 과연 이번 결승전에서 승리할 수 있을지 확신하진 못했다.
덕분에 한국인으로서의 걱정도 커지고 있었다.
“음, 박지성 선수도 출전할 수 있으려나?”
박지성 선수의 출전 유무였다.
회귀 전 2008년도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은 한국에서 커다란 논란이 일어난 경기였다. 한국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팬이라고 하면 박지성 선수 때문인 경우가 절대다수였다. 그전에도 맨유를 좋아하는 팬들은 있었지만, 팬층이 대규모로 확대된 것은 박지성 선수가 맨유로 이적하고 나서였다.
맨유로 이적한 다음에도 박지성 선수는 놀라운 활약을 선보였고, 특히나 07-08시즌에서는 거의 주전급으로 존재감이 커졌다.
특히 챔피언스 리그 4강 1, 2차전 경기에서 놀라운 활약을 선보이며, 아시아인 최초의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선발을 기대할 정도였다.
그렇게 모두의 기대 속에서 뚜껑이 열렸는데, 박지성 선수는 선발이 아니었다. 심지어 후보도 아니어서 결승전 경기장에 들어갈 수도 없었다. 국민 감독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던 퍼거슨은 그때만큼은 한국인 전체의 질타를 받았다.
동시에 한국에도 일부 있었던 박지성 선수의 안티들 사이에선 양복성이라는 별명이 새로 생겼다.
양복 + 박지성의 성을 합친 멸칭이다. 결승전에서 뛰지도 못하고 벤치에 앉아 있을 수도 없었던 박지성 선수가 양복을 입고 관중석에 앉아서 경기를 지켜만 보고 있는 모습을 비하하는 것이었다.
“이번엔 아니겠지?”
유재원은 고개를 털면서 불안감을 떨쳐냈다.
박지성 선수의 07-08시즌은 놀라운 활약을 펼친 해였다. 도무지 결승전 출전에서 빠진 이유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이번엔 회귀 전보다 더 놀라운 기량을 펼쳤다.
2002 월드컵 이후, 에인트호번을 거치지 않고 바로 프리미어 리그로 직행을 했다. 첫해에는 2군 신세였지만, 프리미어 리그의 거친 플레이에 적응하면서 1군으로 승격했고, 이후에는 놀라운 활약을 펼쳤다.
그때 같이 진출한 사람이 반지 세리머니로 유명한 안정환 선수였다.
안정환 선수의 경우에는 벌크업을 위해서 트레이닝을 해야 하는 기간이 있었지만, 역시나 프리미어 리그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한국인 프리미어 리거가 둘이나 나왔고, 심지어 최고 인기 구단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소속이었으니, 인기 폭발은 당연했다.
안타까운 점은 안정환 선수가 이번 시즌에 큰 부상을 당하면서 시즌 아웃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박지성만큼 빈번하게 등판하진 못해도, 승부처에서 조커로 등장해 해결사 노릇을 톡톡히 했던 안정환 선수였다.
스페셜 리스트의 극한까지 올랐던 안정환 선수에게 딱 하나 아쉬운 것은 피지컬이었다. 프리미어 리그는 다른 리그보다 더 몸싸움이 심한 곳이기에 더욱 부각되었다. 본인도 이 점을 잘 알고 있었기에 벌크업에 더 집중을 했는데, 이 때문에 신체 밸런스가 깨지면서 부상이 찾아왔다. 참 아쉬운 일이었다.
대신 박지성 선수가 안정환 선수의 몫까지 활약하면서, 한국 팬들은 안정환 선수의 공백을 달랠 수 있었다.
덤으로 박지성 선수가 활약할 때마다 온게임넷의 시청률도 폭등했다.
프리미어 리그 중계권은 한국의 온게임넷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온게임넷의 주요 시청층은 20~40대 남자들이었다. 이들을 오후와 저녁은 e스포츠로 잡고 밤과 새벽에는 프리미어 리그로 잡았다.
여기에 메이저 리그도 있다.
박찬호 선수가 활약하면서 메이저 리그도 한국인에게 익숙한 리그가 되었고, 팬층도 빠르게 늘어났다. 게다가 메이저 리그의 경기 시간은 새벽이나 오전이었으니 겹치는 일도 드물었다.
그러니 야구와 축구 그리고 게임을 좋아하는 이들이 하루 종일 온게임넷 앞에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무엇보다 이들은 한창 경제적 활동 인구에 속하는 이들이었기에 구매력도 넘쳐났다. 그러니 온게임넷의 광고 단가는 수직 상승했다.
온게임넷은 회귀 전과 달리 유료 채널에 가입해야 볼 수 있다는 제약이 있었지만, 최근에는 가입자 가구가 300만이 넘었다는 보고서가 올라왔을 정도였다.
핵가족화가 되고 있는 현대지만, 그래도 한 가구를 3인 가족이라고 치면 900만 명에 달하는 시청자 숫자를 확보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었다. 이것도 내부 보고용으로 잡은 보수적인 통계였고, 실제로는 1천만 명을 돌파했다고 방송가에서 보고 있었다.
“뭐, 그렇다고 돈이 되는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손익 분기점을 넘진 못했다.
e스포츠 중계도 ID 엔터테인먼트가 자체 제작한 것을 돈을 주고 사 와서 방송하는 것이었고, 프리미어 리그나 메이저 리그의 중계권료도 상당한 가격이었기 때문이다.
광고가 엄청나게 팔려나가고 있음에도 아직도 온게임넷은 적자였다. 앞으로도 몇 년간은 적자 상태가 쭉 이어질 것이다.
이는 한국 ID 미디어 그룹이 가진 채널들 모두 공통인 문제점이었다.
뮤직 채널인 엠넷이나 예능 채널인 tvM 모두 제작비를 펑펑 쓰기로 유명한 채널들이었다. 단적으로 방송국 직원들은 죄다 정직원이었다. 정직원 숫자로 따졌을 때, ID 미디어 그룹 정직원 숫자가 KBS보다 많을 정도였다.
그만큼 만들어 내는 프로그램의 퀄리티도 보장되어 있어서 채널 자체에 열성적인 팬들이 엄청나게 늘어났다.
애초에 ID 미디어 그룹은 돈을 벌려고 만든 게 아니라 쓰려고 만든 조직이었다. 문화는 단순히 수익 측면으로만 따질 수 없는 가치가 있었다.
드림 엔터테인먼트 역시 마찬가지였다.
버는 돈보다 쓰는 돈이 더 많은 드림 엔터테인먼트였지만, 방송국과 마찬가지로 아깝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돈만 쓰고 아무런 아웃풋이 없다면 아예 기획사를 다 갈아 버렸을 텐데, 반응이 슬슬 오기 시작했다.
톡톡과 같은 SNS에서 드림 엔터테인먼트 소속 아이돌과 아티스트의 언급량도 크게 늘어났고, 팔로워 숫자도 빠르게 증가 중이었다. 아시아 지역 한정이 아니라 남미와 유럽, 심지어 미국에서도 오고 있었다.
유튜브가 완전히 정착된다면 회귀 전과 같은 KPOP의 도약은 훨씬 빠르게 일어날 수 있다.
“그래서 이번에도 양복 입으면 끔찍한데.”
그렇기에 회귀 전과 같은 사태가 재현된다면 그 파장은 어마어마한 수준을 넘어, 파괴적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문제는 퍼거슨 감독이 구단주의 말이라고 해서 들어줄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박지성보다 더한 선수라도 퍼거슨 감독은 가차 없었다.
과거 베컴부터 루니, 호날두 같은 선수들도 로테이션을 돌리면서 팀의 승리를 위해 말처럼 활용했으니 말이다.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는 말을 누구보다 확실하게 수행하는 감독이 퍼거슨 감독이다.
구단주라고 해도 마찬가지였으니, 선발 등판을 부탁하는 것은 애초에 유재원의 선택지에 오르지도 못했다.
그저 구단에 일찌감치 본인이 직접 직관을 위해 전용기를 타고 모스크바에 올 것임을 알리는 것과, 박지성 선수의 오늘 컨디션이 좋기를 기도하는 게 유재원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서, 경기 시작 2시간 전.
“회장님! 회장님! 선발 명단 발표되었습니다!”
고대하던 선발 명단이 나왔다.
김대석 비서실장의 표정과 마투만 봐도 결과를 짐작할 수 있는 유재원이지만,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기에 서류를 받아서 활짝 펼쳤다.
-박지성.
그렇게도 보고 싶었던 박지성이란 이름이 선발 명단에 확실히 박혀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첼시 FC를 상대로 승리를 가져오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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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추천과 리플,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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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기억하는 독자님 계실까요?
4강에서 날라다녔던 박지성 선수였으니, 결승전에는 적어도 벤치에는 있을 줄 알았더랬지요..
지금도 그때 생각하면 허탈한 느낌이 생생하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