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권 8화
해결책은 있다.
바로 ID 그룹의 계열사 몇몇을 상장하는 것이었다. 거대한 자금이 들어올 수 있는 구석을 마련해 준 다면, 부동산에 돈이 몰려 거품이 끼는 것을 최대한 억제할 수 있다 는 판단이었다.
한국에 상장을 염두한 회사로는 ID 일렉트로닉스, 디스플레이가 있 었다.
둘 다 IT 분야에서 한몫을 톡톡 히 하고 있는 초대형 우량 기업이 었다. 일렉트로닉스는 가전제품은 물론이고 메모리 반도체와 비메모 리 반도체에서 세계 시장의 반 이 상을 점유하고 있는 매머드급 기업 이었다.
상장만 하면 한국의 유동 자금은 물론이고, 전 세계에서 돈을 싸들 고 와 지분을 사겠다고 하는 사람 들이 널렸다.
ID 디스플레이 역시나 마찬가지 다.
평면 TV의 표준은 보르도 TV였 고, 컴퓨터와 스마트폰용 모니터 패널에서도 최상급 품질을 자랑하는 제품은 ID 디스플레이였다.
중국의 업체들이 맹렬한 추격을 위해 애를 쓰고 있지만, 설비 투자 가 조 단위로 이뤄지는 세계이다 보니 따라오려면 멀었다.
"기가스터디도 있지."
덤으로 인터넷 강의의 절대 강자 인 기가스터디 역시 탁월한 실적을 자랑하는 기업이었다.
시작은 수능 100일 대비 강의로 단출했지만, 지금은 수능은 물론이 고 중학생이나 공무원 준비생, 국 가자격증 등등을 위한 강의까지 다양한 커리큘럼을 자랑했다. 외국어 강의도 빼놓을 수 없다.
한국에서만 수백만 명에 달하는 유료 사용자를 확보한 기가스터디 는 해외 진출도 활발했다. 해당 나 라에 직접 진출해서 인터넷 강의 서비스를 하는 경우도 있고, 강의 플랫폼을 수출하는 경우도 있었다.
90년대부터 인터넷을 적극 활용 해 인터렉티브한 강의를 시작했던 기가스터디는 스마트폰 시대에 발 맞춰 모바일 플랫폼까지도 보유했 다. 더욱이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기가스터디의 강사들, 학생들과 피 드백을 주고받으면서 문제점을 보 완하고 새로운 기능을 추가해 세계 최고의 인터넷 강의 플랫폼을 완성 했다.
덕분에 한국의 애널리스트 사이 에서는 상장만 하면 시가총액 1조 원은 무난히 달성할 거라는 예측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러한 ID 그룹 계열사들을 한국 증권시장에 상장하면, 시중에 정처 없이 떠돌고 있던 유동성 자금을 단번에 흡수해 버릴 것이다. 그러면 부동산 상승의 모멘트도 단번에 사라지게 된다.
기업공개를 불편하게 여기면서도 기꺼이 감수할 만큼 유재원은 부동 산 거품을 경계하고 있었다.
이유는 명확했다.
부가가치 생산이 전무한 부동산 에 막대한 자금이 묶여 있게 된다 면, 일명 건물주라 불리는 극소수 의 선택받은 사람들 말고는 모두가 불행해지기 때문이다.
한 달 빠듯하게 일해서 번 돈의 반 이상을 대출금 상환이니 월세니하는 것으로 쓰는 건 너무 불합리 한 일이었다.
마찬가지로 수십 년을 일해도 내 집 마련을 할 수 없다는 건, 사회 전체에도 불행한 일이었다. 반대로 막대한 유동 자금이 기술 발전을 위해 쓰인다면 이것처럼 좋은 일은 없다.
물론 기술에 대한 투자가 마냥 좋은 건 아니다.
IT 버블과 같은 거품이 터질 때 일어나는 후폭풍은 너무도 거대했 다. 게다가 투자자를 등쳐먹으려는 사기꾼들도 무척이나 많았다.
90년대 말에는 테크니 네트워크 니 하는 단어가 들어간 회사들에 묻지 마 투자가 이어졌다면, 지금 은 황우석의 줄기세포로 인해 바이 오 벤처 회사에 뭉칫돈이 몰리는 중이다.
오죽하면 큰아버지를 비롯한 친 척들이 바이오 벤처 회사들의 리스 트를 전해주며 투자해도 괜찮겠느 냐고 물어봤을 정도다. 당연히 리 스트에 있던 회사들은 듣도 보도 못한 회사들이었기에 절대 반대 의견으로 답변했다.
그렇지만 이러한 투자라도 땅에 돈을 파묻는 것보다는 몇 배나 더 나았다.
"칫, 그런데 토륨 원자로는 어째 서 간만 보고 있는 거야."
한국 뉴스를 보던 유재원은 본인 의 비즈니스로 급발진했다.
유재원은 회사 전산망에서 토륨 원자로 관련 문서를 찾아 띄웠다. '토륨 원자로 구매 협상 현황'이라 는 문서였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이탈리아, 캐나다, 러시아.
일명 G8이라는 세계 선진국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협상 중이었다. 여기에 +a로 중국, 한국, 브라질, 인도와 같은 에너지 수급이 급한 나라들도 있다. 북한 역시 빠지지 않았다.
그야말로 쟁쟁한 국가들이고 당 장에라도 계약하는 게 이상하지 않 을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아직 한 건의 계약도 이뤄지지 못한 상황이 었다.
"헤이, 골드. 왜 토륨 원자로가 안 팔리지? 아니면 내가 마음이 급 한 건가?"
-어려운 질문입니다. 고급 연산 을 사용해 계산을 해 볼까요?
"아니. 괜찮아."
골드의 답에 유재원은 한숨을 쉬 었다.
라이트닝 볼트의 양산차 공장을 어디에 짓는 게 유재원 개인과 ID 그룹에 좋겠느냐고 물었던 어제의 질문은 아직도 연산 중이었다.
웬만한 슈퍼컴퓨터 이상의 연산 력을 동원하면서 연산 중이지만, 아직 답이 나오려면 몇 시간은 더 있어야 한다.
이럴 때마다 회귀 전 사용했던 인공지능들이 생각나는 유재원이었 다.
당시 일반에 풀린 인공지능 비서 의 성능도 골드와는 비교할 수 없 을 만큼 뛰어났다. 그중에서 최고 는 단연 구글의 골든실버였다.
기존 실리콘 기반 클라우드 시스 템에 양자 CPU까지 결합된 무지막지한 성능을 자랑했던 골든실버였 다. 그만큼 강력한 성능 때문에 일 반인은 골든실버의 진정한 성능을 직접 맛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유재원은 스스로의 능력 을 증명해 소수에게 주어진 다이렉 트 액세스 권한을 얻었고, 이를 통 해 기계 심리 모듈을 완성할 수 있 었다.
"그나마 제일 적극적인 나라는 북한인가?"
유재원의 모니터 위에 ID 웨스팅 하우스의 토륨 원자로 사업부의 보고서가 띄워졌다.
회생 가능성이 아예 없었던 웨스 팅하우스의 원자로 사업부는 완전 히 해체하고 토륨 원자로 사업부가 신설되었다.
비대한 관료제로 가득한 조직을 ID 그룹의 팀 단위 조직으로 바꾸 고 있는 중이다. 점령군 소리도 심 심치 않게 들리는 등, 반발이 대단 했지만, 그렇다고 버틸 수 있는 것 도 아니었다.
하여튼 토륨 원자로 사업을 위한 조직은 가동되었고, 관련 보고서를 열심히 생산하는 중이었다. 역시 1+1 이벤트에 혹한 나라들이 많았 고, 북한이 제일 적극적이었다는 이야기가 보고서에 담겨 있었다.
기존 원자로 가격의 반값이고 토 륨이라는 안정적인 물질을 사용하 는 것도 플러스 요인이었다.
덕분에 북한도 다른 나라들처럼 모하비 사막에 만들어지는 2GW급 발전소 건설에 열심히 참관했고, 워터빌에 있는 실험로에도 뻔질나 게 드나들며 여러 가지를 체크했다. 그렇지만 정작 정식 계약 요청은 없는 상태다.
1+1이라는 파격적인 이벤트를 내걸어도 이런 상태였으니, 아무래 도 모하비 토륨 원자로가 제대로 가동을 해서 대형화도 문제없다는 게 밝혀진 다음에야 주문이 들어올 것 같았다.
띵!
유재원이 토륨 원자로로 고민 중 일 때, 알람이 울렸다.
"아, 드디어 나왔나?"
발신인은 라이트닝 볼트사의 볼트 사장이었고, 문서의 제목은 대 량 생산 마스터플랜이었다. 유재원 이 며칠 전부터 기다리고 있던 바 로 그 문서였다.
-공장도 없는데, 자동차를 팔다 니!
완성차 시장에 겁 없이 뛰어든 라이트닝 볼트사를 향해 쏟아내는 대표적인 비판이었다. 완전 틀린 소리는 아니었다. 공장은 아직 페 이퍼플랜 상태였으니 말이다. 그렇 다고 아예 없는 비즈니스 모델은 아니다.
한국의 주택 시장은 수억 원대의 아파트를 먼저 팔고, 나중에 지어 주는 식으로 굴러가고 있었으니 말 이다.
하여튼 IDDC 2005에서 발표된 라이트닝 볼트의 라인업은 모두 4 개.
최상급 슈퍼카 클래스인 슈퍼패 스트, 6인승 럭셔리 패밀리 SUV인 벌칸, 준중형 4인승 세단인 뉴로, 15인승 소형 버스 유니버스가 있 다.
GM이나 미래자동차 등 완성차
시장의 메이저 업체와 비교하면 빈 약하지만, 이제 막 양산 결정을 내 린 전기자동차 업체치고는 그야말 로 본격적인 라인업이기도 했다.
이러한 라이트닝 볼트사의 공통 점이라면 완충 상태에서 300km의 이동 거리를 보장한다는 점이었다.
출력이 각각 다르니 배터리의 용 량과 출력도 모두 다르지만, 에너 지 잔량 100% 상태라면 300km를 논스톱으로 거뜬히 달릴 수 있다.
대신 각 모델마다 들어가는 배터 리 팩의 숫자가 다르다.
배터리 팩이란 18650 규격의 리 튬 이온 배터리를 기다란 빼빼로처 럼 병렬로 엮어 놓은 것인데, 준중 형 4인승 세단 뉴로에는 2개가 들 어가고, 벌칸에는 3개, 슈퍼패스트 에는 4개가 들어간다.
가장 큰 출력이 필요한 15인승 유니버스에는 6개가 들어간다. 유 니버스는 사실상 제주도 한정 모델 이라서 미국과 한국에서 주문 가능 한 모델은 셋이다.
게다가 슈퍼카 클래스인 슈퍼패 스트는 소량 생산 모델이니, 대다수 소비자는 준중형 세단 뉴로와 패밀리 SUV인 벌칸이라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는 것이었다.
전력 관리 역시 교환형으로 확정 이 되었다.
완충되었던 배터리가 다 되면 근 처 교환 스테이션으로 가서 완충된 배터리 팩으로 빠르고 간단하게 교 환을 받으면 된다.
비상 상태에서 플러그를 가지고 긴급 충전할 수 있는 기능도 제공 되긴 하는데, 220V라는 저압으로는 완충되기까지 8시간이 걸릴 만큼느렸다.
플러그 충전은 급작스러운 기온 강하나 고장 때문에 방전이 일어나 이동이 불가능해진 전기차를 배터 리 교환 스테이션까지 이동하는 데 필요한 용량만 긴급히 충전하는 용 도였다.
이러한 라이트닝 볼트사의 전기 자동차 특성 때문에 볼트 사장의 마스터플랜 역시 2가지 방안으로 이뤄져 있었다.
하나는 완성차를 만드는 것, 다 른 하나는 배터리 교환 스테이션을 늘리는 것이었다.
-완성차 공장은 두 곳을 설립하 는 게 가장 좋다는 결론이 나왔습 니다.
ID톡의 화상 미팅 시스템으로 연 결된 볼트 사장이 목소리를 높였다.
"좋군요."
보고서를 보면 일단 두 곳으로 시작해서 주문 상황을 보고 다른 지역에 공장을 추가하든가, 아니면 공장의 규모를 늘리는 등의 확장을 할 예정이라고 되어 있었다.
두 곳의 공장에서 생산될 물량은 월 5만 대로 연간 60만 대 규모다.
연간 수천만 대를 찍어내는 메이 저 업체에 비하면 규모는 좀 작다. 하지만 이제 시작이라는 게 중요했 다.
더욱이 아직 공장도 없는 상태에 서 선주문으로 들어온 물량은 벌써 20만 대를 넘었다. 선주문을 위해 서는 1만 달러라는 적지 않은 금액 을 계약금으로 예치해야 했으니, 숫자를 부풀리는 허수 주문을 할 수가 없다.
그렇게 큰 제약이 있었음에도 수 많은 예약 주문이 쏟아지고 있는 실정이었다.
2년 전 리얼카메라로 공개했던 F2의 자율주행 임팩트는 대단했다. 지금은 그보다 한 차원 더 높아진 상태였는데, 스마트 기능과 인공지 능 비서 골드와 결합되면서 놀라운 시너지 효과를 나타냈다.
스마트폰의 블루투스 기능으로 자동차 열쇠를 대신한다든가, 인공 지능 비서 골드를 통해 내비게이션 과 자율주행 기능을 제어하는 등의 편의성이 증대되었다. 여기에 자율 주행도 강화되어서 환경 여건만 제 공된다면 오토 발레파킹까지도 가 능했다.
오토 발레파킹이라는 말 그대로, 운전자가 입구에 내리면 자동차가 알아서 주차장에 주차되고, 차를 찾을 때는 알아서 입구까지 오는 혁신이었다.
"역시 자율주행이 결정적이겠지 요?"
-저렴한 가격도 빼놓을 수 없지요!
볼트 사장 말대로 가격적인 매력 도 결정적이었을 것이다. 준중형 4 인승 세단인 뉴로의 가격은 2만5천 달러였으니 말이다.
휘발유 자동차라도 2만5천 달러 라면 너무 저렴하게 느껴졌다. 그 런데 자율주행 전기자동차가 2만5 천 달러라면 거저였다.
이렇게나 저렴한 가격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그저 염가의 부품으 로 만들었기 때문은 절대 아니다. 뉴로에 들어가는 부품은 최소한 휘 발유 자동차로 치면 중형 자동차급이상은 되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2만5천 달러라는 가격 이 가능했던 것은, 전기자동차에서 가장 중요하고, 가장 비싼 부품인 배터리의 가격을 라이트닝 볼트사 가 부담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출고 시 장착된 배터리 의 가격도 원가에 포함하려고 했었 다. 그런데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의문이 생기면서 보류 되었다.
라이트닝 볼트사의 전기자동차는 배터리 교환식이다.
최종적으로 이를 강조하기 위해 서 딱 좋은 게 배터리의 소유를 라 이트닝 볼트로 하고, 소비자에겐 빌려주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했다.
그렇다고 완전히 공짜로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임대된 배터리의 품질을 보장 받기 위해서 최소한의 보증금 정도만 받기로 했다.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장점은 바로 2만5천 달러라는 저렴한 가격 이었다.
슈퍼카 클래스인 슈퍼패스트는 10만 달러를 거뜬히 넘는 가격을 자랑했지만, 벌칸이나 뉴로 모두 휘 발유 자동차와 비교도 안 될 만큼 저렴한 가격을 자랑할 수 있었다.
더욱이 배터리 교환식의 장점은 또 있었다.
회귀로 압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