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로 압도한다-721화 (721/1,007)
  • 34권 5화

    매년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를 소 개하는 IDDC라는 행사를 시작한 지 어언 8년째.

    대폭적인 기능의 업그레이드가 이뤄진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나, 이 제는 다섯 번째 모델이 발표될 안 드로이드 스마트폰은 IDDC의 터줏 대감이지만, 이제는 조금 식상하게 느껴질 일이 많았다.

    수백, 수천에 달하는 전 세계 최 고의 개발진이 유재원이라는 세계 유일의 존재가 제시한 비전을 위해 2년이나 공들여 개발한 작품을 두고 식상하다고 하면, 억울할 일이 었다.

    더욱이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은 호환 제품을 포함해 1천억 달러 이 상 규모의 시장이었고, 안드로이드 운영체제 역시 연간 매출액이 50억 달러에 가까운 상품이었다.

    이번에 출시될 안드로이드 운영 체제는 미래지향적인 하드웨어 지 원과 스마트폰과의 융합에 초점을 두고 만들어졌다.

    스마트폰 역시나 스펙의 업그레 이드와 방수, 무선 충전, 지문 인식등의 기능이 추가되며 편의성을 대 폭 끌어올렸다. 여기에 소프트웨어 적인 기능 추가도 대단했다.

    하나하나 뜯어 보면 대단한 기능 들이었지만, 전작과 비슷한 느낌은 피할 수가 없었다.

    그나마 엑스박스 게임기와 게임 들은 이제 겨우 2세대라서 신선함 이 있었다.

    특히 플레이스테이션3와의 건곤 일척의 승부는 1년이 지난 지금에 도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중이었 다. 심지어 열성적이다 못해 치열하게 타오르는 양 진영의 팬보이의 대전쟁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었 다.

    엑스박스2의 팬보이들은 순수한 게임기의 성능으로 플레이스테이션 3를 압도하고 있다며 자랑했다. 게 임기 성능에 올인한 덕에 플레이스 테이션3와 비교해 화질의 차이, 부 드러움의 차이가 확연히 보였으니 말이다.

    반대로 플레이스테이션3의 팬보 이들은 엑스박스2의 독점 게임 부 족과 광학드라이브의 미비함을 집중 공격했다.

    일찍 게임기 사업을 시작한 소니 에 비해 한발 늦은 ID 그룹이었고, 이는 퍼스트파티의 확보 부족으로 이어졌다. 엑스박스2의 게임들은 PC로도 출시가 많이 되어서 독점 게임이 부족하다는 건 사실이기도 했다.

    물론 더 퍼시픽으로 한 건 크게 올리긴 했다.

    덕분에 전쟁 범죄 이슈도 크게 터졌고, 게임 자체적으로도 탁월한 평가를 받아서 작년 게임 시상식이 란 시상식은 죄다 휩쓸어 버렸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플레이스테이션3 에서도 EA가 메달 오브 아너를 출 시했고, 액티비전에선 양 진영 모 두 콜 오브 듀티라는 게임을 내서 2차 대전을 다룬 게임들이 쏟아졌 다.

    더 퍼시픽이 우수하긴 했어도 그 러한 아류작에 휩쓸려 일일 동시 접속자 숫자가 조금 줄기도 했다. 유재원도 잘 알고 있던 사안이었다. 그렇기에 이번 IDDC에서 발표할 대작들을 여러 개 준비했다.

    그럼에도 오늘 유재원은 가장 중 요한 첫날 맨 손으로 무대에 올랐 다.

    항복하는 건 아니다. 토륨 원자 로 때문에 2005년 전반기는 정신없 었지만, 언론이나 삐딱한 네티즌들 에게 IDDC가 더는 식상한 컨퍼런 스가 아님을 보여주기 위해 그야말 로 칼을 갈았다.

    오늘은 갈고 갈았던 칼을 빼들어 휘두를 차례였다.

    "2005년도 버전의 안드로이드 운 영체제, 혹은 안드로이드 S5 스마 트폰을 기대했던 분들께는 죄송하 다는 말씀을 먼저 드립니다."

    사과로 시작한 유재원의 말에 메 인 스테이지에 모인 이들이 웅성거 렸다.

    그도 그럴 것이 메인 스테이지 티켓을 구매한 이들 중 반은 PC용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기대했었고, 나머지 반은 S5 스마트폰을 기대한 이들이었으니 말이다.

    "두 제품 모두 개발팀에서 최선 을 다해 만들었습니다. 결과물 또 한 구매하신 분들께 커다란 만족을 드릴 거라고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깝게도 첫날의 주인공이 되지는 못했습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오늘만 기다린 친구가 있었기 때문이죠."

    오래전부터 기다렸다고?

    그제야 사람들은 얼마나 대단한 신제품이기에 ID 그룹의 원투 펀치 를 뒤로 밀려나게 했나 궁금증이 일어났다.

    "그러면 소개하겠습니다."

    말보다 행동이 먼저인 유재원은 오프닝에서 긴 시간을 끌 생각도 없었다.

    "15년의 기계학습으로 태어난 범 용 인공지능 어시스트 골드입니다. 골드! 오늘 행사장을 찾아와 주신 손님과 인터넷 스트리밍으로 보고 계실 수많은 여러분들께 자기 소개 를 부탁해."

    웅?.

    유재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메 인 스테이지의 조명이 어두워졌다.

    대신 ID 그룹의 대규모 행사 때마 다 어김없이 동원되는 메인 스크린 에 동그란 점이 생겨났다.

    이번에 준비된 메인 스크린은 레 이저 프로젝터 여러 대를 동원해 만든 초대형이었다.

    전에는 ID 디스플레이에서 만든 LCD 패널을 가져다가 연결하면서 메인 스크린을 만들었다. 선명도는 최고였지만, 패널과 패널 사이의 틈이 치명적이었다.

    이번에는 레이저 프로젝터를 동 원한 덕에 선명도와 밝기 모두를 잡아냈다.

    동그란 점은 좌우로 벌어지면서 굵은 선을 만들었다. 그러더니 금 색으로 빛이 나면서 여러 줄기로 갈라졌다. 마치 처음부터 수십 가 닥의 금색 선들이 모여 있던 것처 럼 보일 지경이다.

    -안녕하세요! 메인 스테이지의 손님들 그리고 인터넷 스트리밍으 로 보고 계신 시청자 여러분. 여러 분들을 돕기 위해 태어난 인공지능 어시스트 골드가 인사드립니다.

    중성적이고 인공적인 목소리다.

    동시에 너무 이질적이지도 않았다. 딱 듣기 좋은 톤의 목소리였다.

    "어리둥절한 표정의 분들이 많네 요? 혹시 누가 마이크를 잡고 대신 말하고 있는 거 아니야 하고 생각 하는 것 같기도 해요! 제가 독심술 을 익혀서가 아니라, 얼굴로 속마 음이 훤히 드러나 보이는 분들이 있으시거든요. 그렇지만, 이 자리에 서 확실히 말씀드립니다. 골드는 인공지능 어시스트로서, 방금 들으 신 목소리는 100% 인공적인 목소 리라고 말입니다."

    사람의 말을 학습하는 것으로 시 작해 15년 우직하게 기계학습을 돌 렸던 골드에게 드디어 귀와 입이 생겼다.

    -네,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골드도 한마디 보탰다.

    중성의 매력적인 목소리가 흘러 나올 때마다 메인 스크린에 걸린 금빛의 선들이 아름답게 출렁거렸 다.

    유재원이라는 반칙적인 존재가 있었음에도 여기까지 오는 데 참으 로 긴 시간이 필요했다. 더욱이 유재원 혼자서 이룩한 성과가 아니라, 수많은 인재들과 스타트업 기업들 이 합심해서 이뤄낸 성과이기도 했 다.

    단적으로 지금 골드의 목소리를 내는 보이스 합성 기술은 미라클에 코사와 액션파워, 스닙스 등의 실 리콘 밸리 기업들의 기술이 적용된 결과였다.

    미라클에코의 경우 엔젤투자 10 년 만에 나온 결과물이었고, 스닙 스의 경우 불과 1년 전 혜성처럼 등장한 기업이었다.

    음성 합성뿐만이 아니라, 음성 인식에도 많은 기업들의 기술과 노 력이 투입되어 완성되었다.

    그 리스트를 추려보면 수십 개는 가뿐히 넘었다.

    그 결과 골드는 미국어와 한국어 능력이 최상급에 도달했다.

    친구들끼리 나누는 대화처럼 빠 르게 비속어를 마구 쓰더라도 문맥 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이 야기 였다.

    미국어와 한국어 다음으로 우선 순위가 밀린 독일과 프랑스, 스페인 등 유럽의 주요 나라들, 중국어 와 일본어도 86% 이상의 인식률을 보였다.

    "골드, 네 능력을 자랑해 보고 싶은데. 음성 인식 키보드를 띄워 서 우리가 하는 대화를 문자로도 표현해 줄래?"

    -쉬운 일입니다.

    유재원은 이를 보여주기 위해 음 성 인식 키보드를 띄웠고 미국어는 물론이고 한국어로도 골드와 대화 했다.

    마치 사람과 대화하듯 자연스러운 대화였지만, 골드의 반응은 정 확했다. 인공지능의 작동 상태를 보여주는 금색 선들 아래로 안드로 이드 스마트폰의 문자 메시지 박스 가 떴다. 그리고 유재원과 골드의 대화 문구들이 텍스트로 떴다.

    영어도 완벽했고, 한국어도 마찬 가지였다.

    "그러면 골드와 시시콜콜한 잡담 만 하느냐? 그건 아니지요. 지금부 터 음성 대화를 통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하나하나씩 보여드리겠습니 다."

    문자 보내기, 전화 걸기, 원하는 음악 재생과 정지, 듣기 싫은 음악 은 건너뛰고, 좋아하는 곡은 좋아 요 표시하기.

    일일이 손으로 해야 했던 일들을 음성으로 간단히 처리했다.

    "그러면 이제 응용을 해 볼까요? 골드, 사랑하는 티파니에게 사랑한 다고 문자 메시지를 보내줘."

    -티파니 님께 '사랑한다'라고 보 냅니다. 맞습니까?

    "응!"

    아주 기본적인 일들을 시범으로 보였던 유재원은 훨씬 복잡한 작업 을 시작했다.

    이메일을 전송하고, 내비게이션 을 켜서 목적지를 정한다거나, 구 글의 전문가 모드 검색을 통해 원 하는 결과를 찾는 것부터, 영화나 식당을 예약하고 N페이를 통해 결 제까지 하는 것을 선보였다.

    그야말로 기존에 출시된 음성 인 식 소프트웨어와는 차원이 다른 수 준의 퀄리티였다.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골드에는 언어의 국경이 없습니 다."

    골드는 영어도 인식하고, 한국어 도 인식한다. 그말인 즉 영어와 한 국어의 변환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이야기였다.

    시범도 자연스러웠다. 캐스터의 말이 총알처럼 쏟아지는 한국의 경 마 중계를 띄워 놓고 골드와 연동 시크]자, 영어 자막이 쏟아졌다. 심 지어 그 영어 자막을 골드가 미국 식 악센트의 발음으로 읽어 주기까 지 했다.

    "장애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유재원은 손을 움직여 '골드는 미국과 한국 그리고 세계 여러 나라들의 수화도 익혔으니까 요'라고 미국식 수화로 표현했다. 그러자 메인 스크린에는 영어와 한 국어는 물론 스페인어와 독일어, 심지어 일본어까지도 자막이 떴다.

    "사람과 사람의 마음을 이어 주 는 것. 그것이 골드의 존재 의미니 까요."

    -진심을 담아 봉사하겠습니다.

    그야말로 감동이 휘몰아쳤다.

    "비판적 사고가 투철하신 분이라 면, 저와 골드 사이의 대화가 사전 에 정해진 스크립트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시겠지요."

    실제로 메인 스테이지에 자리한 손님들 중에는 그런 사람이 없었다.

    그럴듯하게 대화형 스크립트를 짜서 만든 장면이었다면, 인위적인 느낌이 듬뿍 밀려왔을 것이다.

    하지만 무대에서 이뤄진 유재원 과 골드의 대화는 진짜였다. 그렇 기에 유재원과 골드가 나눈 대화를 현미경으로 뜯어 보면 살짝 핀트가 맞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대화는 정확했고, 골드가 수행한 작업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 었다.

    여기에 유재원의 결정적인 한 마 디가 이어졌다.

    "그런 분들을 위해 말씀드립니 다. 당장 오늘부터 판매되는 안드 로이드 05 운영체제와 S5 스마트폰 그리고 안드로이드 연합에 가입한 기업들이 출시할 제품들을 구매해 직접 사용해 보시기 바랍니다. 인 공지능 비서의 이름 또한 여러분이 원하시는 이름으로 설정이 가능하 고 반응하는 목소리를 한정할 수 있으니 보안은 걱정 안 하셔도 됩 니다."

    인공지능 골드의 어시스트를 받 기 위해서 무조건 최신 제품을 써 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마이크와 카메라 그리고 인터넷이 갖춰진 환 경이라면 플랫폼에 상관 없이 골드 의 조언이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대신 하드웨어에 따라 골드의 답 변 수준에 차이가 생기는 정도였다. 인공지능 연산을 위한 전용 회로가 있는 안드로이드 S5가 가장 품질이 좋고, PC는 보통이며, 아이폰에서 는 제일 떨어진다.

    1시간 가량의 인공지능 어시스트 골드의 소개가 끝났을 때, 메인 스 테이지에는 박수 갈채가 쏟아졌다.

    "하아."

    인공지능 어시스트 골드의 성공 적 발표를 마치고 메인 스테이지에 서 내려오는 길, 유재원은 작게 한 숨을 쉬었다.

    다들 깜짝 까무러칠 만큼 놀랐다 는 반응이지만, 유재원의 기준에서는 아직도 골드가 가야 할 길은 멀 었다. 이제 겨우 일상의 영역에 조 금 들어선 것이고, 의료 분야나 사 법 분야, 경영 지원과 같은 전문적 인 영역은 아직 시작이었다.

    전문 영역을 골드가 뚫어내려면 인공지능의 판단이 인간 못지않다 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5년 내에 바둑을 정복하면 되겠 지."

    회귀 전 구글이 세기의 대결이었 던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를 괜히 열었던 게 아니다.

    당시 구글은 제4국에서 신의 한 수에 그만 발목이 잡혔지만, 유재 원은 골드라면 다를 거라는 자신감 이 가득했다.

    다만 완벽을 기하기까지 5년은 더 학습을 해야 한다는 게 아쉬웠 다.

    회귀로 압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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