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0회
황금기
=============================
요 며칠간 일본이란 나라처럼 국가 전체가 일희일비하던 나라도 없었다. 마치 배에 선장이 많아서 산으로 가 버리는 것 같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쓰촨성 대지진 예측에 가장 먼저 부정적인 결론을 내린 나라가 일본이었다.
일본만큼 지진이 많은 나라도 없었다.
지진이 많았고, 치명적이기도 했다. 대지진에 몇 차례 강타당하기도 했고, 평소에도 규모 3.0 정도는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나라가 일본이었으니 말이다.
지진에 전 국민이 노이로제가 걸릴 정도였으니, 지진을 예측하기 위한 노력도 가장 각별하게 기울이는 나라였다.
실제로 엄청난 자금을 지진 예측을 위해 투자하고 있었다. 매년 막대한 돈을 지진 예측 기술 개발을 위해 투입했지만, 대학이나 기업 어느 곳에서도 성공하지는 못했다.
그렇기에 21세기에 들어서는 지진이 발생하면 빠르게 전파하는 기술이나 내진 설계 개발에 더 집중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작년 유재원이 인공지능 골드로 쓰촨성 대지진을 예측했을 때만 해도, 코웃음을 치던 일본이었다.
리히터 규모로 3.0짜리도 아니고 8.0이라고 했는데, 이는 100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하는 대지진이었으니 말이다.
5월 12일이 되자 일본은 중국 당국보다 더 숨을 죽이며 쓰촨성에 집중했다.
-인공지능 골드 예상 적중!
-쓰촨성에 대지진 발생!
-마천루와 아파트 단지 연쇄붕괴! 사망자만 3만 돌파!
그리고 긴급 속보로 타전된 소식에 일본 전체가 경악했다.
일본이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 만들려고 했던 지진 예측이 성공했다는 것도 충격이었고, 그것을 일본이 제일 싫어하는 유재원이 만들어냈다는 것도 너무나 싫었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으니, 유재원은 쓰촨성 대지진을 예측하면서 동일본 대지진도 예측했다는 점이었다.
다행히 시간적 여유는 있었다.
2011년 상반기로 예측했기에 중국과는 달리 3년이 넘는 시간적 여유가 있었고, 이를 잘 이용하면 큰 피해 없이 충분히 막아낼 수 있을 거라는 게 상식적인 생각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유재원은 그룹 업무 시스템에서 정보팀이 보낸 일본 리포트의 최신 파일을 열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야후 재팬에 접속해 일본 뉴스를 띄웠다.
일본은 참 폐쇄적인 나라였다.
확실한 증거가 바로 어떤 나라든 진출만 하면 다 성공했던 넥스트컴이 유일하게 실패한 나라가 일본이었다는 점이다.
일본에서 제일의 포털 사이트는 야후였다.
진출한 나라에서 최고의 서비스를 위해 매년 적잖은 돈을 투자하는 넥스트컴이었다. 일본 시장 역시 예외는 아니었지만, 이제까지는 별 효용이 없었다.
게다가 일본 네티즌들에게 밉보이는 사건이 하나 있었다. 넥스트컴의 지도 서비스였다. 일본에서도 예외 없이 독도는 독도로, 동해는 동해로 나올 뿐인데, 일본 네티즌들에겐 되게 아니꼬왔던 모양이다. 이 사건 이전에는 넥스트컴과 야후가 선두를 다툴 때도 있었는데, 이후로는 1위 포털 사이트 타이틀을 야후가 차지했다. 그리고 나서부터는 단 한 번의 재탈환이 없었다. 유재원도 2005년쯤부터는 넥스트컴 일본에 대한 투자를 줄여버렸다. 넘쳐나는 게 돈이었지만, 일본에는 쓰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일본의 포털 판도가 바뀐 다음부터는 인터넷 여론을 확인하는 것에 있어 가장 좋은 것은 야후에 접속하는 것이 되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희망이 없구만.”
유재원은 야후 재팬에서 클릭수가 제일 높은 기사 제목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일본은 다르다!
일본의 총리로부터 나온 말이었는데, 순식간에 유행어처럼 번지더니 본격적인 기사의 타이틀로 떴다. 일본과 중국을 동일선에 놓는 것 자체가 일본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여기에 너도나도 엄지 버튼을 눌러 추천과 공유를 이어나갔다.
자민당 재집권이 이뤄진 건 작년이었다.
일본 민주당이 최초의 정권 교체를 이뤄냈지만, 결과는 좋지 못했다. 준비된 정권 교체가 아니라 뜬금없이 이뤄진 일이었던 탓이다.
일본 내에서는 ‘더 퍼시픽 사태’라고 명명된 유재원이라는 외부의 강력한 힘의 작용이 첫 번째였고, 다음은 자민당 내부에서의 붕괴로 인해 일본 민주당이 어부지리를 챙긴 것이었다. 절대로 일본 민주당이 잘해서 이뤄낸 정권 교체는 아니었다.
당연하게도 얼떨결에 정권을 잡은 일본 민주당은 삽질의 연속이었다.
정권을 잡았으니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개혁을 하겠다면서 관료들과 척을 지는 것으로 삽질의 시작이었다.
일본의 관료 집단은 어마어마한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조직이었다. 80년대 일본의 황금기를 만들어냈다는 자존심이었다. 물론 21세기에 들어서는 이들의 방식은 낡고 비효율적이었다. 과거의 방식을 잊지 못하고서 옛날의 방식을 그대로 고수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혁신이란 수술이 필요한 집단이었지만, 일본 민주당의 방식은 너무도 급진적이었고, 일본 관료 사회 전체를 적으로 규정했다. 개혁에 뜻이 있는 일부 관료라도 일본 민주당을 도울 수가 없는 상태였다.
당연히 일본 관료 집단은 집단적으로 저항했다. 소극적인 행정은 기본이었고, 재무성이나 법무성 등등 나름의 권력이 있는 기관은 일본 민주당의 정책에 대놓고 반발했다.
여기에 오자와 이치로 신임 총리가 비리 사건에 연류되면서 일본 민주당에 대한 지지율은 급속도로 폭락했다.
지지율 폭락은 역대급이었고, 작년에 마의 30% 선이 무너지면서 정권 유지가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국회가 해산되고 선거가 치러졌는데, 일본 자민당에게 과반을 내주면서 허무한 정권 교체가 이뤄졌다.
그때, 유재원이 띄워 놓은 일본 야후에 새로운 기사가 올라왔는지, 페이지가 자동으로 갱신되었다.
-아소 다로 총리, 일본의 내진 대비 완벽!
일본어 공부는 따로 하지 않았음에도, 번역기가 작동되면서 뜻을 이해하는 데 아무런 무리가 없을 정도의 한국어로 변환되었다.
기사에서 알 수 있듯, 현재 일본의 총리는 문제아 아소 다로다.
아베를 보내놨더니 더 큰 문제아가 찾아왔다. 그도 그럴 것이 아소 다로는 아베와 같은 극우 정치인이었고, 저렴하면서 거침없는 언행으로 인해 망언 제조기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였다. 단적으로 일본에서는 금기 단어인 부락민과 같은 말도 거침없이 쓰는 사람이었다. 그것도 적을 향해서가 아니라 같은 자민당 내 거물에게 대놓고 썼다.
그러면 이렇게 문제가 되는 사람은 알아서 걸러져야 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겠지만, 엄청난 금수저 집안 덕에 아무런 탈도 없었다.
오히려 그런 막말에 환호하는 일본 사람들이 많았다. 속이 시원하다는 것이다. 이번 쓰촨성 대지진을 두고 아소 다로 총리가 했던 발언들을 뜯어 보면 답이 나오지 않았음에도, 그걸 문제 삼는 일본인은 매우 적었다.
-일본의 민도는 중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차원이 다르다.
-무엇보다 동일본 대지진이 올 확률도 높지 않다.
-쓰촨성 대지진 원인은 산샤 댐!
-피해가 커진 건 부실 시공과 같은 후진국병 말기 때문.
-만에 하나 동일본 지진이 발생하더라도 고베 때처럼 최소한의 피해로 막아낼 것.
그야말로 외교적 문제가 발생해도 될 만한 발언들이었다.
일단 민도라는 단어 자체가 문제다. 국민들의 수준을 싸잡아 평가한다는 것도 문제였고, 본인이 국민들 위에 서 있는 존재라는 인식을 드러내는 발언이었다.
쓰촨성 대지진의 원인을 산샤 댐으로 지목한 것도 큰일이었다.
언뜻 들어 보면 그럴듯하다. 세계 최대의 댐인 산샤 댐이었다. 최대 저수량이 390억 톤이고, 댐과 연결된 수력 발전기의 용량은 22.500GW로 일반 원자로 출력의 23배에 달했다. 댐에 저장된 어마어마한 물이 불안정한 지각에 큰 압력을 가해 지진을 유발했다는 것이, 쓰촨성 대지진의 원인으로 최근 급부상했다.
하지만 그럴듯하게 들리는 말이라도 그게 진짜라고 확신하는 건 금물이다.
쓰촨성의 지질 자체가 매우 불안정했고, 지구의 지질 활동도 활발하게 진행되는 지역이었으니 말이다.
이처럼 아소 다로는 일본 국민들이 듣기 좋은 소리만 하면서 본질을 피해 나갔다.
지금 상황에서 본질이라는 건, 당연히 동일본 대지진의 예측 정확도를 더욱 높이는 작업을 뜻했다.
인공지능 골드는 동일본 대지진의 시기를 2011년 상반기로만 예측했다. 쓰촨성 대지진은 날짜까지 정확히 예측할 수 있었지만, 동일본 대지진의 경우에는 데이터가 부족했던 탓이다.
유재원이 본인이 알고 있는 미래 데이터를 그냥 그대로 입력했다면, 날짜뿐만이 아니라 시간까지도 정확히 찍어 줄 수 있었다. 하지만 혹시나 초정밀 검증을 해 보자는 전문가들이 나올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그냥 미래의 지진 예측 알고리즘을 사용했다.
기계학습의 대표적인 단점이 인공지능이 왜 이러한 결과를 도출했는지 추론하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이었다. 이는 지진 예측 알고리즘을 완전히 이해한 유재원도 마찬가지였다.
그렇지만 기계학습을 더 돌려서 정확한 날짜를 도출하는 것에는 큰 문제가 없다. 만에 하나 인공지능 골드의 예측 날짜가 실제와 많이 빗나간다면 유재원이 나서서 보정을 가할 수도 있었다.
지금에 와서는 모두 쓸모 없는 조치가 되었다. 일본의 태도로 보자면, 심화 예측을 요청할 일은 없을 것 같으니 말이다.
“하여튼, 쓸데없이 자존심만 세우는 정치인이 제일 문제야.”
정치인들이 자존심을 세우면 피해는 국민들의 몫이었다.
문제는 동일본 대지진의 경우에는 일본인뿐만이 아니라 태평양에 인접한 나라들 모두가 피해를 본다는 점이다.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폭발 때문이다.
이때 방출된 방사성 물질로 인해 태평양 전체가 오염되었다. 그렇지만 당시에는 그 심각성을 몰랐다. 피해가 당장 눈에 보이는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0년, 20년이 지나고 나서는 심각한 후유증이 생겼다.
일본의 암 발생률이 다른 나라들보다 월등하게 상승했다는 점이었다. 더욱이 태평양에서 나는 해산물을 먹은 이들 역시 암을 비롯한 각종 내분비계 질환이 늘어났다.
특히 참치와 같이 먹이사슬의 정점에 있어서 오염 물질의 누적량이 많은 어종일수록 오염도가 심했다.
유재원은 동일본 지진에 대한 대책 미흡으로 일본이 큰 피해를 보더라도,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가 터지는 건 막고 싶었다.
사람들의 안전도 안전이지만, 지금은 맛을 알아 버린 태평양산 참다랑어를 나중에도 안심하고 먹고 싶다는 욕심이 컸다.
구체적인 방법도 있었다.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낡디낡은 원자로를 폐쇄하고, 안전한 토륨 원자로로 교체하는 것이었다.
물론 공짜로 해 주겠다는 건 아니다.
공사 대금은 도쿄 전력이나 일본 정부로부터 1원까지도 다 받아낼 작정이다. 그러면서 꼴도 보기 싫은 일본 자민당의 완벽한 몰락까지도 원했다.
마스터플랜에서도 성공 가능성은 60%로 낮게 점쳤던 일이었는데, 지금 일본 상황을 보니 60%도 너무 높게 쳐준 것 같았다.
다음 날.
-부시 후보. 중국에 대단히 실망!
-예고되었음에도 대처하지 못한 것은 전형적인 후진국형 사태.
-더욱이 치부 가리기 위해, 구조 활동에 참가했던 미국인까지 억류한 것은 참을 수 없는 일.
잭 다니엘을 위시한 유튜버 억류 사태는 곧 매스컴을 타고 공론화되었고, 이를 대선 레이스를 열심히 달리고 있던 공화당의 부시가 덥석 물었다.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현직 애리조나주 상원 의원인 매케인을 압도하지 못하자 조바심을 느낀 부시는 중국 쓰촨성 대지진 이슈를 끌어왔다.
정치인에게는 부고 빼고 어떤 소식으로든 텔레비전과 신문에 나오는 게 이득이라는 이론을 신봉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부시였다.
어떻게 해서든 이슈를 키워서 매케인을 넘어서려는 것이다. 매케인의 경우에는 현직인 앨 고어 대통령에게 패배하긴 했지만, 그래도 공화당의 대선 후보로 완주했던 경험이 있었다.
패했다는 게 흠이었지만, 패배 속에서 배운 것도 많았다. 확실히 준비된 대선 후보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었는데, 덕분에 부시의 무시무시한 돌풍에도 밀리지 않으면서 공화당의 경선이 불타올랐다.
“이럴 줄 알았지.”
반면 유재원은 모니터 속 기사에도 별 감흥이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어제 마화텅 회장에게 괜히 직통 전화를 걸었던 게 아니다. 쓰촨성 대지진에서 유재원은 할 만큼 했다. 유튜버들 역시 라이브로 효과를 다 보았으니, 이제는 빠져나올 때였다. 다행스럽게도 마화텅의 꽌시는 진짜였기에 잭 다니엘을 비롯한 유튜버들은 강제 출국 형식으로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다만, 압류된 유튜버들의 휴대폰은 돌려받지 못했다. 조사할 게 남았다면서 돌려주는 것을 거부했다. 마치 압수 물품을 돌려주지 않는 것으로 마지막 자존심이라도 세울 모양새였다. 덤으로 해킹 시도도 열심히 하면서 말이다. 어떻게 해서든 스마트폰 안에서 불법적인 요소를 찾아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의 해킹은 이제껏 단 한 건의 성공 사례도 보고된 바가 없었다. 비밀번호 입력이 다섯 번 연속으로 실패하면 초기화되었다. 페이스 키 인증도 동일했다. 심지어 스마트폰 자체를 분해해 플래시 메모리를 따로 떼서 데이터 마이닝을 시도한다더라도 데이터가 암호화된 상태라서 복사해 봤자 인증 키가 없으면 하드디스크 용량만 잡아먹는 쓸모없는 데이터 덩어리다.
유재원은 풀려난 유튜버들에게 최신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인 S7을 선물하기로 하면서 중국의 일은 완전히 해결됐다고 생각했다.
중국 당국 입장에서야 쓰촨성 대지진의 복구 작업은 현재 진행형이지만, 유재원은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했다. 단적으로 유재원의 개입 덕분에 사망자의 숫자는 회귀 전 6만에서 4만으로 제법 줄었다.
중국 당국의 예방은 아예 없었지만, 쓰촨성 주민들 중 유재원의 예고에 혹시나 하고 건물에서 나와 있었던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게다가 빠른 구조 작업 덕분에 골든타임을 살릴 수 있었던 이들도 많았다.
이재민들에 대한 처우도 회귀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나았으니, 유재원은 안심하고 다음 스케줄을 시작할 수 있었다.
“얼마만에 모스크바에 가는 건지 모르겠네.”
러시아 출장이었다.
더욱이 비즈니스가 아닌 축제의 참석을 위한 출장이다.
유로파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축구 팬이라면 설렐 수 밖에 없는 대축제였다.
=============================
[작품후기]
추천과 리플, 선작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원고료 쿠폰, 후원 쿠폰도 완전 감사합니다~!!
즐거운 주말입니다!
그런데, 참 안타깝게도 이태원 클럽에서 확진자가 나와버렸네요. 31번 환자 사태의 재탕이 되는 거 아닌지 걱정입니다.
독자님도 건강 잘 챙기시고, 월요일에 다시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