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권 20화
"감독님이 결심만 하신다면, 전 폭적으로 지원해 드리겠습니다. 서 브프라임 관련한 고급 정보도 제공 해 드리고, 필요하다면 이 저택을 포함해서 ID 그룹의 여러 시설을 영화 세트장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해 드릴게요."
이어진 유재원의 말에 애덤 맥케 이 감독이 할 수 있는 말은 하나였 다.
"하겠습니다! 제가 기필코 작품 하나 만들어 보겠습니다!"
이번 일은 무조건 해야겠다는 생각에 일말의 고민도 없이 손이 번 쩍 들렸다.
애덤 맥케이 감독의 적극적인 반 응에 유재원도 속으로 안도하면서 그가 내민 손을 잡았다.
이것으로 회귀 전의 빅쇼트라는 영화는 예정보다 훨씬 일찍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그만큼 많은 게 바뀌겠지만, 영 화가 가져다주는 충격은 회귀 전보 다 훨씬 클 것임은 자명했다.
할리우드는 소문이 빠르게 도는 동네다.
애덤 맥케이 감독이 '월 스트리 트의 모럴 해저드를 다루는 영화를 만든다'는 소문은 곧장 주변 사람 들에게 퍼졌고, 짧은 뉴스로 뜨기 도 했다.
그렇지만 이를 민감하게 받아들 이는 사람은 없었다.
애덤 맥케이가 마틴 스코세이지나 스티븐 스필버그처럼 이름난 감 독도 아니었다. 첫 작품인 앵커맨 이 잘 되긴 했지만, 그래 봐야 코 미디 영화였고, 그전에는 SNL이란 쇼 프로의 작가라는 이력이 유재원 의 행보를 유심히 지켜보는 이들의 경계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요소는 아니었다.
다만 유재원이 풋 옵션 투자가 실패할 것이 유력해지자,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위기 론을 퍼트린다는 식으로 비웃었다.
그중에 최악은 얼마 전 리먼브라더스, AIG, 시티그룹을 통해 투자 한 30억 달러 규모의 풋 옵션에 대 한 음해였다.
ID 인베스트먼트의 30억 달러의 풋 옵션 매입은 특별한 계약이 깔 려 있었다. 규모가 규모이다 보니 여러 가지 조건이 추가된 것이다.
대표적인 것을 꼽아보자면 독점 과 지급 보증이었다.
독점이라는 건 해당 풋 옵션 상 품은 오직 ID 인베스트먼트에게만 팔아야 한다는 것이다.
풋 옵션의 설계를 ID 인베스트먼트에서 했기에 주장할 수 있었고, 리먼브라더스나 AIG, 시티그룹은 스스로 실현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 했기에 발행해 주었다.
그렇기에 ID 인베스트먼트가 매 입한 풋 옵션은 거래가 이뤄진 그 날 딱 한 번 호가가 생성되었다.
중간에 ID 인베스트먼트에서 풋 옵션의 일부를 매도했다면 호가가 변하면서 평가 금액도 달라질 텐데, 그런 일은 없었다.
그저 만기 시점에 풋 옵션 권리 를 행사하느냐 못하느냐의 결과만 있을 뿐이다.
그런데 월 스트리트와 기민하게 연결된 경제 잡지에서는 최근 금리 인하의 여파로 MBS(서브프라임 모 기지 채권)이나 CDO의 수익률이 올랐고, 반대로 이와 연계된 풋 옵 션의 상품들이 하락한 것을 가지고 ID 인베스트먼트가 입은 손해를 어 림잡아 계산해서 발표했다.
-ID 인베스트먼트가 투자한 풋 옵션의 예상 손실금 5억 달러 이 상!
CDO의 수익률이 0.75% 상승했
는데, 그로 인한 풋 옵션의 가치 하락은 레버리지 효과로 인해 몇 배로 부풀려진 것이다.
"실컷 비웃으라고 하죠. 만기 때 누가 웃을 수 있는지 보자고요."
-물론입니다.
파생 상품은 결국 만기 시점에 결판이 나는 것이다.
그렇기에 독점 다음으로 받아 놓 은 특약이 지급 보증이었다. 만약 만기 때, 사정이 어려워져서 수익 금을 정산해 주지 못하는 경우 리 먼브라더스의 최우선 채권자가 되어 현물 자산이라도 가져갈 수 있 도록 했다.
보증 액수의 상한은 없다. 만에 하나 풋 옵션 대박이 터질 경우 그 규모가 얼마가 될지는 아무도 모르 기 때문이다.
그만큼 리먼브라더스에서는 실현 가능성이 0%라고 보고 기꺼이 계 약서에 사인을 해 줬다.
월 스트리트의 동정을 전했던 빈 센트 사장은 유재원의 말에 100% 공감했다.
냄비 속 개구리가 점점 물 온도가 오르는 줄 모르고 있다 익어 죽 는 것처럼, 월 스트리트의 사람들 은 서브프라임 관련 파생 상품으로 벌어들이는 천문학적인 이윤에 취 해서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비단 월 스트리트의 투자 회사들 만 그런 게 아니라, 경제는 탄탄하 다면서 적극적으로 집이나 주식에 투자를 해야 한다고 하는 언론들도 문제였다.
마치 IMF 직전 한국 경제는 탄 탄하다면서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했던 국내의 보수 신문들을 미국에 서 보는 것 같은 기시감이 들 정도 였다.
"게다가 우리 미디어 그룹도 적 극 대응하기로 했으니, 여론전은 이제 시작입니다."
여론전 하면 유재원이 밀릴 이유 가 없다.
타임워너 넥스트컴이라는 거대 미디어 그룹의 반이 유재원의 소유 였고, NBC는 경영권까지 행사할 수 있는 회사였다.
NBC에는 경제만 전문으로 다루
는 CNBC라는 서브 채널이 있는 데, 유료 방송임에도 가입자 숫자 가 수백만이다.
유재원은 이러한 미디어 그룹의 힘을 100% 활용해서 전열을 세운 월 스트리트에 정면으로 맞서기로 마음을 먹었다.
다만 오너인 유재원의 결정 하나 로 미디어 그룹 산하의 채널들과 신문이 일사불란하게 논조를 바꾸 는 건 불가능하다.
한국에서는 사주가 목소리를 크 게 내면 데스크가 알아서 기면서 일선의 기자들을 닦달해 일사불란 하게 움직이겠지만, 여긴 미국이었 다.
그렇기에 유재원이 선택한 것은 팩트로 후려치는 것이었다.
일단 서브프라임 모기지론과 파 생 상품이 얼마나 위험한 단계에 왔는지, 파국이 일어날 경우 얼마 나 심한 후폭풍이 일어나는지, 수 십 종의 리포트와 교수들의 연구 자료 등을 동원해 자사 미디어 그 룹의 임원과 기자들을 먼저 깨닫게 했다.
해당 자료를 보고서 대번에 생각 이 바뀐 사람도 많았고, 그렇게까 지 생각이 확 변하진 않았지만 의 구심을 갖게 된 기자들도 상당수였 다.
그에 따라 ID 미디어 그룹에 속 한 매체들의 논조도 바뀌기 시작했 다.
대다수 업체가 처음부터 매우 보 수적인지라 MBS니 CDO니 하는 것에 대한 투자를 적극 권하지도 않았지만, 이날 이후부터는 부정적 인 보도량이 많아졌다.
물론, 유재원이 공개한 자료를 보고 서브프라임 투자 시장의 하락 에 배팅하는 발 빠른 이들도 있었 다.
하지만 그 숫자는 매우 적었다. 아무리 하락이 확실해 보여도 원금 보장도 안 되는 상품에 돈을 걸 사 람은 얼마 없었던 탓이다.
"그러면 이제 황색 저널리즘을 손봐야겠다."
ID 미디어 그룹의 전열을 정비한 유재원은 다음 행보를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일반 매스컴이었다.
2005년의 추수감사절이 딱 일주 일 남았을 때.
ID 그룹의 초대형 스트리밍 서비 스인 타임플렉스에 오지리널 콘텐 츠 하나가 올라왔다.
KING OF POP or KING of Scandal이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2 시간 분량의 다큐멘터리였다. 제목 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팝의 제왕마이클 잭슨과 그를 지긋지긋하게 따라다니는 아동 성추행 의혹을 다 룬 영상이었다.
타임워너 넥스트컴, ID 그룹의 비밀스러운 정보팀의 전폭적인 지 원 아래 지금까지 해당 사안을 다 뤘던 여러 매체의 기사, 영상과는 완전히 다른 논조를 담고 있는 다 큐멘터리 였다.
과거의 영상들에선 스캔들이 진 짜인지 가짜인지 판별하는 데에만 골몰했다면, 이번 작품은 조회 수 확보에만 골몰하는 매스컴들이 작당을 하면 세계 최고의 스타를 순 식간에 지옥으로 떨어뜨릴 수 있다 는 것을, 그리고 그런 가짜 뉴스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유통되는지를 다루었다.
당연하게도 영상이 공개되자마자 그 파장은 즉각적이었다.
꾸준한 확장 정책으로 이제는 거 의 1천만에 가까운 유료 구독자를 모은 타임플렉스였다. 영상이 공개 된 시간도 타임플렉스에 사람들이 제일 많이 접속하는 금요일 저녁 10시였으니, 너도나도 영상을 보기 시작했다.
후폭풍이 크게 일어나는 건 당연 했다.
그러는 사이 할리우드로 돌아가 쉴 틈 없이 영화 제작 준비를 열심 히 하였던 애덤 맥케이 감독의 신 작 크랭크인 소식은 마이클 잭슨이 라는 태풍에 의해 삽시간에 묻혀 버렸다.
-당신이 잡지나 TV 화면에서 봤 다고 팩트인 것은 아니에요.
다큐멘터리는 마이클 잭슨의 정 규 8집 앨범 히스토리에 수록된 타 블로이드 정키의 가사의 한 부분을 인용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마이클 잭슨은 언론과의 관계가 매우 매우 좋지 않았다.
특히 영국의 황색 잡지 더 선과 의 관계가 최악이었는데, 언제나 자극적인 기사를 내는 더 선에게 마이클 잭슨은 훌륭한 재료였다.
가장 먼저 더 선에서 악성 루머를 퍼트리면 다른 황색 잡지와 신 문들이 뒤를 따르는 식이었다.
미국의 경우엔 유재원도 몇 번 공격을 받았던 폭스 뉴스가 이 분 야의 선봉에 서고 있었다.
마이클 잭슨이 무슨 일만 하면 악의를 곁들여 기사를 썼고, 사람 들은 좋든 싫든 그런 기사를 보면 서 마이클 잭슨에 대한 인식이 나 빠졌다.
특히 타블로이드 방식이 최악이 었는데, 마이클 잭슨과 접촉한 사 람들에게 돈을 줄 테니 인터뷰를 하라고 권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이 다. 그러면 그 사람들은 타블로이 드가 원하는 마이클 잭슨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떠든다.
그리고 인터뷰어들이 주장하는 내용을 훨씬 자극적으로 편집해서 신문에 기사화하는 것이 아주 기본 적인 루틴이었다.
교차 검증은 없었다. 애초에 진 실 여부는 중요하지도 않았다. 단 지 마이클 잭슨을 만난 이들의 말 이 자극적일수록 보는 사람들이 많 아지면서 매출이 늘어난다는 게 중요했다.
마이클 잭슨의 첫 번째 아동 성 추행 혐의의 피의자인 조단 챈들러 의 경우에도 그랬다. 마이클 잭슨 이 아동에 대한 호의로 조단 챈들 러라는 13살 남자아이와 전화 통화 를 해 주었고, 그 인연으로 조단네 가족을 네버랜드로 초대해 파티를 열어주기도 했다.
그런데 갑자기 조단의 아버지인 에반 챈들러가 아동 성추행 혐의로 고소를 했고, 마이클 잭슨 역시 무 고의 혐의로 맞고소를 하면서 지루한 법정 소송이 시작되었다.
당연하게도 이러한 흐름은 황색 언론의 최선봉 타블로이드에겐 최 고의 기회였다.
에반 챈들러와의 인터뷰도 여러 차례 기사화했고, 기사화가 될 때 마다 그 내용은 한층 자극적이었다.
어차피 이들에겐 사실보다는 마 이클 잭슨을 마음껏 물어뜯을 수 있는 상황 그 자체가 좋았으니 말 이다.
뒷감당은 걱정이 되지 않을까?
언론의 자유가 있는 미국이지 않 은가. 수정 헌법에 의해 무슨 말이 든 얼마든지 지껄일 수 있는 게 미 국의 보편적인 인식이었다.
본인들에게 부여된 자유가 타인 의 기본 권리를 침해하면 안 된다 는 원칙 같은 건 없었다. 더욱이 마이클 잭슨을 물어뜯었던 이유인 아동 성추행 의혹은 사실이 아니었 다.
다큐멘터리의 후반부로 가자 아 동 성추행으로 고소를 했던 에반 챈들러의 이야기가 나왔다.
그리고 마이클 잭슨의 무고를 증 명하는 결정적인 증거 일부가 살짝 공개되기도 했다. 에반 챈들러가 마이클 잭슨을 협박하면서 목소리 를 높이다가 저도 모르게 진실을 말하는 내용이었다.
결정적으로 다큐멘터리에는 ID 그룹의 정보팀이 조사해 수집된 진 짜 증거들의 편린 역시 등장했다.
온전히 보여주지 않는 이유는 마 이클 잭슨의 재판은 2005년인 지금 까지도 진행 중이었기 때문이다.
재판에 제출해 에반 챈들러의 논리를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반격의 여지가 없어야 했다.
마지막으로 다큐멘터리는 황색 타블로이드가 일으킨 불량한 여론 에 휩쓸린 미국 검찰의 모습도 담 았다.
제대로 조사를 해야 할 검찰은 여론이 무서워서 마이클 잭슨을 처 음부터 범죄자로 인식하고서 수사 에 임했다.
KING OF POP이라는 타이틀이 결코 허언처럼 들리지 않을 세계적 팝스타, 마이클 잭슨에게도 이런식인데, 과연 다른 언론들은 제대 로 된 정보를 전달하고 있을까? 우 리가 열광하는 것들이 과연 사실일 까?
다큐멘터리의 마지막은 시청자들 에게 의문을 던지면서 끝났다.
고요했던 호수에 집채만 한 바위 가 떨어진 것처럼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회귀로 압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