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권 2화
유재원이 시애틀에 다녀온 지 몇 주가 지났다.
ID 그룹의 최대 행사인 IDDC까 지 한 달 남은 2005년의 7월 초. 세계를 흔드는 최대 이슈는 바로 동시베리아-태평양 송유관 사업이 었다.
-셰브롱, 동시베리아-태평양 송 유관 사업 참가!
-셰브롱, 28억 달러 투자로 25% 지분 획득!
-이르쿠츠크 유전과의 동시베리 아-태평양 송유관 시너지 효과 기대!
-중국과 한국, 북한 송유관 사업 에 비상한 관심!
티파니의 전쟁이었던 셰브롱 이 사회 설득을 위한 프레젠테이션은 성공했다. 이사회가 보수적이고, 티 파니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이사들 이 제법 있었다고 해도 기업의 존 망이 달린 비즈니스에서까지 어깃 장을 놓는 사람은 없었다.
덕분에 러시아의 숙원인 동시베 리아-태평양 송유관 사업이 셰브롱 의 참가로 인해 탄력을 받았다. 지분을 받는 즉시 현금이 입금되었고, 이 자금을 발판으로 빠른 완공을 위해 동시다발적인 송유관 공사를 시작하기로 한 것이다.
"역시 주식이 제일 선도적이네."
서재에서 관련 소식을 실시간으 로 파악하고 있는 유재원은 한국과 중국의 주식 시장이 출렁거리는 것 을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중동에서 석유를 가져와 파는 석 유 기업들은 바닥을 쳤고, 에너지 를 대량으로 소비하는 제철, 섬유, 반도체 기업들의 주가들은 치솟았다.
동시베리아-태평양 송유관이 중 국이나 한국까지 들어오면 원가 중 제일 큰 비중을 차지했던 에너지 비중이 크게 줄어들게 되었으니 말 이다.
단적으로 송유관 설비가 끝나면 현재 대한민국에 공급되는 천연가 스 가격이 1/10가격으로 공급되는 데, 이에 따라 동아시아 에너지 시 장의 판도가 확 바뀌어 버리는 것 이다.
송유관 완성까지는 시간이 한참 남았고, 한국의 경우 북한과의 협 의도 필수였다. 그렇지만 현재의 여건은 과거에 비교할 수 없을 만 큼 좋았다.
회귀 전 동시베리아-태평양 송유 관의 동쪽 끝은 블라디보스토크였 다. 지금은 부산이 유력해지고 있 었다. 부산과 블라디보스토크의 지 리적 위치를 비교하면 부산의 압승 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위험한 송유관이 부산이란 대도시를 가로지르는 건 큰 일이니, 현실적으로는 울산이나 포항 근처가 될 확률이 높다.
이러한 생각이 비단 유재원만의 것은 아니었다.
비슷한 생각은 경제에 관심이 있 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니 이들이 주가를 움직이고 땅 값을 들썩이게 했다. 다만 유재원 이 그런 사람들과 다른 건 중요한 정보를 접하는 입장이 아니라, 만 드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티파니가 동시베리아-태평양 송 유관 사업을 위해 러시아와 접촉하 려고 할 때부터, 유재원은 조언을 아끼지 않았으니 말이다.
"역시, 빈센트 사장님이야."
그러한 정보는 당연히 ID 인베스 트먼트의 빈센트 사장과 공유했다. 빈센트 사장은 유재원을 통해 입수 한 정보를 바탕으로 한국과 중국의 주식 포트폴리오를 조정했다.
그 결과 셰브롱의 러시아 송유관 지분 확보 소식으로 시작된 지수 상승의 영향을 그대로 입었다.
어떤 주식을 팔고, 무얼 사야 한 다는 식의 구체적인 지시는 없었다. 투자로만 한평생을 살아오신 빈센트 사장이었고, ID 인베스트먼트는 꾸준한 성공 덕에 월스트리트의 인 재를 긁어 모으는 중이었다.
이런 엘리트들이 최고의 효과를 낼 포트폴리오를 만들었으니, 그야 말로 돈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는 중이다.
주식 시장이 공평해 보여도, 실 상은 이렇게나 불평등한 것이다. 그렇지만 한국 사람들 중 상당수는 주식을 하지 않더라도 수익을 공유 했다.
ID 인베스트먼트의 투자는 유재원 개인 돈이 반이고, 나머지 반은 투자 계좌를 개설한 사람들로부터 모집한 투자금이었으니 말이다.
유재원처럼 한 번 돈을 넣고 십 수 년을 장기 보유한 이들은 극히 드물지만, 짧게 단기로 넣어도 10% 이상의 수익은 거둘 수 있는 게 ID 인베스트먼트의 펀드였다.
한국 사람들 중에 투자의 여력이 있는 이들은 다들 하나씩 가입하고 있었으니, 한국의 주가 상승으로 인한 이득은 고르게 분배되는 것이 었다.
"이번엔 내 차례군."
더욱이 이번 랠리에 장작을 넣어 줄 소재는 충분했다. 더욱이 그 장 작은 유재원 본인이 직접 준비한 것이기도 했다.
-ID 그룹, 119년 역사의 웨스팅 하우스 인수!
-초대형 M&A, 인수 가격 70억 달러!
송유관 투자 소식이 알려지고 나 서 며칠 후.
이번엔 원전 사업에 지각 변동의 소식이 터졌다. 자세한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엔 그야말로 뜬금없는 소식이었다.
원전과 IT가 전혀 상관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에게는, ID 그룹의 무모한 문어발 확장처럼 보일 정도 였다. 그러나 여론은 하루도 지나 지 않아서 반전되었다.
-ID 하이테크, 토륨 원자로 개발 성공!
후속 보도를 통해 토륨 원자로 개발 성공의 소식이 터진 것이다.
-토륨 원자로란?
-핵폐기물 걱정 없는 안전한 21 세기형 원자로!
-원자력 발전 시장에 대대적인 지각 변동!
-ID 그룹의 지속적 혁신의 비 밀? IDDC 2005에서 밝혀진다!
토륨 원자로가 대체 무엇인지 알 려주는 소식부터, 토륨 원자로를 통해 앞으로 일어날 원자력 발전분야의 지각 변동에 대해 예측하는 기사까지도 쏟아지기 시작했다. 인 터넷과 거대 미디어를 지배하고 있 는 ID 그룹답게, 한 번 터지자 전 세계의 미디어가 토륨 원자로로 뒤 덮혔다.
사실 토륨 원자로 자체만으로 기 존의 원전과는 차원이 다른 진보였 기에, ID 그룹의 지원이 없더라도 충분이 떠들썩한 일이다. 그런데 ID 그룹이 마음먹고 움직이자 그 여파는 차원을 달리했다.
"굳이 이렇게 크게 떠들 필요가 있습니까?"
오죽하면 시끌벅적한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안드레이 소장이 한 마디 할 정도로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몰려드는 인터뷰 요청과 취재 요청에 모두 응하다 보니 연구 활동은 완전 뒷전으로 밀려나 버렸던 탓이다.
오죽하면 나서기 좋아하는 클라 크 팀장도 며칠 지나자 연구소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심했 다.
그런 둘에게 유재원은 양해를 구했다. 이렇게 야단법석을 떨어야 하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어쩔 수 없어요. 저기 철의 장 막 속에 숨어 있는 독재자에게 우 리 뉴스가 들어가려면 이 정도는 해 줘야 하거든요."
동시베리아-태평양 송유관과 이 르쿠츠크 유전 그리고 토륨 원자로 와 북한의 유전 개발까지. 유재원 이 머릿속에 그리는 엄청난 크기의 계획을 제대로 실행하려면 첫 단추 를 확실히 해야 한다.
ID 그룹이 토륨 원자로 사업을
대대적으로 시작한다는 진심이 전 해져야 했다. 그래야 조만간 북한 쪽에 전달될 웨스팅하우스의 토륨 원자로 사업 계획서를 진지하게 검 토할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해서 승인이 난다면 중동 다음으로 세계의 화약고라 칭해졌 던 동아시아에 항구적 평화 구도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회귀 전 야심 넘치는 정치가들이 도전했다가 현 실의 높은 벽에 숱한 좌절을 맛보 았던 일이었다.
그렇기에 동아시아 균형자론과
같은 건 유니콘과 같은 취급을 받 기도 했다. 누구나 좋은 건 알고 있지만, 결코 현실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환상종이었다.
이번엔 다르다.
유재원은 그 어느 때보다 성공 가능성을 높이 점쳤다.
자만을 경계하라는 교장선생님의 유언이 아니었다면 마침표를 꽝 찍 었겠지만, 이번엔 진짜 느낌이 좋 았다.
#405. 프로메테우스 프로젝트
2005년, 116년 역사의 웨스팅하 우스를 인수해 ID 웨스팅하우스라 는 이름으로 바꾼 유재원의 행보는 거침이 없었다.
그보다 더 빨리 진행된 건 토륨 원자로의 안정성과 우수함을 인증 하기 위해 미국과 유럽, 아시아 여 러 나라에 특허를 신청하는 것이었 다.
특허라는 건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신기술의 핵심 원리를 공개 하는 대신, 시간이 한정된 독자 사 용권을 인정해 주는 걸 말한다.
기술을 공개하는 것이니, 특허는 곧 미투 상품의 출시의 위험도 있 었다. 덕분에 일부 기업들은 본인 들의 기술력을 믿고 신기술에 대한 특허를 신청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 다.
워낙 차별화되고 우수한 기술인 지라 특허를 신청해 기술을 공개하 는 게 더 위험하다고 판단하는 경우 이렇게 한다.
토륨 원자로의 경우 구조만 파악 하면 복제품을 만들 수 있으니, 특 허 등록이 정답이었다. 그렇지만, 언제나 한발 더 나아가는 유재원은 논문까지도 준비했다.
기업의 기술 독점에 대한 위험성 은 회귀 전 충분히 경험했으니 말 이다.
더욱이 토륨 원자로의 특허 인정 기간이 다 지나는 건 2020년인데, 그 정도면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궁극의 불꽃인 핵융합 발전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ID 웨스팅하우스, 새로운 발전 소 판매 모델 제시!
토륨 원자로가 기존 원자로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안전하다는 건 이미 증명된 이야기였다. 그렇 지만 원자력 발전소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건 실적이었다. 사고가 나 면 초대형이라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
원전 사고의 영원한 반면교사인 체르노빌만 봐도 지옥처럼 끔찍했 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원전을 건설하고자 하 는 나라들이 따지는 건, 안전성이 었고 그 지표는 건설 실적으로 대 신하는 경우가 많았다.
얼마나 많이 지어진 모델이냐가 곧 안정성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는 토륨 원자로가 가장 취약한 지점이었다. 이제까지의 원자력 발 전 모델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이다. 실적은 오직 하나 워터빌 시티의 실험로가 전부였다.
그러니 토륨 원자로가 안전하다 는 건 다 알지만, 건설 예정인 원전의 모델을 토륨 원자로로 교체하 겠다고 나서는 나라는 없었다.
아예 새로운 원전 건설 공고가 뜨면, 그때 지원서를 넣어 보는 게 최선인 상황이었다.
그렇게 세월을 보내며 기다리는 건 유재원의 취향이 절대 아니었다. 더욱이 유재원이 그리는 동아시아 의 새로운 구도를 실현하려면 불도 저와 같은 추진력이 필요할 때였다.
-ID 웨스팅하우스, 캘리포니아에 2GW급 토륨 원자로 건설!
실적이 없다고?
그렇다면 기업 차원에서 초대형 토륨 원자로를 지어서 지상 최대의 쇼케이스를 열기로 했다.
장소는 캘리포니아주의 주도 로 스앤젤레스 북동쪽 모하비 사막이 었고, 미국의 핵에너지 정책을 담 당하는 에너지부와 공동으로 운영 하기로 했다.
보통 원자력 발전소는 대량의 냉 각수가 필요하기에 해안가에 짓는 게 보통이지만, 토륨 원자로는 냉 각수에서 자유로웠기에 사막이라는 안전한 곳에 자리할 수 있었다.
만약 관심이 있는 나라들은 모하 비 토륨 원자로가 건설되는 때부터 참관해서 설계의 안정성을 직접 확 인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더욱이 유재원의 조치는 이게 다 가 아니었다.
-초호기부터 3호기까지, 1+1!
이제까지 원전 사업에 존재하지 않았던 판매 방식!
토륨 원자로 1기를 주문하면 동 급의 용량의 발전소를 하나 더 지 어 준다는, 그야말로 대형 할인 마 트에서나 할 법한 마케팅을 시작했다.
한국의 속담에 공짜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게 있다.
공짜라면 몸에 나쁜 거라도 받아 먹는다는 의미였다. 물론 토륨 원 자로가 양잿물은 아니었다. 그렇지 만 원전 관련 종사자들의 미심쩍은 시선을 거두기 위해선 파격이 필요 했다.
그래서 나온 게 1+1이다!
원자력 발전소가 한두 푼 하는 사업이 아니었기에, 지금껏 이러한 혜택을 내세우며 유치를 하려는 업체는 없었다.
오직 ID 웨스팅하우스만이 가능 했다. 그리고 여기엔 비밀이 있었 다.
유재원의 결단이 가장 큰 원동력 이지만, 유재원이 과감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은 바로 토륨 원자로 건설 비용이 일반 원전의 1/2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조금 생각해 보면 아주 상식적인 이야기였다.
원전 건설에서 가장 큰 비용이 드는 부분이 원자로 설치였다. 방사능이 누출되면 큰일이기에 지진 과 같은 천재지변은 물론이고, 폭 격이나 테러 같은 인위적인 공격으 로부터도 방어를 위해 엄청난 두께 의 콘크리트 벽을 쌓아 원자로를 보호한다.
물론 허술한 슬레이트로 비바람 만 피하는 식의 발전소도 있다. 일 본 도쿄 전력이 후쿠시마에 지은 원자력 발전소가 그런 형태다.
그래도 원자로 자체는 매우 복잡 한 형태를 지니고 있었다. 방사능 차폐를 위해 겹겹의 안전장치를 씌우는 탓이다.
그게 다 돈이었다.
반면 클라크 팀장이 설계한 토륨 원자로는 구조가 매우 간단했다. 그냥 대놓고 말하면 연탄보일러와 같았다.
회귀로 압도한다