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권 21화
며칠 후.
-미스터 유, 고마워요.
유재원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는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마이클 잭 슨이었다. 타임플렉스의 다큐멘터리 를 제작하기 전부터 마이클 잭슨과 는 교감이 있었다.
애초에 유재원은 황색 타블로이 드가 퍼트리는 가짜 뉴스는 믿지도 않았기에, 마이클 잭슨과 만났을 때도 이 시기 보통 사람들이 보였 던 편견 가득한 모습은 전혀 없었 다.
사실 마이클 잭슨은 타블로이드 의 행태 때문에 강제적인 대인기피 증에 걸릴 지경이었다. 마이클 잭 슨과 만난 사람들에게 거액을 제시 하면서 인터뷰를 하도록 했고, 그 들의 입을 빌려 본인들이 하고픈 말을 했던 탓이다.
오죽하면 마이클 잭슨의 친누나 와 인터뷰를 하고는 조단 챈들러를 옹호하는 말을 했다는 식으로 보도 했을 정도니 말이다.
반면 유재원은 그런 타블로이드 지가 감당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돈이 궁해서 인터뷰를 할 일 도 없었고, 유재원의 위상은 이미 누구도 의심할 여지가 없이 최고였 다. 마이클 잭슨에게 한 것처럼 헛 소리를 퍼트려도 누구 하나 그 기 사를 믿지 않을 정도로 확고했다.
그렇게 유재원은 편견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지만, 실제로 만난 건 몇 번 되진 않는다. 대신 통화 는 수차례 했었다.
"뭘요, 친구를 위해 진작 했어야 할 일이었죠."
-참 그리운 단어였는데, 그걸 당신으로부터 듣게 될 줄은 몰랐어요.
유재원 역시 마찬가지다.
늦지 않게 조치를 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었다.
하지만 아직 상황이 끝난 건 아 니니까 집중력을 잃어서는 안 된다.
다큐멘터리는 언론의 행태를 집 중해서 다룬 것이었지만, 마이클 잭슨의 진짜 싸움은 법정에서 이뤄 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좋은 소식 기대할게요."
-물론이에요. 결과가 나오면 미스터 유에게 제일 먼저 전하겠어요.
마이클 잭슨의 목소리에는 힘이 있었다.
회귀 전 약물이 아니면 잠에 들 지도 못했을 만큼, 어마어마한 스 트레스에 시달렸을 때와는 확실히 달랐다.
단지 목소리였을 뿐이지만, 유재 원은 처음 보았을 때의 무기력한 모습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었기 에, 안심할 수 있었다.
그만큼 희망이란 좋은 것이었다. 재판에서 확실히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이 마이클 잭슨을 크게 변화시 켰으니 말이다.
"언론도 바뀌었으면 좋겠지만. 그건 불가능하겠지."
타임플렉스의 마이클 잭슨 다큐 멘터리 공개 후 언론들의 반응은 반반이었다.
새로운 증거들이 나왔으니 재판 을 지켜보자는 상식적인 반응이 반 이었고, 나머지 반은 넥스트 뮤직 을 가지고 있는 유재원이 비즈니스 관계인 마이클 잭슨을 위해 프레임 변환에 나섰다고 보는 이들이 반이다.
아주 극소수는 언론의 신뢰도를 떨어뜨려서 서브프라임 CDO 투자 실패를 만회해 보겠다는 의도가 있 다는 식으로 호도하고 있었다.
ID 그룹의 위세 때문에 대놓고 가짜 뉴스를 퍼트리진 못하는 것이 다. 하지만 유재원의 눈에는 약한 모습이 더 나타나면 얼마든지 물어 뜯을 준비가 되어 있는 하이에나처 럼 보였다.
2005년의 마지막 달, 12월이 되 었을 때.
경제 전문 매체의 주요 기사들은 월 스트리트의 수많은 투자 회사들 이 벌이는 천문학적인 성과급 잔치 였다.
수백만 달러의 보너스를 받은 펀 드 매니저 소식은 이젠 기삿거리가 아니었다. 마치 전 세계에서 월 스 트리트만 새로운 도량형을 사용하 는 것처럼, 수백만 달러 정도는 예 사로 나오는 숫자였다.
퀀텀이니, 타이거니 하는 사모 펀드의 수장들이 수천만 달러 단위 성과급을 받았다는 소식 정도가 되 어야 뉴스를 탔다.
이러한 투자 회사 중에서도 최고 의 최고의 돈잔치는 리먼브라더스 였다. 숫자가 밝혀지면 논란이 생 길까 봐 성과급 총액은 아예 비공 개였다.
그렇지만 서브프라임 모기지 관 련 파생 상품을 설계한 에런 폴드 CFO가 1억 달러의 보너스를 받은 것만 보아도 리먼브라더스의 돈잔치는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모두의 부러움을 사는 소식이지 만, 유재원에게는 곱게 보이지 않 았다. 서민들의 쌈짓돈까지 끌어다 모아서 빚잔치를 벌이고 있는 것이 니 말이다.
그렇지만 유재원에게도 좋은 소 식이 없는 건 아니었다.
-MJ, 무죄!
-MJ! 에반 챈들러, 무고죄 고소!
다큐멘터리로 여론에 반전이 일 어났고, 이어서 열린 재판에서 강력한 증거를 통해 궁지에 몰렸던 마이클 잭슨이 180도 뒤집기에 성 공했다.
재판에 제출된 증거들은 검사의 공격 논리를 파괴했고, 진실을 원 하는 배심원단을 완벽하게 만족시 켰다.
그 결과 배심원단 만장일치로 마 이클 잭슨의 아동 성추행은 무죄가 나왔다.
반면 10년이 넘게 마이클 잭슨을 공격한 에반 챈들러는 반대로 무고 죄 고소를 받았다. 덤으로 민사로 거액의 손해 배상 소송도 제기되었다.
아동 성추행 의혹으로 마이클 잭 슨이 입은 피해의 규모는 그야말로 천문학적이었으니 말이다. 덤으로 비슷한 고소를 당한 이들은 수십 명이었다.
자그마한 꼬투리를 잡아 돈을 뜯 어내려고 협박을 했던 사람들도 있 었고, 이러한 사람들과 인터뷰하고서 거짓을 사실처럼 보도한 타블로이드 지도 그 대상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와 함께 매스컴에 대한 비판적 인 여론도 일어났다.
그저 클릭 수 확보를 위해서 무 분별하게 자극적인 기사를 양산했 던 행태에 대한 후폭풍이었다.
-회장님, 히스토리 기능 구현 완 료했습니다. 전면적인 적용에 앞서 베타 버전 뉴스 페이지로 선택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확인하겠습니다!"
때마침 넥스트컴의 헨리 사장이 히스토리 기능의 완성을 보고했다.
컴퓨터에서 바로 웹브라우저를 열어 넥스트컴 뉴스 페이지에 접속 했다.
그러자 뉴스 탭에 베타라는 항목 이 새롭게 생긴 게 바로 보였다. 기존의 뉴스 카테고리 탭은 단색이 었던 반면, 베타 딱지가 붙은 탭은 마치 클릭을 해 보라는 듯 반짝거 리고 있었다.
유재원은 바로 클릭했다.
그러자 약간은 새로워진 구성의 뉴스 페이지가 나타났다. 일단 기 본 폰트에서 가독성이 좋은 폰트로 바뀌었고, 기사의 배치도 달라졌다.
클릭 수에 따라 점점 위로 올라 오는 방식은 동일했지만, 네티즌들이 가장 관심 있어 하는 현재의 이 슈를 제대로 보여주는 기사 역시 상단으로 올려지는 구조다.
더구나 그 일을 사람이 하는 게 아니라, 인공지능 골드와 특수한 알고리즘이 결합되어 자동으로 이 뤄진다는 게 중요했다.
새로운 뉴스 페이지의 전체적인 레이아웃을 살핀 유재원은 본격적 으로 히스토리 기능을 살폈다.
-이제는 MJ의 목소리에 귀를 기 울여야 할 때.
유재원의 손이 절로 간 것은 마이클 잭슨의 무죄 소식을 다루는 기사 중에 가장 클릭 숫자가 높았 던 기사였다.
기사를 쓴 기자의 이름은 찰스 브라운이었는데, 기사에 마우스 커 서를 올리자, 과거 그가 썼던 기사 들이 오른쪽에 촤르륵 나타났다.
-네버랜드의 실상.
딱 걸렸다.
지금은 마이클 잭슨에 우호적인 기사를 쓴 사람이 과거에는 에반 챈들러의 발언을 그대로 가져다 쓴 경력이 있었다.
히스토리 기능의 강점이 무조건 이전의 쓴 기사를 읽어와 보여주는 게 아니라, 동일한 이슈나 키워드 에 대해 썼던 기사들을 종합해 보 여주는 것이었다.
찰스 브라운 기자의 마이클 잭슨 에 대한 온도 차는 극과 극이었으 니, 그야말로 히스토리 기능의 시 범 케이스로 딱이었다.
반면 히스토리 기능을 만들게 된 원인이 되었던 서브프라임 관련 기 사를 쓴 기자들은 꾸준한 일관성을 보이는 중이었다.
-안정적인 주택 시장!
-내년에도 가장 유망한 투자 분 야!
-서브프라임 부실 규모, 우려할 만큼 크지 않다.
부동산 불패 신화를 신봉하는 열 성적인 신도들처럼 문제없다는 식 의 기사들을 쏟아냈다. 히스토리 기능으로 과거에 쓴 서브프라임 관 련 기사를 보더라도 다 이런 식이 었다.
이런 식의 기사를 쏟아냈던 작자 들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지고 나서는 말을 바꿀 거라는 데 유재원은 자신의 전 재산을 걸 수 도 있었다.
그렇지만 전과 달리 히스토리 기 능이 있으니, 과거에 그들이 어떤 식으로 기사를 써냈는지 네티즌을 비롯한 기사의 소비자들은 아주 간 편하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이클 잭슨의 일도 그렇고, 서 브프라임으로도 크게 데인 사람들 은 더는 기성 언론을 신뢰하지 않 게 될 거라고 확신할 수 있다.
다만 기성 미디어가 잃어버린 신뢰성을 날름 주워갈 대안이 아직 나오지 않았다는 건 아쉬웠다.
"그건 아쉽네."
미디어의 발전 단계를 두 눈으로 직접 확인했던 유재원이다. 종이 신문과 대형 방송 뉴스가 사라지고 난 자리에 무엇들이 들어서는지 누 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안다는 것과 직접 대책을 세우는 건 다른 차원의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신뢰도가 추락한 매스컴의 빈자리를 채웠던 것은 거 대 매스컴에 비견될 만큼 탄탄한 신뢰도를 가진 '개인'들이었기 때문 이다.
SNS 와 유튜브 등등.
다양한 온라인 플랫폼의 규모가 커지고 나서부터 인플루언서라는 타이틀을 단 이들이 등장했다. 초 창기에는 이들도 여러 가지 문제들 을 동반했지만, 그 혼란 속에서 네 티즌의 신뢰를 얻어낸 개인들은 기 성 언론사를 압도할 만큼 영향력을 행사했다.
유재원이 아무리 돈과 노하우가 풍부하다더라도 인위적으로 탄탄한 신뢰를 쌓은 인플루언서들을 양산 할 수는 없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 면 되는 거지."
대신 유재원은 본인이 할 수 있 는 최선의 방법으로 곧 다가올 거 대한 위기에 대응하는 중이었다.
그중에서 제일 기대를 거는 것은 캐스팅까지도 일사천리로 끝내고, 촬영에 들어간 애덤 맥케이 감독의 신작이었다.
유재원의 개인 투자로만 제작되 는 영화였기에 일정에 따라 꼬박꼬박 중간 보고서가 날아왔다.
신작 촬영을 위해 제작비는 물론 이고, 맨해튼의 ID 인베스트먼트 빌딩, 샌프란시스코 저택 등등 장 소 제공까지도 열심히 지원했다.
그에 부응해서 애덤 맥케이 감독 도 순조롭게 촬영에 들어가 빠르면 내년 여름에 전격 개봉이 가능하다 고 했다.
-이번에 나온 포스터 시안입니다.
오늘 날아온 건 포스터였다.
"아, 제목이……
백발인 빈센트 그린힐을 비롯해 여러 사람들이 나오는 포스터의 구 도는 유재원의 기억과 비슷했다. 단 하나 달라진 게 있다면 제목이 었다.
월 스트리트의 외로운 늑대.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위험성을 감지하고 하락에 배팅한 빈센트 그 린힐을 묘사하는 데 이보다 적합한 것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407. 세기의 단두대 매치
2006년의 시작도 예전과 같은 성대한 새해맞이 행사로 준비되었 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규모와 화 려함이 역대 최대였다는 점이었다.
대표적인 새해맞이 행사인 뉴욕 타임스퀘어에서도 볼드롭 행사가 있었다. 2006년 0시 0분에 맞춰 타 임스퀘어의 명물인 삼각형 형태의 빌딩 옥상에 설치된 대형 미러볼이 바닥을 찍으면서 새해를 축하했다.
이번에 모인 인파는 역대 최대로 200만에 가까운 이들이 모였다고 했다. 중계방송 카메라가 어디를 찍어도 사람들이 화면에 가득했다.
특히 요즘 방송들은 모두 FHD 시스템으로 전환되어 16 : 9라는 한 층 넓어진 비율을 자랑하는데도 모 두 사람이었다.
또 하나의 특징은 그렇게 모인 이들 모두가 파란색의 모자를 쓰고 있었다는 점이다. 타임스퀘어 볼드 롭 행사에 초대형 후원이 붙었는데, 니베아라는 스킨로션과 바디케어상품을 출시하는 회사였다.
니베아 측에서는 타임스퀘어 볼 드롭 행사에 참여한 이들 모두에게 공통의 패키지를 나누어 주었다.
거기엔 니베아의 상징색인 파란 색의 모자와 주력 상품인 립글로스 에 부여된 하늘색과 같은 풍선, 그 리고 약간의 샘플이 들어 있었는데 대단히 성공적이었다.
텔레비전으로 보았을 때, 타임스 퀘어는 파란색과 하늘색으로 완전 히 덮여 있었으니 말이다. 타임스 퀘어의 끝에서 끝까지 파란 물결이었다.
이는 곧 니베아라는 화장품 회사 가 거의 200만에 달하는 숫자를 커 버할 만큼 엄청난 숫자의 사은품을 미리 준비하고 있었고, 이게 감당 이 되었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타임스퀘어 볼드롭 행사에 초청 된 가수들의 면면도 대단히 화려했 다.
그중에서도 화룡점정은 완벽하게 부활한 MJ였다. 마이클 잭슨은 데 뷔 때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데인저러스 앨범으로 팝의 제왕이 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만큼 마이클 잭슨을 그리워하 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를 둘러 싼 지저분한 스캔들이 대중과의 만 남에 크나큰 제약을 걸고 있었다.
그것이 유재원의 서포터로 완벽 하게 해소되자 그동안 밀렸던 섭외 가 쏟아졌다.
마이클 잭슨 역시 팬들과의 만남 을 그리워하고 있었기에, 미리 건 강을 회복하고 있었고 기꺼이 응할 수 있었다.
때마침 타임스퀘어 볼드롭 행사 의 규모가 니베아라는 서포터의 참 여로 거대화되면서 타이밍까지 딱 맞아떨어졌다.
회귀로 압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