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권 22화
무대에 선 마이클 잭슨은 예전 그대로 팝의 제왕이란 별명이 부끄 럽지 않게 완벽한 무대를 선보였다.
얼마나 열성적이었으면, 너무도 격한 반응을 보이다 못한 팬들이 실신해서 실려 나가는 경우가 여러 케이스 발생할 정도였다.
그야말로 2006년의 볼드롭 행사 는 역대 최대의 규모, 최대의 열기 로 치러졌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 다.
더욱 놀라운 점은 비단 타임스퀘 어의 볼드롭 행사만 이런 게 아니었다는 점이다.
전 세계의 새해맞이 행사 풍경을 보면 누가누가 크고 화려하게 치를 지 경쟁이라도 하는 것처럼 다들 엄청난 규모를 자랑했다는 것이었 다.
오죽하면 유재원이 한 번 거들 때 최고로 화려했던 샌프란시스코 의 새해 축제도, 올해에 그 기록을 경신했다.
펑!
커다란 폭음과 함께 아름다운 수 백만 개의 불꽃이 어두운 밤하늘과 금문교를 화려하게 밝혔다.
타임스퀘어 볼드롭 행사의 하이 라이트가 미러볼이 내려오는 것이 었다면, 샌프란시스코 새해맞이의 하이 라이트는 불꽃놀이 였다.
유재원과 티파니도 저택 테라스 에 나와서 불꽃놀이를 구경 중이었 다. 샌프란시스코만과 금문교를 한 눈에 담을 수 있는 아름다운 시야를 자랑하는 곳이었고, 오직 둘에 게만 허락된 자리이기도 했다.
"와! 너무 예쁘다! 예쁜 꽃이 핀 거 같아!"
"응, 진짜 장미 같네. 그런데 불 꽃 반응 중 빨간색이라면 리튬 아 니면 루비듐인가? 둘 다 비쌀 텐데 많이도 때려 넣었네."
티파니의 반응은 그야말로 감상 적이었다면, 유재원은 공대 감성이 절로 나왔다. 그렇다고 빈말은 아 니었다.
2005년 세계 경제의 활황을 단
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는 모바일 디 바이스와 컴퓨터 판매량 폭증이었 다. 이뿐만이 아니라 대형 LCD TV의 판매량도 새로운 신기록을 찍었다.
초창기 LCD TV가 32인치 이하 의 크기로 대중화되었다면, 지금은 42인치로 대중화되는 중이었다.
이러한 수요 폭발로 리튬과 같은 주요 원재료의 가격도 폭등했다. IT 산업의 비타민과 같이 없으면 공장이 굴러가지 않는 물질이 리튬 이니 말이다.
ID 그룹도 볼리비아와 페루에 있 는 리튬 광산만으로 부족해질 지경 이었다. 그나마 여름이 지나고 중 국산 물량이 풀리면서 가격이 안정 화되었다.
"피, 분위기 없게. 그게 뭐야?"
유재원은 할 말이 없어졌다.
하긴, 최근 들어 여러모로 신경 쓰이는 일들이 많아진 탓에 뭐 하 나 제대로 즐길 짬이 없었다.
불꽃놀이 중 화려한 붉은 장미처 럼 터지는 폭죽을 보곤 리튬 가격 이 떠오르니 워크홀릭 말기라고 해도 할 말은 없었다.
그러다가 땡 하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2006년입니다. 해피 뉴 이어!
인공지능 비서 골드의 알람이었 다. 2006년 0시 0분에 알람을 맞춰 놓으면 특별한 메모를 설정하지 않 더라도 각 나라에 맞는 새해 인사 말이 추가되도록 해 놓았다.
문득 유재원은 전 세계 사람들 중 몇이나 골드의 새해 인사를 들 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동시 에, 목 근처가 포근해졌다.
티파니가 두 손으로 유재원의 목 을 끌어당긴 것이었다.
딴생각은 바로 사라졌다. 지금은 옆에 있는 세상 그 무엇보다 소중 한 티파니에게 집중해야 할 시간이 었다.
2006년 1월 3일, 화요일.
ID 그룹의 새해 첫 근무가 시작 되었다. 다른 회사들은 월요일인어제 시작하는 곳도 많았다.
그렇지만 1월 1일이 일요일이라 공휴일 하나가 사라진 것이나 다름 이 없었다.
그렇기에 그룹 자체적으로 대체 휴일제를 만들어서 1월 3일부터 업 무를 시작하기로 했다.
미국의 경우 월요일 공휴일법이 라는 대체 휴일제 비슷한 것이 있 긴 했는데, 거기에는 단 4개의 공 휴일만 포함되어 있었다.
안타깝게도 1월 1일은 포함되어 있지 않아서 대부분의 기업은 2일에 시무식을 하고 업무에 들어갔었 다.
-5분 후, ID 그룹 시무식을 시 작합니다.
서재에 김대석 비서실장의 목소 리가 두 번 울려 퍼졌다.
시무식은 보통 커다란 강당에 직 원들을 모아두고 하는 게 일반적이 다. 유재원도 과거에는 ID 테크놀 로지 본사 대강당에서 미래를 꿰뚫 어 보는 비전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번엔 달랐다. 각자 사무실에서 편안하게 볼 수 있도록 온라인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전적으로 유재원 본인이 편하기 위함이다.
바로 열심히 만들고 있는 프로그 램이 있어서 ID 테크놀로지 본사까 지 가는 것도 힘든 상태였다. 카메 라 앞에서 시무식을 끝내 버리고 곧장 원래의 작업으로 복귀하는 게 제일 좋았다.
그렇다고 부스스한 모습으로 임 직원들 앞에 서는 건 부끄러운 일 이기에, 저택으로 초청한 스타일리 스트에게 코디부터 스타일링까지 깔끔하게 받은 상태였다.
-30초 후, 시작합니다.
중계 준비도 비서실에서 완벽하 게 해 놓았기에, 유재원은 시간에 맞춰서 인테리어는 물론이고 조명 까지 완벽하게 세팅된 자리에 앉기 만 하면 끝이다.
"음!"
유재원은 모니터링용 스크린에 뜬 자신의 모습에 속으로 감탄했다.
괜찮은 원판이었고, 꾸준한 관리 도 해 왔으며, 확실한 서포트까지 받으니 할리우드의 스타들 부럽지 않은 모습이 스크린 안에 있었다.
회귀 전의 같은 나이 때의 모습 은 물론 지금껏 이뤄낸 성과를 모 두 비교한다면 그야말로 천지 차이, 아니 안드로메다를 사이에 둘 만큼 엄청난 차이였다.
더욱 놀라운 점이라면 아직도 이 뤄내야 할 일들이 쌓여 있다는 것 이었다.
유재원은 오늘 2006년 시무식에 서는 올해 이뤄야 할 단기의 목표 에 대해서 발표할 작정이었다.
"2006년, 우리 ID 그룹이 중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우리의 전략적 판단에 의구심을 갖는 이들 이 많고, 이를 빈틈으로 여기는 도 전자들이 무섭게 치고 올라올 것입 니다."
유재원은 시무식의 처음부터 도 전이란 단어를 꺼내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저는 방어적인 자세를 취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우리는 자만하지 않는 챔피언입니 다. 올해에도 스마트한 혁신을 꾸준 히 이어 나갈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넥스트컴, 넥스트 뮤직, 2CH.com, P마켓 등등. 인터넷의 시작과 함께 역사를 써 내려갔던 사이트를 대대 적으로 업그레이드할 계획이 있습니 다."
해당 사이트들의 역사는 최소 10 년을 넘었다. 넥스트컴과 2CH.com 의 경우 15살이었고, 넥스트 뮤직 은 13살이다. 그나마 젊은 P마켓도 10년 차가 넘는 서비스였다.
그만큼 일찍부터 인터넷 역사를 써 내려왔던 사이트들이지만, 동시 에 낡았다는 느낌을 주는 것도 확 실했다.
최근에는 스마트폰에서 어떤 앱 을 이용하는지에 따라서 세대의 차 이가 생겨날 정도였다. 넥스트컴은 30대 이상이, 톡톡은 20대들이, 페 이스북은 10대들이 주로 사용한다 는 통계가 나왔다.
인공지능 비서 골드의 이용자들 이 만들어낸 빅데이터를 분석해 나 타난 결과였기에, 매우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였다.
이대로 혁신 없이 그냥 10년만 더 지나면 넥스트컴은 그야말로 아 재들만 가득한 사이트가 되어 버릴 것이다.
넥스트 뮤직은 그나마 전 연령대 에서 사용하는 서비스였다. 스마트 폰 앱을 빠르게 낸 게 주요했고, 완성도 높은 모바일 앱도 한몫했다.
특히 작년부터는 인공지능 기술 이 도입되어서 사용자의 취향을 저 격해 21세기에 걸맞은 혁신을 이루 어 냈다.
인공지능 골드의 추천이 사용자 에게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비율이 70% 후반대였으니, 다른 업체들은 감히 따라 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넥스트 뮤직의 위상이 절 대적이 되자, 부동의 자세로 있던 음반 회사들도 움직였다.
비틀즈 음원을 가지고 있던 EMI 는 물론이고, 전자제품과 게임기, 스마트폰 등등 거의 모든 사업 영 역에서 맞붙고 있는 소니 뮤직도 결국 넥스트 뮤직에 음원을 공급하 는 계약을 맺었을 정도였다.
"일단 P마켓은 직접 유통하는 아 이템의 숫자를 대폭 늘리는 것을 첫 번째 목표로 삼았습니다. 이를 위해 북미 전역에 대형 물류 창고 를 신설하고, 효율적인 물류 관리 를 위해서 군사용에 준하는 정확성 을 가진 GPS 추적 시스템을 전격 적으로 도입하겠습니다."
P마켓은 개인 사용자들을 위한 개인 경매 시스템에서 시작했다.
10년이 넘은 지금에 이르러서는 대형 판매 업체들이 입주해서 각자 의 물건을 파는 경우가 더 많아졌다.
입주한 업체의 숫자가 워낙 많다 보니까 종합 쇼핑몰과 같은 형태로 거듭났다.
문제는 업체들이 물건들을 알아 서 배송하다 보니 중간에 사고라도 나면 P마켓이 개입하는 게 힘들었 다는 점이다.
소비자의 필요를 곧바로 감지하 더라도, 이를 판매 아이템의 변화 로 쉽게 이어 가지도 못했다.
덕분에 인터넷 쇼핑 업계에서 독 점적인 지위에 있었던 P마켓은 후발 주자들의 무서운 추격을 받고 있는 중이었다.
그중 대표적인 후발 주자는 역시 나 아마존이었다.
인터넷 서점에서 시작한 아마존 은 하나둘씩 새로운 품목을 신설하 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P마켓의 가 장 강력한 경쟁자가 되었다.
아마존의 성장률은 놀라울 정도 였다. 거기에는 신기술이라면 거침 없이 가져다 써서 본인들의 소유로 만드는 능력도 있었다.
ID 그룹의 진정한 힘은 클라우드서버에서 나온다는 것을 파악한 것 처럼, 아마존도 자체적인 클라우드 서버를 만들었다.
아마존 내에서 통용되는 전자 상 품권도 만들었지만, N페이나 페이 팔과 같은 경쟁사의 핀테크라도 거 침없이 수용했다.
디지털 콘텐츠의 유통도 시작했 다. 음원과 영화는 물론이고 게임 까지도 아마존에서 받을 수 있었다.
마치 경쟁사의 기술과 서비스라 도 아마존에 도움이 될 것 같다고 하면 무조건 가져와 추가하는 식이었다.
유재원은 이러한 후발 주자들의 공세에 P마켓이 대응할 수 있는 가 장 효과적인 방식이 물량이라는 것 을 알고 있었다.
다만 타이밍이 중요했을 뿐이다.
구체적으로는 사람들이 더는 인 터넷 쇼핑에 대해 어색해하지 않을 때. 후발 주자들이 엄두를 내지 못 하는 성대한 이벤트를 치러 1위를 수성한다는 것이었다.
성대한 이벤트란?
블랙프라이데이 행사였다.
몇 년 전부터 도시의 상업 지역 에 자리한 대규모 쇼핑센터에서는 연말이 되면 엄청난 할인율로 세일 을 시작했다. 이것이 블랙프라이데 이의 기원이었다.
대규모 할인이 가능한 이유로는 크게 두 가지가 있었는데, 하나는 1년 장사 전체를 봤을 때 11월 말 쯤이 되면 모든 비용을 제하고도 흑자로 전환되기에, 이날 이후부터 는 얼마를 받고 팔아도 이익이었다.
두 번째는 미국에서는 연말에 창고를 싹 비우는 것이 새해 장사 준 비를 위해 좋은 일이었다. 창고를 임대해 물건을 저장해 놓는 것 자 체가 큰 비용이 발생하는 일이었다.
두 가지의 이유들이 결합해 11월 말에 대규모 할인 행사를 하는 게 연례행사로 자리를 잡으면서 블랙 프라이데이라는 이름도 생겼다.
이처럼 블랙프라이데이 행사는 오프라인에서 주로 하는 행사였던 탓에 11월 말부터는 인터넷 쇼핑몰 의 매출에도 영향이 생긴다.
하지만 대규모 물류 창고를 직접가지고서 다양한 품목을 거래한다 면, 온라인에서도 얼마든지 블랙프 라이데이 행사를 치를 수 있다.
그렇지만 유재원이 천명한 확장 정책은 ID 그룹 전체에 적용되는 건 아니었다. ID 인베스트먼트, 신 일본투자은행, 백호펀드와 같은 금 융 분야에는 아주 보수적인 자세를 요구했다.
미국의 금융시장이나 주택시장은 마치 유재원과 ID 인베스트먼트를 비웃는 것처럼 새해가 된 지금에도 뜨겁게 치솟는 중이지만, 그럴수록유재원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가 올해 꼭 터질 거라는 확신이 있 었다.
월 스트리트에서 ID 인베스트먼 트의 풋 옵션은 웃음벨로 통하지만, 이들의 비웃음이 클수록 유재원의 확신만 단단히 굳어졌다.
그렇게 시간이 더 지나, 잔인한 달 4월이 되었을 때.
애덤 맥케이 감독의 신작, 월 스 트리트의 외로운 늑대가 드디어 완 성되었다.
타임워너 넥스트컴이라는 강력한 배급사를 등에 업은 만큼 전 세계 동시 개봉으로 초읽기에 들어갔다.
회귀로 압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