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권 17화
"모터 시티 (Motor City) 디트로 이트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유재원 회장님과 라이트닝 볼트사는 이번 선택에 절대 후회하실 일은 없을 겁니다."
디트로이트의 하늘 관문 윈저 국 제공항에 안전하게 착륙한 전용기 에서 내리는 유재원을 미리 기다리 고 있었던 콰메 킬패트릭 시장이 격한 환영의 인사를 했다.
"아아, 환대 감사합니다. 콰메 시 장님."
유재원은 솥뚜껑처럼 커다란 콰메 시장의 손과 악수하며 환대에 감사했다.
그러면서 유재원은 속으로 살짝 놀랐다. 콰메 시장의 모습 때문이 다.
사진으로 먼저 보긴 했는데, 실 물이 주는 느낌은 또 달랐다.
디트로이트의 시장이라고 먼저 소개를 받지 않았더라면 갱단의 두 목이라 착각할 만큼 위압적인 모습 이었다. 정확하게는 갱단 두목도 하면서 힙합도 할 것 같은 그런 모 습이다.
더욱이 흑인 시장이라는 타이틀 은 디트로이트에서는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역대 디트로이트의 시장들은 거 의 대부분 흑인이었다. 그만큼 유 색 인종의 힘이 강한 도시가 디트 로이트였다는 말이기도 했다.
실제로 모타운이라는 혹인 음악 전문 레이블은 디트로이트에서 그 역사를 시작했다.
모타운이 배출한 최고의 스타는 마이클 잭슨이었다. 지금은 여러 가지 오해와 루머로 곤경에 처한 상태였는데, 1993년의 조단 챈들러 사건과 2003년 아르비조 사건이라 는 두 건의 아동성추행 논란으로 인해서 크게 위축된 상황이었다.
논란도 논란인데 언론들의 무차 별적인 기사 폭격이 마이클 잭슨을 더욱 괴롭게 했다.
써서 올리기만 하면 클릭 수가 보장되다 보니, 유언비어는 물론이 고 가짜 뉴스마저 가리지 않고 마 구잡이로 양산하고 있었으니 말이 다.
그나마 넥스트컴의 경우 일명 우라까이 기사라고 하는 먼저 나온 보도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베 껴 쓰는 기사는 필터링을 통해 넥 스트컴 뉴스 페이지에 올리진 않는 다.
하지만 야후나 마이웨이 같은 후 발 포털 사이트들은 그런 거 없이 그저 언론사가 공급하는 그대로 사 이트에 올렸다.
네티즌들도 지금은 언론이 올리 는 그 기사를 그대로 믿어 버리는 경우가 많아서 온라인 커뮤니티에 서 마이클 잭슨의 입지는 크게 줄어든 상태였다.
'올해 추수감사절 시즌쯤에 폭탄 을 터트려야지.'
마이클 잭슨이 이대로 불명예를 안고 가는 건 절대 못 보는 유재원 이다.
회귀 전에는 그저 멀리서나마 동 경하는 팝의 제왕이었다면, 지금은 거기에 넥스트 뮤직의 주요 파트너 라는 이해관계도 생겨난 상태였으 니 말이다.
디지털 음원 시장이 처음 태동했 을 때, 일부 가수들은 무척이나 신경질적인 반응이 많았다.
디지털 음원이 많이 팔리면서 CD나 테이프가 팔리지 않게 되었 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마이클 잭슨은 디지털 음원에도 호의적이었다. 덕분에 넥 스트 뮤직과의 음원 공급 계약도 무리한 요구 없이 수월하게 체결할 수 있었다.
참고로 넥스트 뮤직이 제일 손해 를 보면서 음원 공급 계약을 체결 한 아티스트는 바로 비틀즈였다. 비틀즈의 음악 판권은 대부분 EMI가 가지고 있었는데, 시대를 따라 가지 못해 다 쓰러져 가는 EMI를 먹여 살리는 거의 유일한 가수가 비틀즈였던 탓이다.
그렇기에 EMI는 본인들의 밥줄 을 독점으로 두고 싶었지만, 스마 트폰의 대중화로 음악 감상 방법이 CD 플레이어에서 스트리밍으로 급 격히 바뀌었다.
일부러 스트리밍 시장 진출을 늦 췄던 EMI의 경영난이 더욱 심해졌 고, 결국 항복하고 말았다.
EMI는 대략 5천만 달러의 계약
금으로 비틀즈의 음원은 물론 독점 판권을 가진 노래들을 넥스트 뮤직 에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제법 지출이 컸지만, 비틀즈의 음원을 넥스트 뮤직 독점으로 서비 스한다는 것은 의미가 컸다.
아이튠즈를 필두로 타도 넥스트 뮤직을 외치며 무섭게 따라붙은 후 발 주자들에게 확실한 승리 선언을 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비틀즈는 아직도 20대부터 60대 이상의 노년층까지 광범위한 팬층 을 거느리고 있었다.
특히 5, 60대 실버 세대는 스마 트폰이나 스트리밍 서비스에 취약 했다. 그런데 이제 비틀즈를 감상 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 넥스트 뮤 직이 되었으니 신규 유입이 크게 늘어났다.
"오시는 데 불편함은 없었습니 까'?"
콰메 킬패트릭 시장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악수를 하다가 모타운, 마이클 잭슨과 가짜 뉴스에 이어 비틀즈까 지 샛길로 빠진 유재원이었다.
다행히 유재원의 머릿속에서 생 각이 도는 속도는 빛과 같이 빨라 서 얼굴이 굳었던 실제 시간은 짧 았다.
그럼에도 콰메 킬패트릭 시장은 그 짧은 시간 얼굴이 굳는 것에 마 음이 덜컥할 만큼 민감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지금 디트 로이트에 투자를 하겠다고 찾아오는 기업은 전무한 상황이었다.
단번에 수천 개의 고급 일자리가 생기는 라이트닝 볼트는 그야말로 너무나 귀한 마중물과 같은 것이었 다.
더욱이 라이트닝 볼트의 인기는 이제 시작이었을 뿐이다.
지금은 몇십만 대의 주문에 불과 하지만, 내연기관 자동차와의 경쟁 에서 완전히 승리한다면 연간 수천 만 대로의 양산도 꿈꿔 볼 수 있 다.
그러면 다 죽어가는 디트로이트는 화려하게 부활하는 것이다.
그러한 영광이 고스란히 본인의 업적으로 이어지는 콰메 킬패트릭 시장이다.
그렇게만 되면 모든 정치인의 꿈 이라 할 수 있는 세계 정치의 심장 부 워싱턴 DC로 진출하는 것도 망 상이 아니다.
"아닙니다."
반면 유재원은 잔뜩 상기된 콰메 킬패트릭 시장에게는 조금 거리를 두었다.
딱 봐도 김칫국을 사발째 마시는 것이 훤히 보이는 콰메 킬패트릭 시장이지만, 유재원은 그에게 중대 한 문제가 있다는 걸 진작에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굳이 기억의 궁전 속에 들어가 콰메 킬패트릭이란 이름으로 인명 사전을 검색해 볼 필요도 없었다.
ID 그룹의 우수한 정보팀은 콰메 시장이 그의 아름다운 비서와 심각 한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는 걸 파 악해서 보고서로 올렸다.
미국이라면 사회 모든 분야가 자유분방할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았다.
정치인에게 불륜은 치명적인 결 점이었다.
게다가 불륜도 불륜인데, 콰메 시장은 불륜을 감추기 위해 극단적 인 수단을 썼다.
불륜을 저지르려면 보안이라도 확실히 했어야 했는데, 그런 조심 성은 하나도 없었다.
불과 같은 애정 행각을 벌이다가 기자에게 꼬리를 밟혔는데, 기자에 게 뇌물을 써서 기사화되는 걸 막고 있는 상황이라는 보고였다.
심지어 기자에게 먹인 뇌물은 본 인의 돈이 아니라 시의 재정이었다. 그것도 한두 푼이 아니고 거의 100 만 달러에 이르는 큰돈이었다.
가뜩이나 도시 슬림화로 세수도 얼마 없는 디트로이트였는데, 시의 재정에서 돈을 빼돌려 본인의 불륜 기사가 터지는 걸 막는 데 썼으니 유재원의 눈에 곱게 보일 리 만무 하다.
이러한 이유로 회귀 전 콰메 시 장은 본래의 임기를 끝까지 다 치르지도 못하고, 중간에 탄핵을 당 해 낙마했다.
"음! 일단 행사장으로 모시겠습 니다!"
콰메 킬패트릭 시장은 유재원으 로부터 생각처럼 호의적인 반응이 잘 나오지 않자 내심 당황했지만, 정치인답게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 았다.
오히려 더욱 과장된 모습을 취하 면서 유재원 일행을 준비한 행사장 으로 이끌었다.
"디트로이트의 남부 페어플레이 지역에 라이트닝 볼트 생산 기지가 들어설 것입니다. 지금은 허허벌판 이지만, 내년 여름이면 연간 100만 대 생산이 가능한 최첨단의 자동차 공장이 자리해 있을 것이고, 디트 로이트의 숙련된 엔지니어들이 만 든 최첨단의 자율주행 전기자동차 들이 쏟아져 나와 기꺼이 기다려 주신 구매자를 찾아갈 것입니다."
라이트닝 볼트사의 볼트 사장이 준비된 행사장 중앙에 마련된 연단 에 올라가 목소리를 높이는 중이었 다.
유재원과 그 수행원들은 콰메 시 장과 함께 움직였지만, 그리 많이 이동할 필요도 없었다.
윈저 국제공항 남쪽이 바로 라이 트닝 볼트의 생산 공장 부지였기 때문이다.
거주 구역 대부분이 슬림화되어 빈 땅이나 다름이 없지만, 그래도 라이트닝 볼트사는 완전히 공터인 페어플레이 지역을 공장 부지로 선택했다.
슬림화된 구역이라도 사람이 완 전히 떠난 것은 아니었고, 빈집에 는 부랑자들이나 갱들이 심심치 않 게 출몰했다.
공권력이 완전히 붕괴되어서 마 약 거래하기 딱 좋은 곳이었다.
그런 지역에 공장을 차리는 것보 다는 아예 빈 땅에 세우는 게 낫겠 다는 판단이었다.
더욱이 해당 지역은 디트로이트 시의 소유인지라, 라이트닝 볼트사 의 편의를 봐주어서 100년간 무상임대하는 형식으로 토지를 빌려주 기로 했다.
볼트 사장은 ID 그룹의 일원답게 초대형 스크린을 준비했고, 레이저 프로젝터를 이용해 청사진을 직접 보여주며 라이트닝 볼트 공장 건설 계획을 설명했다.
공장은 크게 3개동이었다.
슈퍼패스트, 불칸, 뉴로 이렇게 3 개의 모델별로 공장을 아예 별도로 분리한 것이다.
군산 공장 역시 모델별로 공장을 별도로 짓기로 했는데, 거긴 4개동이었다. 15인승 미니버스 모델을 위한 공장이 하나 더 추가되는 것 이다.
크기로 보면 슈퍼패스트 생산 라 인이 제일 작았고, 뉴로 생산 라인 이 제일 컸다.
실제 주문량도 뉴로가 제일 많았 고, 슈퍼패스트가 제일 적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발표 후 예약이 완료되고 계약금 도 제대로 입금된 숫자는 6천 대를 겨우 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매출액 기준으로는 결코작지 않았다.
슈퍼패스트는 한국 돈으로 1억이 넘는 전기자동차였으니 말이다. 6 천 대 예약이라면 벌써 6천억 원의 매출은 확정적이라는 이야기였다.
물론 라이트닝 볼트사의 킬러 아 이템은 준중형 세단인 뉴로였지만, 마진율을 따지면 슈퍼패스트가 압 도적이다.
SUV 모델인 불칸도 뉴로보다는 남는 게 많았다. 반면 뉴로는 마진 율이 5%도 되지 않는다.
2만5천 달러라는 가격을 맞추기 위해서 그야말로 설계부터 쥐어짜 만든 물건이 뉴로였다. 생산 역시 낭비되는 것 하나 없는 완벽한 최 적화가 요구되었다.
그렇기에 볼트 사장은 모델별로 공장을 완벽히 분리하겠다는 선택 을 한 것이다.
이는 최근 자동차 산업의 트렌드 와는 거리가 멀었다. 아니, 완전히 반대되는 선택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디트로이트 강 건너편에 있는 GM을 보면 플랫폼 공유를 통해 하나의 공장에서 여러종류의 차를 생산하는 중이었다.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었다.
유럽과 일본에 이어 한국산 자동 차까지도 북미 시장에서 맹위를 떨 치면서, GM과 포드 등의 미국 전 통 브랜드의 경쟁력은 크게 약화되 었다.
생산비와 연구개발비 등의 비용 을 아끼기 위한 방편이 바로 플랫 폼 공유였다.
반면 라이트닝 볼트의 전기자동 차들의 경우 이제 막 자동차 산업 에 뛰어든 만큼 완성도가 가장 중요했다.
공장에서 막 출시된 초도 물량에 서 문제가 터지면, 이는 곧장 전기 자동차 전체에 대한 인식에 부정적 인 영향을 끼친다.
디트로이트를 선택한 이유도 숙 련 노동자를 쉽게 구하기 위함인데, 모델별로 공장까지 아예 분리해서 그 숙련도를 최대치까지 끌어올리 도록 했다.
"세계 최고의 전기자동차 하면 라이트닝 볼트가 바로 떠오르도록 할 것입니다."
회귀로 압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