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743화 (743/1,007)

719회

황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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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각.

평소처럼 샌프란시스코 저택의 서재로 출근한 유재원은 모니터에 온 정신을 집중한 상태였다. 모니터 화면에는 FHD의 화질로 연결된 ID톡 화상 미팅이 실행되어 있었다. 화면에는 티파니 그리고 티파니의 품에 안겨 자고 있는 혜성이가 있었다.

조금은 이상한 상황이다.

유재원이 출장을 나가서 집에 있는 티파니와 혜성이를 화상 미팅으로 보고 있는 게 아니라, 지금은 그 반대였으니까.

그도 그럴 것이, 작년 3월부터 임신과 출산을 이유로 긴 휴가에 들었던 티파니가 셰브롱으로 출근을 했기 때문이다.

셰브롱을 승계한 티파니는 산후조리도 잘 끝내고, 혜성이도 충분히 안정이 되자 출근을 결정했다. 그것도 혜성이를 데리고서 말이다.

-참 착한 아기야.

티파니도 FHD로 유재원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덕분에 유재원의 시선이 혜성이에게 꽂혀 있다는 걸 알고서 혜성이에게 카메라를 더 가까이 가져다 댔다.

“거기선 안 울어?”

-응! 우리 혜성이는 어디서든 잘 자잖아.

잘 자는 건 사실이다.

다만 엄마와 떨어지기 싫어했다는 게 문제였다. 오늘 아침에도 그랬다. 티파니와 떨어지면 혜성이는 크게 울었다. 유재원이 서운해질 정도로 말이다. 덕분에 티파니는 셰브롱의 이사회 의장으로서 첫 출근을 하는 역사적인 날에 포대기로 혜성이를 안고서 나가야 했다.

포대기를 한 티파니라니.

예전에는 상상도 못 해 봤던 모습이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티파니의 출근 스타일은 그야말로 차가운 도시의 커리어 우먼이었으니 말이다. 네이비 색 바지 정장에 헤어스타일도 단정 그 자체였다. 반면 오늘 티파니는 긴 원피스였고, 헤어스타일도 드라이로 웨이브만 더해서 자연스럽게 연출한 모습이었다.

혜성이 때문에 예전처럼 멋진 스타일로 꾸밀 수는 없었다. 게다가 포대기를 찼으니 더 어색해 보였다. 그럼에도 티파니는 위풍당당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셰브롱에서 그런 티파니를 향해 뭐라고 할 사람도 없었다.

그런 티파니의 모습은 일부 파파라치에 찍혀서 여기저기 보도되기도 했다. 네티즌들에게도 혜성이를 데리고 출근을 하는 게 무척이나 신기해 보였던 모양인지, 순식간에 인터넷 전체로 퍼졌다.

유재원이 아침에 인터넷으로 봤던 사진 중에 파파라치 사진이 있었다. 물론 유재원은 그보다 훨씬 많은 사진을 가지고 있었다.

이를테면 티파니가 셰브롱 본사 최상층에 있는 집무실 의자에 혜성이를 안고 앉아서 셀카로 찍은 사진들 말이다.

딱히 보정이 들어간 것도 아니었는데 모자의 모습은 너무 잘 어울렸다. 심지어 두 사람 뒤에 걸린 큼지막한 셰브롱의 갈매기 로고에서 후광이 보일 정도였다.

“그거 알아? 지금 자기 덕에 신상 하나가 P마켓 매출 상위권에 들었어.”

파파라치 사진 덕에 뜬 건 또 있다.

-그게 뭔데?

“포대기.”

그것은 포대기였다. P마켓에는 포대기를 검색해 보는 사람들이 급증했다.

-진짜? 와! 진짜네!

티파니가 하고 있으니 궁금해서 찾아보는 것이 대다수겠지만, 일부는 한 번 사서 써 볼 생각인 사람도 있는지, 구매 버튼을 누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덕분에 P마켓 핫딜 게시판에 포대기가 9위로 새롭게 등장했을 정도다.

물론 P마켓에 일찌감치 포대기가 등록되어 있지 않았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유재원의 기억에는 과거 P마켓 위치에 있었던 아마존에서 포대기를 비롯해 한국의 유니크한 아이템들이 잘 팔렸다는 정보가 있었다. 포대기뿐만이 아니라 호랑이 이불이라든지, 대장간에서 만든 호미 등등.

P마켓을 대대적으로 확장하면서 그런 아이템들을 일찌감치 등록해 두었다.

이런 아이템을 띄우기 위해 티파니에게 억지로 포대기를 권한 건 아니었다. 포대기의 경우 유재원의 부모님이 티파니의 출산 선물로 가져온 수제품이었다. P마켓의 경우에는 비슷한 품질의 수제품부터 저렴한 양산품까지 다양한 가격으로 제품이 등록되어 있다.

티파니도 직접 써 보고 좋으니 쓰고 있는 것인데, 우연찮게 출근길 아이템이 되면서 지금과 같은 반응이 일어난 상황이다.

이후 유재원은 티파니가 회의에 참석해야 한다며 자리에서 일어날 때까지 화상 미팅을 하다가 그쳤다. 물론, 화상 미팅이 끝났음에도 유재원은 업무에 바로 복귀하진 못했다.

“그나저나 혜성이 녀석이 계속 저러면 큰일인데.”

언뜻 들으면 자연스러운 걱정이지만, 혜성이는 생후 6개월밖에 되지 않은 아기였으니 기우였다. 바로 본인 감정에 솔직하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나온 걱정이었다.

그것은 바로 서운함이었다.

아들 녀석이 태어났을 때부터 유재원도 육아에 열심이었다.

육아에 대한 경험치가 넘치는 분들이 옆에서 많이 도와주고 있긴 하지만, 요 몇 개월 동안 혜성이와 보낸 시간은 티파니 못지않았다. 그런데도 엄마만 찾는 혜성이 때문에 살짝 서운해진 것인데, 그걸 직시하지 못한 탓에 엄한 걱정으로 이어진 상태였다.

“그게 평범한 아기의 모습이긴 하지.”

물론 걱정의 정도가 심한 건 아니다.

오히려 유재원 본인이 품고 있는 너무도 특별한 비밀을 고려한다면 지금 혜성이의 모습은 그야말로 안심 그 자체였다.

본인처럼 혜성이에게도 뭔가 이상한 특성이 있는 거 아닌가 하고 혼자서만 걱정하던 때도 있었으니 말이다.

혜성이는 평범한 아기였다.

잘 울고, 잠 많이 자고, 많이 먹으면서 엄마만 찾는 건강한 아기 말이다. 발육의 속도도 여타의 다른 아기들과 비슷했다. 뒤떨어지는 건 하나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뭔가 특별한 일도 없는 그런 아기였다.

몸과 마음 모두 건강히만 자라준다면 바랄 게 없는 유재원이었다.

띵!

“응?”

혜성이 생각에 빠져 있던 유재원을 현실로 데려온 것은 알람 소리였다.

-인터넷에서 회장님에 대한 언급량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중국 쓰촨성 청두에서 활동 중이던 유튜버 잭 다니엘의 공안 연행 때문인 것으로 파악됩니다.

김대석 비서실장이 보낸 ID톡이었다.

연행?

잭이라면 유재원도 몇 번 봤던 유튜버였다.

유튜브의 인수 이후, 유재원은 유튜브의 성공이 양질의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유튜버들의 확산에 있다는 걸 경영진에게 확실히 주지시켰다. 그러면서 스타 유튜버를 만드는 일에 착수했다. 이른바 대기업 유튜버를 양산하는 일이었다.

구체적으로는 유튜브가 돈이 된다는 걸 알려주는 것이었다. 바로 정산금을 늘려서 말이다. ID 그룹의 인터넷 광고 비중에서 유튜브의 비중을 몇 배로 확장했고, 그러자 상위 유튜버들의 광고 정산금도 대폭 늘어났다.

잭 다니엘이 그러한 정책을 제대로 타서 대기업으로 성장한 유튜버였다. 더욱이 쓰촨성 대지진이 다가오던 상황에서 남들보다 한발 앞서 쓰촨성으로 들어가 지진이 일어나던 순간 유튜브 라이브를 했던 몇 안 되는 유튜버이기도 했다.

그야말로 유재원이 원하는 인재였다.

잭이 공안에 연행되었다는 말에 유재원은 바로 김대석과의 ID톡을 켜고 제대로 된 보고를 받았다.

-잭 다니엘 씨 말고도 여러 명이 연행되었습니다. 현재 파악된 숫자만 8명입니다.

“유튜브가 매우 껄끄러웠던 모양이군요.”

-껄끄러운 정도가 아니라, 내부에서는 불만이 폭증하고 있다고 합니다.

체면을 목숨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게 중국 사람이었다.

쓰촨성 대지진은 그런 중국의 치부를 드러낸 일대의 사건이었다. 심지어 유튜브 라이브를 통해서 전 세계에 빛의 속도로 전해졌다. 과거였다면 강력한 정보 통제를 걸어서 치부가 드러나는 걸 막았을 텐데, IT 혁명으로 인해서 과거와 같은 대응이 불가능했다.

“그러게 애초에 대비를 잘 했어야죠.”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유재원은 혀를 찼고, 김대석도 적극 동조했다.

부실의 상징이 된 대나무 아파트였지만, 그것만 있는 게 아니었다. 깡통 아파트라는 것도 있었다. 한국서는 아파트가 미분양 되었다거나, 아파트 매매 가격이 전세 가격 이하로 떨어졌을 때 깡통 아파트라는 단어를 쓰지만, 중국에서는 진짜 깡통을 넣어 만든 아파트를 지칭했다.

콘크리트 타설량을 줄여보겠다고 깡통을 넣어서 빈 공간을 만들어낸 것이다. 무게를 지탱해야 할 벽이 속 빈 강정 같은 상태였으니, 무너져도 할 말이 없다.

웃기는 건 중국 당국의 반응이다.

부실 공사에 대한 분노보다, 사진과 영상이 외국에 모조리 퍼졌다는 것에 더 큰 분노를 했다. 올림픽은 베이징에서 열리니 쓰촨성 대지진의 대처만 잘했다면 아무런 문제도 없었을 것이었다.

그런데 일찌감치 예고까지 해 줬는데도, 중국은 아무것도 안 하면서 최악의 상황에 빠졌다. 그러면서 비난의 화살을 어떻게 해서든 돌리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이를테면, 건물이 무너져서 부실이 명명백백히 드러난 건설업자를 잡아들이는 것이었다. 속전속결로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는데, 사형이 유력하다고 했다. 정보팀에서는 앞으로 며칠 후 실제 형 집행이 이뤄질 거라는 보고도 있었다.

교차검증용으로 만든 다른 지역 정보팀 일각에서는 설마 그러겠느냐는 반론도 있었다. 당연히 유재원은 형 집행까지 예측한 아시아 지역 정보팀의 손을 들어줬다. 그냥 손만 들어주는 것으로 끝이 아니라 인사 고과에 플러스 점수도 주고, 보너스도 책정했다.

비상식적인 중국 당국의 행동에 대해 상당히 정확한 예측을 했으니 말이다. 부실 시공을 한 건설업자들에 대한 신속한 구속과 재판은 그야말로 면피 행위였다.

이들의 범죄에 대한 단죄가 아니라, 인민들의 시선이 중국 공산당 윗선으로 확대되는 것을 차단하는 조치였다.

그도 그럴 것이 부실 시공도 아무나 못 하는 짓이었다.

불법을 눈감아 주는 이들이 있어야 했고, 이들에게 어마어마한 돈이 상납되었을 거라고 예상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들이 중국 공산당의 높으신 양반들이라는 것은 확실한 팩트였다.

그러니 쓰촨성의 지진 피해를 키운 근본 원인에 중국 공산당도 한 몫 크게 했다. 본인들도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으니 입막음을 하려는 것이다. 입막음 중에서도 최고 수위라 할 수 있는 살인멸구로 말이다.

이러한 중국 공산당의 행태로 보았을 때, 중국의 민낯을 매일같이 보도하는 유튜브는 눈엣가시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유튜브는 중국에 직접 진출한 것도 아니었다. 중국에서는 접속도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잭과 같은 유튜버들이 라이브 방송을 할 수 있었던 것은 VPN이라는 가상 인터넷망 기능 덕이었다.

중국이 유튜브의 주소 자체를 차단했어도 VPN으로 차단 시스템을 간단히 우회할 수 있었다. 게다가 현재 중국이 만든 황금방패는 아직 완성된 것도 아니었다. 구멍은 얼마든지 있었고, 이를 통해 유튜버들은 큰 문제 없이 현지에서 방송을 할 수 있었다.

결국, 중국 당국은 유튜버 연행이라는 초강수를 선택한 것이다.

“아무래도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네요.”

-법무팀을 준비할까요? 아니면 워싱턴에 연락을 할까요?

“아뇨, 이번 일은 빠른 조치가 중요한 일입니다. 제가 마 회장님께 연락 드리죠.”

유재원은 대선으로 바쁜 워싱턴이나 ID 그룹 법무팀 대신 마화텅 회장에게 연락하는 것을 선택했다.

폐쇄적인 중국에서 그나마 먹히는 게 바로 꽌시였으니 말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마화텅은 최고의 인맥을 자랑했다. 현재 중국 국가주석인 후진타오는 기본이었고, 차기 권력으로 급부상한 시진핑과도 인연이 있었다. 게다가 최근에는 쓰촨성 총서기와도 인맥이 두터워졌으니, 유튜버들을 풀어주는 건 일도 아닐 것이다.

결단을 내리자 유재원은 바로 스마트폰을 들어 마화텅의 단축 번호를 길게 눌렀다.

-예, 회장님! 마화텅입니다!

이번에도 벨소리가 다 울리기도 전에 마 회장은 바로 응답했다.

“안녕하세요, 마 회장님. 다름이 아니라 공안에 연행된 유튜버들 때문에 염치 불구하고 연락을 드렸습니다.”

-아! 유튜버들 말씀이시군요. 문제없습니다! 최대한 빨리 손을 써 보겠습니다. 사실 공안도 그냥 조사만 해 보려는 것이었지, 무슨 위해를 가하려고 잡아들인 건 아니라고 하더군요.

유재원의 단도직입적인 말에 마화텅 회장에게선 즉각 대답이 나왔다.

쓰촨성 복구에 정신이 없을 텐데도, 유튜버 문제를 이미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물론, 마화텅의 말을 100%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긍정적인 소식을 들려주겠다고 본인 입으로 말했으니, 조만간 풀려날 것으로 기대했다.

“중국은 이걸로 됐고……. 다음은 일본인가?”

이미 일이 터지고 수습 단계로 들어간 중국은 조만간 정리될 것으로 보였다.

문제는 일본이었다. 인공지능 골드의 지진 예측이 쓰촨성 대지진으로 명확히 들어맞은 가운데, 다음 타자가 일본이었다.

무대책으로 일관했던 중국이었으니, 일본은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하는 게 가장 상식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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